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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지금 여기]성소수자가 먹고살아 가는 모습들
    성소수자가 먹고살아 가는 모습들

    지난 수요일 재·보궐선거를 위해 투표장을 찾았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니 담당자가 선거인명부 대조 전표를 주면서 투표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했다. 전표에는 등재번호와 함께 이름, 성별을 적도록 되어 있었고 내가 받은 전표에는 성별란에 ‘여’로 표시되어 있었다.그리고 전표를 들고 투표장에서 다시 한 번 선거인명부와 대조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보니 이름과 성별을 적게 되어 있는 선거인명부에는 내 이름 옆에 ‘남’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조 전표의 성별과 명부의 성별이 다른 상황, 혹시 추가적인 확인 절차를 요구받거나 안 좋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잠시 긴장하던 순간, 문제없이 투표용지를 받았다.궁금해졌다. 전표와 명부에 표시된 성별이 달라도 본인 확인에 문제가 없다면 애초에 전표상의 성별은 필요 없는 정보가 아닌가. 실제로 주위에 물어보니 다른 투표소에서는 등재번호만 적고 이름과 성별은 공란으로 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성별란이 있는 전표는 애초에 행정상 목적...

    2024.10.20 20:32

  • [지금, 여기]1층이 있는 삶은 과연 올 것이다
    1층이 있는 삶은 과연 올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보기로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휠체어를 타는 그 친구에게 식당 예약을 위해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메뉴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행이지.”저주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만나기로 한 동네 건물마다 들어서 있는 수많은 식당과 찻집은 대부분 1층 가게였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휠체어가 갈 수 없었다. 고작 한 뼘의 턱 때문에, 한 칸 올라가는 입구 때문에, 흉내만 낸 경사로 때문에 가게 코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어느 식당에 겨우 입성한 후에야 그 식당의 메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밥상은 따뜻했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밥알은 뻣뻣했다. 나도 괜히 설움에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1층에 평등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을 다루는 법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도 있고,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

    2024.10.13 20:39

  • [지금, 여기]차별적인 ‘합리성’
    차별적인 ‘합리성’

    지난 10월2일, 시민단체들이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료급여 본인부담 체계 개편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의료급여 1종 수급자는 외래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의원은 1000원, 병원과 종합병원 1500원, 상급종합병원 2000원, 약국 500원을 부담해왔다. 그런데 개편안에는 이러한 정액 부담금을 각급 의료기관별 진료비의 4%, 6%, 8%, 2%라는 정률제 방식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비용 의식이 점차 약화되어 과다 의료이용 경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첨부된 자료에 의하면 의료급여 수급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735만원으로 건강보험(건보) 가입자 219만원에 비해 3배 이상 많고, 외래진료 일수도 건보 가입자에 비해 1.8배 많았다.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정말로 비용 부담이 없기 때문에 의료이용을 ‘펑펑’ 하고 있는 것일까?우선 수급자들은...

    2024.10.06 21:25

  • [지금,여기]추석 연휴, 응급실 방문은 왜 줄었나?
    추석 연휴, 응급실 방문은 왜 줄었나?

    “아픈 데 없지? 아프면 안 된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들었던 말이다. 약간의 공포와 불안이 섞여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본인과 가족이 경험한 응급실 뺑뺑이와 병원 실태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아픈데 치료받지 못한 경험이다. 특히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불편함이 컸다. 대화가 오가면서 분노와 한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추석 연휴 생선전 같은 것은 드시지 말라. 벌초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혹시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거나 벌초로 인한 사고가 나면 대책이 없다는 얘기였다. 추석에 생선엔 손도 대지 않았다. 국민들은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을 가지 않기 위해 각자 자구책을 마련했다. 코로나를 경험한 노련함 덕분인지 스스로 조심하고 자제했다. 게다가 응급실 본인부담금도 90%까지 올랐다.이런 노력 덕분에 추석 연휴기간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하루 평균 2만7505명으로, 지난해 추석(3만9911...

    2024.09.29 20:37

  • [지금 여기]인권위의 위기, 구조를 바꾸자
    인권위의 위기, 구조를 바꾸자

    활동을 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인권위에 기대는 일이 줄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거나 차별이 발생했을 때, 인권위 진정을 생각했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다. 인권위가 제대로 사건을 조사·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실제로 통계를 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인권위 진정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3%, 사건 처리 건수는 21.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권고 건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경찰 관련 사건 진정에 대한 권고는 16건으로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검찰사건의 경우엔 아예 권고 건수가 0건이었다.이처럼 인권위의 위상이 추락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김용원, 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전횡 때문이다. 두 상임위원이 각 침해구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자의적으로 사건을 기각하는 일이...

    2024.09.22 20:35

  • [지금, 여기]‘딥페이크에 촉법소년’은 동문서답
    ‘딥페이크에 촉법소년’은 동문서답

    ‘지인 능욕’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미지를 또 다른 이미지나 영상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은 등장한 후 지금까지 나날이 발전했다. AI 기술이 정교해지고 관련 앱 출시가 줄을 이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또한 빠르게 늘어갔다. 얼마 전, 한 외국 사이버 보안 업체는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99%가 여성이고,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등을 조사해 보니 등장인물 중 53%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중학생이 제보를 분석해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까지 만들 정도로 최근 심각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뒷북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양당 대표회담 의제에 딥페이크 범죄 관련 제도 개선 안건이 포함되었다는 보도가 있은 지 며칠 후, 여야는 관련 정부부처를 불러 긴급 현안 질의를 열기도 했다. 여...

    2024.09.08 21:04

  • [지금, 여기]의료대란, 누가 막을 수 있나
    의료대란, 누가 막을 수 있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국의사협회지에 도발적인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민주주의가 건강에 이롭다는 내용이었다. 어쩐지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동안 이를 실증 자료로 보여준 연구는 거의 없었다. 논문은 170여개국 자료를 이용해 국민소득, 소득불평등 정도, 공공지출 규모 등을 보정한 상태에서도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평균수명이 길고 모성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낮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때 민주주의 수준은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산출한 지표를 활용했다. 프리덤하우스는 1972년부터 설문조사를 통해 선거 절차와 다당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정부 참여, 집회·표현·결사·교육·종교의 자유, 법치, 자유로운 경제활동, 기회의 평등 같은 항목들에 대해 국가별로 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자유’ ‘제한적 자유’ ‘부자유’ 세 그룹으로 국가들을 분류해왔다. 한국은 첫 조사인 1972년 ‘부자유’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제한적 자유’ 상태를 이어오다 1987년 이후 비로소 ‘자유’...

    2024.09.01 20:08

  • [지금,여기]회의록 부실 생산, 이대로 좋은가
    회의록 부실 생산, 이대로 좋은가

    정치인과 공무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치인은 말로 일을 하고, 공무원은 기록으로 업무를 입증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출퇴근, 출장, 회의, 보고 등 모든 업무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 공공기록물법 제4조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기록물을 보호·관리할 의무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만약 공무원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두 가지 예측이 가능하다. 업무를 하지 않았거나 잘못한 경우다. 잘못한 경우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비리에 접근했거나 무리하게 업무를 진행할 때이다. 이런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면 ‘기록이 없다’고 답변한다. 기록은 작성했으나 무단 폐기하는 경우도 있다.공공기록물법은 기록물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 평가 심의를 거치지 않고 기록물을 폐기한 사람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정신을 훼손하는 발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기록관리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경향신문에...

    2024.08.25 20:36

  • [지금, 여기]학생인권법, 모두의 인권을 위한 법
    학생인권법, 모두의 인권을 위한 법

    가끔 학교에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특강을 나갈 때가 있다. 강의가 끝났을 때 조용히 한 학생이 찾아와서 자신도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어렵게 찾아준 그 용기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자리를 빌려서야 비밀리에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 학생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또 다른 감동을 받은 일도 있다. 한번은 강의 때 알려준 주소로 한 학생이 e메일을 보내왔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히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직 성소수자를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긴 해도 좀 더 노력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의 교육이 어떻게 개인을 바꿀 수 있는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안타깝게도 이러한 교육이 특강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받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환영받지 못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충남 학생인권...

    2024.08.18 20:37

  • [지금 여기]피의자 신문 영상, 증거 채택을
    피의자 신문 영상, 증거 채택을

    티몬·위메프 사태의 주요 피의자들이 다음주부터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를 받는다. 어쩌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피의자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절차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실에 앉아 컴퓨터를 앞에 두고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영상조사실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며칠을 공들여 만드는 이 신문조서나 영상녹화물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희한한 현행 형사소송법 때문이다.세상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의 뿌리인 독일은 몇년 전에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을 기존의 피의자 신문조서처럼 증거로 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피의자 신문 영상을 녹화하면 신문 과정과 내용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기록할 수 있어서 사건 진실 규명과 피의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개정의 주요 이유이다.특히 피의자가 정신적 ...

    2024.08.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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