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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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숨] ‘방목형 부모노릇하기’의 부상
    ‘방목형 부모노릇하기’의 부상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올바른” 방식인지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 애정표현은 아이를 망치는 것으로 말해졌지만, 지금은 아이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대중매체는 올바른 부모노릇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는 주요한 부분으로, 지난 몇 년만 돌이켜보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올바른 부모노릇을 제안해왔다.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상담 리얼리티 쇼부터 <스카이캐슬>(2018)이나 <일타스캔들>(2023) 같은 드라마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모두 대중들이 마주하는 부모노릇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연료로 성공한 미디어 상품이다.부모노릇하기에 대한 강조와 불안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외국에서도 주요한 대중적·학술적 주제로 활발히 논의돼왔다. 올해 초 BBC 라디오 팟캐스트 <Thinking Allowed>도 ‘부모노릇하기’(parenting)를 주제로 다뤘다. 이 팟캐스트는 최신 사회학 연구의 저자를 초대...

    2023.03.18 03:00

  • [숨]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계실까요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계실까요

    작년에 존경하는 C선생님에게 함께 글쓰기 강연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3회차. 그가 사회를 보고 내가 강의 후 함께 대담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다. 너무나 감사해서 아, 네, 선생님 물론입니다, 하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을 지경이었다. 강연비만 해도 내가 그동안 받아온 액수의 배는 되는 것이었으나 우선 그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자체로 기뻤다. 분명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그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사원들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아니었다. 다만 C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김래원이 나온 어느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뱉은 명대사처럼 ‘그래 C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거야.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C는 먼저 사회를 보는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그러면서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여기 계실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서점을 운영한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람들은 눈치...

    2023.03.11 03:00

  • [숨] 어린이의 집필실
    어린이의 집필실

    어린이의 시간은 현재형이다. “어렸을 때는 나도 그랬지”라거나 “어린이는 장차 크게 될 거야”라는 말은 소용없다. 지금 안 놀면 놀 수 없다. 현재의 어린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어린이는 위험해진다.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3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 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민식 어린이의 죽음 이후 마련된 법이다. 이제 어린이는 학교와 어린이집 앞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속도를 존중받게 되었다. 헌재는 8 대 1 의견으로 겁에 질린 작은 얼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를 지켜준 셈이다.팬데믹 전후에 태어난 어린이들은 밖에서 노는 법 자체를 잘 모른다. 두 다리는 언제 빠르게 뛰는지, 빗물은 어떻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지, 나무를 꼭 안았을 때 얼마만큼 따듯한지 알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이 차가 다니는 길을 사랑해서 거기서 노는...

    2023.03.04 03:00

  • [숨] 스스로를 시험하는 음악
    스스로를 시험하는 음악

    한동안 즉흥음악을 자주 들으러 다녔다. 그건 연주목록이 있는 공연을 보러 갈 때와는 다른 긴장감을 주는 일이었다. 빼곡한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화된 기억과 감각을 섬세히 살피며 음악을 만드는 일. 연습한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처음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정말로 모르는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지만, 듣다 보니 즉흥연주에서도 나름의 패턴과 관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번 대단히 다른 것을 듣게 되지는 않았고, 긴장감도 조금은 덜해졌다. 하지만 즉흥음악 공연에서 결코 패턴화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음악가들이 음악을, 그리고 동료 음악가를 대하는 태도였다. 언젠가 봤던 즉흥 듀오는 그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연주했다. 둘은 가까이 있었지만 각자의 음역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떤 즉흥 트리오는 각자 솔로 부분에서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도록 시간을 공평히 나눈 듯했지만 한 사람은 마이크...

    2023.02.25 03:00

  • [숨]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국은 해외입양 산업 모델을 만든 나라이다. 전쟁고아와 미군 사생아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작한 해외입양은 이후 수십년에 걸쳐 거대한 초국가 산업이 됐다. 일레이나 킴의 <Adopted Territory>(2010)에 따르면, 해외입양아의 수는 대략 1950년대 3000명이 채 안 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6000명, 1970년대는 4만6000명, 1980년대는 6만6000명에 달했다. 이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세계 최대 아동수출국”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줄이기 위한 정책 변화로, 1990년대는 2만2000명으로 줄었다. 2008년까지 해외입양된 아이는 16만명에 달했다.해외입양아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문화와 인종이 다른 공동체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70년의 해외입양 역사 속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해외입양인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국에서 여전히 버려지고 잊혀진 존재이다.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확산 속에서 ...

    2023.02.18 03:00

  • [숨]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배우와 만났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한 김신록씨였다. 진행자가 그의 수상 소감인 “저는 연극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사유한다”를 언급했을 땐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출연자가 말했다. “이런 말은 대부분이 알아듣는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사유라는 단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신록씨는 다음부터는 ‘생각한다’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유하다’라는 단어를 많이 써왔다. 최근의 책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서 깊이 사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 일은 없는 것 같아서, 생각과 사유는 어떻게 다른가, 하고 생각, 아니 사유하기 시작했다. 사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생각’이라는 단어를 최대한 쓰지 않을 것을 말해왔다. 무언가 무책임하게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다 보면...

    2023.02.11 03:00

  • [숨] 돌봄의 자전거 바퀴
    돌봄의 자전거 바퀴

    가족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말은 생활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아이의 감정과 몸의 상태는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어른들끼리 어떤 일을 도모할 때처럼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종종 담벼락처럼 버티거나 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버리는 공을 잡을 때처럼 달리고 멈추고 앉고 일어서는 순간의 반복이다.미카엘라 치리프와 호아킨 캄프의 그림책 <아이 달래기 대작전>은 한밤중 공동주택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아기 엘리사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처음에 고양이처럼 칭얼대던 아기는 결국 소방차처럼 울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만히 참기 힘들었던 이웃들이 이 집으로 모여든다. 8층 아저씨는 이야기책, 2층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왔지만 아기는 점점 더 운다. 다들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아버렸다. 엘리사를 잠재운 것은 동네에서 귀가 가장 어두우며, 아침...

    2023.02.04 03:00

  • [숨] 이야기 만들기
    이야기 만들기

    지난 연말, 음악가 동료들과 작은 타악기를 연주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그 그림책 안에 연주를 위한 기호를 그려 넣어,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잘 어울리는 소리를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야기에 짧은 연주를 곁들여보는 접근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는 정도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를 틈틈이 집어넣을 수 있을 만한 느슨한 이야기가 필요했다.소리 구성이야 늘 해왔지만 이야기 구성이라고는 경험이 없던 우리는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뼈대를 만들어 어떻게든 살을 붙여봤다. 이야기라면 주인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넣을 자리가 필요하니까 소리를 좋아하는 캐릭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소리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조용한 호숫가에 살던 개구리 ‘차차’가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밖으로 나서고,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만나며 크고 작은 소리를 내게 된다는 내용을 만...

    2023.01.28 03:00

  • [숨]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가?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가?

    얼마 전 설거지를 전담해오던 남편이 악화된 손목 통증을 호소하며 사보타주에 들어갔다.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바라보는 것은 ‘내가 지금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품게 한다. 혼자 살 때 밀려 있는 설거지는 나의 게으름, 의지 없음, 무기력함, 우울함의 척도였다. 이러한 고강도 감정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였든 당시 설거지는 내가 먹은 것을 내가 치우는 것에 관한 것으로 비교적 단순한 문제였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상황이 되자 설거지에 훨씬 복잡한 관계, 의미, 감정들이 달라붙었다.함께 먹을 것을 만들고 치우는 행위는 거주 공간의 역동과 질감을 만든다. 누군가 먹을 것을 만들어주고 치워주면 우리는 돌봄과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에 이러한 행위가 부족하면, 우리는 방치되고 무시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돌봄노동을 누가 하느냐는, 집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성평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주로 여성들이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고 치우는 일을 도맡...

    2023.01.21 03:00

  • [숨] 다감함과 다정함의 차이
    다감함과 다정함의 차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도 ‘동정’일 것이다. 다른 존재와 같은 정이 된다,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타인을 돕는 이유도 단순히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아이가, 저런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데서 나온다. 그만큼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다정하다거나 다감하다고 말한다. 다정함, 다감함, 동정,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그러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름의 기준으로 이 단어들을 정리해 두고 싶다.사실, 하나의 언어를 확실히 해두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말장난처럼 보일지라도 숫자보다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숫자의 공식보다는 말을 조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면 혼자서 말놀이를 자주했다. 한 음절의 띄어쓰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네 그 맘 내 ...

    2023.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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