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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서울역 이씨
    서울역 이씨

    작년 4월부터 금요일 밤마다 서울역 노숙인 광장으로 아우트리치를 나간다. 여러 구역을 차례차례 돌며 선배 활동가들에게 사람 만나기를 배웠고, 5월부터는 내 담당 구역이 정해져 두세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맡고 있다. 예순 후반의 이씨는 처음부터 내 담당 구역 내 지하도에서 십여명의 사람들과 살고 있었다. 마침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던 시기여서 그에게도 신청하셨는지부터 물었더니 “집식구들이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하며 고개를 돌렸다. ‘가구당 신청’ 규정에 대해 ‘홈리스행동’ 등 인권단체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했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고, 임시주거지원 등 노숙인 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사정이 있으려니 싶었고, 구체적으로 묻기에는 아직 친하지 않았다. 그가 거처를 옮기지 않아 금요일마다 그 지하도 그 자리에서 만나다보니, 좀 떨어져서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손짓도 미소도 나누게 되었다. 그래도 정작 마주앉으면 별 말은 없이 고맙다는 말만 했다. 길지 않은 기...

    2021.07.31 03:00

  • [숨]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나에게 무례했던 누군가를 모욕죄로 고소한 일이 있다. 그 시작은 골목길에서 난 사소한 교통사고부터였다. 주차된 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렸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곧 어느 40대 남성이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차에서 막 내린 나는 그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한동안 나에게 욕을 하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화를 내다가,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뒤차에서 내린 어르신이 “그만해요, 이거 당신이 잘못한 거예요”하고 말하자 그는 네가 뭘 아느냐며 더 흥분해서 욕을 해댔다.서울 역세권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였는데도 보험회사 직원이 오는 데는 30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보험회사 직원은 꼼꼼하게 상황을 살피고는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개문사고의 과실은 8 대 1, 혹은 9 대 1 정도로 상대방에게...

    2021.07.24 03:00

  • [숨] 처음으로 웃은 날
    처음으로 웃은 날

    갓난아기는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많다. 사람만이 아니라 아기 노루도 마찬가지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일은 조금 더 준비가 된 뒤에야 가능하다. 동화 <밤비, 숲속의 삶>의 첫 장면도 그렇다. 엄마 노루는 배 속에서 방금 태어난 아기 노루 밤비가 눈을 뜰 때까지 얼굴을 핥아주고 또 핥아준다. 밤비가 일어서는 연습을 할 때도 그렇다. 다리를 펴서 조심조심 땅을 짚어볼 때, 어깨와 목을 들어서 어떻게든 혼자 서보려고 할 때, 엄마 노루는 턱으로 끊임없이 밤비를 도닥여준다. 밤비는 서자마자 쓰러진다. 그때 엄마 노루는 말하고 또 말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밤비. 엄마는 널 믿어.” 밤비는 마침내 혼자 일어서고 엄마 노루에게 살짝 웃음을 짓는다. 그날이 밤비가 처음으로 웃은 날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밤비>의 원작은 1922년 빈의 한 신문에 연재되었던 <밤비, 숲속의 삶>이라는, 펠릭스 잘텐의 소설이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본격적...

    2021.07.17 03:00

  • [숨] 음악가의 집
    음악가의 집

    연습실에서 친구들의 연주를 들었던 일은 꽤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은 방 안에 틀어박혀 연습에 골몰하다가도 어느 순간 음악이 완성된 것 같다며,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거기엔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와는 다른 힘이 있었다. 가까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디에서 친구의 호흡이 바뀌는지, 어떤 부분을 특히 더 세심히 표현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음악가의 공간에서 연주를 듣는 일이 이렇게나 좋은데 꼭 정형화된 무대에 갈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럴 바엔 공연을 연습실에서 하자, 아예 누구네 집에서 해버리자,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들이 오가는 와중에 한 친구가 이미 ‘더하우스콘서트’라는 것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음악가 박창수가 2002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해 중단 없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공연 시리즈다. 주로 서양고전음악이 공연되지만 한국고전음악, 즉흥음악, 전자음악도 다뤄진다. 1...

    2021.07.10 03:00

  • [숨] 징그러운 가족관계를 넘어서려면
    징그러운 가족관계를 넘어서려면

    나이가 들수록 편협한 자리로 가다보니 편파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갈수록 편향적인 확신을 하게 된다. 객관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이번 생은 편향된 자리에서 잘 놀다 갈 생각이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글쓰기 교실을 해오고 있다. 경제·문화·심리적으로 이제껏 수긍하지 못했던 자신을 수긍하고, 그 수긍을 힘으로 자존감을 회복해 세상과 대면하는 삶을 열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다. 자신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회피해왔던 자신 속 어두움과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 출발이라는 생각에 ‘나를 찾아가는’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생존자, 탈가정 청소년부터 중년들, 정신장애인, 홈리스 등을 비롯해, 외형적으로는 그럴듯한 삶을 살지만 속은 곯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함께한다.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세상 속 편협한 자리로 밀려났거나, 혹은 자신 속 어둠을 뒤져보기로 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만나온 ...

    2021.07.03 03:00

  • [숨]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공정성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젊은 세대가 경쟁에 매몰되었고 그래서 불평등의 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MZ세대로 명명된 젊은 세대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적어도 공정성이라도 담보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그들의 결을 잘 파악한, 자신도 MZ세대인 젊은 정치인이 최근에 당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여러 의미로 흥미로울 것이다.MZ세대는 코인과 주식에 빠져들었다. 공정을 부르짖으면서 자녀에게는 특혜를 주는 고위공직자를 보면서, 갑자기 평생의 기대소득보다 더 올라버린 집값을 보면서, 그들은 많이 절망했을 것이다. 노력도 노동도 덧없다는 마음이 되고 나면 그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MZ세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그들은 그간의 어느 세대보다도 개인의 선함을 중요시 ...

    2021.06.26 03:00

  • [숨]마중 나오는 어른들
    마중 나오는 어른들

    “달랑달랑 달랑 바둑이방울 잘도 울린다”로 시작하는 동요 ‘바둑이 방울’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이가 자신을 마중 나온 강아지를 만나 느낀 반가움을 담은 노래다. 198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애창동요다. 이 노래의 1절에 비해 2절은 덜 알려져 있는데 2절에서 집에 돌아오는 주체는 어린이가 아니라 강아지다. “대문 삐걱 열어 주면은 제가 먼저 달음질쳐 들어온다”에서 집에 돌아오는 건 강아지이고 그때 울리는 바둑이방울은 “내가 왔다”는 강아지의 신호다. 외출에서 당당히 돌아오는 강아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이는 강아지를 다정하게 마중 나가고 무거운 대문을 열어주는 일이 마중을 받는 일만큼이나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 이 노래의 1절에서 반갑다고 꼬리치며 따라오는 강아지로부터 아이가 환대받는 경험과 2절의 강아지를 환대하는 경험은 연결되어 있다. 1절의 기쁨이 2절의 환대를 자청하게 만든다. 노래의 또 다른 매력은 아이가 2절에서 반...

    2021.06.19 03:00

  • [숨] 세 무녀의 이야기
    세 무녀의 이야기

    굿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아버지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자 집안 어른들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무당을 불러 집에서 굿판을 열었다. 무당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난 할아버지의 넋을 기리고, 놀랍게도 할아버지가 아니면 알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남은 가족들을 한 명씩 꼼꼼히 위로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그 굿판에 할아버지가 꼭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나와 1촌 관계인 아버지가 겪은 일이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 굿은커녕 굿 비슷한 것도 볼 기회가 없었다. 가끔 또래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일반에게 공개되는 굿은 별로 없어서 굿판이 열린다는 소식은 주변 선생님이나 지인을 통해 제한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굿을 경험했지만, 나는 집중적으로 탐구하거나 직접 의뢰하지 않는 한 일상에서 굿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근대화 시기에 이루어졌던 그리스도교 문화...

    2021.06.12 03:00

  • [숨] 평양 할머니와 창녀 페미니즘
    평양 할머니와 창녀 페미니즘

    구술생애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껏 만난 주인공들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마음에 남는 이유가 각기 다르니 순서를 가릴 일은 아니지만, “평양 할머니 김미숙”(가명, 졸저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중)을 빼놓지 않는다. 화신 백화점이 궁금해 10대 말인 해방 몇 해 전 가출해 남한 땅에 왔던 그녀는, 분단에 잘려 결국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편쟁이 서방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6·25 때 피란 갔다 와보니 서방은 쥐약 먹고 죽었더란다. 마침내 그녀의 삶이 시작되었다. 미군 부대 근처에 살며 ‘양색시’ 상대 옷장사와 양키물건 장사로 시작해 미군 홀 댄서와 성매매와 미군과의 살림을 산 내력을 내 귀와 마음을 저울질하며 단계단계 풀어내면서도, 그녀 스스로는 어떤 낙인도 없었다. 그 아들과 며느리가 목사가 됐는데 툭하면 당신 듣는 자리에서 “우리 어머니에게 회개의 영, 어쩌구를 찾으며 통성기도를 ...

    2021.06.05 03:00

  • [숨] 행복한 개인이 되기 위해
    행복한 개인이 되기 위해

    8세·5세 두 아들의 주양육자인 아내에게 나는 자주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니까 당신을 먼저 챙기면 좋겠어” 하고 말해왔다. 그가 실제로 힘겨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덟 살일 때 이렇게 힘이 세고, 다섯 살일 때는 이렇게 말을 안 들었나 싶을 만큼 아이들은 부쩍 자랐다. 그 몸과 마음들이 나도 잘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주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다.내가 참여할 수 있는 양육이란 대개 아이들과의 놀이에 있는 듯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아내가 할 수 없는 놀이들을 해준다. 허리가 부서질 만큼 놀아주고서 쓰러지고 나면 나보다 더 힘겨워하는 아내가 보인다. 육아는 단순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도 준비하는 시간이 더욱 긴 노동이다. 그의 육아는 새벽에도 계속된다. 예를 들면, 두 아이는 자주 이불 빨래를 하게 만든다. 언젠가도 새벽에 이불이 젖어서 모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이불이 건조대에 널려 있던 참이었다. 아내는 젖은 이불을 세...

    2021.05.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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