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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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숨] ‘교권’과 녹음기
    ‘교권’과 녹음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은 공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라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표적을 찾아 단죄하려는 마녀사냥으로 미디어 공간이 소란스럽다. 지난 정권의 청소년 인권조례를 탓하다, ‘문제아’에 대한 학교 체벌을 반대했던 유명 방송인인 소아정신과 의사를 공격하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특수 교사를 고발한 웹툰 작가가 주요 표적이다. 여기에 공공시설(소아과 병원, 식당 등)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엄마들에 관한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달라붙는다. 이로써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는 ‘갑질 학부모’의 탓으로 귀결하는 듯하다.웹툰 작가를 둘러싼 공방에 등장하는 주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녹음기이다. 작가는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자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켜둔 채 등교를 시켰다. 작가는 녹음된 교사와 아이의 대화 내용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수위라고 판단해 고소한 것이다. 교사의 승인 없이...

    2023.08.04 20:15

  • [숨]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지난 5월 홍세화 선생이 강릉에 왔다. 내가 문을 연 서점 ‘당신의 강릉’의 첫 행사는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교사인 이원재 작가도 함께 강원도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만났다. 그는 바다를 보고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돌아갔다. 얼마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엊그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새 교육부 장관에 34살의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 기용됐습니다. 그는 동성결혼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강릉에서 진행했던 북토크에서 청중이 이원재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40살 이원재 작가는 답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대학 서열화를 멈추고 학제에 따른 n분의 1로 재편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의 재편보다도 40살 평교사 이원재씨의 교육부 장관...

    2023.07.29 03:00

  • [숨] 5300년 만의 조문객
    5300년 만의 조문객

    이탈리아 볼차노에는 사우스티롤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이 도시에 들렀다가 박물관을 찾았더니 어린 학생을 비롯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 모두는 외치(Otzi)라는 이름이 붙은 단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여기 왔다. 박물관 전체가 외치씨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1991년 독일인 헬무트 지몬과 에리카 지몬 부부는 이 부근의 해발 3200m 지점을 등반하다가 외치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외치씨가 산악인 희생자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는 피라미드보다도 나이가 많은 5300년 전의 청동기인임이 밝혀졌다. 얼음 덕분에 피부의 탄력은 물론 피부에 새겨진 문신, 옷과 도끼, 장신구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현대의 법의학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외치씨가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연도 규명했다. 그 긴 세월 얼마나 외로웠을까. 2016년에는 외치씨의 음성까지 복원되었다.박물관 안은 조용했다. 외치씨는 나를 비롯해 관람객들이 조문한 가장 나이...

    2023.07.22 03:00

  • [숨] 다른 소리를 위한 장소들
    다른 소리를 위한 장소들

    다른 나라의 대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반은 호기심, 반은 의무감에 어떤 장소들을 찾아보곤 한다. 음악을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 공연장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위한 장소들을 찾는 것이다. 잘 모르는 곳에 간다면 검색어는 큼지막한 것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장’ ‘일본 오사카 콘서트홀’ 같은 말들. 이렇게 검색했을 때 상단에 나오는 결과는 대체로 나라의 지원으로 건설된 공연장으로, 보통은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데다 교통의 요지에 있고,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이런 곳에서 내가 들을 수 있던 음악은 큰 후원단체를 확보하고 수많은 인프라가 관여해 만들어지는, ‘고전’이라 불리는 서양음악이었다.서양 고전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도시마다 다르므로 이런 공연을 보는 일도 무척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 덜 안정화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공통관습으로 묶이지 않는 데다 아티스트의 손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것의 음악들. ...

    2023.07.15 03:00

  • [숨] 멀티 유니버스 스파이더맨과 시대 감각
    멀티 유니버스 스파이더맨과 시대 감각

    최근 극장에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를 봤다. 흑인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2018)의 후속편이다. 새로운 서사, 그래픽, 음악, 편집으로 현대적 시대 감각을 담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 마블 시리즈는 오랫동안 백인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멀티 유니버스 소재를 도입해 성, 인종, 나이, 국가, 결혼 상태 등에서 상이한 배경을 가진 스파이더맨들을 총출동시킨다. 스파이더맨의 파워도 개개인이 가진 초능력보다, 다양한 장비를 가진 스파이더맨들과의 결합에 따라 달라진다. 스파이더맨의 상징인 거미줄조차 손목에 착용하는 기술 장치에서 나온다. 악당 또한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영화는 악당으로부터 도시를 구하려고 분투하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스파이더맨 세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내부 권력자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려는 아웃사이더 스파이더맨들의 ...

    2023.07.08 03:00

  • [숨] 대리운전 타고 강연 다니는 작가
    대리운전 타고 강연 다니는 작가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대리사회>라는 책을 쓴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나아졌느냐고 하면,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KTX를 타고 오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왕복 5만원 이상이 나오니까 한 달에 4번이면 20만원이 이동비용으로 나온다.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용이 별도로 붙는다. 그래서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대리운전 콜이 나오면 탄다. 대리운전 비용이야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래도 15만원 안팎은 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타도 그 비용이 상쇄된다.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 강남 ‘최인아 책방’에서 글쓰기 클래스를 한다. 저녁 9시반에 강남에서 대리운전 앱을 켜면 수도권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래저래 일과 삶을 연동해 나가며 계속해서 일한다.지난해 tvN의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뒤로 강연 요청이 늘었다. 내가 뭐라고 나를 불러...

    2023.07.01 03:00

  • [숨]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서울 혜화동은 나에게 각별한 장소다. 오래전 나는 이 계단을 올라가 붉은 벽돌 건물 2층의 밀다원이라는 카페를 찾아갔다. 공간의 외부와 내부가 흐르듯 연결된 이 건물은 1979년에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정채봉 선생님이 주간으로 있던 ‘샘터’ 사옥이었다. 나는 동화 쓰는 일에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신인작가였다. 당시 밀다원은 나와 비슷한 설렘을 지닌 사람들 몇몇이 모여 책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건물 아래층엔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어서 어린이극이 공연되곤 했다.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는 곳이었다. 지난주에는 두 번이나 혜화역에 왔다. 한 번은 옛 샘터사옥 바로 뒷집의 어린이작업실 ‘모야’에서 백희나 작가를 만났다. ‘책, 풀, 톱’이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에 함께 참여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도서관이란 무엇인지, 만들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형놀이의 대가 ...

    2023.06.24 03:00

  • [숨]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들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들

    보통 서양음악 또는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이들은 18~19세기에서 작곡된 서유럽의 고전들을 자주 살펴보지만 내가 찾는 쪽은 그보다 더 이전이거나 이후거나 고전이 아닌 것들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고전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그다지 기여하지 않은 음악, 누군가에게 계승되지 않은 채 반짝하고 사라졌던 장르, 이름을 남기지 않고 그저 떠돌았던 어떤 음악가들, 한 작곡가의 음악 중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대작이 아니라 채 1분이 되지 않는 짧은 소품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으로서의 서양음악 위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음악에 가깝다. 이런 어수선한 사례들을 되돌아보며 나는 명쾌한 고전의 역사가 아닌, 훨씬 흐릿하고 유연한 음악 전통으로서의 서양음악에 대해 생각한다.그와 관련해 내가 자주 모습을 상상해보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유럽 땅에서 ‘작곡가’라는 직업이 널리 퍼지기 전 이야기와 노래 보따리를 들고 떠돌아다녔던 음유시인들, 그중에서도 트루바두르 또는 트루베르, 혹은 트로바토...

    2023.06.17 03:00

  • [숨]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이다. 이 문구는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도시화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마주하고 섞이는 과정이자, 이 속에서 동질적인 공간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에서 이러한 도시화의 양면성을 세밀하게 그린다. 세넷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기피해왔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유대인을 피해 산골짜기에 지은 오두막이 전자의 예라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후자의 예다.세넷의 도시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분리가 도시 설계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 복잡함을 보여주기...

    2023.06.10 03:00

  • [숨] 서점에 오시면 작가가 책을 드립니다
    서점에 오시면 작가가 책을 드립니다

    두 달 전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귀한 지면을 개인 홍보에 쓰는 것 같아 그간 굳이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 오픈 이벤트 하나가 끝나 그 감상을 적어두려 한다. 이 서점은 5평 남짓한, 8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책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든다. 얼마 전 소설집 <회색 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와 서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토크를 하면 2시간 정도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고, 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작가는 곧 떠날 것이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절반, 작가님이 절반을 부담해, 1박2일 동안 서점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고 서명도 해 드리고 원한다면 사진도 찍어 드리고 하면 어떻겠냐고.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책 <회색 인간>은 요다 출판사와 내가 함께 기획해 만든 책이다. 얼마 전 86쇄를 찍었으니까 2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김동...

    2023.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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