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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전체 기사 229
  • [숨] 안 보여요?
    안 보여요?

    2022년과 2023년을 반으로 접어 책을 만들면 2022년 12월은 그 책의 중간 제본선쯤에 있을 것이다. 1922년에 어린이날 선언이 선포되었고 1923년에 전국적인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기에 올해와 내년에 걸쳐 어린이날 백주년을 기념한다.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축하 잔치가 넘쳐나야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슬픈 소식들을 마주한다.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어린이들의 명복을 빌며 어린이와 관련된 올해의 글을 찾아 읽어본다.“뒤에서 자리만 채우던/ 0이 용기 내어 앞으로 나왔어// 잘 보이지 않던/ .이 0 옆으로 다가서자// 너도나도 힘내라고 달려 나왔어/ 0.518416029…”는 ‘어린이와 문학’ 181호에 실린 강기화의 동시 ‘소수의 힘’의 한 대목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다. 2022년 3분기 출산율은 0.79명이며 서울은 0.59명으로 가장 낮다. 그리고 어린이의 몸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는 만취 운전자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는 바...

    2022.12.10 03:00

  • [숨] 굿의 현재와 미래
    굿의 현재와 미래

    지난 11월9일부터 10일, 서울 선정릉역 인근 민속극장풍류에서는 ‘김정희 오구굿’이 열렸다. 동해안 별신굿의 대가 김정희 명인이 세상을 떠난 2019년 이후, 3년이 지난 뒤에 열린 오구굿이었다. 굿의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긴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배포된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그 이틀간의 굿은 망자자리말기로 시작해 부정굿과 골매기굿, 청혼, 문굿, 문답설법, 오는뱃노래, 조상굿으로 쉼없이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열 개 이상의 다른 굿거리가 더해졌다. 이렇게 큰 형태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누적되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굿의 형태가 단단히 굳어지기만 했다기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해왔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망자의 집이 아닌 극장에서도 굿이 열리고, 고 김정희 명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자도 제작되었으니 말이다.그날의 굿판에서도 굿의 일부가 머지않아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2022.12.03 03:00

  • [숨]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

    지난 9월 중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을 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끈 장면 가운데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의 관에 참배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대규모 군중이었다. 데이비드 베컴과 같은 대스타도 새벽 2시에 나와 12시간 넘게 줄을 서서 참배했다. 영국 언론만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생방송으로 장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1953년 대관식을 기억하는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형성한 대기줄은 한때 템스강을 따라 남쪽으로 11㎞에 달했고, 대기 시간은 24시간이 넘었다.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불평보다 오랜 기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여왕에게 조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느끼는 공동체 감각을 진술하며, 줄서기를 ‘감동적인 경험’으로 묘사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느끼지 못한 물리적 공간에서의 집단적 ...

    2022.11.26 03:00

  • [숨] 다정함, 무정도 유정도 아닌
    다정함, 무정도 유정도 아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쓴 이후 북토크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고 항상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선함은 유약함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힘이 약한 아이들은 무언가를 잘 빼앗긴다. 싫다고 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너는 착하니까 괜찮잖아”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 좀 해줘요’ 하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는 실망하는 누군가들이 있다. 그러나 선한 사람만큼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만큼 치열하게 분투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얼마 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봤다. 주인공 부부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한다. 남자는 내향적이고 유약한 성격으로 보인다. 항상 사과하고 중재하고 괜찮다고 말한다. 손님이 맡긴 세탁물에 눈알을 붙여두고는 귀엽다고 웃기도 한다. 여자는 그런 그를 ...

    2022.11.19 03:00

  • [숨] 두툼한 슬픔
    두툼한 슬픔

    텔레비전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텔레비전을 보는 일은 고전적으로 느껴진다. 웃음도 슬픔도 텔레비전을 통해 처음 배웠기 때문일까. 나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편이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텔레비전을 먼저 켠다. 속보를 확인하고 여러 단계 책임자의 신중한 발표를 듣는다.내 마음속 텔레비전은 얇고 평평한 물건이 아니다. 둥근 유리가 상자 같은 몸체와 달라붙어 있는 두툼한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음극선관(Cathode-Ray Tube)을 의미하는 ‘CRT’ 텔레비전은 20세기의 거실에서 늘 육중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발명가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을 기리며 브라운관 텔레비전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는 텔레비전을 CRT의 T를 따서 ‘튜브’라고도 하는데 ‘유튜브’도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어렸을 때 나는 텔레비전에서 어른들의 묵직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기억 속 1순위는 1980년 11월30일 동양방송이 ...

    2022.11.12 03:00

  • [숨] 기술, 그리고 전자음악을 다루는 여성들
    기술, 그리고 전자음악을 다루는 여성들

    작년, 서울문화재단 사업 모니터링차 ‘저항하는 기술 The Resisters’라는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 여성 창작자를 대상으로 전기, 용접, 해킹 등의 기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내가 갔을 때는 볼트와 너트의 종류와 그걸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걸 몰랐던 나도 덩달아 그 작은 부품들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됐다.당시 이 프로그램은 수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부품을 소개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극장에서의 조명 사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의 주제를 가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리가 보편의 강의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참여자들은 각자가 극장에서의 경험을 나누었고, 그중 몇몇은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고, 또 몇몇은 극장 장비뿐 아니라 이를 담당하는 여러 감독과 어떤 식으로 소통해야 불편함이 없는지 등, 경험자만이 알려줄 수 있는 유용한 팁을 공유했다....

    2022.11.05 03:00

  • [숨] ‘소년심판’의 계급 혐오
    ‘소년심판’의 계급 혐오

    법무부가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로 적용 연령을 만 13세로 하향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 한다. 더욱 “흉포화되는 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올해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은 “흉포화되는 소년 범죄”라는 현실 인식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인식은 촉법소년 처벌 강화를 지지하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드라마는 주인공인 여자 판사의 ‘나는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선언으로 시작해, 매회 경악스러운 소년범을 전시하며 혐오의 정당함을 설파한다. 조연인 남자 판사가 강력 처벌보다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를 소년범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교화 불가능한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소년범의 모습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여자 판사는 소년범에게 아이를 잃은 엄마로, 아이를 죽인 소년이 촉법소년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에 분노해 직접 소년범을 엄벌하고자 주변화된 소년부로 왔다. 남자 판사는 폭력적인 아빠에게 대항하다 소년범...

    2022.10.29 03:00

  • [숨] 다정한 경쟁은 가능하다
    다정한 경쟁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경쟁하며 살아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부터 취업, 그리고 이후 부의 축적과 그에 따른 지식 계급과 노동 계급으로서의 신분 상승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 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부의 세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린아이에게 미리 상속해야 할 만큼 부유한 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중·고등학교의 일상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드러난다. 매일 아침 다려진 교복을 정갈하게 입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역시 그렇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부장으로 일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교복은 보살핌의 상징이다. 교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데도 누군가의 대리노동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겨진 교복을 자신이 좋아하는 교사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들은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과 공부도 해야 하는 학생이 내는 결과야 애초에 다를 수밖...

    2022.10.22 03:00

  • [숨] 역사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역사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옛 서울역 역사인 ‘문화역 서울284’ RTO공연장에서 어린이와 책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2 공공디자인 페스티벌과 연결된 프로그램이었다. 큼지막한 유리문으로 노란 햇살이 들어오는 가운데 아침부터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어린이와 어떤 그림책을 읽을 것인가 이야기하는 사이 유리문 밖으로 간간이 기차가 지나갔다. 승객을 태우러 가는 열차들은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덜컹덜컹 다정한 소리를 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자리는 기차역의 대합실이었겠고 누구는 여기서 큰 포부를 안고 책가방을 든 채 서울에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더 올라가면 어떤 사람들이 서 있었을까. 총칼과 무기가 있는 난폭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시절을 상상하자 기차 바퀴의 평화로운 움직임이 문득 거칠게 느껴졌다.지금은 기차역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곳은 1922년 착공되고 1925년 준공된 오래된 건...

    2022.10.15 03:00

  • [숨] 사라진 동물들의 목소리
    사라진 동물들의 목소리

    나긋한 말씨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던 중, “시간은 마음이 쓰이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공연이 시작한 지 약 5분쯤 지났을 때였다. 그 앞에도 적지 않은 말들이 있었지만 내게 공연의 진짜 시작점처럼 느껴진 것은 이 문장이었다. ‘멸종동물생활협동조합×날씨’라는 타이틀만 보고 찾아간 신촌극장은 그날 따라 유독 어두웠다. 깜깜한 극장에 들어서자 중앙에 매달린 작은 오브제가 보였다.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던 그 오브제 안에는 계곡처럼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극장 벽에는 스피커 열 대, 무대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다. 극장에 들어설 때 극장장이 건넨 손전등을 켜 뭔가 적혀있었던 극장 티켓을 다시 비춰보았다. “거의 소리만 있는 공연입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들입니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재생 장치들을 바라보며 오브제 아래에 반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우리는 잠시 1941년 웨이크섬 전투를 재현한 게임으로 추정되...

    2022.1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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