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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안녕, 친구, 고마워!
    안녕, 친구, 고마워!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인솔하는 수녀님의 뒤를 따라 “안녕!”과 “올라!”를 외치며 그림책 전시장에 들어온 것은 아침 10시쯤이었다. 순간 말하는 레몬들이 굴러오는 줄 알았다. 잠을 잘 자고 난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상쾌하고 단단하다. 이틀 넘게 비행기를 타서 몽롱한 상태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나는 지금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 우리 그림책을 알리는 일을 돕는 중이다. 100권이 넘는 우리 그림책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함께 왔다. 해발 2450m인 유서 깊은 이 도시에서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백두산 천지에 앉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에 오른 김효은, 라가치상을 받았던 박연철, 정진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안데스산맥의 구름 모자 아래에서 독자들을 만나러 왔다. 한국관 테마는 공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준비한 그림책관은 ‘목소리의 어울림’이 주제다. 그림책은 세상의 여러 목소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작가를 성장시키는 것은 ...

    2022.04.23 03:00

  • [숨] 지금, 우리의 피아노
    지금, 우리의 피아노

    이제는 온라인 중고 마켓에서 피아노 매물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상태 좋은 악기도 있지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거나 운송비만 내고 가져갈 수 있는 낡은 피아노도 눈에 띈다. 그 피아노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던 차, 얼마 전 그들의 행방을 알게 됐다. 몇몇 조율사들이 그런 피아노를 찾아가 여전히 쓸 만한 것들을 고르고, 누군가 폐기물로 처리한 피아노를 수거해와 이리저리 고쳐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피아노들은 이름 없는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드물게나마 중고 피아노를 구하는 구매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했다.우리 집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오던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이 악기와 더불어 그럴싸한 미래를 함께 선물받은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하던 엄마의 꿈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날이기도 했다. 동네마다 한두 개씩 꼭 있던 피아노 학원에서 꽤 즐겁게 음악을 배우던 나를 위해, 할...

    2022.04.16 03:00

  • [숨] ‘노동 예능’을 보는 즐거움
    ‘노동 예능’을 보는 즐거움

    몇 해 전부터 유명 연예인들이 일하는 것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주요한 예능 장르로 자리 잡았다.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윤스테이> <어쩌다 사장> 등이 연예인의 노동을 볼거리로 상품화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 또한 이러한 ‘노동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우리가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노동 예능’의 포맷은 유명 배우들이 외진 공간(국내의 농촌이나 어촌, 산촌 또는 외국)에 모여서 함께 일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형성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배우들 간의 관계로, 출연자들은 보통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 온 사람들로 이들이 공유하는 추억과 친밀감은 ‘노동 예능’이 판매하는 가장 주요한 상품이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망은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매개체로도 전시된다. 즉,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 출연해 고생하는 친구나 동료를 ...

    2022.04.09 03:00

  • [숨] 최상급 추천의 언어
    최상급 추천의 언어

    책의 뒤표지에는 대개 300자 내외의 추천사가 한두 개씩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할 것이다. 추천사의 분량이나 비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줄에 1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백 자를 쓰고서도 1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글자에 매겨지는 가격을 감안하면 추천사는 가장 비싼 집필 활동임에 분명하다.그다지 유명한 작가가 아닌 나에게도 종종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달에 두세 건은 꼭 오는 듯하다. 우선은 내가 이 추천사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되지만, 그렇게 판단했으니 연락이 왔겠지 싶다. 원고를 살펴보고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그 분량과는 별개로 부담이 찾아온다. 이만큼 쓰기 어려운 글도 없는 듯하다. 그 어떤 글보다 잘 써야 하는 글인 것이다. 이 책이 잘되기를 바라는 편집자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나. 내가 받는 추천사만큼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을 적어도 수십 권은 더 팔아야 할 텐데 ...

    2022.04.02 03:00

  • [숨]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59회를 맞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은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어린이책 출판 관계자가 모이는 대축제다. 2년에 한 번씩, 도서전 현장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세계 아동문학과 그림책의 역사는 이 상의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지난 3월21일에 발표된 2022년 수상자는 우리나라의 이수지 작가였다. 생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상자 발표 순간에 너도나도 탄성을 질렀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수지 작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경이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림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차원을 바꾸어놓은 독보적인 작가다. 우리는 이수지 작가 덕분에 그림책이라는 작은 사각형의 무대 안쪽에 잠들어 있던 환상의 목소리를, 평면 위에서 입체적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글이 없는 그의 그림책에서 들려오는 어...

    2022.03.26 03:00

  • [숨] 봄날의 통영에서 만나는 음악
    봄날의 통영에서 만나는 음악

    날이 따사로워지며 남쪽부터 서서히 꽃이 피어오르는 시기,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들은 통영으로 향한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찾기 위해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기리며, 동시대 음악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음악제다. 특히나 통영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봄날, 바닷가에 인접한 음악당에서 공연을 보고 듣는 일은 근사한 음악 경험 중 하나다.처음 음악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팀프(TIMF) 앙상블을 통해서였다.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서 서울에서 꾸준히 기획공연을 이어오는 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다 이들이 통영국제음악제의 연주단체이자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 팀프 앙상블의 공연을 통해 동시대 레퍼토리를 많이 접하고 배워온 터라 그들의 집과 같은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엔 음악제를 종종 찾았다.통영국제음악제의 역사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통영에서 열린 ...

    2022.03.19 03:00

  • [숨] 유럽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유럽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이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가들은 방역패스 면제, 숙소와 식량 제공, 3년간 체류 및 아이들에 대한 교육 보장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들 국가의 국경지역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우려는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언론 또한 러시아 탱크를 맨손으로 막아내는 주민, 러시아 군인을 꾸짖는 할머니의 모습 등을 보도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외국인들의 참전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호응하여 영국, 호주, 한국 등의 나라에서 젊은 남성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과 조치들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

    2022.03.12 03:00

  • [숨]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3월 초, 개학 주간이다. 주변의 학부모들은 겨울방학이 길었다고, 교사들은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간이란 저마다의 처지에서 지극히 상대적으로 흐르는 듯하다. 이제 2학년이 된 나의 아이도 자신의 초등학교로 간다. 그가 아침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학교 가기 싫어”였다. 개학 첫날에도 그는 적당히 우울한 표정을 하고는 등교했다.아이의 엄마는 아무래도 전생에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형제의 어머니였던 게 분명하다. 날이 좋으면 우산 파는 첫째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비가 오면 짚신 파는 둘째를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를 보며 늘 불안해한다. 아이가 왜 학교를 즐겁게 다니지 못하느냐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도 그랬던 것을 왜 아이는 다르길 바라느냐고 되물었다. 나도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5분 거리의 그 등굣길도 싫어서 일부...

    2022.03.05 03:00

  • [숨] 꿈나무가 아니라 지금 나무
    꿈나무가 아니라 지금 나무

    스코틀랜드의 어딩스턴중학교에 다니는 로지 머레이는 5월5일에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느라 바쁘다. 투표일 기준으로 16세 생일이 지나 유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로지는 첨단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 여전히 점자가 필요한 이유를 발표해 주목받은 적이 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스크린을 읽어주는 환경이 마련된다 해도 무언가를 직접 읽고 소통하는 경험은 좀 다르다는 것이 로지의 주장이었다. 점자를 만지면서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는 로지는 두 살 때부터 점자로 책읽기를 배운 시각장애인이다. 로지는 선거가 장애인이자 청소년인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 현장에 전달할 중요하고 평등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로지와 친구들의 정치 활동은 지역 언론이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이번 대선이라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찾기 어려운 것이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공약과 발언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는 여성가족부...

    2022.02.26 03:00

  • [숨]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가끔 음악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해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는 가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음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 크기와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악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다. 음악을 듣고 나면 깜깜한 방에 혼자 남는 것 같았다. 음악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막막함 속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 물음이 흐려지는 순간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끌시끌한 현장에 갔을 때, 그리고 음악가를 대면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음악가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새삼스럽게 질문하는 건 어쩐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음악은 그의 삶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에겐 음악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보다 음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듯했다. 음악가를 만날 때면 음악이 먼 곳에 존재하...

    2022.02.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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