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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를 대전만이 가진 개성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매력 없는 도시에서 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지 좀체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전이 정말 노잼도시인지, 그렇다면 재미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해소하고자 작정하고...
  • [숨]나를 놓치지 않기로

    나를 놓치지 않기로

    모처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정월대보름을 보냈다. 한 친구의 생일에 맞춰 약속을 잡는데 마침 음력 정월 보름날이다. 한집에 모여 오곡밥 짓고 묵나물 볶아 한 해 기복까지 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더랬다.절기를 제법 챙겨왔다. 시작은 2012년 무렵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갖게 마련인 서울살이를 향한 막연한 바람이 내게도 있었는데, 서울살이 6년째로 접어들던 때 콩깍지가 벗겨졌다. 다람쥐 쳇바퀴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였고, 서울살이가 본래 팍팍한 법이라고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유행하는 옷차림 정도로 가늠하고 있는 내 일상이 참 서글펐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사는 게 시시해지다니… 딴에는 충격이었다. 서울내기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거란 지레짐작에 마음이 더 뾰족해지기도 했다. 당장에 서울을 떠나는 것은 어쩐지 회피하는 것만 같아 내키지 않았다. 궁리 끝에 삭막하기만 한 이 도시에서 최소한 제철을 감각할 수 있다면 숨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싶어 절기를...
  • [숨]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올해도 설을 앞두고 민생 행보를 앞세운 정계 인사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활성화 방안을 찾겠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힘주어 말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날짜만 바꿔도 될 만큼 매년 반복되는 모양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상인과 시민들이 그 모습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제는 대목 특수도 없다고 한숨짓는 상인들은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저편의 손이 야속하고, 시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명절과 선거철에 한정된 보여주기식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정부는 전통시장을 유지·발전시키고자 2004년 약칭 ‘전통시장법(현재 기준 정확한 명칭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을 제정해 지원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책적으로 전통시장 살리기를 본격화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전통시장은 좀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여전할까?사실 전통시장이 침체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전통의...
  • [숨]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셈을 해보니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이라는 내 생활권을 벗어난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러모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내 직업이다. 사람과 장소, 문화적 유산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영역이 꽤 방대한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지역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엮는 데 있다. 지역성이라는 말이 따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역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한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켜 지역성이라 한다. 나는 이 지역성에 줄곧 기대를 갖고 기대어왔다.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지난가을께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라는 책을 펴냈다. 춘천문화재단과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온다프레스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놓고 오늘날 지역 담론의 화두인 ‘로컬’의 본질을 탐구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출판 프로젝트에 집필을 제안받았다. 그간의 작업들과 같은 결...
  • [숨] 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많은 사람들에게 20대는 힘들다. 부족한 자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서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0대의 경험은 나머지 인생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고려하면 세대 간의 갈등은 현재의 청년과 과거의 청년이 만나 충돌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와 40대의 대화는 어쩌면 20년의 시간차가 아니라 40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역사적인 산물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경험은 우리의 몸속에 켜켜이 새겨져 특정한 생각, 물건, 사건들에 대한 현재의 반응을 일으킨다.나는 199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나와 같은 시기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제는 중장년층이 되며, 20대 때에 주어지지 않았던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미디어 산업에서 지난 십년 사이 쏟아져나온 1990년대 문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 상품은 주요 생산자들의 세대교체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1980년대...
  • [숨]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처음 칼럼 연재를 제안받은 게 2017년 봄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온 이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쓰기까지, 경향신문의 독자들이 늘 곁에 함께했다. 7년, 한 시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기간이다. 나의 글을 읽어준 당신들 덕분에 나는 행복했고, 고마웠고, 늘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대학 시간강의와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일을 하면서, 120만원이 아내와 나와 아이의 한 달 생활비가 된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었다. 작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엔 더욱 그렇다. 학교나 도서관이나 독서모임에서,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강의를 요청해 온다. 고마운 마음에 갈 수 있으면 어디든 간다. 나의 책을 읽었거나 읽을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그저 감사하다.살며 남들만큼 돈을 벌어본 일이 없다. 강의를 하고 통장에 들어...
  • [숨] 최대한의 기적을 어린이에게

    최대한의 기적을 어린이에게

    반짝거리는 불빛을 보면 두근거린다. 작은 일에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하는데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실수에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한 해의 끝인 12월은, 크리스마스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즈음이면 다들 불행보다 다행을 기억하면서 연말을 맞이한다.크리스마스를 다행으로 만들고자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다. 어린이는 꿈이 많지만 그 꿈은 대개 “다음에 해줄게”라는 아쉬운 말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진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일이 진짜가 되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가 어린이에게 주는 기대감이다. 1년은 365일인데 하루쯤 기적을 바라는 날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하지만 어린이가 바란 원대한 기적은 밤사이에 소박한 선물이 되어 머리맡에 놓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린이는 최선을 다해 수긍한다. “내가 너무 커다란 소원을 빌었던 거야. 지구에서 가장 바쁜 산타 할아버지에겐 원래부터 힘든 일이었어. 난 괜찮아요. 산타할아버지!” 머리맡에 선물이...
  • [숨] ‘여성x전기x음악’의 여섯 가지 이야기

    ‘여성x전기x음악’의 여섯 가지 이야기

    “전자음악에서는, ‘에너지’를 다룹니다.” 다큐멘터리 <일렉트로니카 퀸즈-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속 이 한 구절은 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모든 음악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소요되기는 하겠으나 에너지를 ‘다룬다는’ 감각은 그 무엇보다도 전자음악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와 동종의 에너지로 음악을 만든다는 감각은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에게 그 소리 이상의 것을 선사했을 것이다.<여성×전기×음악>이라는 책이 있다.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함윤이와 음악가 영 다이, 위지영, 키라라, 애리, 조율, 황휘가 함께 만들었다. 번쩍이는 전기 에너지가 흐를 것만 같은 이 책을 쓴 음악가들은 비슷한 신을 오가고는 있지만 서로 제각각의 자리에서 움직이던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여성과 전기와 음악이라는 공통의 열쇠말에 각자가 반응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태도, 이 거대한 키워드에 대한 의견, 삶과 음악이 관계 맺는...
  • [숨] ‘지역 소멸’의 늪

    ‘지역 소멸’의 늪

    최근 몇년 사이 ‘지역 소멸’은 대중매체를 넘어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유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올해 대학을 뒤흔들었던 글로컬 대학 정책도 이러한 논의의 일환이다.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멸과 관련된 논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무엇이 이렇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역 소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명 ‘스카이’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지역에 내려가서 그곳 대학원생들과 합...
  • [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요즘 강의하러 가면 담당자가 묻는다. 오늘은 어떤 차를 타고 오셨나요, 성공하셨을까요. 내가 탁송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서다. 나는 타인의 차를 옮겨주면서 이동하는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오늘은 오후 2시에 인천에서 강의가 있는데, 나는 강릉에서 인천 송도의 유원지까지 중고차를 옮겨다 주고 10만원을 받고 근처의 학교로 갈 예정이다. 이렇게 움직인 지는 반년 정도 되었다.나의 아내는 종종 말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KTX를 타면 그 시간에 잠도 잘 수 있고 밀린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이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맥도날드에서 월 80시간을 일하고 50만원 남짓을 벌었다. 그렇지 않은 시간엔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때의 나에게 돈을 내고 기차를 탈지 돈을 받고 운전을 할지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답했을 것이다. 돈을 받고 운전하겠다고. 지금은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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