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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꽤 당당하게 강원 양양을 ‘내 구역’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오! 서핑?” 하는 반응이 열에 열. 그럴 만도 하다. 양양은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함께 ‘국내 서핑 성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200㎞ 남짓 떨어져 있는 양양을 좋아하고, 또 즐겨 찾는다는 이와 서핑을 연결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2017년 봄, 처음 양양 죽도해변에 간 날을 기억한다. 일에 대한 욕심, 그에 비례하는 업무 긴장도에 과부하가 걸린 시기였다. 쉬는 날만큼은 일에서 멀어져 보자고 다짐했다. 물리적으로 서울 도심,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양양행의 물꼬를 터주었다.마을회에서 운영한다는 야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해변, 반짝이는 바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서퍼들. 숨이 탁 트이는 동시에 노곤해져 까무룩 잠이 들었...

    2024.08.28 20:43

  • [숨]모눈종이의 꿈
    모눈종이의 꿈

    부동산 직거래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 집을 살 만한 형편은 아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없지는 않다. 물론 한동안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물부엌(간단한 조리와 빨래 등 물 쓰는 일이 가능한 보조적 공간)이 딸린 문간방에서 시작해 반지하, 셰어하우스, 고시원, 옥탑방을 거쳐 다가구주택의 투룸 월세살이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보금자리 여정이다.주거빈곤가구의 고충을 표현하는 ‘지옥고’를 두루 거치면서도 나는 그때그때 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지하에서 셰어하우스로 옮길 땐 지상으로 올라온 것만으로도 기뻤고, 고시원에서 옥탑방으로 옮길 땐 방에서 세 발짝 이상 떼어 걸을 수 있는 데다 창을 열어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것에 더없이 행복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어림잡아도 ‘억’ 소리 나오는 월세 부담 속에서 ‘내 집 마련’은 ‘남의 집’ 얘기였다. ‘영끌족’도 어느 정도 모아둔 자금이 있고, 여기에 보태 대출받을 수 있을 만큼 처우가 괜찮은 대도시 ...

    2024.07.31 20:39

  • [숨]쉴 틈 궁리
    쉴 틈 궁리

    여름이 무르익으니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흘러 이 장마가 지나면 곧 휴가철이다. 자연스럽게 요사이 스몰 토크의 단골 주제는 날씨와 휴가. 휴가 계획들 세우셨는지.나는 휴가에 꽤 진심인 편이었다. 이왕이면 이국으로 떠나려 했고, 가능한 한 휴일까지 붙여 최대한 길게 다녀오려 부단히 애썼다.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기 아까워 촘촘히 계획을 짰고, 무언가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 두어 가지 대안도 준비했다. 그러니 휴가 한 번 다녀올 때면 재충전은 무슨, 방전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얼마간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휴가란 얼마나 귀한가. 귀한 만큼 빈틈없이 보내야 옳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휴가차 떠난 여행에서 ‘한국인만 가능한 일정’이라고 설명이 따라붙는 현지 투어들을 적잖게 마주했다. 휴가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국인이지, 암.우리가 휴가를 맹렬히 보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휴가는 산업사회,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들면서 나온 개념이다. 농경사...

    2024.07.03 20:49

  • [숨]로컬 부자 선언
    로컬 부자 선언

    최근 유튜브에서 서비스되는 맛집 탐방 콘텐츠 <또간집>을 꼬박 챙겨본다. 거침없는 캐릭터의 진행자가 쏟아내는 입담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격한 반응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온라인상에 차고 넘치는 맛집 탐방 콘텐츠 가운데 내가 유독 <또간집>에 호감을 느낀 이유가 영상 자체의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몇편을 연이어 보면서 알아챘다.진행자는 예고 없이 한 지역으로 나선다. 길에서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한다. 맛있어서 최소 두 번 이상 가본 맛집을 추천받는다. 참인지 거짓인지는 영수증으로 가늠한다. 영상 끝에 그날 추천받아 방문한 서너 곳 가운데 ‘또 갈 집’이라 명명하여 다시 가고 싶은 한 곳을 선정한다.언젠가부터 무엇을 하든 검색부터 하는 게 일상화됐다. 하물며 낯선 지역으로 갈 때면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구하게 된다.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고, 평도 좋아서 갔는데 막상 만족스러웠는가 하면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지 않...

    2024.06.05 20:40

  • [숨]‘시혜’가 아닌 ‘지혜’가 필요한 때
    ‘시혜’가 아닌 ‘지혜’가 필요한 때

    지난 4월 중순께 광주 광산구 가족센터에서 ‘장소와 환대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마련된 8회 차 강좌 가운데 하나를 맡았다.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어떻게 입을 뗄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주민 대상 인문 강좌인데 청강생의 국적, 연령대는 물론 생활환경도 제각각인 데다 한국어 습득 능력에도 차이가 있어 통역자가 함께 자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호남대학교가 2022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도시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도모하고 있다. 사업단은 지역사회에서 이주민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한 실정에 주목했다. 강의를 요청한 관계자는 한국어 교육을 넘어 보다 삶의 차원에서 이주민의 사고를 확장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그 마중물 역할로 광주의 지역성에 기반한 인문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어떻게’가 관건이었다. ‘광...

    2024.05.08 20:06

  • [숨]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를 대전만이 가진 개성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매력 없는 도시에서 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지 좀체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전이 정말 노잼도시인지, 그렇다면 재미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해소하고자 작정하고...

    2024.04.10 22:15

  • [숨]나를 놓치지 않기로
    나를 놓치지 않기로

    모처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정월대보름을 보냈다. 한 친구의 생일에 맞춰 약속을 잡는데 마침 음력 정월 보름날이다. 한집에 모여 오곡밥 짓고 묵나물 볶아 한 해 기복까지 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더랬다.절기를 제법 챙겨왔다. 시작은 2012년 무렵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갖게 마련인 서울살이를 향한 막연한 바람이 내게도 있었는데, 서울살이 6년째로 접어들던 때 콩깍지가 벗겨졌다. 다람쥐 쳇바퀴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였고, 서울살이가 본래 팍팍한 법이라고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유행하는 옷차림 정도로 가늠하고 있는 내 일상이 참 서글펐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사는 게 시시해지다니… 딴에는 충격이었다. 서울내기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거란 지레짐작에 마음이 더 뾰족해지기도 했다. 당장에 서울을 떠나는 것은 어쩐지 회피하는 것만 같아 내키지 않았다. 궁리 끝에 삭막하기만 한 이 도시에서 최소한 제철을 감각할 수 있다면 숨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싶어 절기를...

    2024.03.13 22:07

  • [숨]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올해도 설을 앞두고 민생 행보를 앞세운 정계 인사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활성화 방안을 찾겠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힘주어 말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날짜만 바꿔도 될 만큼 매년 반복되는 모양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상인과 시민들이 그 모습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제는 대목 특수도 없다고 한숨짓는 상인들은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저편의 손이 야속하고, 시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명절과 선거철에 한정된 보여주기식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정부는 전통시장을 유지·발전시키고자 2004년 약칭 ‘전통시장법(현재 기준 정확한 명칭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을 제정해 지원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책적으로 전통시장 살리기를 본격화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전통시장은 좀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여전할까?사실 전통시장이 침체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전통의...

    2024.02.14 20:22

  • [숨]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안부를 건네는 분투에 앞서

    셈을 해보니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이라는 내 생활권을 벗어난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러모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내 직업이다. 사람과 장소, 문화적 유산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영역이 꽤 방대한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지역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엮는 데 있다. 지역성이라는 말이 따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역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한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켜 지역성이라 한다. 나는 이 지역성에 줄곧 기대를 갖고 기대어왔다.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지난가을께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라는 책을 펴냈다. 춘천문화재단과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온다프레스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놓고 오늘날 지역 담론의 화두인 ‘로컬’의 본질을 탐구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출판 프로젝트에 집필을 제안받았다. 그간의 작업들과 같은 결...

    2024.01.17 19:54

  • [숨] 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많은 사람들에게 20대는 힘들다. 부족한 자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서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0대의 경험은 나머지 인생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고려하면 세대 간의 갈등은 현재의 청년과 과거의 청년이 만나 충돌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와 40대의 대화는 어쩌면 20년의 시간차가 아니라 40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역사적인 산물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경험은 우리의 몸속에 켜켜이 새겨져 특정한 생각, 물건, 사건들에 대한 현재의 반응을 일으킨다.나는 199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나와 같은 시기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제는 중장년층이 되며, 20대 때에 주어지지 않았던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미디어 산업에서 지난 십년 사이 쏟아져나온 1990년대 문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 상품은 주요 생산자들의 세대교체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1980년대...

    2023.12.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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