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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대저토마토’를 아십니까

    ‘대저토마토’를 아십니까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 김해국제공항 인근의 한 토마토 농가로 명산지 취재를 다녀왔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서 재배하는 대저토마토, 일명 ‘짭짤이토마토’가 제철맞이를 하는 시기다.농산물 소비의 폭이 좁은 1인 가구라는 것이 변명이 될는지. 들어는 봤어도 먹어본 기억은 없었던 터라 사실 좀 짐작이 안 됐다. 과일은 물론 토마토처럼 열매를 식용으로 하는 과채류도 당도가 주요 품질 기준으로 작용한다. 근래 신선식품 코너에서 ‘○○브릭스 이상’이라는 홍보 문구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데, 이 브릭스(brix)가 당도를 백분율로 나타낸 단위다. 품질을 가늠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나 브릭스 수치가 높을수록 열매가 맛있게 잘 익었다는 인식이 높다.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후식이나 간식으로 얇게 저미듯 썬 토마토에 하얀 설탕을 솔솔 뿌려 먹었던 시절도 있잖은가. 그런데 대놓고 짭짤한 토마토라니.어찌 이 맛을 모르고 사셨냐고 되물은 내 또래 청년 농부가 때깔 좋은 열...
  • [숨]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수없이 물었던 말이다. 그만큼 답해야 했던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 한국 사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소속과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니 물을 때였든 답할 때였든 그리 흔쾌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어이 묻고, 들어야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추진한 현대사 구술채록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거나 이에 관계된 일을 수행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2022년 갑작스럽게 청와대가 전면 개방됐다. 이후 청와대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성역, 구중궁궐에 비유될 만큼 쉬이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곳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대단했다. 다만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든 문제적 공간이라 여긴 탓인지 청와대 개방은 과감함을 넘어 성급하게 진행됐다. 청와대와 그 주변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그럴듯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된 것 이상으로 우리는 무엇을 더...
  • [숨]들킬 결심

    들킬 결심

    새해를 맞고 며칠 안 지나 겨우내 눈과 서리를 견디며 더 단단하고 더 달달해진다는 해남 겨울배추 수확 현장에 다녀왔다. 수년째 월간으로 발행되는 농업 전문지에 지역명과 나란히 등호를 붙여도 될 만큼 이름난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2월호 취재였다. 월간지 발행 특성상 한 달을 앞당겨 준비하는데, 보통 때 같으면 원고를 마감하고 열흘여 여유가 생기지만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진 설 연휴가 곧이고 2월은 짧은 달이다. 그제 2월호를 마감하고는 봄맞이 3월호 취재 후보군을 살피다가 아차 했다.얼른 해가 바뀌길 바랐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이렇다 할 회고도, 다짐도 못한 채 어물쩍 새해를 맞았다. 쏟아지는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오늘은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내일은 뭐가 달라지려나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유예되진 않는다. 그렇게 새해를 무망하게 시작해 놓곤 밥벌이하는 글 속에선 때때마다 한 해 갈무리를 어쩌고, 새해...
  • [숨]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현재는 필히 과거가 된다. 그리고 그 과거는 일부만이 역사로 기록되어 왔다. 지금껏 무엇이 어떻게 선별되어 역사로 기록되었는지, 왜 그것들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올해 국가유산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국가유산사랑’에 ‘근대와의 조우’라는 글을 매달 연재했다. 광주 양림동, 나주 영산포, 진주 에나길, 경주 읍성 둘레, 원주 대성로, 제주 모슬포 등 각 지역에서 반나절 찬찬히 걸어 둘러볼 수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동선을 짜 이야기를 엮었다.우리가 흔히 국가유산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유산·국가민속문화유산은 모두 지정문화유산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은 지정문화유산이 아닌 근현대문화유산 가운데 건설·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지난 것을 대상으로 보존과 활용을 위해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한다.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멸실될 위기에 처한 시대적 ...
  • [서진영의 숨]지역의 내일을 밝히는 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

    지역의 내일을 밝히는 축제, 양림골목비엔날레

    꽃과 단풍,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특산품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총동원되는 축제의 계절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이 황금철을 놓칠세라 지역 간은 물론 지역 내에서도 축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올가을은 내심 기대했던 축제가 열린 광주 양림동에서 맞았다. 사실 광주와 축제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1980년 5월이 중력으로 작동하는 듯한 광주는 가뿐히 걸음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주저하며 거리를 두던 내가 광주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축제 이전에 양림동 덕분이다. 양림동의 근대는 일제의 영향력 아래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이 묻어나는 그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대서 관심이 갔다.개항기 선교사 근거지 광주 양림동근대 건축물에 그 시절 자취 남아기획자·예술가들 ‘동네 되살리기’손님을 ‘여행주민’ 부르며 환대도개항지를 통해 유입된 기독교 선교사 가운데 일부가 유림...
  • [숨]우리에겐 더 많은 상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더 많은 상이 필요하다

    10월 둘째 주 토요일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 한 시상식에 수상자로 초대받았다. 비밀스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수상 소식을 전해듣기 전까지 이 상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 아야진에 있는 출판사 온다프레스에서 펴낸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이하, 로컬씨)가 제8회 한국지역출판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화연대인 한국지역출판연대에서 지역과 지역출판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2017년부터 매해 한국지역도서전과 함께 한국지역출판대상을 개최하고 있다. 서울과 파주를 제외한 지역 소재 출판사에서 전년에 발간한 책을 대상으로 지역성, 지역출판 도서로서의 정체성, 출판 기획과 작품의 우수성 등을 두루 평가하여 대상과 공로상을 선정한다. 행사는 전국 순회 형식으로 열리는데, 올해는 대전 유성구와 공동 주관하여 대전 유림공원에 판을 펼쳤다.로컬씨는 작가, 출판사, 지역 문화기관,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살고...
  • [숨]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로컬을 읽는다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로컬을 읽는다

    오랫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한 엄마는 일흔이 된 지난해 ‘프리’를 선언했다. 정년이 지나고도 계약직으로 계속 일했는데 24시간 주·야간 2교대로 운영되는 요양원 일이 힘에 부치는 시기가 왔다. 요 몇년은 한여름에도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했고, 하루에도 몇번씩 코를 찌르는 코로나19 검사도 피할 길 없는 근무 환경이었지만 그때는 동료들과 함께 버텨내는 무언의 힘이 작용한 듯하다. 엄마는 정부에서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고 맞은 일흔 번째 생일 무렵 퇴직했다.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했다. “내 한 몸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며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해볼 거라던 엄마는 찬 바람이 걷히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요양보호사로 일할 데는 많다 아니가. 일할 사람을 못 구해가 난리지.” 지역의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재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엄마는 2년 전 인구 3600명 남짓의 면 지역으로 귀촌했다. 전에 살던 대도시 생활권에는 차로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
  • [숨]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꽤 당당하게 강원 양양을 ‘내 구역’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오! 서핑?” 하는 반응이 열에 열. 그럴 만도 하다. 양양은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함께 ‘국내 서핑 성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200㎞ 남짓 떨어져 있는 양양을 좋아하고, 또 즐겨 찾는다는 이와 서핑을 연결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2017년 봄, 처음 양양 죽도해변에 간 날을 기억한다. 일에 대한 욕심, 그에 비례하는 업무 긴장도에 과부하가 걸린 시기였다. 쉬는 날만큼은 일에서 멀어져 보자고 다짐했다. 물리적으로 서울 도심,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양양행의 물꼬를 터주었다.마을회에서 운영한다는 야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해변, 반짝이는 바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서퍼들. 숨이 탁 트이는 동시에 노곤해져 까무룩 잠이 들었...
  • [숨]모눈종이의 꿈

    모눈종이의 꿈

    부동산 직거래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 집을 살 만한 형편은 아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없지는 않다. 물론 한동안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물부엌(간단한 조리와 빨래 등 물 쓰는 일이 가능한 보조적 공간)이 딸린 문간방에서 시작해 반지하, 셰어하우스, 고시원, 옥탑방을 거쳐 다가구주택의 투룸 월세살이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보금자리 여정이다.주거빈곤가구의 고충을 표현하는 ‘지옥고’를 두루 거치면서도 나는 그때그때 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지하에서 셰어하우스로 옮길 땐 지상으로 올라온 것만으로도 기뻤고, 고시원에서 옥탑방으로 옮길 땐 방에서 세 발짝 이상 떼어 걸을 수 있는 데다 창을 열어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것에 더없이 행복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어림잡아도 ‘억’ 소리 나오는 월세 부담 속에서 ‘내 집 마련’은 ‘남의 집’ 얘기였다. ‘영끌족’도 어느 정도 모아둔 자금이 있고, 여기에 보태 대출받을 수 있을 만큼 처우가 괜찮은 대도시 ...
  • [숨]쉴 틈 궁리

    쉴 틈 궁리

    여름이 무르익으니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흘러 이 장마가 지나면 곧 휴가철이다. 자연스럽게 요사이 스몰 토크의 단골 주제는 날씨와 휴가. 휴가 계획들 세우셨는지.나는 휴가에 꽤 진심인 편이었다. 이왕이면 이국으로 떠나려 했고, 가능한 한 휴일까지 붙여 최대한 길게 다녀오려 부단히 애썼다.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기 아까워 촘촘히 계획을 짰고, 무언가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 두어 가지 대안도 준비했다. 그러니 휴가 한 번 다녀올 때면 재충전은 무슨, 방전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얼마간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휴가란 얼마나 귀한가. 귀한 만큼 빈틈없이 보내야 옳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휴가차 떠난 여행에서 ‘한국인만 가능한 일정’이라고 설명이 따라붙는 현지 투어들을 적잖게 마주했다. 휴가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국인이지, 암.우리가 휴가를 맹렬히 보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휴가는 산업사회,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들면서 나온 개념이다. 농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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