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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 코로나19, 이제 성찰의 시간으로
    코로나19, 이제 성찰의 시간으로

    유행이 시작되고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웠다. 관을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구덩이를 크게 파서 시신을 한꺼번에 매장하는 모습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병상이 모자라고 의료인이 부족했다. 특히 간호사 부족이 심각해서, 퇴직한 이들에게까지 동원령이 떨어졌다. 치료법이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절박한 심정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이나 과산화수소 같은 의약품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저명한 의학잡지들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을 쏟아냈다. 젊은 환자들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급작스레 상태가 악화되기도 했고, 어떤 환자들은 냄새를 못 맡는 증상이 몇 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손을 씻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 밀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권고했다.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위험이 과장되었다며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유행의 파도마다 ‘이제 피크는 지나갔다’며 근거 없는 안심을 만들어내는 정치인도 ...

    2023.05.22 03:00

  • [지금, 여기]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

    5월이 되면 많이 듣게 되는 단어가 ‘가정’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 등 가정, 가족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아 5월은 가정의달이라고 불린다. 5월15일은 국제 가정의날이기도 하다. 한편 5월은 성소수자에게도 의미 있는 달이다. 5월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제외한 것을 기념하여 제정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그보다 앞서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삭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을 개탄한다.”그리고 미국정신의학회의 위 입장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23년 2월 유사한 이야기가 법원으로부터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동성배우자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

    2023.05.15 03:00

  • [지금, 여기] 학교폭력 소송남발 대책 마련해야
    학교폭력 소송남발 대책 마련해야

    학교폭력은 엄벌이 답이라며 급하게 만든 교육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얼마 전 발표되었다. 이 대책 중 피해학생과 관련된 내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해학생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했다는 사실을 통지받을 수 있도록 개선되었고,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을 분리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대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가해학생에 관련된 내용인데, 가해학생 학폭위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4년까지 보존하고 대입 입시에도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이 전면에 강조되었다. 문제는 이 대책 속 결정과 조치들은 모두 소송으로 연결되어 법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관한 소송이라면 피해학생이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열리는 형사소송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해학생이 제기하는 소송이 훨씬 많다. 학생부 기록이 중요한 학생은 학폭위 결정을 다투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건다. 학급교체 조치를 당한 학생은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낸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2023.05.08 03:00

  • [지금, 여기] 기꺼이 당신들의 적이 되겠다
    기꺼이 당신들의 적이 되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전시장에 갔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낡고 조악했다. 자신이 흉내내는 옛 수묵의 준법(皴法)과 대결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사진을 구성하는 기술적 이해는 얄팍했다. 프레임에 새어 들어오는 빛과 흐릿하게 퍼진 입자를 다루는 능력은 부족했다. 전시장 곳곳에 인쇄되어 놓인 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허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망연한 마음이 되어 전시장 바깥으로 나왔다. 오래전, 나의 스승은 비평을 쓰기 위해서는 사진 한 장을 20분 이상 대면해야 한다고 나를 가르쳤다. 하지만 그 사진들 앞에서는 5분도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나는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사실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긴 글을 쓰기 위해 전시장에 들렀던 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다. 작가에게 윤리적 흠결이 있다면 작품 역시 비윤리적이고 무가치한가? 혹은 작가의 인품이 고결하다면 작품 역시 가산점을 받는가? 물론 이 질문은 낡고 오래되었고, ...

    2023.05.01 03:00

  • [지금, 여기] 일 잘해내기 위한 노력이 존중받길
    일 잘해내기 위한 노력이 존중받길

    몇 년 전 지인들과 식당에 앉아 있는데, 군 장성이 관사의 공관병을 사노비처럼 부려먹었다는 TV 뉴스가 흘러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이 자신도 공관병으로 근무했다며, 뉴스에서처럼 별별 허드렛일을 다 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 분명히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진심을 담아 일을 하고 있더란다. “직접 시장에 가서 하나라도 더 좋은 거 사려고 흥정하고,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까 고민하고. 그러다 갑자기 저녁에 외부 일정이 생겼다니까, 섭섭한 맘이 드는 거예요. 맛있는 거 차려놨는데…. 아니, 장교가 저녁 먹고 들어온다는데 내가 왜 섭섭한 거야? 진짜 황당하지 않아요?” 일행은 박장대소했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즐거워요. 일이 좋아 죽겠어요. 52시간이 뭐예요, 69시간, 120시간 계속 일하고 싶어요. 아마 이런 직장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일 그 자체를 잘...

    2023.04.24 03:00

  • [지금, 여기]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매년 4월16일이 오면 어느덧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나를 느끼곤 한다. 누구도 잊지 못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의 시간이 흘렀다. 9년의 시간 동안 누구나 안전하게 살고 일하며 만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유가족과 피해자, 시민들은 계속해서 ‘기억, 약속, 책임’을 이야기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재난참사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한편 개인적으론 2015년 4월16일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광화문 분향소로 이동했으나 그때 마주한 것은 경찰의 펜스와 차벽이었다. 경찰의 벽을 뚫고 어찌어찌 광화문에 왔으나, 그 후 모든 출입구가 막혀 광화문광장에서 수시간 갇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른바 ‘불법집회’를 막겠다는 경찰의 조치에 진실을 요구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차단되었다....

    2023.04.17 03:00

  • [지금, 여기] 다양한 가족 인정해야 저출생 극복
    다양한 가족 인정해야 저출생 극복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종이에 ‘학부모 동의서’라는 글씨가 제목으로 큼지막이 써 있었다. 사건을 통해 만난 아이들 중 ‘학부모’라는 단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만한 아이를 떠올려봤지만 별로 없었다. 한부모가정이거나 조손가정, 나이만 어리지 사실상 가장인 아이,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다양한 삶을 담기에 ‘학부모’라는 단어는 참 좁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동복지법의 용어인 ‘보호자’라는 말로 바꾸자고 학교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아무리 자기 표현이 자유로운 시대라 하더라도 표정이나 평가,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와 다른 수많은 타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는 일도 마찬가지다. 낳고 기르기가 벅차거나 주변 손가락질이 두려우면 아이를 낳는 선택은 가급적 안 하게 된다. 2022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내전 상황보다 더 낮은 출생률...

    2023.04.10 03:00

  • [지금, 여기] 전통에 대한 잡지 마감 때의 생각들
    전통에 대한 잡지 마감 때의 생각들

    나는 전통에 대한 잡지를 만든다. 그리고 곧 이번 호의 마감에 돌입한다. ‘마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졸린 몸에 카페인과 당분을 쏟아붓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좀 메슥거린다. 지칠 때까지 글을 고치고 사진을 다듬은 후에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푸념을 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솔직히 마감의 나날이 지닌 기묘한 안온함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 기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e메일에 답장을 하는 것도, 심지어 자동차를 고치거나 병원에 가는 것도 모두 미룰 수 있다. 신경을 집중해서 사진과 글을 한없이 들여다보다 보면, 가끔은 몸에서 어떤 현실감이 나른하게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하지만 떨쳐내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전통이 과연 뭐길래 이렇게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을까? ‘조상의 지혜’ ‘빛나는 문화’ ‘얼’ ‘슬기’ 같은 물렁물렁한 단어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전통에 대한 잡지를 만든다지만, 이 말들의 정확한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과거는 언제나...

    2023.04.03 03:00

  • [지금, 여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최근 조지 오웰의 <1984>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고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정해준 필독서 중 하나였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줄거리도 모두 까먹고,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다 아는 빅브러더 정도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독서는 좀 달랐다.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 같은, 소설 속 디스토피아의 첨단 감시 기술이 모두 현실화되었다는 깨달음 때문은 아니었다. 이 정도에 놀랄 만큼 심약한 사람은 아니다. 최근 이 책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조차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신어(新語) 제조 공정을 이 코너 제목처럼‘지금, 여기’에서 실시간으로 내가 목격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현실 자각 때문이었다.전체주의 국가조차도 감시와 폭력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 민중들의 자발적 예속을 이끌어내고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말’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리부’ 소속 화...

    2023.03.27 03:00

  • [지금, 여기] 왜 그곳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되는가
    왜 그곳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되는가

    2020년 경찰이 심야 주거지역에서의 소음기준을 강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고하였다. 당시 제시한 야간 소음기준은 55㏈로 일상대화보다도 낮은 음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야간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사실상 우회적으로 야간 집회를 제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함께 활동하는 단체에서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관련된 외국의 사례나 기본권 침해 문제 등에 대한 자료들을 준비해갔다. 하지만 실제 회의에서 나온 질문들은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것들이었다. 특히 한 위원은 반복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밤중에 집회를 해야 하는가. 위 질문에 굳이 답을 해보자면 밤에 집회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시간대에 특별히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고, 참가자들의 다수가 일과 시간 후에 참...

    2023.03.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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