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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매년 4월16일이 오면 어느덧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나를 느끼곤 한다. 누구도 잊지 못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의 시간이 흘렀다. 9년의 시간 동안 누구나 안전하게 살고 일하며 만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유가족과 피해자, 시민들은 계속해서 ‘기억, 약속, 책임’을 이야기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재난참사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한편 개인적으론 2015년 4월16일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광화문 분향소로 이동했으나 그때 마주한 것은 경찰의 펜스와 차벽이었다. 경찰의 벽을 뚫고 어찌어찌 광화문에 왔으나, 그 후 모든 출입구가 막혀 광화문광장에서 수시간 갇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른바 ‘불법집회’를 막겠다는 경찰의 조치에 진실을 요구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차단되었다....

    2023.04.17 03:00

  • [지금, 여기] 다양한 가족 인정해야 저출생 극복
    다양한 가족 인정해야 저출생 극복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종이에 ‘학부모 동의서’라는 글씨가 제목으로 큼지막이 써 있었다. 사건을 통해 만난 아이들 중 ‘학부모’라는 단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만한 아이를 떠올려봤지만 별로 없었다. 한부모가정이거나 조손가정, 나이만 어리지 사실상 가장인 아이,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다양한 삶을 담기에 ‘학부모’라는 단어는 참 좁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동복지법의 용어인 ‘보호자’라는 말로 바꾸자고 학교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아무리 자기 표현이 자유로운 시대라 하더라도 표정이나 평가,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와 다른 수많은 타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는 일도 마찬가지다. 낳고 기르기가 벅차거나 주변 손가락질이 두려우면 아이를 낳는 선택은 가급적 안 하게 된다. 2022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내전 상황보다 더 낮은 출생률...

    2023.04.10 03:00

  • [지금, 여기] 전통에 대한 잡지 마감 때의 생각들
    전통에 대한 잡지 마감 때의 생각들

    나는 전통에 대한 잡지를 만든다. 그리고 곧 이번 호의 마감에 돌입한다. ‘마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졸린 몸에 카페인과 당분을 쏟아붓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좀 메슥거린다. 지칠 때까지 글을 고치고 사진을 다듬은 후에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푸념을 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솔직히 마감의 나날이 지닌 기묘한 안온함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 기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e메일에 답장을 하는 것도, 심지어 자동차를 고치거나 병원에 가는 것도 모두 미룰 수 있다. 신경을 집중해서 사진과 글을 한없이 들여다보다 보면, 가끔은 몸에서 어떤 현실감이 나른하게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하지만 떨쳐내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전통이 과연 뭐길래 이렇게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을까? ‘조상의 지혜’ ‘빛나는 문화’ ‘얼’ ‘슬기’ 같은 물렁물렁한 단어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전통에 대한 잡지를 만든다지만, 이 말들의 정확한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과거는 언제나...

    2023.04.03 03:00

  • [지금, 여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최근 조지 오웰의 <1984>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고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정해준 필독서 중 하나였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줄거리도 모두 까먹고,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다 아는 빅브러더 정도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독서는 좀 달랐다.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 같은, 소설 속 디스토피아의 첨단 감시 기술이 모두 현실화되었다는 깨달음 때문은 아니었다. 이 정도에 놀랄 만큼 심약한 사람은 아니다. 최근 이 책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조차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신어(新語) 제조 공정을 이 코너 제목처럼‘지금, 여기’에서 실시간으로 내가 목격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현실 자각 때문이었다.전체주의 국가조차도 감시와 폭력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 민중들의 자발적 예속을 이끌어내고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말’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리부’ 소속 화...

    2023.03.27 03:00

  • [지금, 여기] 왜 그곳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되는가
    왜 그곳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되는가

    2020년 경찰이 심야 주거지역에서의 소음기준을 강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고하였다. 당시 제시한 야간 소음기준은 55㏈로 일상대화보다도 낮은 음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야간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사실상 우회적으로 야간 집회를 제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함께 활동하는 단체에서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관련된 외국의 사례나 기본권 침해 문제 등에 대한 자료들을 준비해갔다. 하지만 실제 회의에서 나온 질문들은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것들이었다. 특히 한 위원은 반복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밤중에 집회를 해야 하는가. 위 질문에 굳이 답을 해보자면 밤에 집회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시간대에 특별히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고, 참가자들의 다수가 일과 시간 후에 참...

    2023.03.20 03:00

  • [지금, 여기] 피해자 ‘글로리’ 되찾기 어려운 나라
    피해자 ‘글로리’ 되찾기 어려운 나라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의 치열한 복수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현실에 미치는 여파도 대단하다. 국가수사본부장이 임명 하루 만에 아들의 학교폭력 전력으로 낙마하기도 하고, 학창시절 내내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며 직접 가해자들을 찾아가 왜 그랬는지 따져 묻는 여정이 한 방송에 담겨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작가는 피해자가 잃은 존엄이나 명예, 영광과 같은 것들을 되찾는 원점으로 가해자들의 사과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가해자는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야 사과할지 고민한다. 형사사법체계는 그 고민의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다. 고소당하고 수사받고 재판에 넘겨져 판결 선고를 기다리며 가해자는 그제야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곤 한다.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형사사법체계에서 피해자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졌다. 사건 시작부터 난관이다. 원래 피해자는 경찰과 검찰...

    2023.03.13 03:00

  • [지금, 여기] 우리의 책이 조금 덜 아름답더라도
    우리의 책이 조금 덜 아름답더라도

    종종 아름다운 책을 골라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런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책은 대부분 다 아름다운 것 같다고 대답하고, 곧바로 후회한다. 하지만 솔직히 서점에 놓인 책은 대부분 아름답다. 질투가 날 정도로. 서른 살 즈음, 오래된 대학출판부에서 일했다. 사진과 디자인 언저리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며 떠돌다가 결국 약간의 멀미를 느끼며 옮겨온 직장이었다. 아름답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 쫓기는 것보다는 고즈넉히 자리 잡은 낡은 건물 한쪽에서 두툼한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아름다운 학술서도 많지만, 당시 대학출판부 책들의 외양은 대체로 투박했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유쾌한 성격의 교수는 직원들이 여럿 있던 자리에서 우리 책들의 표지가 ‘사회주의 국가 연례보고서’ 같다는 농담을 했다. 그때 나를 제외하고 웃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에 편집 일을 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이 투박한 표지와 본문에 여러...

    2023.03.06 03:00

  • [지금, 여기]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정부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정부

    지난주 통계청이 2022년 인구동향 통계를 발표한 후 출산율 문제가 또다시 뉴스를 뒤덮고 있다. K출산율은 몇 년째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쯤 되니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가 손에 땀을 쥐고 신기록 레이스를 지켜보게 된다. 이렇게 경쟁자 없는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정부가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책을 수도 없이 내놓았고, 16년 동안 지출한 예산도 280조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세금 낭비나 배임 혐의로 전방위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다들 바쁘시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 통계청 발표 이후 대통령실은 ‘백화점식’ 정책을 지양하고 효과가 있는 정책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례로 든 정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자녀 돌봄과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말이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회사 업무를 한다는 것이지, 집에서 내 마...

    2023.02.27 03:00

  • [지금, 여기] 학생인권조례, 폐지 아닌 확대돼야
    학생인권조례, 폐지 아닌 확대돼야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6곳에 있는 학생인권조례의 하나이며, 최초로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법령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그런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현재 폐지 또는 개악될 위험에 처해 있다. 지난 14일 서울시의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조례 청구를 수리했다. 지난해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부모의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며,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 낸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수리일부터 30일 이내에 주민청구 조례안, 즉 조례 폐지안을 발의해야 한다.한편으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학교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해서 발의하겠다고 하는 해당 조례안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되었고, 양...

    2023.02.20 03:00

  • [지금, 여기] 비동의간음, 이대로 잊히나
    비동의간음, 이대로 잊히나

    여성가족부는 얼마 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며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그로부터 9시간 후 개정 추진을 철회했다. 갑작스러운 입장 번복에 대하여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법무부 장관의 전화 한 통에 엎어진 일이라는 주장도 있던데, 지금이 무슨 왕정국가인가. 법무부가 새로운 형사 구성요건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애석하게도 거의 없었다.추측이 아닌 확인된 어떤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기본계획 발표 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법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성관계 시 ‘예’ ‘아니오’라는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성인남녀를 평가 절하한다”는 글을 썼다. 비동의간음죄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반대 이유들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비동의간음죄’라고 하...

    2023.0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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