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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3월 초, 개학 주간이다. 주변의 학부모들은 겨울방학이 길었다고, 교사들은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간이란 저마다의 처지에서 지극히 상대적으로 흐르는 듯하다. 이제 2학년이 된 나의 아이도 자신의 초등학교로 간다. 그가 아침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학교 가기 싫어”였다. 개학 첫날에도 그는 적당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는 등교했다.아이의 엄마는 아무래도 전생에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형제의 어머니였던 게 분명하다. 날이 좋으면 우산 파는 첫째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비가 오면 짚신 파는 둘째를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를 보며 늘 불안해한다. 아이가 왜 학교를 즐겁게 다니지 못하느냐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도 그랬던 것을 왜 아이는 다르길 바라느냐고 되물었다. 나도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5분 거리의 그 등굣길도 싫어서 일부...

    2022.03.05 03:00

  • [숨] 꿈나무가 아니라 지금 나무
    꿈나무가 아니라 지금 나무

    스코틀랜드의 어딩스턴중학교에 다니는 로지 머레이는 5월5일에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느라 바쁘다. 투표일 기준으로 16세 생일이 지나 유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로지는 첨단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 여전히 점자가 필요한 이유를 발표해 주목받은 적이 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스크린을 읽어주는 환경이 마련된다 해도 무언가를 직접 읽고 소통하는 경험은 좀 다르다는 것이 로지의 주장이었다. 점자를 만지면서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는 로지는 두 살 때부터 점자로 책읽기를 배운 시각장애인이다. 로지는 선거가 장애인이자 청소년인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 현장에 전달할 중요하고 평등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로지와 친구들의 정치 활동은 지역 언론이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이번 대선이라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찾기 어려운 것이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공약과 발언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는 여성가족부...

    2022.02.26 03:00

  • [숨]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가끔 음악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해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는 가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음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 크기와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악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다. 음악을 듣고 나면 깜깜한 방에 혼자 남는 것 같았다. 음악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막막함 속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 물음이 흐려지는 순간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끌시끌한 현장에 갔을 때, 그리고 음악가를 대면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음악가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새삼스럽게 질문하는 건 어쩐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음악은 그의 삶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에겐 음악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보다 음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듯했다. 음악가를 만날 때면 음악이 먼 곳에 존재하...

    2022.02.19 03:00

  • [숨] 감시기술과 사회적 분류
    감시기술과 사회적 분류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비상사태가 시작된 것이 재작년 이맘때이다. 백신 개발과 함께 팬데믹 상황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코로나19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현재까지 그 위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사이 진행된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적 공간에서 체온 측정, 출입 등록, 접종 정보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일상화된 것이다. 열화상 카메라, 온도 측정기, QR인증기 등의 감시기술이 우리 몸이 특정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정상적인 몸인지 아닌지 판정한다. 이러한 감시기술의 도입은 잠재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몸을 분류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격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방적 감시기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Screening the body>(1995)의 저자인 미국 미디어학자 리사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미국 정부는 결핵 확산을 막기 위한 공공 의료 감시체계를 도입하여 초기 단계에 있는 ...

    2022.02.12 03:00

  • [숨]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훈의 시대>라는 책을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원주여고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다. 책을 쓰다가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검색해 보고서야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교훈이 좀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신은 뭐가 또 불만이고 문제냐며, 그러면 너희 학교의 교훈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잘 기억이 ...

    2022.02.05 03:00

  • [숨] 빈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빈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인형과 구슬, 바퀴, 줄, 막대와 공은 예부터 어린이들의 장난감이었다. 줄을 잡아당기면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는 나무 인형이 3500년이나 된 나일강 유적지에서 발굴된 적이 있다. 고대 아이들은 줄을 당기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아즈텍제국의 어린이들이 갖고 놀았다는 바퀴 달린 동물인형 유물도 유명하다. 이음새가 정교해서 수백 년이 지났지만 도르르 잘 굴러간다. 애리조나주의 인디언들은 제례의식을 마치고 나면 아름답게 색칠한 카치나 인형을 아이들 손에 쥐여주었다. 어린이들은 오늘 어떤 인형을 갖게 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잘 노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이가 마음껏 뛸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설계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1859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개장했던 한 놀이터가 최초의 대중적 놀이터로 알려져 있다.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귄터 벨치히는 “놀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의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시설물을 타고 올라가고 ...

    2022.01.29 03:00

  • [숨] 음악적 금기
    음악적 금기

    화성학 선생님은 그날따라 무정한 표정으로 답안지에 빨간 선들을 그었다. 유독 많이 틀린 날이었다. 대충 풀어갔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예상보다 많이 틀려 부끄러웠지만, 그럴 때면 음악에 맞고 틀리고가 도대체 어딨나, 그 기준은 누가 정했나, 하는 반발심이 들곤 했다. 고단한 채점을 마치고 선생님은 ‘성부침해’, ‘병행’, ‘은복’ 등 오답의 종류가 고루 분포하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오답의 한 예라는 평을 남겼다.성부침해는 예컨대 가장 낮은 음역에서 노래하기로 되어 있던 목소리가 그 위쪽 음역을 노래하던 목소리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했을 때 생기는 일이다. 일시적인 영역 침범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병행은 두 음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움직일 때 생기는 일로, 대학 입시를 위한 화성학에서는 1도·5도·8도 병행을 지양한다. 소위 ‘텅 빈 소리’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은복은 바로 이 병행이 어딘가에 은닉해 있는 것으로, 이 또한 지양된다.물론 이런 지식...

    2022.01.22 03:00

  • [숨]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최근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애덤 매케이, 2021)이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막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천문학자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녀의 지도교수 민디 박사가 거대 혜성을 발견하여 위기 상황을 보고하고 백악관으로 이송되는 장면까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익숙한 패턴을 따른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영웅 서사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인정되지도, 말해지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선거 전략과 특정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계속 유예하고, 언론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보다 연예인 커플의 이별을 압도적으로 비중 있게 다룬다. 이 영화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다층적으로 세밀하게 드러낸다. 기후 과학자 피터 칼무스는 자신이 수십 년간 기...

    2022.01.15 03:00

  • [숨] 그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모 지역에서 의무소방원으로 군복무했다. 소방에 대한 꿈과 로망이 있었다기보다는, 휴가가 많고 근무가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말에 응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학교에서의 훈련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단련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너희가 힘이 없으면 구조하러 가서 구조당한다”라는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역 소방서의 본서에 배치받고 난 첫날 새벽에는 세 번의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마이크를 톡톡 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선임들은 모두가 4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려갔고, 몇 시간 후 돌아온 그들의 몸에서는 불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물론 그날이 좀 과한 날이었다. 화재가 없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았다.나는 구급&화재에 배치받았다. 구급 출동이 있으면 응급구조사와 함께 구급차를 탔고 화재 출동이 있으면 방수복을 입고 방수모를 챙겨서 소방펌프차 끄트머리에 앉았다. 대도시의 의무소방원들은 주로 사무 업무에 배치된다고 들었으나...

    2022.01.08 03:00

  • [숨]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게 되어 있다. 2021년 1월1일부터12월30일까지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을까? 대표적인 어느 포털사이트의 분석 도구를 활용해 어린이 관련 검색어의 검색 분포를 살펴보았다. ‘어린이’라는 말은 일 년에 단 하루, 어린이날에만 폭발적으로 검색되었다. 어린이날의 ‘어린이’ 검색 횟수가 100이라면 다른 날은 3 미만이다. 놀라운 점은 어린이를 비하하는 속어인 ‘잼민이’의 검색 횟수가 보편적 말인 ‘어린이’에 비해 평균 두 배에서 다섯 배까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신조어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횟수다. 특히 단 하루 주목받고 끝나는 ‘어린이’와 달리 ‘잼민이’는 일 년 내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린이 관련 단어 중에서 빈번하게 검색된 낱말은 ‘아동학대’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과 함께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가 이어졌던 1월3일에는 77만큼 검색되면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잔혹한 사건은 그치지 않았고 ‘아동학대’는...

    2022.01.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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