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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서울 혜화동은 나에게 각별한 장소다. 오래전 나는 이 계단을 올라가 붉은 벽돌 건물 2층의 밀다원이라는 카페를 찾아갔다. 공간의 외부와 내부가 흐르듯 연결된 이 건물은 1979년에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정채봉 선생님이 주간으로 있던 ‘샘터’ 사옥이었다. 나는 동화 쓰는 일에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신인작가였다. 당시 밀다원은 나와 비슷한 설렘을 지닌 사람들 몇몇이 모여 책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건물 아래층엔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어서 어린이극이 공연되곤 했다.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는 곳이었다. 지난주에는 두 번이나 혜화역에 왔다. 한 번은 옛 샘터사옥 바로 뒷집의 어린이작업실 ‘모야’에서 백희나 작가를 만났다. ‘책, 풀, 톱’이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에 함께 참여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도서관이란 무엇인지, 만들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형놀이의 대가 ...
  • [숨]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들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들

    보통 서양음악 또는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이들은 18~19세기에서 작곡된 서유럽의 고전들을 자주 살펴보지만 내가 찾는 쪽은 그보다 더 이전이거나 이후거나 고전이 아닌 것들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고전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그다지 기여하지 않은 음악, 누군가에게 계승되지 않은 채 반짝하고 사라졌던 장르, 이름을 남기지 않고 그저 떠돌았던 어떤 음악가들, 한 작곡가의 음악 중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대작이 아니라 채 1분이 되지 않는 짧은 소품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으로서의 서양음악 위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음악에 가깝다. 이런 어수선한 사례들을 되돌아보며 나는 명쾌한 고전의 역사가 아닌, 훨씬 흐릿하고 유연한 음악 전통으로서의 서양음악에 대해 생각한다.그와 관련해 내가 자주 모습을 상상해보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유럽 땅에서 ‘작곡가’라는 직업이 널리 퍼지기 전 이야기와 노래 보따리를 들고 떠돌아다녔던 음유시인들, 그중에서도 트루바두르 또는 트루베르, 혹은 트로바토...
  • [숨]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이다. 이 문구는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도시화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마주하고 섞이는 과정이자, 이 속에서 동질적인 공간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에서 이러한 도시화의 양면성을 세밀하게 그린다. 세넷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기피해왔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유대인을 피해 산골짜기에 지은 오두막이 전자의 예라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후자의 예다.세넷의 도시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분리가 도시 설계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 복잡함을 보여주기...
  • [숨] 서점에 오시면 작가가 책을 드립니다

    서점에 오시면 작가가 책을 드립니다

    두 달 전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귀한 지면을 개인 홍보에 쓰는 것 같아 그간 굳이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 오픈 이벤트 하나가 끝나 그 감상을 적어두려 한다. 이 서점은 5평 남짓한, 8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책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든다. 얼마 전 소설집 <회색 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와 서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토크를 하면 2시간 정도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고, 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작가는 곧 떠날 것이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절반, 작가님이 절반을 부담해, 1박2일 동안 서점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고 서명도 해 드리고 원한다면 사진도 찍어 드리고 하면 어떻겠냐고.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책 <회색 인간>은 요다 출판사와 내가 함께 기획해 만든 책이다. 얼마 전 86쇄를 찍었으니까 2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김동...
  • [숨] 고요라는 위대한 유산

    고요라는 위대한 유산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동요를 듣는다. 주위의 여러분이 1984년 제2회 MBC창작동요제 수상곡인 ‘노을’을 들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이 노래를 부른 권진숙 어린이는 당시 경기 평택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평택은 서해바다와 맞닿아 있고 평야가 드넓어 고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노을’의 노랫말에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과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그사이로 팔 벌린 허수아비의 웃음이나 고개 숙인 열매가 나온다. 모두 묵음의 풍경이다.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소리가 필요한가? 소리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여기저기에서 소리 때문에 다투는 장면을 자주 본다. 옛날에도 생활소음은 많았겠고 어쩌면 더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동요 ‘노을’과 같은 해에 발표된 노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의 가사를 보면 ‘엿장수가 아이 부르는 소리’ ‘가게 아줌마 동전 세는 소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신경을 자극하는 새로운 알림음들이 대폭 늘어났다. 곧바로 확인해야 ...
  • [숨]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

    음악가 윤현종에게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이라는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바로크 음악은 유럽 땅에서 오페라와 다양한 기악 장르를 꽃피운 시기의 음악인데 ‘남미’라니. 참 낯선 조합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식을 전해준 윤현종 또한 한국에서 바로크 음악을 매일같이 연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머나먼 바다 건너, 피아노가 한국 땅에 배를 타고 들어온 것이 120여년 전의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종교와 함께 서양 음악을 전파했고, 내 외할머니의 가족들은 어느 순간 그 음악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엄마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며 나도 서양 음악을 듣고 익히며 자라게 됐다. 나는 이를 ‘서양 음악’ 혹은 ‘유럽 음악’이라 거리를 두고 말하지만 나의 삶에서 이 음악은 내 어머니들의 역사와 맞닿은 것이기도 했다. 베토벤과 나 사이의 무한한 거리, 내게 전해진 어머니들의 마음을 동시에 떠올리며 서양 음악을 내 음악이라 부를지, 타자의 음악이라 부를지를...
  • [숨]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

    어느 때부터인지 ‘취업’이 주요한 교육 목표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집에서 가는 잡월드 견학을 시작으로, 초·중·고 재학기간에는 취업을 위한 발판인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내달리다, 대학에서는 또다시 입사지원서에 적을 다양한 활동(공모전, 인턴 등), 자격증, 어학능력시험, 학점 따기가 펼쳐진다. 마치 ‘취업’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미션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내가 일하는 대학도 ‘신입생 세미나’와 ‘커리어 탐색과 설계’와 같은 수업과 학생 면담을 통해 진로 설정 및 취업을 돕도록 강조한다. 다른 대학도 비슷하겠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대학 재정이 취약할수록 취업 중심 교육은 더욱 심해질 거라 짐작한다. 취업률이 신입생 모집을 위한 주요 전략이고, 신입생 모집률에 따라 대학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도 대학 교육을 취업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대학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취업 중심 교육의 가장 ...
  • [숨]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열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나는 “김대흔씨” “김린씨”라고 부른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글로 써야 할 때만 그렇게 한다. 페이스북에 ‘부글부글 강릉일기’라는 제목으로 종종 아이들과의 일들을 쓰다 보면 나를 만난 사람들이 묻는다. 김대흔씨와 김린씨는 잘 있느냐고. 그들은 왜 아이들을 그렇게 호칭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웃기려고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다. 사실 아이들과 멀어지고파서 일부러 쓰기 시작한 호칭이다.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볼 때마다 여러 욕망이 찾아왔다. 잘 크면 좋겠다, 건강하면 좋겠다, 한글을 빨리 떼면 좋겠다, 구구단을 외우면 좋겠다, 받아쓰기를 잘하면 좋겠다, 어휘력이 높으면 좋겠다 등등. 그러다 보니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부모와 아이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없이 가까워지다 못해 동일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 [숨] 당신의 얼굴을 만져보세요

    당신의 얼굴을 만져보세요

    선명한 표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투명하고 맑은 얼굴이라고 할까. 가끔 사진 속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도 내면에 간직한 심지가 흐려지지 않는 눈빛이 형형한 사람 말이다. 인화지 안쪽으로 사람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 얼굴들이 있다. 우리 옛 초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조선 영조 때 문신 서직수 초상은 당대의 초상화가 이명기가 얼굴을, 김홍도가 몸체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기술이 없던 1796년의 일이다. 서직수는 자신을 그린 초상화의 오른쪽 위편에 “이름난 화가들이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려내지 못하였다. 안타깝다”고 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내가 본 어느 이미지보다도 쟁쟁한 빛을 뿜고 있었다. 조선 후기 초상화 기법과 인물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백지혜 작가의 전시 ‘사람을 담다’에서 서직수 초상 모사본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전시공간이라 털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그의 얼굴을 관...
  • [숨] 음악을 닮은 글

    음악을 닮은 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음악으로부터 아주 멀어져 있는 때가 많았다. 음악 경험을 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낸답시고 온갖 형용사와 수식어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결국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다루는 문장들만 남곤 했다. 분명 음악을 듣고 느낀 바를 충실히 기록하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다듬다 보면 어쩐지 바삭하고 건조한 문장들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실제 음악과는 딴판이었다. 정적 속에서 음악의 뼈대를 더듬어 보려는 글 말고, 음악만큼 활기 넘치는 글, 그리고 음악의 소란함을 닮은 멋진 글들을 쓰고 싶었다.최근 이런 난처함을 가볍게 뛰어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닙 압두라킵은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문화 전반과 음악에 관한 글을 써온 에세이스트다. 그의 책 <죽이기 전까지 죽지 않아>는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음악에 관한 글들을 펴낸 에세이집으로, 음악과 함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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