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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나쁜 교육
    나쁜 교육

    ‘좋은 교육은 무엇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자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인 내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광주로 생활 기반을 옮기면서 더욱 고민이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는 지역사립대이다. 이전에 근무했던 서울 소재 대학들이 학생들을 학술 논문 생산자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을 강조했다면, 지역 소재 대학들은 학생들의 취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서울과 지역 간의 교육 격차는 지난 수십년 동안 심화되어왔다. 근래는 학력인구 감소로 지역 대학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한 상태라 한다. 대학들은 정부 재정지원의 근거가 되는 대학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도입하는 한편, 외국 유학생 유치를 통해 재정 확충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표면적으로는 대학 교육의 질 강화를 내세운다.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여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 속...

    2022.07.02 03:00

  • [숨] 당신의 도정을 응원하며
    당신의 도정을 응원하며

    가족과 함께 강원 평창에 가서 무언가 자라고 있는 밭을 지나는 길이었다. 저게 뭐지,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아홉 살 아이가 말했다. “아빠, 저거 감자야.” 같이 걷던 아내도 감자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니 얼마 전 학교에서 감자를 심었다고 했다. 그는 강릉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뿐 아니라 원주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아내도 감자를 바로 알아보았다. 강원도에서 산 지 20여년이 되어가면서도 감자싹과 고추싹을 구분 못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듯하다.강릉으로 이주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바다와 가까운 조용한 동네에 산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일곱 살이 된 아이가 바다를 한 번도 못 보았다며 보고 싶다고 했고, 미안한 마음에 그날 강릉을 찾았고,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몇 번이나 바다를 찾다가 아이에게 문득 물었던 것이다. 혹시 바닷가에서 살고 싶으냐고. 그가 좋다고 했고, 아내도 좋다고 했고, ...

    2022.06.25 03:00

  • [숨] 비스킷을 든 아이들
    비스킷을 든 아이들

    ‘캐논, 스트랩, 피스, 버너, 히터, 초퍼, 해머, 연장, 비스킷.’이것은 모두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속어다. 이 사물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열다섯 살 윌이 형을 잃을 때도 그랬다. 윌의 형 숀은 습진으로 피가 날 만큼 몸을 긁는 엄마를 위해 아홉 블록 떨어진 가게까지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 가게에서만 습진전용 비누를 팔기 때문이다. 비누를 사오던 숀은 총에 맞아 동생 윌의 눈앞에서 숨을 거둔다. 제이슨 레이놀즈의 청소년소설 <롱 웨이 다운>이야기다. 이 책은 윌이 총기살인범에게 복수하려고 자신도 총을 들고 나와 엘리베이터에 탄 뒤 8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1분 동안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윌은 동네 형 릭스가 동네 깡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숀을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탑승자들이 윌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놀랍게도 죽은 사람들이었다.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 사람을 죽이러가는 ...

    2022.06.18 03:00

  • [숨] 끝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끝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만 착륙 후엔 기내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확인했다.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준 음악은 클로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이었고, 연달아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다른 비행기에서 냇 킹 콜의 ‘Unforgettable’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 문화 속에서 이들이 어떤 기호로 통용되는지 분명히 알고 선곡해 놓은 듯한 이 음악들은 도착지에 대한 설렘 혹은 떠나온 여행지에 대한 기호화된 그리움 같은 것들을 내 인식에 필터처럼 끼워 넣었다. 딱히 그 장소들을 그렇게 떠올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이런 제목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 곧 이륙하겠습니다’ ‘밤 비행기’ ‘우리 목적지는 뉴욕입니다’ 등. 여행, 카페에서의 시간, 산책길, 드라이빙 등 수많은 상황을 음악적으로 연출하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비행기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플레이리스트는 듣는 자의 환경을 ...

    2022.06.11 03:00

  • [숨] 해방, 추앙, 환대
    해방, 추앙, 환대

    한동안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지난주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한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살 것인가에 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이 과정이 해방, 추앙, 환대라는 대중문화 상품에는 다소 낯설고 무거운 단어를 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해방’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라면, ‘추앙’과 ‘환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드라마는 “추앙하다보면 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추앙은 주요 인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관계와 대조된다.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주요 인물들의 선함과 예의바름은 오히려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다. 이들이 베푸는 친절함(타인을 위한 행동)은 ‘등신’이 되는 지름길로 작동하여 “사람이 너무 싫은” 감각으로 돌아온다. 추앙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조언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하며 응원하는”...

    2022.06.04 03:00

  • [숨] 네가 꿈을 꾼다면 그 시간을 내가 살게
    네가 꿈을 꾼다면 그 시간을 내가 살게

    내가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에도 “너는 꿈이 뭐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모범답안은 대통령,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답하고 나면 그들은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거나 용돈을 주거나 하고 곁에 선 부모님은 흐뭇하게 웃는다. 그 시절의 참 흔한 풍경이었을 것이다.나의 꿈은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되고 싶은 것을 3개(씩이나) 말해보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1) 농부, 2) 어부, 3) 사냥꾼, 이라고 답한 이후로 꾸준히 그랬다. 모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고 어느 교사에게는 호된 꾸중을 들은 일도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러나 나는 꽤나 진지했다. 지금에 와서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우선 농부가 되어 내가 기른 농작물을 수확하고 싶었고, 어부가 되어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엄청난 것을 잡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사냥꾼에 이르면 그저 설레는 것이었다. 저 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2.05.28 03:00

  • [숨] 나를 볼 수 없는 거울
    나를 볼 수 없는 거울

    나타샤 패런트의 동화 <여덟 공주와 마법 거울>에 나오는 공주 시얼샤는 모든 것으로부터 숨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요상한 작은 것”이라고 불렀다. 세상은 보란 듯이, 또는 교묘한 방식으로 공격적이었다. 조금 달랐을 뿐인데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너를 이해해주는 곳에 가서 살라는 말을 시얼샤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얼샤가 살고 싶은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토끼가 빠르게 달리고 매가 바쁘게 날아가듯이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을 찾기로 한다. 그리고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몰랐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새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다. 그날부터 시얼샤는 세상을 바꾸는 길에 선다.이번에는 실존 인물 한 사람의 얘기를 해보겠다. 크리스티안 로빈슨은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생후 5개월이었던 어느 비오는 날 새벽, 그는 형과 함께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아버지는 아이를 두고 어딘가로 떠나버렸고...

    2022.05.21 03:00

  • [숨] 퍼포먼스 펼쳐보기
    퍼포먼스 펼쳐보기

    음악가 진유영은 공연 도중 제사장으로 분해 축문을 낭송하고, 항아리를 망치로 깨부수려 했다. 또 다른 공연에선 팽팽한 붉은 풍선의 표면에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밀었다. 벨라는 작은 노트를 손에 쥐고 적힌 말들을 노려보며 그로울링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발산하던 그의 몸은 형형하게 빛났다. 위지영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편지봉투에 행운의 편지를 담아 관객 모두에게 건넸다. 봉투엔 이곳으로부터 먼,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의, 지금은 그의 생사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수신인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이들은 모두 음악가였지만 그들의 현장에선 음악 바깥으로 뻗쳐나가는 힘이 느껴지곤 했다. 그건 일종의 제의였고, 명료한 언어 체계 밖에서 발성하는 시간이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오래된 이야기에 연루시키는 과정이었다. 음악이 어땠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았다. 많은 음악 공연에서 시도했듯 소리의 구조를 따져보자고 덤벼드는 일도 무의미했다. 이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그런 행...

    2022.05.14 03:00

  • [숨] 냉전과 전쟁 고아
    냉전과 전쟁 고아

    전쟁은 무차별적인 파괴와 더불어 대량살상을 동반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를 만든다.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성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가 고통받는 아이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보도에서도 민간 시설과 민간인에 대한 폭격, 그리고 피해 아이들의 모습은 러시아의 반인륜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의 비인도적 행태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무고함을 부각하고, 나아가 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 도덕적 우월성 논쟁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먼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관한 보도를 보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듯, 70여년 전 한국전쟁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지역에서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 도덕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자 김태우는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에서 한국전쟁이 냉전 체제의 도덕성 논쟁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이 책은 소련, 중국, 영국,...

    2022.05.07 03:00

  • [숨]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

    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1980년대생들을 N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의 몇 가지 CF 문구가 떠오른다. “N세대는 물을 먹지 않는다”라는 음료 광고, “N세대의 소통법”이라는 통신사의 문자 요금제 광고 등이. 그 이전까지 ‘베이비붐세대’라든가 ‘386세대’ ‘X세대’라고 한 세대가 규정되는 것을 보며 나의 세대 앞에는 어떤 알파벳이 붙을까 괜히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N은 ‘네트워크’, 그러니까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W세대(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젊은 세대), M세대(2000년 이후 청년이 된 밀레니얼,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 등으로 규정되다가, 이제는 MZ세대로 불리기에 이르렀다.얼마 전 <다정한 개인주의자>라는 세대론이 출간되었다. 1970년대생 X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세대가 가진 성향을 ‘다정한 개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이 K컬처의 주역이...

    2022.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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