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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전체 기사 228
  • [숨]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배우와 만났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한 김신록씨였다. 진행자가 그의 수상 소감인 “저는 연극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사유한다”를 언급했을 땐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출연자가 말했다. “이런 말은 대부분이 알아듣는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사유라는 단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신록씨는 다음부터는 ‘생각한다’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유하다’라는 단어를 많이 써왔다. 최근의 책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서 깊이 사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 일은 없는 것 같아서, 생각과 사유는 어떻게 다른가, 하고 생각, 아니 사유하기 시작했다. 사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생각’이라는 단어를 최대한 쓰지 않을 것을 말해왔다. 무언가 무책임하게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다 보면...

    2023.02.11 03:00

  • [숨] 돌봄의 자전거 바퀴
    돌봄의 자전거 바퀴

    가족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말은 생활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아이의 감정과 몸의 상태는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어른들끼리 어떤 일을 도모할 때처럼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종종 담벼락처럼 버티거나 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버리는 공을 잡을 때처럼 달리고 멈추고 앉고 일어서는 순간의 반복이다.미카엘라 치리프와 호아킨 캄프의 그림책 <아이 달래기 대작전>은 한밤중 공동주택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아기 엘리사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처음에 고양이처럼 칭얼대던 아기는 결국 소방차처럼 울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만히 참기 힘들었던 이웃들이 이 집으로 모여든다. 8층 아저씨는 이야기책, 2층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왔지만 아기는 점점 더 운다. 다들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아버렸다. 엘리사를 잠재운 것은 동네에서 귀가 가장 어두우며, 아침...

    2023.02.04 03:00

  • [숨] 이야기 만들기
    이야기 만들기

    지난 연말, 음악가 동료들과 작은 타악기를 연주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그 그림책 안에 연주를 위한 기호를 그려 넣어,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잘 어울리는 소리를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야기에 짧은 연주를 곁들여보는 접근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는 정도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를 틈틈이 집어넣을 수 있을 만한 느슨한 이야기가 필요했다.소리 구성이야 늘 해왔지만 이야기 구성이라고는 경험이 없던 우리는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뼈대를 만들어 어떻게든 살을 붙여봤다. 이야기라면 주인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넣을 자리가 필요하니까 소리를 좋아하는 캐릭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소리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조용한 호숫가에 살던 개구리 ‘차차’가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밖으로 나서고,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만나며 크고 작은 소리를 내게 된다는 내용을 만...

    2023.01.28 03:00

  • [숨]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가?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가?

    얼마 전 설거지를 전담해오던 남편이 악화된 손목 통증을 호소하며 사보타주에 들어갔다.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바라보는 것은 ‘내가 지금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품게 한다. 혼자 살 때 밀려 있는 설거지는 나의 게으름, 의지 없음, 무기력함, 우울함의 척도였다. 이러한 고강도 감정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였든 당시 설거지는 내가 먹은 것을 내가 치우는 것에 관한 것으로 비교적 단순한 문제였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상황이 되자 설거지에 훨씬 복잡한 관계, 의미, 감정들이 달라붙었다.함께 먹을 것을 만들고 치우는 행위는 거주 공간의 역동과 질감을 만든다. 누군가 먹을 것을 만들어주고 치워주면 우리는 돌봄과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에 이러한 행위가 부족하면, 우리는 방치되고 무시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돌봄노동을 누가 하느냐는, 집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성평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주로 여성들이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고 치우는 일을 도맡...

    2023.01.21 03:00

  • [숨] 다감함과 다정함의 차이
    다감함과 다정함의 차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도 ‘동정’일 것이다. 다른 존재와 같은 정이 된다,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타인을 돕는 이유도 단순히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아이가, 저런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데서 나온다. 그만큼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다정하다거나 다감하다고 말한다. 다정함, 다감함, 동정,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그러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름의 기준으로 이 단어들을 정리해 두고 싶다.사실, 하나의 언어를 확실히 해두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말장난처럼 보일지라도 숫자보다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숫자의 공식보다는 말을 조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면 혼자서 말놀이를 자주했다. 한 음절의 띄어쓰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네 그 맘 내 ...

    2023.01.14 03:00

  • [숨] 코로 책을 읽는 아이
    코로 책을 읽는 아이

    우리에게 두 눈이 있고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이 더 우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삶의 가치는 훨씬 더 넓은 영역 안에 있다. 그것을 말하는 작가가 진 리틀(Jean Little)이다. 그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에 네 번이나 후보로 올랐고 50권이 넘는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얼른 가서 코를 씻으라는 잔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항상 코를 종이에 바짝 붙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에 글자가 인쇄되겠다”는 핀잔을 들으면 “다행히 저는 코가 작아서 책을 눈에 가까이 가져갈 수 있네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는 날 때부터 각막에 흉터가 있어 매우 희미하게만 앞을 볼 수 있었고 평생 안내견과 함께 살았다.진 리틀은 적극적 성격의 여행을 즐기는 청소년으로 살았고 토론토대학에서 노스럽 프라이의 제자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장애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동화작가가 된 이유는...

    2023.01.07 03:00

  • [숨]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에 관해 생각하게 된 건 이 문장을 읽은 뒤부터였다. 음악 연구자 이희경의 책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에 기록된 강석희의 말이다. “종이 울리면 낮은 소리는 내려가고, 높은 소리는 위로 올라가서 만나거든요. 흔히 소리에는 ‘멸(滅)한다’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진행형이에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라진다’인데,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계속 사라져가는 거지,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거죠. ‘멸’은 한번 울린 소리는 우주에 존재한다는 현대물리학 이론과도 맞는 거예요.” 계속해서 사라져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더라도 소리는 끝끝내 존재할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내가 종소리를 가장 주의 깊게 듣는 순간은 새해를 맞이할 때다. 12월31일 23시59분59초를 지나, 1월1일 0시0분0초가 되는 찰나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새해를 아...

    2022.12.31 03:00

  • [숨] 크리스마스는 ‘고블린 모드’로
    크리스마스는 ‘고블린 모드’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보낸 세 번째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가 끝나는 시기에는 수많은 연말 의례가 진행된다. 보통 지난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고, 오는 해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예측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옥스퍼드대학출판부(OUP·Oxford University Press)는 매해 말 ‘올해의 단어’를 발표한다. 이는 지난 12개월 동안 영어 사용자들을 사로잡은 풍조·분위기·생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향후 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될 가망성이 높은 용어나 표현이다. 단어 후보는 옥스퍼드 편집자가 옥스퍼드영어말뭉치(OEC·Oxford English Corpus)의 빈도 통계 및 기타 데이터를 추적 분석해 실제 언어 사용을 바탕으로 선정한다. OEC는 소설, 신문,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 모든 유형의 영어 사용을 제시하도록 선택된 웹사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과 미국 외에도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카리브해 연안국, 캐나다, 인도, 싱가포르 ...

    2022.12.24 03:00

  • [숨]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다가 학부모에게 들은 질문이다. 그는 아이에게 문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이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그의 삶을 설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과에 가야 입시에도 유리하고 취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딸이 함께 와 있었다. 사실 나는 입시나 취업 설명회가 아니라 인문학 강의로 그들과 만났다.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도 문·이과 선택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나의 아버지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풀거나 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나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PC통신(천리안)을 하는 데 보냈다. 나는 그때 게시판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중·고등학생들은 대개 판타지소설 게시판에 가 있었으나 나는 나의 고등학생 생활을 각...

    2022.12.17 03:00

  • [숨] 안 보여요?
    안 보여요?

    2022년과 2023년을 반으로 접어 책을 만들면 2022년 12월은 그 책의 중간 제본선쯤에 있을 것이다. 1922년에 어린이날 선언이 선포되었고 1923년에 전국적인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기에 올해와 내년에 걸쳐 어린이날 백주년을 기념한다.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축하 잔치가 넘쳐나야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슬픈 소식들을 마주한다.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어린이들의 명복을 빌며 어린이와 관련된 올해의 글을 찾아 읽어본다.“뒤에서 자리만 채우던/ 0이 용기 내어 앞으로 나왔어// 잘 보이지 않던/ .이 0 옆으로 다가서자// 너도나도 힘내라고 달려 나왔어/ 0.518416029…”는 ‘어린이와 문학’ 181호에 실린 강기화의 동시 ‘소수의 힘’의 한 대목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다. 2022년 3분기 출산율은 0.79명이며 서울은 0.59명으로 가장 낮다. 그리고 어린이의 몸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는 만취 운전자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는 바...

    2022.12.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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