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지금, 여기
  • [지금, 여기] 견리망의, 견리사의
    견리망의, 견리사의

    연말이면 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향집에 내려와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나의 매해 일과이다. 지금이야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지만 고속철도가 놓이기 전인 2017년 12월 전까지만 해도 집에 가는 방법은 고속버스뿐이었다. 그러던 중 2017년 한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동서울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버스 탑승을 시도한 것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해당 사건을 맡게 되면서 처음으로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편을 찾아보았다. 결과는 예상을 넘었다. 고속버스로는 2시간3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강릉을 서울에서 기차로 가는 데는 약 5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나마 차편도 하루에 서너 대밖에 없어 실질적으로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10년이 넘게 오갔던 고향은 내가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다면 쉽게 갈 수 없는 머나먼 지역이었던 것이다.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

    2023.12.31 19:43

  • [지금, 여기] 이동환 목사 출교, 예수는 기뻐하실까
    이동환 목사 출교, 예수는 기뻐하실까

    세계인권주간이던 12월8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는 이동환 목사가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출교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학교로 치면 퇴학이고, 직장으로 치면 해임이다. 성소수자 앞에서 목사 가운을 입고 기도하는 것은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출교의 이유였다.그로부터 열흘 후인 지난 18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교리 선언문을 통해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한 축복을 집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했고, 교황은 이를 공식 승인했다. 사제의 축복을 받아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모든 상황 속 사람들에게 교회가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아선 안 된다는 것이 승인의 이유였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정죄하고 밀어내면 성소수자는 마치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듯한 낙심에 처하게 된다. 이번 교황청의 승인 이후 많은 성소수자가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12월에 사제에게 축복...

    2023.12.24 19:55

  • [지금, 여기] 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웹툰을 자주 본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수만권의 만화책에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건실한 인간이 되었을 것 같다는 후회 때문에 조금은 자중했지만, 몇번의 입원과 잦은 출장을 핑계로 결국 이 새로운 형식의 만화에 흠뻑 빠져들고야 말았다. 이제는 틈이 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이 안온하고 유쾌한 세계로 자연스레 향한다.만화책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 요즘 한국 웹툰의 수준은 놀랍다. 스크롤을 이용해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펼침면과 컷을 리드미컬하게 다루며 몰입감을 이끌어내던 전성기 출판 만화들에 비해서도 탁월하며, 서사는 대단히 날렵하고 정교하다.하지만 예전에 즐겨 보던 만화들을 떠올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수련하는’ 주인공이 그리워질 때다. 한때 만화방을 가득 채웠던 일본 만화책에는 유독 수련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손이 부르틀 때까지 스윙 연습을 했고, 타이어를 끌고 바닷가를 달렸다. ...

    2023.12.17 20:16

  • [지금, 여기] 필수의료 떠받치는 일차의료
    필수의료 떠받치는 일차의료

    심장판막증 수술과 심부전, 대장암. 아버지는 오랫동안 대학병원 단골손님이었다. 외래진료 날이면 아침 일찍 들러 검사를 하고, 오전 오후 여러 진료과를 순례했다. 그나마 같은 날짜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다행. 자식들은 출근을 해야 하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노인이 서로를 의지하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을 왕래했다. 하지만 보조기 없이 걷기 힘들어지면서, 어머니 혼자 외래를 방문하여 대신 상담과 처방약을 받아오게 되었다. 그럴 바에야 진료기록을 옮겨와서 가까운 동네의원에 다니시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중병이고 약이 많아 복잡하기 때문에 동네의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마침 ‘재택의료 시범사업’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신청하려 했을 때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의사가 직접 집에 와서 진료해준다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대학병원 교수님이 아버지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다며 필요 없다고 했다. 그 명의들을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약만 받아오고 있...

    2023.12.10 20:38

  • [지금, 여기] 소란스럽게, 차별을 없애자
    소란스럽게, 차별을 없애자

    지난 11월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다. 1998년 미국 보스턴에서 살해당한 아프리카계 트랜스젠더 여성 리타 헤스터를 기리며 시작된 국제적 기념일인 이날을 맞아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올해는 용산 이태원 광장에서 행진이 진행되었다.2020년에는 추모의 날을 맞아 한 유튜브 채널에서 만든 영상 촬영에 함께한 적이 있다. 트랜스젠더의 삶, 건강, 죽음 등을 주제로 5명의 당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때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가 트랜스젠더들이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러하다. 평소에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잘 안 가는 기질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유는 내원 시 법적 성별로 인해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편한 상황 때문이다. 이전에 트랜스젠더 여성인 한 친구를 따라 안과에 간 적이 있다. 주민번호를 적고 접수를 하는 순간 직원 분이 큰 소리로 “그런데 남성이세요?”라고 이야기했던 일이 지금도 ...

    2023.12.03 20:30

  • [지금, 여기] 정신병동에 진짜 아침이 오려면
    정신병동에 진짜 아침이 오려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우울증, 조울증, 망상, 공황장애 등 현대인이 겪는 정신질환을 매회 담아간다. 어떤 경계를 왔다 갔다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은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그 경계에서 왜 선뜻 치료에 나서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지 드라마 속 공황장애를 겪는 대기업 신입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정신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놈으로 보이잖아요.”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만큼 정신질환은 흔한 질병이다. 장애 등록된 10만명의 정신장애인에 51만명의 추계 중증정신질환자를 더하면 61만명이 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 살고 있다.유엔과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한 인권 기준에 따라, 선진국들은 당사자를 위한 인권친화적 치료환경을 ‘지역사회’에 조성하여 병원이나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의 치료와 회복 여건을 만들고 있다. 치료 과정 안에 여러 대안적 선택지를 두고 환...

    2023.11.26 20:26

  • [지금, 여기] 왜 시민의 지성을 존중하지 않는가
    왜 시민의 지성을 존중하지 않는가

    얼마 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다녀왔다. 이것은 2009년 시작해 올해 열다섯 번째를 맞은 독립출판과 아트북의 축제다. 처음에는 갤러리나 카페, 미술관 등을 옮겨다니며 치러졌고, 2015년부터는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알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모습은 기묘했다. 디자이너, 사진가, 편집자, 시각예술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학생 등이 자신이 만든 책을 즐겁게 사고파는 중이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외하면 어떤 예술이나 디자인 관련 행사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이들이 뒤섞여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나름대로 책을 만들며 살아왔지만, ‘독립출판’이라는 말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반적으로 작가나 예술가가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대형 출판사를 비롯한 기존의 출판 구조에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상업출판물에는 제약이 많다. 수천 부가 팔려나갈 수 있도록 일정한 보편성을 지닌 주제여야 하며, ...

    2023.11.19 20:31

  • [지금, 여기] 그저 숏컷일 뿐인데 황송한 ‘페미’ 대접
    그저 숏컷일 뿐인데 황송한 ‘페미’ 대접

    어릴 적에 엄마는 항상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셨다. 변화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 일어났다. 자기 이야기가 지면에 실린 것을 알면 펄쩍 뛰겠지만,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어릴 적 심한 밥투정꾼이었다. 엄마가 옆에서 일일이 “숟가락 들어, 입에 넣어, 씹어, 삼켜” 잔소리를 해야 겨우 밥을 먹었다. 결국 엄마가 먹여주다시피 해서 학교에 보내고는 했는데, 이제 아이 둘을 한꺼번에 등교시키려니 양 갈래 머리를 땋는 것은 엄마에게 너무나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첫 방학과 함께 나의 ‘숏컷’ 인생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초등학교 1학년 페미’의 탄생 설화다.오랫동안 숏컷으로 살아왔지만, 그 때문에 황송하게도 ‘페미’ 대접을 받고, 또 그 때문에 위협을 느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20대 남성이 편의점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에게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라면서 무차별 폭행을 저지른 사건 말이다. 내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반사적으로 일었다.이 비...

    2023.11.12 16:26

  • [지금, 여기] 헌법재판소 유감
    헌법재판소 유감

    1947년 9월2일 대법원에서 한 판결이 있었다. 당시 적용되던 일제강점기 민법 제14조는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얻지 않고는 소송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한 아내가 남편의 동의 없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아내의 행위능력을 제한하는 민법 14조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헌법재판으로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최초의 ‘헌법재판’이라고 하지만 다소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헌법은 1948년 7월17일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1947년에는 위헌 결정을 하려 해도 그 근거가 되는 헌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법관들은 무엇에 근거하여 민법 제14조가 잘못되었다고 했는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위 판결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초 삼아 국가를 건설할 것이고, 만민은 모름지기 평등할 것이며, 따라서 차별을 현저히 하는 민법 제14조는 우리의 사회상태에 적합하지 않다.”그 후 약 1년 뒤 헌법이 제정...

    2023.11.05 20:32

  • [지금, 여기] 검찰개혁, 얻은 것이 무엇인가
    검찰개혁, 얻은 것이 무엇인가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이 11월부터 시행된다. 수사기관의 고소·고발장 접수 의무화, 검사의 보완수사요구 및 재수사요청에 대한 경찰의 수사기한(3개월) 마련, 검사의 보완수사요구 시한(1개월) 마련, 보완수사 경찰 전담원칙 폐지 및 검경의 보완수사 분담 기준 등이 담겼다.법무부가 작년 9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령을 개정했을 때처럼 이번 수사준칙 시행에 대하여도 정치권은 검수원복, 쿠데타, 꼼수 등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법률에 담길 내용이 왜 시행령이나 수사준칙에 담기고 있는지, 실무적으로 들여다보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검찰개혁은 기소권자인 검찰의 직접인지수사를 견제할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검찰 직접수사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직접인지수사(특수부)로 검찰이 사건을 열어 기소까지 끌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보완수사(형사부)로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빠지거나 과도한 것이 ...

    2023.10.29 20:28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