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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의 문헌 속 ‘밥상’
  • 전체 기사 86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복분자8기
    복분자8기

    지난봄 현장 취재 덕분에 고창 여기저기를 한참 걸었다. 수박·땅콩·고추·복분자·바지락·백합·김이 자라는 땅과 해안부터 경이로웠다. 곳곳의 고인돌 무더기 또한 놀랍기만 했다. 고창읍성·무장읍성·흥덕읍성 터를 찾는 동안은 동학농민전쟁의 아우성이 그야말로 쟁쟁했다. 그 뒤로 김성수, 김연수 집안의 한국 자본제 연대기가 엉겼다. 신재효와 서정주가 이룬 문학사도, 김소희와 김여란이 이룬 음악사도 자꾸 돌아보였다. 장어가 빠질쏘냐. 2024년 말 이래 치어가 풍년이라 장어값이 폭락했지만 장어구이의 매혹이 어디 갈 리 없다. 현장에서, 손질한 장어를 사 장인어른께 부치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탄식했다. “그저 입에 닿을 때 한 점 드시자!” 수박도 그렇다. 이제 수박은 고창에서 1년에 세 번까지 재배한다. 한 해 ‘수박-멜론-수박’ ‘수박-작은수박-수박’ 하는 순서로 사계절 최고품질 수박이 난다. 그 사이에 최고품질 멜론이 있다. 농민, 독농, 국가가 손잡고 아등바등 농업 기술을 끌어올...

    7시간 전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노랑 럭비공 연대기
    노랑 럭비공 연대기

    “수박을 귀족적이요 부르주아적이라 할 것 같으면 참외는 평민적이요 프롤레타리아적이다. 무슨 명물 무슨 명물 하여도 여름의 명물은 참외일 것이다.”‘별건곤’ 1928년 7월호 ‘참외로맨스’의 한 대목이다. 저 도저한 생활의 실감이라니. 참외는 이만한 한국어 문장을 낳은 존재이다. 문헌을 더 펴자.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에 따르면 참외는 “껍질과 과육이 청록색인 것, 혹은 금박무늬, 혹은 개구리무늬 찍힌 것으로서 크기가 작은 것이 좋은 품종”이었다. 이옥(1760~1815)은 “속칭 ‘참외’란 아이들이 지독히도 좋아하는 것(俗稱眞瓜, 而兒輩之所酷嗜者也)”으로 요약했다.대표 품종으로는 꾀꼬리참외(甛瓜)·개구리참외(蝦甛瓜)·수청참외(水甛瓜)·쇠뿔참외(牛角甛瓜)를 손꼽았다. 크기가 작고 사과 풍미가 감도는 평안도의 사과참외(沙果種)는 독특한 품종으로 따로 기록했다. 사과참외는 20세기까지도 이어진 이름이다. 해방 전 자료 속 ‘강서사과’는...

    2026.06.21 20:0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오이의 덕을 찬양함
    오이의 덕을 찬양함

    입하가 휙 지났다. 오이의 덕은 나날이 찬란하다. 한국인의 여름날 오이 사랑은 유서 깊은 바다. 성균관에 학적을 두고도 임금의 사상 검열과 글쓰기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다가 정조에게 찍혀 퇴학당하는 데 이른 이옥(李鈺·1760~1813) 또한 일찍이 오이를 추앙했다. 이옥은 제 집 앞 남새밭에 해마다 오이 모종 60~70주를 심어 가꾸었다. 덕분에 여름날의 먹을거리가 해마다 넉넉했다. 식탐으로 다가 아니었다. 살림살이의 감각이 있었다. 첫물, 두물, 세물, 끝물 오이를 따며 이런 감각을 드러냈다. “시거나 짜거나 날로 무치는 나물이나 익혀 먹는 음식이나 모두 오이로 된다(酸醎生熟, 皆瓜也)”. 늘 오이국·오이김치·오이나물·오이장김치를 먹었으니 칼질에도 예민했다. 채칠 때에는 네모진 편을 내 채치거나 돌려 깎아 채쳤다(菜或方或圓). 국거리는 대개 말굽 모양으로 썰었다(羹多馬蹄削). ‘말굽썰기’라니? 현대 조리 용어로는 ‘반달썰기’일 테다. 속 파고 반달썰기 해보시라...

    2026.05.24 19:54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무의 사계절
    무의 사계절

    봄나물 호들갑은 새봄 유통업의 판촉에서, 도시 소비자 사이에서, 매체에서 반짝하다 수그러진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봄 나물은 새봄에, 한창 봄날의 나물은 한창 봄날에, 또 늦봄과 초여름 앞의 나물은 그때를 지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사철 채소가 있다. 사계절 나물거리가 있다. 무는 어떤가. 무는 한반도 곳곳에서 사철 난다. 한국인 누구나 한 해 내내 무를 먹을 수 있다. 5~6월에 씨뿌림 하는 봄무, 7~8월에 씨뿌림 하는 고랭지 여름무, 8~9월에 씨뿌림 해 김장에 맞추어 거두는 가을무, 11~12월에 씨뿌림해 월동하는 제주 겨울무가 오늘날 한반도의 계절과 계절을 잇는다.“2월에 움 속에 저장한 무를 꺼내 기름진 땅에 심었다가 5~6월이 오면 종자를 받는다(二月, 取窖中所藏之根, 種於肥地, 至五六月收子).”홍만선(1643년~1715)의 속 한대목이다. 사계절 채소의 저장과 그 종자를 향한 궁리는 예부터 이렇게 깊었다. 그만 한 궁리를 부...

    2026.04.26 20:09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길거리 토스트가 있는 풍경
    길거리 토스트가 있는 풍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아침에는 밥 대신에 우유와 빵을 먹고 가겠다 하는데?” “좋은 빵은 몸이 곱고 잘 부풀어 올랐으며 탄력이 있고 큰 비례로 중량이 가볍습니다.”조선일보 1927년 9월7일자 ‘식빵에 좋고 나쁜 것을 아는 법’ 속 문답이 이렇다. 1930년대가 되면 신문에 ‘엑, 인, 밀크, 언, 토스트’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풀어 쓰면 ‘egg in milk on toast’이다. 말하자면 구운 식빵 위에 우유 풀어 부드럽게 익힌 달걀을 올린 ‘오픈 샌드위치’이다. 1939년 10월24일부터 11월2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영석의 소설 <춘엽부인> 속 한 장면도 흥미롭다. “종로로 나가 토스트에다 커피로 요기한 다음 최(승호)는 (신문)사로 들어갔다.” 등장인물 최승호의 늦은 출근길이 이랬다. 토스트는 대도시 직장인에게 한 끼가 될 만했다.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19세기 이래 한반도로 들어온 빵, 샌드위치, 토스트 삼총사는 신청년이 선망한 음식이...

    2026.03.29 20:08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물회
    물회

    저마다 찾는 새봄의 별미가 하나쯤은 있을 테다. 살짝 고백하면 내 새봄의 별미는 도다리 물회이다. ‘여름도 아닌데?’ 하실 분도 있겠지만, 물회가 오직 한여름만을 기다리는 음식은 아니다. 그 정의부터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오징어를 날로 잘게 썰어서 만든 음식. 잘게 썬 재료를 파,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으로 버무린 뒤 물을 부어서 먹는다.”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 강원도와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고추장을 기본 양념으로 사용하며, 강원도 물회에는 식초가 첨가되어 새콤하고 달콤한 이색적인 맛을 즐긴다. 경상남도와 제주도 지역에서는 된장의 담백한 양념을 기본으로 사용하되 특히 제주도 물회는 육지에서 즐기는 물회와 사뭇 다르다. 싱싱한 생선과 채소를 썰어 넣은 후 물을 붓고 생된장을 풀어 만드는 물회로, 국의 일종으로 본다. …” 이상 물회의 모습이 얼추 그려진다.사전보다 조금 더...

    2026.03.01 19:59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그리운 방어
    그리운 방어

    “뱃사람들이 그물을 올리니 잡힌 놈은 연어나 방어였다. 큰 놈은 한 자가 넘고 작은 놈은 부채만 했다. 회를 치든 굽든 그 풍미가 정말 빼어나 술잔이 얼마나 자주 내 손에 돌아오는지 모를 정도였다.”(舟人擧網得魚, 或鰱或魴. 大者尺許, 小者如扇. 鱠之燖之, 風味殊絶, 不知杯之頻到手也)조선 중기의 문장가 이정구(1564~1635)는 1603년 음력 8월16일 성천강과 동해 바다의 어름에서 이런 호사를 누렸다. 함흥 출장길이었다. 방어는 조선의 지리지에, 동해안 등허리를 타고 함경도에서 강원도를 지나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자원이다. 오늘날에는 마라도 해역의 방어가 동해 바다 방어 못잖은 명성을 떨치고 있다. 땅이름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 지금은 ‘방어진(方魚津)’으로 쓰는 울산 동구 일대의 옛 이름이 ‘방어진(魴魚津)’이다. 방어가 많이 난다고 해서 방어진이었다.사림의 맏형인 김종직(1...

    2026.01.25 20:06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김치라는 서사
    김치라는 서사

    “배추가 한 번 서리를 맞으면 거두어 일반적인 조리법대로 물김치로 담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꼭 닫고 땅에 묻는다. 공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김치항아리를 봉하라. 이듬해 봄에 열어보면 그 빛깔이 햇김치 같고 그 풍미 또한 깨끗하고 쩡하다( 經一霜卽收, 如常法作淡菹. 藏甕封盖埋地中, 令勿泄氣. 至明春發見卽其色如新, 味亦淸爽).”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 속 배추로 ‘김치 담그는 방법(沈菹法)’이 이렇다. 배추물김치와 흡사하다. 이 책에는 무동치미인 나복동침저(蘿 凍沈菹), 총각김치에 가까운 침나복함저(沈蘿 鹹菹), 오이소박이의 기본기를 품은 황과담저(黃瓜淡菹)도 나온다. 맛을 북돋을 때는 어떤 부재료를 썼을까. 무동치미에는 생강·파의 흰 줄기·청각·초피 등을, 총각김치에는 고추·고춧줄기·고춧잎·청각·갓줄기·갓잎·초피·부추·마늘 등을 썼다. 오이소박이에는 고춧가루였다. 위에 보이는 ‘일반적인 조리법’의 면모를 짐작할 만하다. 겨울을 나며 김치 맛이 ...

    2025.12.25 21:42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복잡한 이야기
    복잡한 이야기

    “다 일본 거잖아.” 편의점에서 청춘들 틈에 끼여, 청춘들 못잖게 라면을 해치우고 있는데 들려온 말이다. ‘다 일본 거’, 이쯤이 세상의 ‘라면 상식’이겠다. 하지만 그 사연은 그리 만만찮다. 무엇보다 사리를 기름에 튀겼다가 풀어서 먹는 국수는 중국 허베이 이남 여기저기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한의 ‘열간면(熱干麵)’이 좋은 예이다. 열간면은 사리를 먼저 물에 삶은 뒤, 다시 뜨거운 기름에 데친다. 이 사리를 뜨거운 국물에 풀어 땅콩과 참깨 양념에 비비면 그 풍미가 배가된다. 기름에 익혀 수분을 날린 사리는 보존성이 좋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먹음직한 질감과 향미가 사리에 깃든다. 광둥·장쑤·푸젠, 대만 등지에는 ‘이부면(伊府麵)’이 있다. 이면(伊麵), 의면(意麵)으로도 쓰는 이 국수는 달걀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가락을 낸 뒤, 사리를 삶아 건져 식혔다가 기름에 한 번 더 익힌다. 사리를 기름에 그저 데치느냐, 슬쩍 튀기느냐, 바짝 튀기느냐에 따라 질감이 다 다르다. 그 ...

    2025.11.27 21:46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쌍화, 상화, 상애
    쌍화, 상화, 상애

    “쌍화점(雙花店)에 쌍화 사러 갔더니만/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점(店·가게) 밖에 나고 들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만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고려 사람들의 노래 ‘쌍화점’의 첫 대목이다. ‘회회아비’는 서역에서 온 사내다. 서역은 넓게 보면 중앙아시아 이서 지역 또는 오늘날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다. 아주 좁게는 타림분지 일대다. 거기 출신 사내가 원나라 거쳐 개경에 와 쌍화 가게를 냈단 말이다. 그러다 고려 사람과 정분이 나기도 하고, 정분이 소동으로 번지기도 했을 테다. 사랑이 구설이 되면 낭패니까 연인은 입 가벼워 더 얄미운 사생활 관찰자를 단속했을 테다. 새끼 광대 녀석, 입조심해!연애는 그렇다 치고 쌍화는 대체 무엇일까? 발효해 도톰하니 폭신해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찐빵 또는 그런 반죽으로 빚은 만두다. 다시 서역이다. 서역 사람들은 온 지구를 통틀어 가장 오래고 다채로운 분식 문화를 이어왔다. 오늘날의 캅카스, ‘스탄’ 돌림...

    2025.10.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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