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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
  • 전체 기사 304
  • [詩想과 세상]눈물을 빛으로
    눈물을 빛으로

    정면은너무 어둡거나 너무 환해요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어요이젠 그 너머를 봐야겠어요뿌리들은 무슨 열매를 준비하고알들은 어떤 죽음의 깃털을 다듬고 있는지세상이 온통 수렁 같을 때도숨을 좀 가다듬고더 깊이, 찬찬히 살펴보면숨어 있는 다른 게 보일지 몰라요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는아침 풀밭의 이슬들,유리창에 부딪혀 한쪽 날개가 고장난천사의 쑥스런 표정,냉장고 문을 열면 방긋 웃는 새끼 곰들그래요 나는 지금눈물을 빛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랍니다내 발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바퀴벌레에게별일 없나? 밥은 잘 먹나?안부를 물으며 전동균(1962~) 우리가 바라보는 정면, 그것은 정말 정면일까? “너무 어둡거나 너무 환해”서 잘 모르겠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우리에게는 늘 혼돈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너무 거센 바람이라 눈을 질끈 감다가 천천히 뜨면 다른 ...

    2025.01.05 21:01

  • [詩想과 세상]꽃잎2
    꽃잎2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보기 싫은 노란 꽃을 김수영(1921~1968)시인에게 꽃은 움직이는 영원성이자, “다른 시간”인 듯하다. “꽃을 주세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꽃을 달라고, 꽃...

    2024.12.29 21:14

  • [詩想과 세상]뜨거운 말
    뜨거운 말

    뜨거운 것을 쓰다 쏟았습니다 미안해요 부치진 못할 것 같군요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 말하는 어른 여자를 만난 저녁 주꾸미를 먹었습니다 뛰지 않는 심장과 뛰려는 심장 사이에 사랑을 접어놓고마음이란 뭘까요 호호 불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어디에 간직해야 하는 걸까요당신은 오늘 내 손을 꼭 잡고 귓속에 뜨거운 말을 부어주었습니다그것을 안고 멀리 갈 거예요당신이 나를 처음 본 날,쉬운 퀴즈를 풀듯 나를 맞혀버렸다는 걸 기억할 거예요당신이 좋아서다가가고 싶지가 않아요겨울 숲에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그때 갈게요박연준(1980~)차가운 말보다는 뜨거운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혀는 어느새 차가운 말을 쏟아낸다. 당신에게 “뜨거운 것을 쓰다가 쏟”아버렸기에 부치지 못했다. 시인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다시 쓰면서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어른 여자”를 생각한다. 문학은 뜨거운 건가. 식지 않는 건가....

    2024.12.22 20:52

  • [詩想과 세상]새벽 한 시의 전복
    새벽 한 시의 전복

    이 나의 관심사다. 이런 순간 말이다.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도시를 느끼는 것.표준시간대 사이, 바다 사이, 심야의 뉴스 사이에서모든 것의 만남, 전쟁, 꿈, 겨울밤이쏟아져 들어오는 것을.어린 소녀들이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홀로사랑에 빠지게 하는, 혹은 세계의 절반에서화염을 비처럼 맞는 어린아이들이 ― 우리 말이야 ―누군가를 부르며 ― 우리 말이야 ― 와서 좀 도와달라고 외치게만드는 눈더미 속 불빛.이제 어둠의 경계에서야나는 달빛의 극단을 본다.홀로, 내 모든 희망은너무 멀어 들리지도 않는, 한 현만큼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세계의 절반만큼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흩뿌려져 있다.내게 말해본다.경험을 믿으라고. 그 리듬을 믿으라고.네 경험의 그 깊은 리듬을.뮤리얼 루카이저(1913~1980)이 시를 읽는 순간, 그 밤이 생각났다. 우리에게 “새벽 한 시의 전복”은 너무나도 절실한 순간이었다. 만약 계엄이 ...

    2024.12.15 20:41

  • [詩想과 세상]늑대들
    늑대들

    늑대들이 왔다피냄새를 맡고눈 위에 꽂힌 얼음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얼음을 핥을수록 진동하는 피비린내눈 위에 흩어지는 핏방울들늑대의 혀는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제 피인 줄도 모르고감각을 잃은 혀는 더 맹목적으로 칼날을 핥는다치명적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먹는 것은 먹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저녁이 왔고피에 굶주린 늑대들은 제 피를 바쳐 허기를 채웠다늑대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나희덕(1966~)늑대들이 오고 있다. 한겨울 혹한에 굶주린 늑대들이 “피냄새를 맡”으며 오고 있다.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 “얼음칼”은 에스키모들이 늑대를 사냥할 때 쓰는 도구, 동물의 피를 칼에 묻혀 얼린 후에 눈 속에 파묻는다. 칼날에 얼어붙은 피를 다 핥고 나면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자신의 피라는 것도 모르고, 더욱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너덜너덜해진 혀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눈벌판을 물들이며...

    2024.12.08 20:29

  • [詩想과 세상]합정
    합정

    인간의 몸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며나는 한낮에 걷고 있었죠처형터라 물이 필요해 우물을 팠는데민물조개가 많이 나왔다는 곳이후 그곳에 지어진 건물을 직장 삼으면서오랜 시간이 지나 여기 있구나, 감각하면서는인간의 몸이 너무 크다고나는 움직임이 느려지기도 했죠걷다가 사로잡히기도 했으니까흰 개가 지나다니는 합정다리가 세 개뿐인 흰 개와 함께 걷는 산책자 인간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둘 사이 어디 즈음 마중나갈 수도 있을까복을 빌어주었는데오래 남을 장면들은 무엇인가혼자 떠올려보았어요언제였나, 우리합정에서인간의 미련이 중요하다고 중얼거렸던 때는함께해본다는 것이끝까지 인사하려 한다는 것이 안태운(1986~)개미만큼 인간의 몸이 작아진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들도 한없이 작고 낮아지겠지. 욕망도 한없이 작아지겠지. 시인은 “인간의 몸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서, 조개우물이라 불렸던 합정의 거리를 걸었다....

    2024.12.01 20:39

  • [詩想과 세상]우리라는 슬픔
    우리라는 슬픔

    거짓말의 길이에 대해서 생각한다차 벽을 향해 걸어가면서거짓말의 밑바닥은 몇 마리인지 세어본다차 벽을 두고 돌아오면서잊어버리면 픽 웃으며한 발자국에 한 마리씩다시 한 마리꿈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라는 말이광장에 뿌려졌을 때이걸 선물이라 좋아해야 할지이걸 폭탄이라 두려워해야 할지 몰랐지만우리는 꿈에도 사라진 희미하고뚜렷한 우리가 되어서차 벽을 향해 걸어가고차 벽을 두고 돌아온다우리라는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서너무 오랫동안 쌓여서끝도 보이지 않는 슬픔을 완성하기 위해서안주철(1975~)어느 겨울 우리는 광장에 나갔고, 차 벽을 향해 걸어갔다. 자꾸만 늘어나는 “거짓말의 길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차 벽을 부수기 위해 장미꽃을 던졌다. 가로막힌 것들이 조금씩 무너졌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가 되어갔다. 마침내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그 높은 차 벽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

    2024.11.24 21:53

  • [詩想과 세상]응강
    응강

    그늘이나 응달이 고향에서는 응강인데 꼭 응강이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곳만은 아니었다 시래기는 뒤란 처마 밑 응강에서 꼬들꼬들 말라갔으며 장두감을 설강 위 응강에 오래 두어야 다디단 홍시가 되어갔는데, 무엇보다도 어릴적 마루청 밑 짚가리 응강 속에서 달걀을 훔친 내가 흠씬 종아릴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잠들어버린, 고향에서는 정지라고 부르는 부엌 구석 어둑한 응강의 찬 기운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하였으니 거기가 서늘하고 깊고 시퍼런 물줄기를 가진 강 중의 강이기는 하였던 모양이봉환(1961~)“응강” 하고 발음하면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강가에 서 있는 것 같다. 시인의 고향에서 응강은 “그늘이나 응달”이었다. 그늘은 춥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곳. 시인을 늘 따라다니는 눈물 자국 같은 것.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기억의 문을 열면, “마루청 밑 짚가리 응강 속에서 달걀을 훔친” 시인이 “흠씬 종아릴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잠들어” 있다. ...

    2024.11.17 21:31

  • [詩想과 세상]쓸어버리고 다시 하기
    쓸어버리고 다시 하기

    모르겠어 이 밤은 모르겠다있어야 했을 그 밤을이 밤이 차지하고 있다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그러자 드러나고 있다아제아제 바라아제그러자 나는 서두르고 있다그 밤에 사로잡혀이 밤을 어지럽히고 있다그러자 나는 빗자루를 들고 있다바닥을 쓸고 있다쓸어버리고 다시 하기쓸고 있다 쓸어버리고다시 하기신해욱(1974~)우리는 무언가를 뒤집어쓴 채로, 잘못 들어선 길을 가고 있다. “있어야 했을 그 밤”을 “이 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이 자주 뒤집힌다. 정면이 보이질 않는다. 창문들도 모두 흐릿하다. 다시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그 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이 밤”. 초과한 것들, 부유하는 것들, 대치하는 것들로 늘 흔들린다. 시인은 혼돈의 순간, 주문처럼 외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매일매일 짓고 부수는 병든...

    2024.11.10 20:42

  • [詩想과 세상]미아리
    미아리

    언제부터 한쪽이 결린다던 누나는얼마 안 가 해만 지면 몸져누웠다이웃들도 의사들도 점집에나 보내보라 했지만싫다고 싫다고 악을 썼는데이번에는 내가 앓아눕자누나는 조용히 내림굿을 받았다누나가 늘 바라던 방이 그때 생겼다차림이고 낯이고 전부 다 어두운인간처의 낮에는 방울 소리 지나서마음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닳도록 손 비비는 소리는 저녁상 치우면 들렸다문득 잠에서 깨 오줌 누러 가는 한밤초에 켠 불이 많아 아늑하게 깊숙하게 밝은 그 방으로 모르는 할머니가 들어갔고일요일엔 모처럼 터셔츠를 입고 나와누나는 시고 단 귤 먹고 싶다 했다요 앞 청과에 좀 다녀오라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시면나는 싫다고 싫다고 버팅기다 내쫓기듯집을 나와 내리막길 걸으면 푸른청과 보이고오르막길 걸으면 끝에 영광교회 나와서낑낑 오르는 신자들 매번 저기 마귀 동생 간다 그랬다 전욱진(1993~)서울의 미아리에는 미래의 시인이 살...

    2024.11.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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