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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숨] 어떻게 송이버섯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송이버섯을 사랑할 것인가

    송이는 영어권에서는 matsutake mushroom 혹은 pine mushroom이라 부른다. 마쓰타케는 일본어로 마쓰는 소나무를, 타케는 버섯을 뜻한다. 송이는 오래전부터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아왔는데 인공적으로 경작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이가 사라지는 것은 소나무 숲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 칭은 <사랑받지 못한 타자들: 멸종 시대의 무시된 존재들의 죽음>(2011)에 실은 “포용의 기술, 버섯을 사랑하는 방법”에서 일본과 미국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송이가 단지 맛있는 음식만이 아니라, 환경적 웰빙의 상징이 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소나무 숲은 점점 줄었다. 1980년대 일본이 세계 각지에서 송이를 수입하며 가격이 상승했다. 많은 기업이 일본에 송이를 보내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도 일본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송이 채집에 나섰다. 앤디 무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무어는 베트남전쟁 ...

    2023.10.06 20:21

  • [숨]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보존을 바라며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보존을 바라며

    나는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 지하철이 연장되고 내가 사는 망원동 인근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메트로폴리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강원도 원주에 있었다. 잠시 머물 것으로 알았으나 학교와 직장 때문에 거기에서 20여년을 살았다.내가 다닌 대학은 시내와는 30분 정도 떨어진 데 있었다. 30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터미널이라든가 중앙시장이라든가 하는 중심가가 나왔다. 내가 영화관에 간 건 2003년 겨울, 대학에 와서 첫 연애를 시작했던 때였다. A는 외지 사람들이 원주민이라고도 불렀던 원주 사람이었다. 시내의 영화관 앞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기 위해 그와 만났다. 추운 날이었다. 나는 영화관이 어디인지도 몰랐기에 그가 내리라고 하는 정류장 앞에 내렸다. 영화관의 이름은 ‘아카데미 극장’, 표를 예매할 방법이 있었는...

    2023.09.22 20:07

  • [숨] 낙관주의의 천재들
    낙관주의의 천재들

    요즘 내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낙관주의자의 명단을 수집하는 취미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취미가 있다고, 이제 더 이상 뭘 좀 늘리지 말라고 붙들어 말릴 것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과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해 뒤죽박죽별장처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새로 뭘 하는 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사치다. 하지만 이번 취미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포기할 수가 없다. 회원권을 끊지 않아도 되며 지하철로 이동하는 틈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분간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너무너무 뿌듯하다. 이제부터 최근 내 취미 활동의 결과를 자랑하고자 한다. 루트힐트 슈팡겐베르크는 베를린 ‘뷔허보겐 서점’(Bucherbogen am Savignyplatz)의 창업자이다. 서점 직원이었던 그는 1980년에 사비니 광장 고가철로 밑의 유휴 공간을 임대한 뒤 지금의 뷔허보겐 서점을 열었다. ‘뷔허’는 책, ‘보겐’은 반원형 둥근...

    2023.09.15 20:23

  • [숨] 한 음악
    한 음악

    글을 마무리하기 전, 늘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곤 한다. 내가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나 습관처럼 쓰는 어색한 표현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를 자주 보다보니 애초에 고쳐 쓰게 된 것이 상당수지만 개중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매번 ‘빨간 펜’으로 수정 제안을 받는 단어가 있는데, 그건 ‘소리들’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굳이 복수를 뜻하는 ‘~들’을 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맞춤법 검사기의 설명이다. 음악들, 곡들이라는 표현은 받아들여지지만 소리들이라는 표현이 교정되는 이유는, 아마도 소리에는 단수나 복수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지만, 음악에는 단수나 복수의 개념이 통용되기 때문일 것이다.‘한 음악’이란 단위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 하나라고 말하는 음악을 만났을 때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면 안 된다고 하는 서양 전통, 또는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다악장 음악이 대표적이다. 음악이 시작해서 제대로 끝맺었는데 ‘한 곡’이 아직...

    2023.09.08 20:46

  • [숨] 집의 상실
    집의 상실

    모든 인류 문화에서 집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집은 비바람, 더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간이자, 외부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전통적인 의미에서 집은 삶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최근의 미디어 전경에서 접하는 집은 삶의 장소라기보다 죽음의 장소인 듯하다. 일례로 최근 방영한 드라마 <마스크걸> <힙하게>에서 집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곳이거나,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주요한 공간으로 설정된다. 이제 집은 더 이상 외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안전한 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공간으로 상상되는 듯하다.집의 의미는 대중적인 논의에서만이 아니라 학문적인 논의에서도 주요한 주제이다. 관련 문헌들은 집이 가지고 있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어떤 학자들은 주택, 거주, 가정...

    2023.09.01 20:28

  • [숨]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

    제주도 모 기관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과거형으로 서술한 것은, 하루 전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태풍 카눈이 한국에 상륙하는 날 저녁에 강연이 있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도서 지역의 특성상 가는 사람도, 부른 사람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루 전날 담당자께 전화가 왔다. “작가님이 오시기도 힘들고 가시기도 힘들고, 도민들도 태풍이 오는데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도 그렇고, 취소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강연 당일에 메시지가 왔다. 예약한 숙소에 입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 1박2일 일정이니까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7만원까지 숙소비 지원이 된다고 해서 강의할 기관 근처에 바다도 보이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을 잡았다. 숙소에 전화해서 환불이 되는지 묻자, 당일 환불은 안 된다고, 그러나 태풍으로 인한 것이면 숙박 앱 고객 센터에 전화해 보라는 답을 들었다.숙박 앱 업체에 전화해 환불이 되는지 물었다. 태풍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된 것이면 ...

    2023.08.25 20:25

  • [숨]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한때 이런 직업을 가져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억 발견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업무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제목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끔 내게 “이 이야기가 어떤 동화인지 알아요?”라고 잊어버린 추억의 책 제목을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어떤 아이가 천둥치는 날 가게에서 케이크를 훔치는데” 하며 기억 속 한 장면을 풀어놓는 식이다. “그 케이크 초록색이죠?”라고 대꾸하면 “맞아요! 제가 그 책 정말 좋아했어요”라며 얼굴이 환해진다. 내가 제목까지 맞히면 상대방은 그리움 가득한 눈빛이 된다.어린 시절의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은 기억을 덮어쓰는 과정이라서 아무리 즐거웠더라도 자라고 나면 희미한 잔상만 남는다. 그림책 작가 기타무라 사토시는 영국 유학 중 아이 돌보는 일을 하면서 습작들을 돌보는 어린이에게 읽어주었다. 아이는 날마다 수십 번 읽어달라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의 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식에 그를 초대하고...

    2023.08.18 20:48

  • [숨] 마지막 ‘크루너’를 떠나보내며
    마지막 ‘크루너’를 떠나보내며

    지난 7월, 미국의 가수 토니 베넷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의 70년간 현역으로 활동했던 베넷은 94세 때도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꾸준히 노래해 온 가수였다. 음악에 평생 매진한 삶이었고,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지나온 시간에는 수많은 음악과 소리가 놓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의 어떤 한 노래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 그가 노래할 때 부드럽게 울리는 나직한 목소리였다.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쓰인 여러 기사들은 다양한 타이틀을 내걸며 그의 인생을 되짚었다. 재즈의 거장, 아메리칸 송북의 챔피언, 역사가 가장 사랑한 목소리 중 하나, 그리고 전설적인 ‘크루너’. 크루너란 크룬(croon)이라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말한다. 크룬은 조용히 부드럽게 노래한다는 뜻의 단어로, 흥얼거리거나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표현에 쓰이기도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크루너라는 이들은 20세기에야 등장할 수 있었던 유형의 가수다...

    2023.08.11 20:20

  • [숨] ‘교권’과 녹음기
    ‘교권’과 녹음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은 공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라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표적을 찾아 단죄하려는 마녀사냥으로 미디어 공간이 소란스럽다. 지난 정권의 청소년 인권조례를 탓하다, ‘문제아’에 대한 학교 체벌을 반대했던 유명 방송인인 소아정신과 의사를 공격하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특수 교사를 고발한 웹툰 작가가 주요 표적이다. 여기에 공공시설(소아과 병원, 식당 등)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엄마들에 관한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달라붙는다. 이로써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는 ‘갑질 학부모’의 탓으로 귀결하는 듯하다.웹툰 작가를 둘러싼 공방에 등장하는 주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녹음기이다. 작가는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자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켜둔 채 등교를 시켰다. 작가는 녹음된 교사와 아이의 대화 내용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수위라고 판단해 고소한 것이다. 교사의 승인 없이...

    2023.08.04 20:15

  • [숨]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지난 5월 홍세화 선생이 강릉에 왔다. 내가 문을 연 서점 ‘당신의 강릉’의 첫 행사는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교사인 이원재 작가도 함께 강원도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만났다. 그는 바다를 보고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돌아갔다. 얼마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엊그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새 교육부 장관에 34살의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 기용됐습니다. 그는 동성결혼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강릉에서 진행했던 북토크에서 청중이 이원재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40살 이원재 작가는 답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대학 서열화를 멈추고 학제에 따른 n분의 1로 재편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의 재편보다도 40살 평교사 이원재씨의 교육부 장관...

    2023.07.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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