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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고영의 문헌 속 ‘밥상’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병어가 온다
    병어가 온다

    병어가 온다. 모든 수산물이 어느새 한참 비싸졌지만 병어 떠 먹고, 저며 먹고, 뼈째 썰어 먹고, 지져 먹고, 조려 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젓 담가 먹는 한반도 서남 바다의 일상생활이 어디 갈 리가 없다. 계절 따라 맵싸해진 무, 날빛 잔뜩 받은 애호박, 하지에 앞서 영근 감자는 병어조림과 병어지짐에 딱 맞다. 그러고 보니 전남 바다의 병어젓까지! 못 먹어봤으면 젓갈 말씀을 마시라. 이즈음 서남 바다 사람들은 병어 한입 달게 먹고 한여름 맞을 생심을 낸다. 병어와 함께 여름을 건넌다.병어. 농어목 병어과에 속하는 어류다.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병어와 덕대(또는 덕자)를 아울러 병어라 이른다. 요즘은 학명이 다른 ‘중국 병어’까지 여기 뒤섞이곤 한다. 워낙 익숙한 반찬거리였는지라 그 이름도 여럿이었다. 오늘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병어의 한자어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옛 문헌에는 별별 한자 이름이 다 보인다.목이 짧다(머리의 가로 길이가 짧다...

    2025.05.15 20:14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뻔해서 허름한 조선 말고
    뻔해서 허름한 조선 말고

    숙수(熟手) 박이돌(朴二乭)은 토란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었다. 조선 숙종도 이를 달게 먹었다. 숙수란 전문 요리사이다. 주방장직을 맡을 수 있는 최고 실력의 요리사가 곧 숙수이다. 박이돌은 자신이 만든 음식의 자취도, 요리사로서 제 이름도 남겼다. 더덕 또한 반찬을 넘는 별미가 될 만하다. 관청에 딸린 노비 강천익(姜天益)은 더덕으로 일종의 튀김과자를 만들었다.사복시의 거덜 지언남은 붕어를 황토에 싸 약한 불로 굽는 방식의 붕어구이를 잘했다. 사복시는 조선 임금의 가마 그리고 말과 마구와 목장을 관리하는 부서다. 거덜은 높은 사람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다니는 사복시 소속 종이다. 말 탄 높은 사람의 몸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높은 분 모시고 비싼 말 이끄는 종놈 또한 공연히 우쭐거리게 마련이다. 우쭐에 흔들, 거만한 태도를 가리키는 ‘거들먹이다’가 ‘거덜’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쭐대기는 허튼짓과 한 쌍이다. 허랑방탕 살던 자가 재산을 결딴내면 ‘거덜 냈다’라고 한다. 이 역시...

    2025.04.17 20:1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바다와 제철
    바다와 제철

    한식 연구의 선구자 방신영(1890~1977)은 어회와 어채로 대표되는 조선식 회 조리법을 설명하며 “절기에 따라 있는 생선들로 하느니”라든지 “절기를 따라 하느니” 하는 말씀을 남겼다. 방신영의 시대에는 웅어·병어·도미·민어·숭어·가오리·상어·조개 등이 회 상차림과 수산물을 쓴 일품요리에 요긴했다. 냉장과 냉동 시설이 미미하던 시절이었다.이보다 앞선 시기에는 어땠을까? 18세기에 편찬된 <증보산림경제>를 펼치면 이렇다. 숭어는 음력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즐길 만하다. 다른 때는 맛이 없단다. 농어는 봄가을에 먹으란다. 여름에는 기름이 너무 올라 별로란다. 홍어는 진달래 필 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끓는 물 부어 홍어 표면의 점액질을 제거한다든지 살을 떠 된장물에 데쳐 먹는 방법을 소개했다. 대구는 겨울에 잡아 말린 반건조 대구를 제맛으로 쳤다. 또는 음력 3월 조기, 4월 도다리나 넙치, 5월 준치, 6월의 송어·연어알·전복, 7월 숭어, 8월 민어...

    2025.03.20 21:37

  • 뿌리채소

    잎을 먹는 채소가 잎채소이다. 배추·상추·시금치·깻잎 등이 있다. 줄기를 먹는 채소가 줄기채이다. 양파·마늘·죽순·머위·아스파라거스 등이 있다. 열매나 헛열매를 먹는 채소를 열매채소 또는 과채(果菜)라고 한다. 오이·참외·멜론·수박·호박·딸기·토마토·가지 등이 그것이다. 꽃봉오리나 꽃을 먹는 채소가 꽃채소이다. 호박꽃·들깨꽃봉오리·브로콜리·아티초크 등이 있다.뿌리나 뿌리줄기나 덩이줄기를 먹는 채소는 두루 뿌리채소라고 한다. 감자·고구마·칡·무·마·토란·당근·우엉·연근·도라지·더덕·생강 등이 여기 속한다. 뿌리채소는 흉년과 기근에 곡식의 빈자리를 메꾸기도 했다. 그래서 감자·고구마·칡·마·토란 등에 ‘구황(救荒)’이라는 말이 붙는다.뿌리채소에서 온 녹말은 밀가루 못잖은 국수의 재료이다. 밀가루가 흔해지기 전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만만한 국수 반죽감은 메밀가루보다 칡의 전분이었다. 이윽고 감자를 재배하면서 북녘에서는 감자 녹말로 ‘농마(녹말)국수’를 뽑기 시작했다. 함흥냉면...

    2025.02.20 20:5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김밥이 있었다
    김밥이 있었다

    “밥은 심이 없고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촛물(쌀 5컵에 반 컵 정도 너무 시지 않고 달게 설탕 타고 소금간을 한다)을 더운밥에 뿌리면서 부채질을 하여 식히면 밥에 윤도 나고 먼 길을 가서도 밥이 식지 않고 맛이 있다. 김말이는 햄이나 소시지 또는 고기 볶은 것과 시금치, 표고, 박오가리, 생선보푸라기 등을 단단하게 너무 굵지 않게 말아야 한다.”동아일보 1970년 10월2일자에 보이는 김밥의 모습이다. 위의 글을 쓴 궁중음식 연구자, 당시의 한양대 교수 황혜성(黃慧性·1920~2006)이 글을 쓰며 선택한 말은 김밥이 아니라 ‘김말이’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김밥은 ‘김말이초밥’, ‘김말이’, ‘김초밥’ 등으로도 불렸다. 그때의 김밥이란 워낙 길 떠나 먹을 것을 전제로 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상하지 않도록 식초로 밑간을 하게 마련이었다. 참기름 밑간은 나중의 이야기이다. 더구나 김밥이란 조선 사람들이 익히 먹어왔던 김쌈과 일식 김초밥인 ‘노리마키(海苔卷き)’가 만나 서로 ...

    2025.01.23 21:29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새봄
    새봄

    새해가 코앞이다. 한 달 전쯤 김장하며 겨울을 바라보았듯 오늘 새해 설을 바라본다. 그 너머 대보름을 바라본다. 다시 그 너머 입춘과 새봄을 바라본다. 아니 봄은 이미 동지에 움트고 있었다. 한 해 가운데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지나면 단 1분씩이라도, 낮은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대보름을 지나면 입춘 기다릴 것 없이 새봄이 박두한다. 거역할 수 없다. 언 땅 아래 잠복하던 봄은 한편으로는 움트며, 한편으로는 새순을 내밀며 새봄을 드러낸다. 정학유(1786~1855)는 ‘농가월령가’의 정월령과 2월령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움파와 미나리를/ 무움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新新)하기/ 오신채(五辛菜) 부러하랴?” “산채는 일렀으나/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정학유와 동시대를 산 김형수(金逈洙)에게도 새봄은 곧 봄나물이었다. 김형수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속 정월과 2월은 이렇다.“...

    2024.12.26 21:24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청어
    청어

    온갖 수산물이 맛난 철이다. 청어가 빠질쏘냐. 특유의 그 기름기와 달큰함 깃든 풍미는 이때가 아니면 누리기 어렵다. 샛노란 알 품은 알배기가 걸린다면 더 좋겠다. 명란뿐만이 아니라 청어알젓도 진미이다. 숭어 어란뿐 아니라 청어 어란도 못잖다. 씹기 좋도록 잔가시를 끊는, 청어회에 어울리는 칼질의 법수를 아는 숙수의 손을 타면 한층 맛난 청어회를 먹을 수 있다. 칼질된 가시는 귀찮은 놈이 아니다. 씹는 맛과 재미를 더하는 부록이다. 청어는 잘 말리면 또 다른 맛이 폭 들기도 한다.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 청어 항목을 보자.“우리나라의 청어도 말려 자줏빛 도는 붉은빛 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말리는 법은, 등을 가르지 않고 새끼에 엮어 볕에 말린다. 이렇게 하면 멀리 보내거나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다. 속칭 ‘관목’이라고 하는 것은 두 눈이 새끼줄로 꿸 수 있을 만큼 투명한 것을 말한다(俗呼貫目, 謂兩目透明, 如可繩貫也). 잡아 바로 배에서 ...

    2024.11.28 21:4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이 계절의 선물
    이 계절의 선물

    전어는 1990년대 말을 지나면서 서남 해안을 넘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은 물고기다. 서남 해안의 전어는 한때 거저 나눠 먹을 만큼 흔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전국구의 귀하신 몸이 됐다. ‘집 나간 며느리’ 하는 허튼소리를 낀 먹방의 영향이 컸다. 그 전어가 올해 수도권에선 품귀란다. 이유야 복잡할 테고, 어업과 유통에 어두운 책상물림은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마산만을 중심으로 한 남해의 전어 잡이는 이전과 다름없다니 다행이다. 한반도의 전어는 제주도 바다와 한반도 서남동해 사이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산란기는 초여름부터 8월까지 이어진다. 전어는 봄에 하구 또는 연안의 만(灣)에 붙어 여름을 나고 수온이 떨어지면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요컨대 전어는 하구와 만에서 알도 낳고 몸도 키운다. 이윽고 추석 지나 훌쩍 더 자란 전어는 11월 들어 그 기름기가 절정에 달한다.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의 전어 항목을 이렇게 썼다.“서해...

    2024.10.31 21:31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찬 바람이 분다, 지금이 만두 한 알 먹기 딱 좋은 때
    찬 바람이 분다, 지금이 만두 한 알 먹기 딱 좋은 때

    호호 불며 만두 한 알 입에 넣을 만한 계절이 기어코 왔다. 만둣국 한 사발 비우며 ‘어, 시원해!’ 하고 내뱉어도 덜 민망한 계절이 왔다. 한 알만 입안에 채워도 단박에 흐뭇해지는 이 음식은 온 지구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기본기술 음식이다. 만두(饅頭)는 어떤 음식인가? 한마디로 소를 피에 싸 빚어 익혀 먹는 음식이다. 밀가루피가 기본이지만 메밀가루라고 안 될 거 없다. 감자전분도 피가 된다. 생선살, 생선껍질에 전분을 더해 피를 만드는 한식 어만두도 재미나다. ‘만두’라는 말도 그렇다. 이제 곳곳에 자리 잡은 중앙아시아 음식점에 가면 만두 비슷한 음식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스탄’ 붙은 나라에서 온 사장님은 중앙아시아식 밀가루피 음식을 ‘만티’라고 소개한다. 동서 문명의 교차로 캅카스, 그 너머 아나톨리아, 튀르키예 사람들도 ‘만티’라는 말을 쓴다. 또 다른 교차로 위구르의 말은 ‘만타’이다. 위에 손꼽은 지역 곳곳에 ‘만투’라는 말도 섞여 있다. 국수의 나...

    2024.10.03 20:3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추석 단상
    추석 단상

    “송편이랑 토란국은 서울·경기 거 아닌가?” 매체마다 뻔한 추석 음식 이야기를 뻔하게 한 꼭지 만들겠다고 나 같은 사람을 찾는 즈음이다. 담당자가 마침 서울·경기 출신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예컨대 울산과 포항 쪽으로 가면 이렇다. 동남 해역에서는, 서해안과 서울·경기의 조기굴비 못잖게 전갱이·민어·문어·가자미가 중요하다. 논란 속에서도 고래고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상어고기는 동남 해역과 경북 곳곳의 제수이다. 늘 먹는 가자미라도 추석에는 치자로 노랗게 물들여 부치기도 한다. 군소산적을 올리지 못하면 헛차례, 헛제사 지냈다는 소리가 나오는 집이 아직 있다. 나물은, 여느 나물과 함께 미역·톳·모자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어·전복·대구·오징어는 말려 포로 올린다. 당연히 북어도 쓴다.떡은? 이 지역에서 송편은 낯설다. 워낙은 추석에 인절미·절편·시루떡·경단·부편 등을 했다. 오랜만에 명절 집안잔치 또는 동네잔치를 한다고 마음먹으면, 부편만큼은 할...

    2024.09.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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