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지금, 여기
  • [지금, 여기] 차별 없는 광장을 열어라
    차별 없는 광장을 열어라

    지난 5월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낸 서울광장 사용 신청에 대해 열린광장시민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2019년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만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또다시 발생한 수리 지연이었다. 그리고 지난 15일 위원회는 신체 과다 노출과 유해 음란물 판매를 하지 않는 ‘조건부’로 광장 사용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어찌되었든 광장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문제없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서울광장은 ‘허가제’로 운영되던 것을 주민들의 힘으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신고제’로 바꾸어낸 곳이다. 그럼에도 특정 집회의 내용을 판단해 광장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무엇보다 퀴어문화축제에 노출과 음란의 꼬리표가 붙으며 성소수자 혐오가 확산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원회의 결정은 광장 사용에 있어 차별을 금지한 헌법과 법령에도 반한다 할 것이다....

    2022.06.27 03:00

  • [지금, 여기]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되살려야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되살려야

    몇 년 전, 60대 지적장애인 동생을 한 쓰레기장에 살게 하며 10여년간 급여와 장애수당 등 8000만원 상당 금액을 가로챈 친형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쓰레기가 가득 찬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겨울에도 전기장판 하나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피해자는 분명히 가해자 처벌의사를 밝혔고 별도로 고소장까지 제출했지만,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라서 ‘고소 의사표시가 진정한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 판단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었고, 2021년부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사라졌다. 경찰이 무혐의라고 본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지 않고 경찰의 ‘불송치결정’만으로 종결된다.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경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무혐의 종결할 경우 처리 결과와 이유를 당사자와 피해자 등에게 통지하도록 했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경찰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지체 없이 검찰에 그 ...

    2022.06.20 03:00

  • [지금, 여기] 동네 식당과 어르신인문학
    동네 식당과 어르신인문학

    어르신 한 분이 느린 걸음으로 들어와 김치찌개 1인분을 시키신다. 식당 주인 말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오셔서 식사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어스름 저녁 동네 식당의 풍경이다. 문득 궁금했다. 어르신께 김치찌개 1인분을 팔면 대체 얼마의 이문을 남기는 걸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이문이 아니라 정성으로, 장삿속이 아니라 어르신 모시는 마음으로 응대하는 것일 테다. 동네 식당은 단지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니다. 정을 나누는 곳이고, 인심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렇게 동네 어르신은 동네 식당에서 허기뿐만 아니라 텅 빈 마음도 달랜다. 동네 식당과 동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며 공존한다. 동네 식당이 없다면 다리 아픈 어르신은 어디로 가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어떤 음식을 드실 것인가. 믿고 먹을 만한 음식이긴 할 것인가. 혹여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홀대와 손사래를 마주하고 허탈하게 돌아서는 건 아닌가. 생각만으로도 가슴 미어지는 일이다.동네 식당 같은 인문...

    2022.06.13 03:00

  • [지금, 여기] 건강불평등 줄이는 비장의 도구
    건강불평등 줄이는 비장의 도구

    “임금체불 일본의 16배, 최저임금 폭주 탓”, “최저임금 과속 인상 뒤 체불 임금 日 14배”. 주말에 발행된 유력 일간지들의 사설 제목이다. 최저임금 결정 시즌에 본격 돌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최저임금 부담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영업자, 일자리가 사라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잇따를 예정이다. ‘알바 자리 잘리면 어쩌나’라는 기사를 쉽게 만날 것이다. 이런 기사와 마주치면 일단 날짜부터 확인해보자. 작년, 재작년, 아니면 10년 전 이맘때 기사일 수도 있다. 평소에도 영세자영업자, 저임금 노동자의 사정에 이렇듯 관심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는데, 한계 상황에 처한 이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전 국민 스포츠경기가 되어버렸다. 사실 법적으로 임금 최저선을 정하는 것만이 저임금 노동자의 유일한 보호수단은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단체협약의 효력 범위가 넓다면, 굳이 법제화 없이도 단체협약을 통해 임...

    2022.06.06 03:00

  • [지금, 여기] 예의를 지켜야 할 자는 누구인가
    예의를 지켜야 할 자는 누구인가

    내일 31일을 끝으로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마무리된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 못지않게 열심히 움직였던 이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지유세를 하는 현장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친 여러 활동가들이다. 그다지 특별한 행동은 없었다. 피켓, 현수막을 들고 차별지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또다시 지방선거를 이유로 법 제정을 미뤄서는 안 됨을 이야기했다. 예의를 지켜라. 후보와 의원들이 우리의 행동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가운데, 현장에서 자주 들은 이야기다. 무엇이 예의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예의의 뜻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시민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세 차례 발의한 다수당 의원들을 향해 제정을 요구하는 것과, 국회의원으로서의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일까.정말로 무례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도 반복되는 차별이다. 얼마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7년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이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의 체육...

    2022.05.30 03:00

  • [지금, 여기] 형사사건이 쪼개지면 벌어지는 일
    형사사건이 쪼개지면 벌어지는 일

    지적장애가 심한 여성이 있었다. 집과 특수학교만 쳇바퀴처럼 돌다가 성인이 되면서 집에만 머물게 된 이 여성의 유일한 낙은 스마트폰이었다. 인터넷 광고를 타고 들어간 채팅 앱에서 수많은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그중 한 남성 A는 선물을 준비했으니 만나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모르는 사람이 왜 선물을 주겠다는 것인지 지적장애로 인해 그 맥락을 이해할 겨를이 없었지만, A는 계속 만나자고 졸랐다. 그렇게 처음 대면한 날, 여성은 모텔로 유인되어 성적 침해행위를 당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피해자를 사과하는 척 달랜 A는 ‘갈 때 가더라도 근처 자기 집에서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고 다시 여성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A의 집에는 그의 친구 남성 B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A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자리를 피해주었다. 여성은 B에게 두 번째 성적 침해행위를 당했다. 모두 같은 날 불과 몇 시간 안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문제는 사...

    2022.05.23 03:00

  • [지금, 여기] 사람의 말, 정치인의 말
    사람의 말, 정치인의 말

    마음 둘 곳 없는 허망한 시절이다. 와중에 메마른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 같은 말이 있어 반가웠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 것인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이름이 흘러나올 줄을. 고 김용균씨와 고 변희수 하사, 고 박길래님의 이름이 소환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조석봉 역으로 TV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조현철이 했던 수상 소감이 화제다. 수상 소감이 알려진 후 그의 남다른 가족사까지 큰 화제가 되었다. 조현철은 <전태일 평전>의 편저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조카이며, 유신 시절 공해연구소를 만들어 환경운동에 씨를 뿌렸던 조중래 교수의 아들이다.“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그리고 잠시만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그리고 ...

    2022.05.16 03:00

  • [지금, 여기] 부재의 정치와 공생의 정치
    부재의 정치와 공생의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마침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법이 공포됐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권력형 비리가 창궐할 것이라는 검찰의 시일야방성대곡에 아연실색했지만,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의 추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 국민의힘, 보수언론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 저렇게 돌파할 수 있는 거였구나, 그렇구나. 국민적 합의, 야당의 협조 타령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온 지난 5년의 진심을 매우 잘 알겠다. 어디 5년뿐이랴. 차별금지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2007년이다. 지난 15년 동안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가 지나갔고,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의 자리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시민사회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토론회 숫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고, 삭발과 단식농성, 도보행진, 오체투지에 이르기까지 대화, 읍소, 간청, 투쟁, 그야말로 안 해본 것이 없다...

    2022.05.09 03:00

  • [지금, 여기] 오래된 혐오, 이젠 바로잡아야
    오래된 혐오, 이젠 바로잡아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법원도 ‘동성애는 부도덕하다’고 확인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헌법과 법률은 결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법인설립을 불허하면서 성소수자 인권보장이 헌법에 반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이 역시 얼토당토않은 주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바로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한 2008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해당 판결은 병사의 성기를 때리고 양 젖꼭지를 중대장이 비튼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사건이다. 명백한 강제추행 사건이었음에도 대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군형법 추행죄에서 말하는 추행은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비정상적 성적 만족 행위인데, 위 중대장은 공개된 장소에서 했으므로 그러한 비정상적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동성애 성행위 등 비정상적 성적 ...

    2022.05.02 03:00

  • [지금, 여기] 중재안이 아니라 야합안이다
    중재안이 아니라 야합안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열망을 등에 업고 민주당이 급조했던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은 그 자체가 가진 위헌성 및 허술함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이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전운이 고조되고 민주당이 소속 의원 탈당이라는 탈법까지 감행하는 사태가 일어난 후, 지난 22일 국회는 중재안에 합의했다는 발표를 한다. 갑자기 국민에게 통보된 이 중재안은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와 우려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 당사자들의 이익보호에 직결되는 사항을 거래한 ‘야합안’이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범위에서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가 사라지면서, 여야는 갑자기 한마음이 되어 손을 부여잡았다. 1%도 안 되는 권력형 범죄의 수사권을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여 그 수사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끼리 국가의 중대한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법을 순식간에 고친 것이다.애초에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는 경찰에 집중되는 수사권을 통제할 방안이 없다는...

    2022.04.25 03:0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