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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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숨]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처음 칼럼 연재를 제안받은 게 2017년 봄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온 이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쓰기까지, 경향신문의 독자들이 늘 곁에 함께했다. 7년, 한 시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기간이다. 나의 글을 읽어준 당신들 덕분에 나는 행복했고, 고마웠고, 늘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대학 시간강의와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일을 하면서, 120만원이 아내와 나와 아이의 한 달 생활비가 된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었다. 작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엔 더욱 그렇다. 학교나 도서관이나 독서모임에서,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강의를 요청해 온다. 고마운 마음에 갈 수 있으면 어디든 간다. 나의 책을 읽었거나 읽을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그저 감사하다.살며 남들만큼 돈을 벌어본 일이 없다. 강의를 하고 통장에 들어...

    2023.12.22 22:09

  • [숨] 최대한의 기적을 어린이에게
    최대한의 기적을 어린이에게

    반짝거리는 불빛을 보면 두근거린다. 작은 일에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하는데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실수에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한 해의 끝인 12월은, 크리스마스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즈음이면 다들 불행보다 다행을 기억하면서 연말을 맞이한다.크리스마스를 다행으로 만들고자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다. 어린이는 꿈이 많지만 그 꿈은 대개 “다음에 해줄게”라는 아쉬운 말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진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일이 진짜가 되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가 어린이에게 주는 기대감이다. 1년은 365일인데 하루쯤 기적을 바라는 날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하지만 어린이가 바란 원대한 기적은 밤사이에 소박한 선물이 되어 머리맡에 놓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린이는 최선을 다해 수긍한다. “내가 너무 커다란 소원을 빌었던 거야. 지구에서 가장 바쁜 산타 할아버지에겐 원래부터 힘든 일이었어. 난 괜찮아요. 산타할아버지!” 머리맡에 선물이...

    2023.12.15 20:20

  • [숨] ‘여성x전기x음악’의 여섯 가지 이야기
    ‘여성x전기x음악’의 여섯 가지 이야기

    “전자음악에서는, ‘에너지’를 다룹니다.” 다큐멘터리 <일렉트로니카 퀸즈-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 속 이 한 구절은 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모든 음악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소요되기는 하겠으나 에너지를 ‘다룬다는’ 감각은 그 무엇보다도 전자음악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와 동종의 에너지로 음악을 만든다는 감각은 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에게 그 소리 이상의 것을 선사했을 것이다.<여성×전기×음악>이라는 책이 있다.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함윤이와 음악가 영 다이, 위지영, 키라라, 애리, 조율, 황휘가 함께 만들었다. 번쩍이는 전기 에너지가 흐를 것만 같은 이 책을 쓴 음악가들은 비슷한 신을 오가고는 있지만 서로 제각각의 자리에서 움직이던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여성과 전기와 음악이라는 공통의 열쇠말에 각자가 반응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태도, 이 거대한 키워드에 대한 의견, 삶과 음악이 관계 맺는...

    2023.12.08 23:14

  • [숨] ‘지역 소멸’의 늪
    ‘지역 소멸’의 늪

    최근 몇년 사이 ‘지역 소멸’은 대중매체를 넘어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유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올해 대학을 뒤흔들었던 글로컬 대학 정책도 이러한 논의의 일환이다.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멸과 관련된 논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무엇이 이렇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역 소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명 ‘스카이’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지역에 내려가서 그곳 대학원생들과 합...

    2023.12.01 21:02

  • [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요즘 강의하러 가면 담당자가 묻는다. 오늘은 어떤 차를 타고 오셨나요, 성공하셨을까요. 내가 탁송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서다. 나는 타인의 차를 옮겨주면서 이동하는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오늘은 오후 2시에 인천에서 강의가 있는데, 나는 강릉에서 인천 송도의 유원지까지 중고차를 옮겨다 주고 10만원을 받고 근처의 학교로 갈 예정이다. 이렇게 움직인 지는 반년 정도 되었다.나의 아내는 종종 말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KTX를 타면 그 시간에 잠도 잘 수 있고 밀린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이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맥도날드에서 월 80시간을 일하고 50만원 남짓을 벌었다. 그렇지 않은 시간엔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때의 나에게 돈을 내고 기차를 탈지 돈을 받고 운전을 할지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답했을 것이다. 돈을 받고 운전하겠다고. 지금은 그때...

    2023.11.24 20:32

  • [숨] 수수께끼의 능력자들
    수수께끼의 능력자들

    수수께끼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등하굣길이 길었던 초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태양이 낮아지는 골목을 걷다가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내곤 즐거워했다. 출제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오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수께끼가 지루해지면 우리는 함께 무슨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대개 현실에서 실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골목의 회합에는 검토할 줄 모르는 제안자들만 있었기 때문에 사업의 추진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회는 어른이 된 뒤에나 하는 것이었고 우리들은 순간의 발견에 몰두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심코 한 뼘씩 커지는 자기 자신을 겁내지 않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후회를 먼저 가르치는 세계는 그다지 바람직한 세계가 아니다.얼마 전 수수께끼 같은 책을 읽었다. 여러 시인들의 동시가 실린 <동시 유령의 비밀 수업>이다. 동시의 제목 또는 시의 구절 몇 칸을 비우고 답을 맞혀보는 양식으로 되어 있다. 잊고 있던 수수...

    2023.11.17 20:02

  • [숨]페스티벌의 계절
    페스티벌의 계절

    이번 가을, 몇몇 페스티벌 현장에 방문했다. 시작은 10월7일 토요일에 오랜만에 찾아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었다. 이전에는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공연 시간에 맞춰 오갔지만 올해는 낮부터 쭉 축제 현장에 머물렀고, 공연 안팎에 소소하고 재미난 즐길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하나는 ‘자라 체조’였다. 무대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관객들의 스트레칭을 독려하는 이 체조는 매년 다른 음악, 다른 동작으로 꾸려져 이제는 자라섬의 중요한 전통처럼 자리잡았다고 했다. 무대 뒤편에 넓게 포진한 부스들도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부스에는 재즈 중심의 음반 가게부터 지역의 유명 맛집들의 출장부스, 가벼운 마실거리 등이 가득했다. 물론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은 것은 조지, 티그랑 하마시안을 비롯한 무대 위 음악가들이었지만, 이렇게 느긋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라면 그저 축제를 즐기러 언제고 찾아올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축제의 한 모델이 되...

    2023.11.10 20:46

  • [숨] 세탁기의 가정화
    세탁기의 가정화

    새로운 기술이 확산할 때, 우리는 흔히 그 기술의 내재적 속성을 확산의 동력으로 말한다. 예를 들면, 챗GPT나 아이폰의 세계적인 확산은 기술적 성취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가정은 오랫동안 새로운 기술이 친숙한 것으로 자리 잡기 위한 주요한 거점이었다. 기술 연구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가정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기술의 가정화’(domestication of technology)라고 표현한다. 이는 야생 동물이 가축으로 길들여지는 것을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호황 속에서 구축된 새로운 근대적 가정은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가정용 신기술의 도입과 긴밀하게 맞물려 구성됐다. 이러한 기술은 핵가족 중심의 가족 실천과 가족 관계를 조립하는 주요한 요소였다. 미디어 학자 임종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텔레비전은 ‘안방 문화’와 결합하여 수용됐다. ...

    2023.11.03 20:38

  • [숨] 다정한 기술사회의 도래는 가능할 것이다
    다정한 기술사회의 도래는 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 나의 서점을 찾은 사람이 말했다. 챗GPT를 잘 활용하면 삶이 편해질 테니 당신도 써 보라고. 요즘 그걸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웬만해선 유행을 역행하려 하는 내 주변의 작가들도 한 번쯤 써 본 듯하다. 누군가는 내게 챗GPT에게 단편소설을 쓰게 해 봤더니 꽤 그럴듯하게 써서, 사실은 자신보다 잘 쓴 것도 같아서, 그걸 그냥 제출할까 고민했다고도 했다.내가 아아 그렇군요, 하고 그다지 열없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제가 쓰는 걸 한 번 보여드리지요, 하고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그 이후엔 뭔가 신세계가 펼쳐졌다. 나는 그때 글쓰기 8주차 수업의 커리큘럼을 작성해야 했는데 그가 프롬프트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8주차의 글쓰기 강의 계획서를 작성해 줘”라고 입력하자 10초 만에 내가 상상했던 모범적인 커리큘럼이 작성되었다. 그가 여러 조건을 넣을 때마다 그것은 정교해져 갔다. 장르는 에세이이고, 피드백을 몇회차 할 것이고, 계획서 내용을 조금 더 흥미롭게...

    2023.10.27 21:08

  • [숨] 혀 위에서 만나요
    혀 위에서 만나요

    책을 읽다보면 이 작고 가벼운 물체가 뭐길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지 경이로울 때가 있다. 책은 고정된 사물이어서 분초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은 흐르는 강물이기도 하다. 떠다니는 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로 헤엄쳐 책의 섬으로 다가오고 이 섬에 모여 작가라는 사공이 젓는 배에 오른다. 그 뒤로 얼마나 유장한 풍경이 펼쳐지는지는 실제 책을 읽은, 독자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얼마 전 19회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책이 이끄는 절경을 보았다. 100여명의 동승자들만 누리기엔 아까운 순간이었기에 고정된 활자로 남겨보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2020년 가을쯤 나는 정용준의 신간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흥미롭게 읽으면서 캐나다의 시인 조던 스콧이 쓴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었다. 한 권은 소설, 한 권은 그림책이지만 독자인 내 마음에서는 하나의 결로 합류하며 읽혔다...

    2023.10.2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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