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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
여기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가 있다. 그런데 테러범이 인질 다섯 명을 꽁꽁 묶어 선로 위에 눕혀 놓았다. 전차가 직진을 계속하면 그들은 모두 치여 죽고 만다. 이 긴박한 상황에 당신 앞에 버튼이 놓여 있다. 이것을 누르면 선로가 변경되어 그 인질들을 모두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변경된 선로 위에 묶여 있는 또 다른 인질 한 명은 희생된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만일 당신이 어떤 의사결정도 하지 않는다면 다섯 명은 그냥 희생된다. 반면 버튼을 누르면 한 명은 희생되지만 다섯 명은 살릴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누르는 게 답이다. 그러나 왠지 찜찜하다. 희생당한 그 한 사람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라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다.똑같은 전차인데 이번에는 선로 변경 같은 것은 없다. 그냥 계속 가다 보면 선로 위에 묶여 있는 다섯 명의 인질이 치여 죽고 만다.... -
왜 접종받고자 하는가?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1965년)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 언젠가 시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시인들은 꽃을 보고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쓰기도 하죠. 과학은 이 꽃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는 없어요. 과학은 인문이 주는 인생의 가치, 실존, 의미에 대해 침묵합니다.” 촌철살인의 과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리 과학자들도 이 꽃에서 시인 여러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비슷하게 느낍니다.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여기서 무언가를 더 봅니다. 가령 꽃잎이 난 위치와 순서에 주목하는 과학자는 거기서 피보나치수열을 찾아내곤 하죠. 하하.” 이것은 과학이 제공하는 ‘플러스알파’ 효과다. 과학자는 자연계 속에 숨어 있는 원리와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그 심층의 아름다움까지 통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 통찰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 -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냐
“이제 더 이상 쏠 화살이 없다.” 김우진 선수는 아예 인생의 화두를 쏴버린 것 같다. 이토록 멋진 말들을 남긴 올림픽 선수가 또 있었을까 싶다.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전에서 1점 차이로 석패한 김 선수의 인터뷰 내용이 연일 화제다. 뭔가 다른 레벨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혹시 어디 명언 학원 같은 데를 다니셨나?). 그의 말들을 차례로 감상해보자. “충격적인 결과로 대회를 마무리하게 됐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반문한다. “이게 충격인가요? 하하.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언제나 바뀌고, 그래서 열광할 수 있는 대상이죠.” 우선 그는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이게 가장 신선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이 나올 것을 예측하며 던진 상투적 질문에 당당하게 답한다. “그렇게 속상한 단어(“충격”)를 쓰시면 저도 슬프죠.” 이 대답을 보면 그는 국민의 실망에 공감하지 못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진한 성적 때문에 ... -
무엇이 능력인가?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그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라고 우긴다면야 못 말리겠지만, 부모를 결정하고 태어나는 자식은 없다. 이게 진실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부터 우연이다. 아니, 우리네 부모가 사랑을 나눌 만큼 불꽃이 튀는 것부터가 우연의 연속이다. ‘필연’이라는 단어는 우연의 연속을 부르는 애칭일 뿐이다. 사랑의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다는 고백이 대개 1년 내로 첫번째 큰 고비를 만난다. 필연적 만남을 주장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눴다고 치자. 이때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가 섞이는 이른바 ‘유전자 재조합’ 과정에서도 지배자는 우연이다. 부모가 잘생기고 머리가 좋다고 해도 이 재조합 과정은 우월한 유전자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부의 외모와 모의 두뇌를 바랐지만, 반대로 부의 두뇌와 모의 외모를 더 닮은 아이가 나올 수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지능과 외모 면에서 출발점이 서로 다르다. 다르게 태어... -
문화적으로 느슨한 사회
싱가포르에 껌을 반입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발각되었을 때 최대 10만달러의 벌금을 물거나 2년간 수감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만한 이 법규를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할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껌이 뭔 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구밀도가 극도로 높은 싱가포르에서 사방에 붙어 있는 껌딱지는 국민 모두의 골칫거리였다. 미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시설을 운영하는 데 방해가 될 만큼 심각한 위협이었다고 한다. 이에 싱가포르 당국은 1992년 문제의 근원이라고 여긴 껌을 불허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남아 있다. 물론 우리의 사회적 규범 중에도 외국인의 관점으로는 이상한 것들이 있다. 수년 전 외국 언론의 해외 토픽난에 우리 고등학생들이 소개된 적이 있다. “여기, 아침 7시 반부터 0교시를 시작으로 오후 5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우고는 곧바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또 듣다가 밤 12시에 귀가... -
기후위기, 그 느낌과 증거 사이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 이 사자성어만큼 인류의 운명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기후변화 연구자들에 의하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사피엔스 문명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2050년까지 전 세계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탄소중립)로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어쩌다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을까? 답은 인류 문명 자체에 있다. 기후는 문명의 탄생과 성장에 최대 변수로 작용해왔다.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사피엔스가 농경이 시작된 1만2000년 전까지 수렵채집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빙하기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다. 7만4000년 전쯤 전 세계 사피엔스 인구가 2000명 정도로 줄어들어 멸종 직전까지 가게 된 것은 그 직전에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하고 그로 인해 에어로졸이 햇빛을 가려 지구 평균 기온이 12... -
자연스러움과 올바름의 간극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가 미국 내에서 다시 확산하고 있다. 단지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길이나 마트에서 쌍욕을 듣고 주먹질을 당하고 짓밟히기도 한다. 아시아인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마저도 “바이러스 아시아인, 개나 먹어라”와 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있다. 작년 6월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성인 96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로 미국 내 아시아인의 31%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경험했고, 26%는 누군가의 물리적 폭력이 두렵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더 흔해졌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히스패닉이나 백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보다 두 배나 높고 흑인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10% 정도 높은 수치다. 무릇 21세기 시민이라면 인종주의는 이미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어야 한다. 20세기 내내 인종차별이 얼마나 큰 재앙을... -
대학 소멸을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벚꽃 피는 순으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기막히게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정원 미달로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대학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 모집 인원은 대략 49만명인데 입학 가능자원은 2019년 52만6267명, 2020년 47만9376명, 2021년 42만893명이었고, 2030년에는 39만9478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학이 남아돌게 생겼다. 가장 큰 원인은 매년 감소하는 합계출산율이다. 우리나라는 1983년에 1.30명 이하로 떨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명으로 반등한 적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부터는 초저출산 현상(1.30명 이하로 3년 이상 지속)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작년에는 합계출산율 0.836명을 기록했다. 우리는 아이가 사라지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저출산에 의한 입학 자원의 급감 때문에 발생하는 대학의 위기는 한국 대학들만이 겪는 독특한 문제라 할 수 ... -
배움의 동기가 켜지면 게임은 끝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퓨처 쇼크>에서 “미래의 문맹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1년 동안의 우리 학교를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에 학생 간 학습 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한 교사들은 전체의 79% 정도였고, 그중 33%는 그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도 누구는 배우는 법을 배우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거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긴 것일까? 집에 온라인 학습을 도와줄 어른이 없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고들 한다.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로 학력 저하가 일어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교사들의 응답은 사뭇 달랐다. 앞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의 65%는 학습 격차가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다음이 학부모의 학습 보조 여부, 그리고 학생과 교사 간 소통의 한계 순이었다. 사교육 ... -
‘이루다’ 은퇴와 벤처 진화의 조건
‘이루다’와 지난 두 주 동안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시도해본 75만명의 이용자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노잼’ 친구보다 센스가 더 좋다는 것을. 하지만 이루다를 개발한 벤처회사 스캐터랩은 지난 12일 이 챗봇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문제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 연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학습했다고 알려진 이루다는 성소수자, 장애인, 흑인에 대한 혐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이런 데이터 편향 문제는 인공지능(AI) 개발에 있어서 고질병으로 이루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원천은 인간의 편향 자체에 있으니 일단 자책부터 하자. 능력자 이루다에 열광하던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선 지점은 다른 데 있다. 이루다는 스캐터랩의 주 서비스 ‘연애의 과학’에서 얻은 데이터 세트로 대화 방식을 학습했다고 알려졌다. 4년 전 출시된 이 서비스는 이용자가 5000원가량을 ‘지불하고’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를 넘기면 스캐터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