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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가족 바깥에서 추석 놀기
    가족 바깥에서 추석 놀기

    2005년 동성애 정체성을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면서 겪었던 관계 단절로 인한 명절 우울감이 이번 추석 훨씬 전부터 떠오른 것은, 올해 초 다른 계기로 내 쪽에서 원가족과의 관계 단절을 결정하여 알린 때문인가 보다. 가족중심주의를 많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여기며 가족과의 거리 두기를 생의 과제로 삼고 살지만, 그럼에도 가족 단절은 특히 명절이면 한바탕의 우울감에 붙들리게 한다. 징그럽게 공고한 가족이데올로기가 남긴 내 속 흉터라 여겨 수긍하면서, 우울감에 푹 빠져버리지 않을 징검다리 두 개를 미리 잡아놓았다. 가족 바깥에서 추석을 지내게 되는 사람들과 즐거운 자리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추석연휴 남성 성소수자 두 명과 함께 소위 ‘노땅 성소수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함께했다. 가서 보니 한 명은 초면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자리를 주선한 두 여성과도 나로서는 첫 만남이었다. 그럼에도 남다른 정체성이라는 공통점과 다양한 차이들...

    2021.09.25 03:00

  • [숨] 메타버스 in 추석
    메타버스 in 추석

    2019년은 내가 글을 쓰는 삶을 시작한 지 4년차가 되던 해였다. 아니, 글을 쓰는 삶이라고만 하면 안 되겠다.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책을 읽고 나를 작가로서 초청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주로 독서모임, 학교, 도서관, 기관 등이었고,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대개 거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었다. 그해에 내가 독자들에게 받은 초청은 230건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만큼 돈을 벌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제대로 집에서 자 본 일이 별로 없을 만큼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녔다. 몇 년 전만 해도 집과 대학의 연구실을 오가는 게 전부였고 대학교 MT가 아니면 1박 이상의 여행을 가 본 일도 없었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법이다. 서른일곱 살, 선배들이 왜 KTX만 타고 특실을 고집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몸이 힘든 데 더해 기차에서도 일을 해야 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를 직접 운전했다. 예를 ...

    2021.09.18 03:00

  • [숨] 토끼풀꽃 시계는 언제나 5시10분
    토끼풀꽃 시계는 언제나 5시10분

    토끼풀은 장미목 콩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예부터 반지와 시계는 어른임을 나타내는 귀한 물건이었고, 여름이면 지천에 피는 토끼풀꽃은 어린이가 잠깐이라도 어른이 되고 싶을 때 쓸모가 있었다. 통통한 토끼풀꽃을 엮어서 시계를 만들고 손목에 차면 제법 근사해보였던 것이다. 1979년에 발표된 오정희의 소설 ‘비어 있는 들’에는 토끼풀꽃 시계를 차고 노는 아이에게 엄마가 시간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몇 시예요?”아이는 손목을 들여다보면서 자신 있게 “다섯 시 십 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몇 번을 물어봐도 똑같이 말한다. 다섯 시 십 분은 아이에게 어떤 시간일까. “만사 제쳐 두고 텔레비전 앞에 매달리는 초능력의 로봇 만화영화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이의 토끼풀꽃 시계 속 시간은 언제나 다섯 시 십 분이다.어른에게는 24시간이 자신의 것이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않다. 늦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밥을 먹지 않으면 늑장을 부린다고 혼난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

    2021.09.11 03:00

  • [숨]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이 이야기는 머릿속으로 음악을 듣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성들이 머릿속으로 음악을 들어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머릿속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그 음악을 표현할 도구를 손에 쥐지 못해서. 혹은 그 음악을 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서. 아니면 그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꺼내 들으면 훨씬 더 근사하다는 사실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일렉트로니카 퀸즈-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Sisters with Transistors)은 최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돼 음악인과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다큐멘터리다. 많은 이들이 잊곤 하지만, 전자음악 초창기에는 영미권과 유럽 대륙에서 활약한 여성들이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이름과 활동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클라라 락모어, 다프네 오람, 베베 바론, 폴린 올리베로스, 델리아 더비셔, 매리앤 아마처, 엘리안 라디그, 수잔 치아니, 로리 스피겔까지. 주로 2차대전 무렵부터 1980년대까지 이야기다....

    2021.09.04 03:00

  • [숨] 그해 여름은 온통 우상혁
    그해 여름은 온통 우상혁

    2021년의 여름은 올림픽으로 남을 듯하다. 코로나19 시국에 더해 일본에서 개최된다는 묘한 불편함까지 겹치기는 했으나, 그리고 순위가 이전보다 높은 것도 아니었으나, 이전의 어느 올림픽보다도 더욱 특별했다. 진심이 되었던 저마다의 여러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배구의 4강 진출이라든가, 양궁을 하는 내내 들려온 파이팅 소리라든가. 나에게는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웃는 모습이 그랬다.1983년생인 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가 기억에 남는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한국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레슬링이었든가 유도였든가, 한국 선수가 결승에서 지고 은메달을 획득해서 나는 “와아” 하고 박수를 쳤는데, 외할아버지는 “에이, 금메달을 따야지 은메달이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했다. 그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가 대개 그랬다. 선수들은 곧 국가였고 그들의 패배는 국가의 패배를 의미했고 그래서 그들은 죄인이 되었다. 금메달이 유력했던 종목...

    2021.08.21 03:00

  • [숨] 관상용 어린이가 자꾸 움직이면
    관상용 어린이가 자꾸 움직이면

    “24시간 내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는 것, 아무리 밤이 깊어도 부르면 즉시 달려오는 것, 아침에는 침대, 저녁에는 비행기가 되는 걱정의 신”, 이것은 무엇일까? 권정민의 그림책 <엄마도감>을 보면 해답은 엄마다. 흔히 육아일기를 읽어온 양육자들에게는 아기가 아기의 관점에서 양육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해 도감을 만든다는 발상이란 반전이다.권정민 작가는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 비유적으로 떠오르는 독특한 작업을 펼쳐왔다. 상대성이론은 물체의 운동에서 서로 다른 관측자들과 관측의 양상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설명한다.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측정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은 ‘지침서’ ‘사전’ ‘도감’처럼 객관적 서술을 특징으로 하는데 책 속의 관측자로는 동물, 식물, 어린이가 등장한다. 덕분에 우리는 멧돼지의 운동속도를 기준으로 청계천의 유속을 바라보거나 인간이 목줄을 한 상태에서 강아지 주인의 속도에 이끌려가는 상대적 장면...

    2021.08.14 03:00

  • [숨] ‘공간 음향’이라는 신기술을 마주하며
    ‘공간 음향’이라는 신기술을 마주하며

    처음 음반을 손에 쥐어본 건 유년기의 어느 날이었다.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집에는 축음기 한 대가 있었고, 엄마는 종종 LP로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어떻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 엄마의 지도편달 아래 축음기 커버를 열고, 납작한 LP판을 장착한 후, 조심히 바늘을 얹어보았다. 그러자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건 새까맣고 반질거리는 원형 판일 뿐인데 여기서 소리가 들려오다니. 이문세 아저씨는 우리집에 없는데 그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지금이야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의 ‘신곡’도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처음으로 직접 음반을 재생해본 당시엔 많은 것이 놀라웠다.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LP만 들었다면 그 이상의 놀라움은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세상은 익숙해질 때쯤 어김없이 새 형태의 음반을 내놓았다. 테이프, CD와 MP3 플레이어,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형태와 청취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목표는 대체로 유사했다. 현실에서 들...

    2021.08.07 03:00

  • [숨] 서울역 이씨
    서울역 이씨

    작년 4월부터 금요일 밤마다 서울역 노숙인 광장으로 아우트리치를 나간다. 여러 구역을 차례차례 돌며 선배 활동가들에게 사람 만나기를 배웠고, 5월부터는 내 담당 구역이 정해져 두세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맡고 있다. 예순 후반의 이씨는 처음부터 내 담당 구역 내 지하도에서 십여명의 사람들과 살고 있었다. 마침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던 시기여서 그에게도 신청하셨는지부터 물었더니 “집식구들이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하며 고개를 돌렸다. ‘가구당 신청’ 규정에 대해 ‘홈리스행동’ 등 인권단체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했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고, 임시주거지원 등 노숙인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사정이 있으려니 싶었고, 구체적으로 묻기에는 아직 친하지 않았다. 그가 거처를 옮기지 않아 금요일마다 그 지하도 그 자리에서 만나다보니, 좀 떨어져서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손짓도 미소도 나누게 되었다. 그래도 정작 마주앉으면 별 말은 없이 고맙다는 말만 했다. 길지 않은 기...

    2021.07.31 03:00

  • [숨]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나에게 무례했던 누군가를 모욕죄로 고소한 일이 있다. 그 시작은 골목길에서 난 사소한 교통사고부터였다. 주차된 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렸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곧 어느 40대 남성이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차에서 막 내린 나는 그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한동안 나에게 욕을 하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화를 내다가,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뒤차에서 내린 어르신이 “그만해요, 이거 당신이 잘못한 거예요”하고 말하자 그는 네가 뭘 아느냐며 더 흥분해서 욕을 해댔다.서울 역세권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였는데도 보험회사 직원이 오는 데는 30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보험회사 직원은 꼼꼼하게 상황을 살피고는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개문사고의 과실은 8 대 1, 혹은 9 대 1 정도로 상대방에게...

    2021.07.24 03:00

  • [숨] 처음으로 웃은 날
    처음으로 웃은 날

    갓난아기는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많다. 사람만이 아니라 아기 노루도 마찬가지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일은 조금 더 준비가 된 뒤에야 가능하다. 동화 <밤비, 숲속의 삶>의 첫 장면도 그렇다. 엄마 노루는 배 속에서 방금 태어난 아기 노루 밤비가 눈을 뜰 때까지 얼굴을 핥아주고 또 핥아준다. 밤비가 일어서는 연습을 할 때도 그렇다. 다리를 펴서 조심조심 땅을 짚어볼 때, 어깨와 목을 들어서 어떻게든 혼자 서보려고 할 때, 엄마 노루는 턱으로 끊임없이 밤비를 도닥여준다. 밤비는 서자마자 쓰러진다. 그때 엄마 노루는 말하고 또 말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밤비. 엄마는 널 믿어.” 밤비는 마침내 혼자 일어서고 엄마 노루에게 살짝 웃음을 짓는다. 그날이 밤비가 처음으로 웃은 날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밤비>의 원작은 1922년 빈의 한 신문에 연재되었던 <밤비, 숲속의 삶>이라는, 펠릭스 잘텐의 소설이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본격적...

    2021.07.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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