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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감시기술과 사회적 분류
    감시기술과 사회적 분류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비상사태가 시작된 것이 재작년 이맘때이다. 백신 개발과 함께 팬데믹 상황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코로나19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현재까지 그 위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사이 진행된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적 공간에서 체온 측정, 출입 등록, 접종 정보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일상화된 것이다. 열화상 카메라, 온도 측정기, QR인증기 등의 감시기술이 우리 몸이 특정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정상적인 몸인지 아닌지 판정한다. 이러한 감시기술의 도입은 잠재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몸을 분류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격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방적 감시기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Screening the body>(1995)의 저자인 미국 미디어학자 리사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미국 정부는 결핵 확산을 막기 위한 공공 의료 감시체계를 도입하여 초기 단계에 있는 ...

    2022.02.12 03:00

  • [숨]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훈의 시대>라는 책을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원주여고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다. 책을 쓰다가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검색해 보고서야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교훈이 좀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신은 뭐가 또 불만이고 문제냐며, 그러면 너희 학교의 교훈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잘 기억이 ...

    2022.02.05 03:00

  • [숨] 빈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빈터에서 자라는 아이들

    인형과 구슬, 바퀴, 줄, 막대와 공은 예부터 어린이들의 장난감이었다. 줄을 잡아당기면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는 나무 인형이 3500년이나 된 나일강 유적지에서 발굴된 적이 있다. 고대 아이들은 줄을 당기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아즈텍제국의 어린이들이 갖고 놀았다는 바퀴 달린 동물인형 유물도 유명하다. 이음새가 정교해서 수백 년이 지났지만 도르르 잘 굴러간다. 애리조나주의 인디언들은 제례의식을 마치고 나면 아름답게 색칠한 카치나 인형을 아이들 손에 쥐여주었다. 어린이들은 오늘 어떤 인형을 갖게 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잘 노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이가 마음껏 뛸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설계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1859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개장했던 한 놀이터가 최초의 대중적 놀이터로 알려져 있다.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귄터 벨치히는 “놀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의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시설물을 타고 올라가고 ...

    2022.01.29 03:00

  • [숨] 음악적 금기
    음악적 금기

    화성학 선생님은 그날따라 무정한 표정으로 답안지에 빨간 선들을 그었다. 유독 많이 틀린 날이었다. 대충 풀어갔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예상보다 많이 틀려 부끄러웠지만, 그럴 때면 음악에 맞고 틀리고가 도대체 어딨나, 그 기준은 누가 정했나, 하는 반발심이 들곤 했다. 고단한 채점을 마치고 선생님은 ‘성부침해’, ‘병행’, ‘은복’ 등 오답의 종류가 고루 분포하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오답의 한 예라는 평을 남겼다.성부침해는 예컨대 가장 낮은 음역에서 노래하기로 되어 있던 목소리가 그 위쪽 음역을 노래하던 목소리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했을 때 생기는 일이다. 일시적인 영역 침범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병행은 두 음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움직일 때 생기는 일로, 대학 입시를 위한 화성학에서는 1도·5도·8도 병행을 지양한다. 소위 ‘텅 빈 소리’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은복은 바로 이 병행이 어딘가에 은닉해 있는 것으로, 이 또한 지양된다.물론 이런 지식...

    2022.01.22 03:00

  • [숨]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최근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애덤 매케이, 2021)이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막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천문학자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녀의 지도교수 민디 박사가 거대 혜성을 발견하여 위기 상황을 보고하고 백악관으로 이송되는 장면까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익숙한 패턴을 따른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영웅 서사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인정되지도, 말해지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선거 전략과 특정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계속 유예하고, 언론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보다 연예인 커플의 이별을 압도적으로 비중 있게 다룬다. 이 영화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다층적으로 세밀하게 드러낸다. 기후 과학자 피터 칼무스는 자신이 수십 년간 기...

    2022.01.15 03:00

  • [숨] 그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모 지역에서 의무소방원으로 군복무했다. 소방에 대한 꿈과 로망이 있었다기보다는, 휴가가 많고 근무가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말에 응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학교에서의 훈련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단련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너희가 힘이 없으면 구조하러 가서 구조당한다”라는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역 소방서의 본서에 배치받고 난 첫날 새벽에는 세 번의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마이크를 톡톡 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선임들은 모두가 4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려갔고, 몇 시간 후 돌아온 그들의 몸에서는 불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물론 그날이 좀 과한 날이었다. 화재가 없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았다.나는 구급&화재에 배치받았다. 구급 출동이 있으면 응급구조사와 함께 구급차를 탔고 화재 출동이 있으면 방수복을 입고 방수모를 챙겨서 소방펌프차 끄트머리에 앉았다. 대도시의 의무소방원들은 주로 사무 업무에 배치된다고 들었으나...

    2022.01.08 03:00

  • [숨]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게 되어 있다. 2021년 1월1일부터12월30일까지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을까? 대표적인 어느 포털사이트의 분석 도구를 활용해 어린이 관련 검색어의 검색 분포를 살펴보았다. ‘어린이’라는 말은 일 년에 단 하루, 어린이날에만 폭발적으로 검색되었다. 어린이날의 ‘어린이’ 검색 횟수가 100이라면 다른 날은 3 미만이다. 놀라운 점은 어린이를 비하하는 속어인 ‘잼민이’의 검색 횟수가 보편적 말인 ‘어린이’에 비해 평균 두 배에서 다섯 배까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신조어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횟수다. 특히 단 하루 주목받고 끝나는 ‘어린이’와 달리 ‘잼민이’는 일 년 내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린이 관련 단어 중에서 빈번하게 검색된 낱말은 ‘아동학대’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과 함께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가 이어졌던 1월3일에는 77만큼 검색되면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잔혹한 사건은 그치지 않았고 ‘아동학대’는...

    2022.01.01 03:00

  • [숨] 음악을 기록하는 일
    음악을 기록하는 일

    언젠가의 한겨울, 음악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도서 대출이나 장서 관리, 신간 악보 분류 같은 일을 하나 싶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은 분류번호 스티커도 없이 뭉텅이로 놓여 있던 몇만 장의 LP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음악도서관 2층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악보 서가가 있었는데, 그 서가 사이엔 뜬금없이 오래된 나무 문이 하나 있었다. 조금 으스스한 기운이 풍겨 평소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었지만 바로 그곳이 내가 일할 곳이었다. 제대로 된 이름 없이 ‘도서관 뒷방’으로 불리던 그곳은 생각보다 꽤 넓었고,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에 관한 온갖 자료가 널려 있었다. 옛날에 사용하던 도서카드, 알 수 없는 이의 자필 악보, 오래된 논문집, 누군가가 증정한 도서들, 이제는 음악도서관에서 열람대상으로 제공하지 않게 된 LP와 SP 등.도서관은 각자의 지향점에 맞게 수많은 자료를 수집·분류·제공하지만, 그 체계에 미묘하게 들어맞지 않는 자료들을 곧장 제공할 수는 없다는 사실...

    2021.12.25 03:00

  • [숨]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지금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이석기(가명)의 생애 구술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일곱 살 때부터 남의 집 살이를 했어요. 키도 작은데 논 물구덩이에 푹푹 빠지고 지게로 나락 져내고, 돈은 없이 밥이나 얻어먹는 머슴살이를 한 거지요. 열네 살 때 친구가 남의 집 쌀가마 하나를 훔쳐 같이 짊어지고 나오다 잡혀서 소년원에서 몇 개월 살고 나왔어요. 구두닦이, 넝마주이, 짐꾼, 청소, 심부름, 그냥 닥치는 대로 하면서 겨우 먹고살았어요. 가게일 도와주다 도둑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또 갔다 나와서, 열차 타고 무조건 서울로 왔어요. 주로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에서 파지를 주어 팔거나 짐 나르는 일을 했어요. ‘니야까’나 창고에서 자고 남산에서 노숙도 많이 했어요. 어느 겨울 남산 벤치에서 자다 새벽에 깼는데 눈이 수북이 쌓였더라고요. 저 눈에 묻혀 얼어 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울음이 나오더라고요. 전남 목포 신안에 있는 염전에 갇혀서 10년 정...

    2021.12.18 03:00

  • [숨] 일과 삶이 조금 더 즐겁길 바라며
    일과 삶이 조금 더 즐겁길 바라며

    <대리사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대리운전은 나에게 온전히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그 책이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요즘도 나에게 묻는다. 요즘도 대리운전을 하고 계신가요, 하고.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한다. 하기는 하는데, 이걸 노동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나는 작은 스타트업의 대표로 일하면서 평일에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대리운전 콜을 켠다.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처음 밤 10시의 강남에서 콜을 켰을 때, 나는 알았다. 아아, 여기가 그래서 강남이구나. 반경 1㎞ 이내에 나를 기다리는 수십명의 사람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나는 집이 있는 지역으로 가는 콜을, 아니면 내일 강의가 있는 지역의 콜을 본다. 내가 가고 싶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듯하다. 그렇게, 원래는 교통비를 지불하고 1시간은 걸려야 갈 거리를, 몇만원의 대리운전비를 받고, 더욱 빠르고 편하게 도...

    2021.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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