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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
  • 전체 기사 304
  • [詩想과 세상]가정방문
    가정방문

    얼음 구덩이 속에 한 사람이아직도 구덩이를 파고 있다깊은 곳엔 다른 것이 있을 거야믿고 싶은 사람의 손이점점 더 아래로 내려간다얼음투성이의 손을 가진사람의 뺨은 붉고밖에 세워진 수족관이통째로 얼어 있다헤엄치던 물고기들이함께 얼어버린 것을 본다정지된 채로 움직이고 있는꼬리와 지느러미한 사람은 계속해서 구덩이를 판다다음의 다음을 만나려고언제까지 파내려가게 될까잠속에서는 모두가살아 있기 위해 움직인다안미옥(1984~)당신은 어느 날 한 가정을 방문한다. 당신이 문을 열자 “얼음 구덩이 속에 한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또 방문했을 때, 그 사람은 아직도 차가운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얼음투성이의 손”으로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계속해서 더 깊이 구덩이를 팠다. 여기에 다음이 있어. “다음의 다음”을 묻어두었어. 그렇게 말하는 것...

    2025.10.19 20:44

  • [詩想과 세상]미메시스
    미메시스

    딸아이가거미 한 마리를 해치지 않는다자전거 손잡이 사이집을 지은 것이었는데꼬박 이주일을아이가 기다렸다거미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거미줄을 허물면거미도 알 거야집이라 부를 수 없는 곳이구나그럼 네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단다일러 주자딸아이가 말했다. 그렇게 누군가는난민이 되는 거 아니에요?파디 주다(1971~)거미가 집을 짓는다. 아이는 거미가 “자전거 손잡이 사이”에 집을 짓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거미가 스스로” 집을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시인은 거미줄을 허물어버리면, 이곳은 “집이라 부를 수 없는 곳”이 되어 거미가 떠날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아이는 “거미 한 마리를 해치지 않는”다. 힘이 센 누군가가 집을 허물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면, 누군가는 난민이 된다는 사실을 아이도 이미 알아버린 듯하다.팔레스타인 난민 부모 밑에서 태어난 시인 파디 주다는, 이 시에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거미집과 자신의 ...

    2025.10.12 21:57

  • [詩想과 세상]당기시오
    당기시오

    밀어도 열렸다하지 말란 건 꼭 하고 싶을 때가 있다하지 말란 말이 끝나기 전에 해버린다하지 말았어야 했다사람을 여는 건밀고 당기는 힘만으론 역부족이다사람은 막는 것이었다여태 나가지 않았다그래서 잠가두었다그때 부탁이 있다 했다잊지 말라고 했다강력한 태풍이 북상중창문마다 신문지를 붙이다네가 아닌 너의 이름을 본다더 버티기로 한다유수연(1994~)시인은,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는 문인데, 당기지 않고 민다. “밀어도 열”린 그 문 앞에서 시인은 “하지 말란 건 꼭 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중얼거린다. 밀고 당기는 문 앞에서 시인은 한 사람을 생각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일, 그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시인은 “사람을 여는 건” “밀고 당기는 힘만으론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여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라고 고백한 시인에게 무슨 일이 ...

    2025.09.28 21:41

  • [詩想과 세상]밤에, 소년이 있었다
    밤에, 소년이 있었다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소년이 내게 말했다 고요히나는 소년의 솜털 부숭한귓불을 쓰다듬었다 이따금소년의 귀에선 내가 쓰다 버린문장들이 흘러나왔다나는 그 문장들을 기워새를 만들었다 그보다는내 가슴을 오려새를 만들었으면 좋았을걸어두운 벤치 위에 소년은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가쁜 숨 몰아쉬며눈동자를 흐리며 그만눅눅한 공기 속으로 소년은깃을 치며 날아갔다나는 그저 돌아갈밖에얇고 여린 소년의 껍질이어깨 위에 가볍게 걸쳐진 채자꾸 나부끼던 밤이었다김근(1973~)한 소년이 있었다. 어둡고 어두운 밤에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라고 시인에게 말하던 소년이 있었다. 시인이 소년의 “솜털 부숭한 귓불”을 만지자, “소년의 귀”에서 모음에 가까운 “문장들이 흘러”나온다. 시인은 그 문장들을 하나둘 줍다가 그것이 자신의 찢어진 비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찢어진 “문장들을 기워” 새를 만들지만, 날지 못한다...

    2025.09.21 21:31

  • [詩想과 세상]미니멀라이프
    미니멀라이프

    무인 세탁소에서 누군가의 이불이무인 카페에서 음악이무인 제과점에서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이무인 정육점에서 어제 죽은 동물이무인 부동산에서 무너진 집들이무인 도로 위에 식물들이무인 책방에서 글자들이움직이고 있다인간 없는 곳에서인간 없이도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들이움직이고 있다모든 것을 버리기로 한 너는 현관문을 열고집 안의 물건을 하나씩 밖으로 옮긴다나를 잘못 쓴 원고처럼 구겨져 던진다무인 자동차가 나를 치고 지나간다무인 우주선이 꿈의 궤도를 돈다나는 나로부터 점점이제 여긴 아무도 없네요나는 비로소 숨을 쉬어본다손톱과 모발이 해변의 잡초들처럼 자라난다강성은(1973~)우리가 꿈꾸는 미니멀라이프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미니멀라이프를 말하지만, 그것이 품은 이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을 버리기로 한” 당신은 집 안의 물건을 하나씩 버리지만, 물건은 다시 ...

    2025.09.14 21:28

  • [詩想과 세상]가을이 올 때
    가을이 올 때

    뜰에 첫서리가 내려 국화가 지기 전에아버지는 문에 창호를 새로 바르셨다그런 날, 뜰 앞에 서서 꽃을 바라보는 아버지는일년 중 가장 흐뭇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아버지는 그해의 가장 좋은 국화꽃을 따서창호지와 함께 바르시곤 문을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놓으셨다바람과 그늘이 잘 드나들어야 혀잘 마른 창호지 바른 문을 새로 단방에서 잠을 자는 첫 밤에는달그림자가 길어져서대처에서 일하는 누이와 형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바람이 찾아와서문풍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밤이면국화꽃이 창호지 안에서 그늘째 피어나는 듯했다꽃과 그늘과 바람이 숨을 쉬는우리 집 방문에서,가을이 깊어갔다박형준(1966~)가을이 오면, 시인은 아버지와 국화와 문을 먼저 떠올린다. 시인의 아버지는 “국화가 지기 전” 언제나 문에 창호를 새로 바르셨다. 그런 날, 국화꽃을 바라보시던 아버진 “일년 중 가장 흐뭇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

    2025.09.07 21:29

  • [詩想과 세상]불면증
    불면증

    화장대 거울 속 달은수백만 킬로미터 너머를 바라본다,(아마도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하지만 절대, 절대로 미소 짓지 않는다)잠 못 들고 아득히 멀리, 혹은달은 낮에 자는지.우주로부터 버림받으면,달은 지옥에나 가버려, 말할 것이고,곧장 물웅덩이나 거울을 발견하고는,그 안에 깃들 것이다.그러니 걱정 따위 거미줄로 싸서우물에 처박아 버리길.뒤집힌 세상에서는,왼쪽이 항상 오른쪽이고,그림자가 진짜 몸이며,우리는 밤새 깨어 있고,하늘은 지금 바다 깊이만큼 얕으며,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엘리자베스 비숍(1911~1979)불면의 밤에 시인은 거울 속 달을 보고 있고, 달은 “수백만 킬로미터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달은 한없다. 달은 무수히 많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올려다보고 있으므로. 수많은 물웅덩이와 강물 위에 뜨고 있으므로. 시인이 본 거울 속에 비친 “뒤집힌 세상”에서는 “왼쪽이 항상 오른쪽”이다....

    2025.08.31 21:38

  • [詩想과 세상]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사람들이 소원을 빈다소원을 빌 수 있도록 하늘에서별똥별이 찾아온 것 같지만우리가 별똥별을 찾아가는 것지구가 공전하는 길 위에별똥별이 사는 곳이 있고그곳을 지날 때 중력에별똥별이 끌려 들어온다행운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지만어딘가에 있을 행운을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다하상만(1974~)우리는 늘 소원을 품고 산다. 그것이 거대한 인류의 일이든, 지극히 개인의 일이든, 평생의 것이든, 일 년의 것이든, 단 하루의 것이든 가슴 깊이 품고 산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누군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빈다. 별똥별은 천사의 눈물, 신이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시인은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하늘에서 별똥별이 찾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별똥별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또 헤맨다. 평생을 무언가에 이끌리듯 쫓고 또 쫓...

    2025.08.24 21:01

  • [詩想과 세상]끝말 잊기
    끝말 잊기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여름 옥수수밭으로 쏟아지는 빗방울빗방울을 맞으며 김을 매는 어머니어머니를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버스에서 졸고 있는 어린 손잡이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흔들리는 누나의 노래노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다니는 개울가개울가에서 혼자 물고기를 파묻는 소년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버지아버지가 버스에 태워 보낸 도시의 가을가을마다 고층빌딩이 쏟아내는 매연매연 속에서 점점 엉켜가는 골목골목에서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가락손가락이 밤마다 기다리는 볼펜볼펜이 풀지 못한 가족들의 숙제숙제를 미루고 달아나는 하늘하늘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마을마을에서 가장 배고픈 유리창유리창에서 병 조각처럼 깨지는 불빛불빛 속에서 물고기처럼 우는 사내사내가 부숴버린 어항이 조각조각 널린 방바닥방바닥에서 퍼덕거리다 죽어가는 물고기김성규(1977~)이 시는 여름, 빗방울, 어머니 등으로 시...

    2025.08.17 20:05

  • [詩想과 세상]사인용 식탁
    사인용 식탁

    여느 날처럼 침묵을 두르고밥을 먹으며 생각했다외로움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다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보며 그린 소묘를또다시 베끼는 일이다그걸 베끼고 또 베끼다보면언젠가는추상적인 동그라미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식기를 치우면책상이 되기도 하는식탁 앞에 앉아닫힌 창문을 보며 창밖을 그렸다그릇을 씻고 덜 마른 손에동그라미가 번져서무언지 알아볼 수 없었다조온윤(1993~)우리는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과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고, 또 어떤 날은 “침묵을 두르고” 앉아 밥을 먹는다. 사인용 식탁은 둥근 식탁과 달리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가 만든 모서리에 찔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면서.시인에게 외로움이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라 “사인용 식탁의...

    2025.08.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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