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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퍼포먼스 펼쳐보기
    퍼포먼스 펼쳐보기

    음악가 진유영은 공연 도중 제사장으로 분해 축문을 낭송하고, 항아리를 망치로 깨부수려 했다. 또 다른 공연에선 팽팽한 붉은 풍선의 표면에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밀었다. 벨라는 작은 노트를 손에 쥐고 적힌 말들을 노려보며 그로울링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발산하던 그의 몸은 형형하게 빛났다. 위지영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편지봉투에 행운의 편지를 담아 관객 모두에게 건넸다. 봉투엔 이곳으로부터 먼,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의, 지금은 그의 생사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수신인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이들은 모두 음악가였지만 그들의 현장에선 음악 바깥으로 뻗쳐나가는 힘이 느껴지곤 했다. 그건 일종의 제의였고, 명료한 언어 체계 밖에서 발성하는 시간이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오래된 이야기에 연루시키는 과정이었다. 음악이 어땠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았다. 많은 음악 공연에서 시도했듯 소리의 구조를 따져보자고 덤벼드는 일도 무의미했다. 이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그런 행...

    2022.05.14 03:00

  • [숨] 냉전과 전쟁 고아
    냉전과 전쟁 고아

    전쟁은 무차별적인 파괴와 더불어 대량살상을 동반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를 만든다.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성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가 고통받는 아이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보도에서도 민간 시설과 민간인에 대한 폭격, 그리고 피해 아이들의 모습은 러시아의 반인륜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의 비인도적 행태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무고함을 부각하고, 나아가 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 도덕적 우월성 논쟁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먼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관한 보도를 보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듯, 70여년 전 한국전쟁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지역에서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 도덕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자 김태우는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에서 한국전쟁이 냉전 체제의 도덕성 논쟁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이 책은 소련, 중국, 영국,...

    2022.05.07 03:00

  • [숨]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

    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1980년대생들을 N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의 몇 가지 CF 문구가 떠오른다. “N세대는 물을 먹지 않는다”라는 음료 광고, “N세대의 소통법”이라는 통신사의 문자 요금제 광고 등이. 그 이전까지 ‘베이비붐세대’라든가 ‘386세대’ ‘X세대’라고 한 세대가 규정되는 것을 보며 나의 세대 앞에는 어떤 알파벳이 붙을까 괜히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N은 ‘네트워크’, 그러니까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W세대(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젊은 세대), M세대(2000년 이후 청년이 된 밀레니얼,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 등으로 규정되다가, 이제는 MZ세대로 불리기에 이르렀다.얼마 전 <다정한 개인주의자>라는 세대론이 출간되었다. 1970년대생 X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세대가 가진 성향을 ‘다정한 개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이 K컬처의 주역이...

    2022.04.30 03:00

  • [숨] 안녕, 친구, 고마워!
    안녕, 친구, 고마워!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인솔하는 수녀님의 뒤를 따라 “안녕!”과 “올라!”를 외치며 그림책 전시장에 들어온 것은 아침 10시쯤이었다. 순간 말하는 레몬들이 굴러오는 줄 알았다. 잠을 잘 자고 난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상쾌하고 단단하다. 이틀 넘게 비행기를 타서 몽롱한 상태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나는 지금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 우리 그림책을 알리는 일을 돕는 중이다. 100권이 넘는 우리 그림책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함께 왔다. 해발 2450m인 유서 깊은 이 도시에서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백두산 천지에 앉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에 오른 김효은, 라가치상을 받았던 박연철, 정진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안데스산맥의 구름 모자 아래에서 독자들을 만나러 왔다. 한국관 테마는 공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준비한 그림책관은 ‘목소리의 어울림’이 주제다. 그림책은 세상의 여러 목소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작가를 성장시키는 것은 ...

    2022.04.23 03:00

  • [숨] 지금, 우리의 피아노
    지금, 우리의 피아노

    이제는 온라인 중고 마켓에서 피아노 매물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상태 좋은 악기도 있지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거나 운송비만 내고 가져갈 수 있는 낡은 피아노도 눈에 띈다. 그 피아노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던 차, 얼마 전 그들의 행방을 알게 됐다. 몇몇 조율사들이 그런 피아노를 찾아가 여전히 쓸 만한 것들을 고르고, 누군가 폐기물로 처리한 피아노를 수거해와 이리저리 고쳐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피아노들은 이름 없는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드물게나마 중고 피아노를 구하는 구매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했다.우리 집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오던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이 악기와 더불어 그럴싸한 미래를 함께 선물받은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하던 엄마의 꿈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날이기도 했다. 동네마다 한두 개씩 꼭 있던 피아노 학원에서 꽤 즐겁게 음악을 배우던 나를 위해, 할...

    2022.04.16 03:00

  • [숨] ‘노동 예능’을 보는 즐거움
    ‘노동 예능’을 보는 즐거움

    몇 해 전부터 유명 연예인들이 일하는 것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주요한 예능 장르로 자리 잡았다.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윤스테이> <어쩌다 사장> 등이 연예인의 노동을 볼거리로 상품화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 또한 이러한 ‘노동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우리가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노동 예능’의 포맷은 유명 배우들이 외진 공간(국내의 농촌이나 어촌, 산촌 또는 외국)에 모여서 함께 일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형성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배우들 간의 관계로, 출연자들은 보통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 온 사람들로 이들이 공유하는 추억과 친밀감은 ‘노동 예능’이 판매하는 가장 주요한 상품이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망은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매개체로도 전시된다. 즉,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 출연해 고생하는 친구나 동료를 ...

    2022.04.09 03:00

  • [숨] 최상급 추천의 언어
    최상급 추천의 언어

    책의 뒤표지에는 대개 300자 내외의 추천사가 한두 개씩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할 것이다. 추천사의 분량이나 비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줄에 1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백 자를 쓰고서도 1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글자에 매겨지는 가격을 감안하면 추천사는 가장 비싼 집필 활동임에 분명하다.그다지 유명한 작가가 아닌 나에게도 종종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달에 두세 건은 꼭 오는 듯하다. 우선은 내가 이 추천사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되지만, 그렇게 판단했으니 연락이 왔겠지 싶다. 원고를 살펴보고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그 분량과는 별개로 부담이 찾아온다. 이만큼 쓰기 어려운 글도 없는 듯하다. 그 어떤 글보다 잘 써야 하는 글인 것이다. 이 책이 잘되기를 바라는 편집자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나. 내가 받는 추천사만큼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을 적어도 수십 권은 더 팔아야 할 텐데 ...

    2022.04.02 03:00

  • [숨]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59회를 맞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은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어린이책 출판 관계자가 모이는 대축제다. 2년에 한 번씩, 도서전 현장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세계 아동문학과 그림책의 역사는 이 상의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지난 3월21일에 발표된 2022년 수상자는 우리나라의 이수지 작가였다. 생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상자 발표 순간에 너도나도 탄성을 질렀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수지 작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경이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림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차원을 바꾸어놓은 독보적인 작가다. 우리는 이수지 작가 덕분에 그림책이라는 작은 사각형의 무대 안쪽에 잠들어 있던 환상의 목소리를, 평면 위에서 입체적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글이 없는 그의 그림책에서 들려오는 어...

    2022.03.26 03:00

  • [숨] 봄날의 통영에서 만나는 음악
    봄날의 통영에서 만나는 음악

    날이 따사로워지며 남쪽부터 서서히 꽃이 피어오르는 시기,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들은 통영으로 향한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찾기 위해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기리며, 동시대 음악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음악제다. 특히나 통영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봄날, 바닷가에 인접한 음악당에서 공연을 보고 듣는 일은 근사한 음악 경험 중 하나다.처음 음악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팀프(TIMF) 앙상블을 통해서였다.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서 서울에서 꾸준히 기획공연을 이어오는 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다 이들이 통영국제음악제의 연주단체이자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 팀프 앙상블의 공연을 통해 동시대 레퍼토리를 많이 접하고 배워온 터라 그들의 집과 같은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엔 음악제를 종종 찾았다.통영국제음악제의 역사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통영에서 열린 ...

    2022.03.19 03:00

  • [숨] 유럽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유럽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이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가들은 방역패스 면제, 숙소와 식량 제공, 3년간 체류 및 아이들에 대한 교육 보장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들 국가의 국경지역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우려는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언론 또한 러시아 탱크를 맨손으로 막아내는 주민, 러시아 군인을 꾸짖는 할머니의 모습 등을 보도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외국인들의 참전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호응하여 영국, 호주, 한국 등의 나라에서 젊은 남성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과 조치들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

    2022.03.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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