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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지금, 여기]정치를 정쟁으로 만들 때 잃는 것
    정치를 정쟁으로 만들 때 잃는 것

    처음에는 평범한(?) 입시 비리 사건인가 싶었다. 이것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귀결될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씩 실체가 알려지고, 서로 무관해 보였던 일들, 문화·체육, 경제, 외교·안보 정책, 공직자 인사, 세월호 참사 대응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개별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배후로 연결되었음이 드러났을 때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016년 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만든 것은 특정한 정치 성향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도 아닌, 상식과 양심을 지키려는 소박한 열망이었다.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가 그 어떤 책임과 권한도 없는 개인에게 휘둘려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그것이 일부 개인들의 사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비판하는 데 무슨 거창한 이론이 필요하겠나. 대단히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뉴스의 연속이었지만, 그 때문에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널리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2024.08.04 20:35

  • [지금, 여기]알권리와 피의사실공표
    알권리와 피의사실공표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근거로 1991년 “정보 접근·수집·처리의 자유, 즉 알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판시했다. 알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헌법 21조 4항은 한계도 지적하고 있는데,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알권리는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외부로 공표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시민들의 명예 혹은 개인정보 등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된다.시민들의 내밀한 개인정보를 다루고 있는 공공기관은 이를 보호하는 게 법적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특히 범죄 사실을 수사하는 검찰·경찰은 확정되지 않는 범죄 혐의에 대해 중립을 지키며, 시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 알권리의 정신이다.이를 위해 형법 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그밖에 범죄수...

    2024.07.28 20:34

  • [지금, 여기]사랑이 이겼고 또 이길 것이다
    사랑이 이겼고 또 이길 것이다

    7월18일, 긴장된 마음으로 대법원 대법정에서 선고를 듣기 시작했다. 대법원장이 이유 요지를 읽기 시작하고 몇분 뒤,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가 떠올랐다. 이겼다. 판결 선고가 끝나고 모두가 웃고 울면서 함께 법정을 나온 뒤, 한마음으로 외쳤다. 사랑이 또 이겼다. 이날 대법원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사실혼)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동반자인 원고의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하고 보험료를 소급 부과한 처분을 취소한 서울고등법원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대법원이 처음으로 동성 동반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다. 동성 동반자도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

    2024.07.21 20:37

  • [지금 여기]탈시설=불행, 단정 짓지 말라
    탈시설=불행, 단정 짓지 말라

    1932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철저하게 계획된 세상에서 약물을 통해 인위적인 행복을 유지하며 사는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존은 그런 식으로 통제된 세상은 잘못이라며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통치자는 그 요구가 ‘불행할 권리를 달라는 주장’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자 존은 힘 있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 나이 먹고 추해지고 무기력할 권리, 질병에 걸릴 권리, 더러워질 권리, 두려움에 시달릴 권리를 달라던 그의 요구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저항을 상징한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6월25일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를 폐지했다. 그로부터 나흘 전인 21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성명을 통해 탈시설 지원 조례를 폐지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청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위원회가 성명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깊은 우려를 표...

    2024.07.14 20:34

  • [지금, 여기]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지역사회 활동가 사울 알린스키 혹은 의료사회학자 어빙 졸라가 들려준 우화라고 한다.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문제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근본적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딜레마, 그리고 상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희생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2024.07.07 20:32

  • [지금, 여기]공무원 의무와 증인선서 거부
    공무원 의무와 증인선서 거부

    모든 공무원은 임용되어 임명장을 받을 때 소속 기관의 장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봉사자라는 말이다. 시민들은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이 있다면, 지휘하거나 조사했던 공무원(군인)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민의 봉사자로서 책임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데 현실의 공무원들은, 책임은 철저히 외면하고 증언은 회피하기에 바쁘다. 작전 지시를 한 사람은 지도만 했을 뿐이라고 말장난을 하고, 작전 이행을 하다 죽은 병사와 가족들만 억울하다.지난 6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진행됐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었는데 채 상병 사망의 책임자이자 수사 외압 관여자로 지목된 이들이 청문회장에 나와 선서나 증언을 거부했다. 이종섭 전 국방장관, 신범철 전 국방차관, 임...

    2024.06.30 20:29

  • [지금,여기]제대로 된 국가인권위원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국가인권위원장이 필요하다

    지난해 두 차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활동할 기회가 있었다. 현재 인권위원은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각 지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 중 대통령이 지명하는 인권위원에 대해서는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어 3배수의 후보를 추천하여 왔다.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원의 자격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후보 추천위원을 맡으면서 과연 내가 이러한 자격을 갖춘 인권위원 후보를 제대로 살펴보고 추천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받아본 후보자 면면 중엔 다소 실망스러운 이들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한 후보가 있었다. 면접 과정에서 그는 진중한 태도로 앞으로 경청하며 배워나가겠다고도 말했다. 당시 이충상 상임위원으로 인해 인권위 안에서 여러 문제들이 있던 상황에서, 나름 기대도 ...

    2024.06.23 20:08

  • [지금 여기]어쩌다 여가부는 동네북이 되었나
    어쩌다 여가부는 동네북이 되었나

    어떤 부처와 자주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답을 찾느라 한참 동안 생각한 적이 있다. 18개의 중앙행정기관 모두 장애인이나 아동, 여성에 관한 정책을 다루고 있기에, 같이 일을 안 해 본 부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장애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법무부는 진술 조력인과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여성가족부는 장애 여성 성폭력 상담소나 쉼터를, 보건복지부는 피해 장애 여성에게 필요한 돌봄이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폭력 피해자인 장애 여성이 오직 범죄 피해자로만 존재하지는 않기에, 여러 부처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장애 여성은 억압적인 가정 아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청년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를 홀로 돌봐야 하는 엄마일 수도 있으며, 피해 수습을 위한 휴가를 갑자기 내기 어려운 노동자일 수도 있다. 각기 다른 복잡한 상황 속에 다면적인 특성이 있는 사람을 여러 부처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지원하기에, 단지 효율성을 이유로 정책 담당 부처의 통폐합을 결정하...

    2024.06.16 20:32

  • [지금 여기]전문직 윤리와 노동권
    전문직 윤리와 노동권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부터 촉발된 ‘의·정 갈등’이 진정될 기미는커녕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진료 현장을 떠나 있던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결의했고 대한의사협회도 파업을 고려 중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의·정’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의 처지를 내다본 조상의 혜안이었다.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 선서는 ‘의사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침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던 문제였다. 오늘날 의사들은 그때와 달리 국가와 시장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조직 안에서 일한다. 공공이든 사립이든 병원에서 ‘피고용인’으로 일을 하고, 독립적인 개원 의사라 해도 건강보험, 의료법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규제 안에서 진료를 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 양성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질적 표준에서 연구·개...

    2024.06.09 20:28

  • [지금, 여기]정보공개 청구는 아무런 죄가 없다
    정보공개 청구는 아무런 죄가 없다

    최근 정보공개 청구가 공무원을 괴롭히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모 청구인이 전국 초등학교에 전교 임원선거 관련 정보를 수천건 요청했다. 지난달 19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은 민원성 무차별적인 정보공개 청구에 단호히 대응하겠다. 과도한 갑질 정보공개 청구가 되는 것을 막고 민원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정보공개제도를 보면서 관련 활동가로 살아온 경력에 자괴감이 들고 있다.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후 투명성·알권리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해외 개발도상국들은 정보공개제도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 사례를 분석했다. 공공기관 부패가 심각했던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할 때 한국 사례를 철저히 참조했다.정보공개제도가 발전할 수 있던 원동력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공공기관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였다. 2000년대 업무추진비부터 최근 특수활동비 ...

    2024.06.0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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