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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 두 재판, 한 마음
    두 재판, 한 마음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종교기관을 상대로 한두 건의 재판을 대리한 것은 아직 좀 어색한 일이다.한 사건은 2019년 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하였다는 이유로 징계절차에 회부된 교회재판이다. 목사로서 성소수자를 축복한 것이 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 징계사유로 규정한 ‘동성애 찬성·동조’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소 이유였다. 3년간의 긴 재판을 거쳐 지난 10월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정직 2년의 징계를 내렸다. 다른 한 사건은 2018년 5월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학교 측은 학칙을 무리하게 적용해 학생들을 징계했고, 징계무효확인판결도 내려졌지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손해배상 소송까지 한 끝에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등 불법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였다...

    2022.11.21 03:00

  • [지금, 여기] 자립 이해 없는 자립지원 소용없다
    자립 이해 없는 자립지원 소용없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가 ‘자립준비청년’으로 바뀐 지 1년이 넘었다. 기존 용어가 다소 수동적인 표현이라는 지적과 보호종료청년, 보호종료청소년 등 비슷한 용어로 혼용되어온 점을 감안하여 새 용어로 바꾼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22일부터 보호대상아동이 본인 의사에 따라 25세에 달할 때(만 24세)까지로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보호대상아동 대부분이 18세가 되면 살던 곳을 나와야 하는 것이 자립에 어려움을 준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이다. 또한 정부는 보호대상아동의 가정위탁 보호 종료 또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이후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을 시·도별로 설치·운영하고 있다. 자립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도 늘어나고 있다. 주로 구청에서 일하는 ‘아동보호전담요원’과 별개로 아동이 사는 시설(아직 공동생활가정에는 거의 없고, 주로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있다. 아동보호전담요원과 자립지원전담요원은 모두 시설에서 ...

    2022.11.14 03:00

  • [지금, 여기] 소년 간첩들 울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소년 간첩들 울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속초에 다녀왔다. 설악산과 동해안 사이에 자리한 이 아름다운 땅에서라면 유쾌하고 가벼운 잡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실향민 사진가가 찍은 낡은 설악산 사진집, 이북 출신 고깃배 선장이 손으로 쓴 자서전 같은 것을 찾아다니며 분주한 가을을 보냈다. ‘속초(束草)’라는 이름은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쓴다. 읍이나 면이 아닌 ‘시’의 명칭이 이렇게 소박한 한자어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원은 분분하다. 속새풀이 많아서, 영금정 옆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둔 것 같은 모습이라서, 속초의 지형이 하필이면 누운 소를 닮아서, 심지어 울산바위에 새끼줄을 묶어줄 테니 도로 가져가라며 울산 원님에게 대들었던 신흥사 동자승이 있어서. 이 모든 이야기가 멋지고 예쁘다. 먼 옛날의 정치세력이나 거창한 지형을 이름으로 삼은 곳들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부드럽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속초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관광객도 많고, 인구도 조금씩 늘...

    2022.11.07 03:00

  •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 공감이 부족한가?
    우리 사회에 공감이 부족한가?

    수도권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제 ‘장차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는 단체를 모를 수 없다. 지하철 승강장과 차량 안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때문에’ 운행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기 때문이다. 폭설, 화재, 폭우와 관련한 안내는 빼먹어도 이것만은 결방이 없다. 나에게는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자동 재생되는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사회와 건강 문제를 토론하는 의대 수업시간이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를 시청한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근데 이 분들은 왜 꼭 버스를 타려고 할까요?” 매일 본인 승용차로 등교하는 이 학생은 저들의 선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면 되지, 왜 꼭 사람 많은 버스를 고집해서 저렇게 고생하고 욕을 먹을까? 이럴 때면 흔히 공감 부족을 지적한다.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봐라, 당신이 내일 당장 장애인이 될 수...

    2022.10.31 03:00

  • [지금, 여기] 형벌은 감염병을 예방할 수 없다
    형벌은 감염병을 예방할 수 없다

    다음달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과 제25조 처벌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수많은 감염병 중에서도 유독 HIV/AIDS의 경우에만 존재하는 이 처벌 조항을 보며 지난 2년간 코로나19를 통해 얻은 교훈을 떠올리게 된다.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를 통해 시민들은 이전에 비해 감염병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이제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는지,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들이 필요한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중앙사고수습본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서는 스스로 방역수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78.1%)이 가장 중요하고, 우리 사회를 위한 공동체 의식(65.2%)이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시민들은 답했다. 이에 비해 방역수칙 위반을 제대로 처벌하는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24...

    2022.10.24 03:00

  • [지금, 여기] 미성년 공공후견은 아동 관점에서
    미성년 공공후견은 아동 관점에서

    동화 <소공녀>의 세라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고 큰 고난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동업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되찾는다. 동업자는 어린 세라의 후견인이 되어 함께 새 삶을 위해 떠나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과 함께 살며 직접 돌보는 사람을 ‘후견인’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실상 후견인 제도는 그 기대와는 다소 다르다. 민법상 후견 제도는 미성년자, 정신적 장애인, 치매 노인과 같이 판단·결정 능력이 없거나 제한되어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운 사람(피후견인)을 보호·감독하고 그 재산을 관리하며 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피후견인에 대한 각종 ‘결정’을 하는 사람에 가깝다. 이에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이익에 반하여 재산을 매각하거나, 후견 상황과 무관한 권한까지 대리해 정작 당사자의 법적 권리가 배제되는 등의 문제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이러한 후견 ...

    2022.10.17 03:00

  • [지금, 여기] 언어로 예술을 오염시키는 방법
    언어로 예술을 오염시키는 방법

    기관의 자문이나 심사에 참여하는 일이 늘었다. 중년에 다다른 나이와 잡다한 직함들 때문일 것이다. 10여년간 사진에 대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일을 해온 터라, 작가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판단하는 자리에 가기도 한다. 물론 마냥 즐겁지는 않다. 지원서를 읽다 보면, 작가들이 해온 작업과 그들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회의에서 만나는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조심스럽다. 간혹 작업을 함부로 단정짓는 이들도 있지만, 그 말을 야멸차게 끊는 이도 나뿐만은 아니다. 심사와 지원 제도에는 근본적 약점이 있다. 작가와 작업을 이해하려면 그의 문제의식이 동시대와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몇 장의 지원서와 잠깐의 대화, 몇 줄의 심사평으로 작가를 평가할 수는 없다. 나는 언제나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에 휘적휘적 걸어와서 당대의 예술을 번쩍 들어다 다른 곳에 가져다 두는 작가를 기다린다. 그때 오늘 우리가 점잖은 척 나...

    2022.10.10 03:00

  • [지금, 여기] 실종된 ‘공공의료’를 찾습니다
    실종된 ‘공공의료’를 찾습니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첫머리에 항상 질문을 던진다. “여기 계신 분들 중 공공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보신 분 있으세요?” 그러면 으레 질문이 되돌아온다. “어디가 공공병원인가요?” “국립대병원도 공공병원이에요? 그러면 나도 가봤는데.” 이제 내가 잔소리를 할 타이밍이다. “아니, 지금 공공병원이 뭔지도 모르시면서 공공의료 강화하자고 캠페인하시는 거였어요?” 멋쩍은 웃음이 터진다. 수년 동안 반복되던 이 ‘의식’이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조금 달라졌다. 유행 초기부터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 역할을 하면서 모처럼 뉴스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중앙감염병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앞마당에는 아예 중계차량이 상주했고, 지역마다 지방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의 병상 상황이 시시각각 보도되고 의료진 인터뷰가 수시로 이루어졌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공공병원 개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 공공병원이 아예 없는 지역들의 곤란한 사정, 공공병원의 부...

    2022.10.03 03:00

  • [지금, 여기] 2022 교육과정, 성평등으로 나아가라
    2022 교육과정, 성평등으로 나아가라

    지난 1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 7860건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8월30일 교육과정 시안을 국민참여소통채널에 공개하여 2주간 의견을 수렴한 결과이다. 이 중 도덕(1078건)과 보건(619건)에 많은 의견이 달렸는데, 그 주요 내용은 대부분 성평등, 젠더, 성소수자와 관련한 의견이었다. 공개된 시안들을 살펴보면 아주 특별한 내용들이 담겨 있지는 않다. 가령 고등학교 보건 과목은 다양한 성 개념과 섹슈얼리티 담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대한 지식·이해를 내용으로 하고 있고, 도덕 과목은 평가의 방향으로 ‘특정 집단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중학교 도덕, 보건 과목도 성평등 실현 방안 추론, 성에 대한 편견 극복, 평등·존중·차별·고정관념과 제도 등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이 밖에 사회 과목에는 사회적 소수자 차별, 성 불평등, 다양성에 대한 인식 등의...

    2022.09.26 03:00

  • [지금, 여기] 입법공백과 피해자의 생존
    입법공백과 피해자의 생존

    작년 12월23일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물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을 위헌이라 결정했다. 위헌 결정의 주된 이유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로 재판을 하는 것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1심과 항소심에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는 일이 이어졌다. 심지어 영상녹화물로 유죄 인정을 받고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고등법원에 되돌아온 사례도 속출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나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은 위헌 결정의 범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법원은 이미 위헌의 취지를 넓게 고려하여 장애인과 학대 피해 아동을 법정에 증인으로 부르고 있다.헌법재판소 결정은 ‘후속입법이 되기 전까지는 시행한다’는 식의 단서를 달 수 있는 헌법불합치결정이 아닌 단순위헌결정이었기에, 결정 즉시 법의 효력은 없어졌다. 그래서 그 결정일부터 지금까지 ...

    2022.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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