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고영의 문헌 속 ‘밥상’
  • 전체 기사 8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그리운 방어
    그리운 방어

    “뱃사람들이 그물을 올리니 잡힌 놈은 연어나 방어였다. 큰 놈은 한 자가 넘고 작은 놈은 부채만 했다. 회를 치든 굽든 그 풍미가 정말 빼어나 술잔이 얼마나 자주 내 손에 돌아오는지 모를 정도였다.”(舟人擧網得魚, 或鰱或魴. 大者尺許, 小者如扇. 鱠之燖之, 風味殊絶, 不知杯之頻到手也)조선 중기의 문장가 이정구(1564~1635)는 1603년 음력 8월16일 성천강과 동해 바다의 어름에서 이런 호사를 누렸다. 함흥 출장길이었다. 방어는 조선의 지리지에, 동해안 등허리를 타고 함경도에서 강원도를 지나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자원이다. 오늘날에는 마라도 해역의 방어가 동해 바다 방어 못잖은 명성을 떨치고 있다. 땅이름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 지금은 ‘방어진(方魚津)’으로 쓰는 울산 동구 일대의 옛 이름이 ‘방어진(魴魚津)’이다. 방어가 많이 난다고 해서 방어진이었다.사림의 맏형인 김종직(1...

    2026.01.25 20:06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김치라는 서사
    김치라는 서사

    “배추가 한 번 서리를 맞으면 거두어 일반적인 조리법대로 물김치로 담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꼭 닫고 땅에 묻는다. 공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김치항아리를 봉하라. 이듬해 봄에 열어보면 그 빛깔이 햇김치 같고 그 풍미 또한 깨끗하고 쩡하다( 經一霜卽收, 如常法作淡菹. 藏甕封盖埋地中, 令勿泄氣. 至明春發見卽其色如新, 味亦淸爽).”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 속 배추로 ‘김치 담그는 방법(沈菹法)’이 이렇다. 배추물김치와 흡사하다. 이 책에는 무동치미인 나복동침저(蘿 凍沈菹), 총각김치에 가까운 침나복함저(沈蘿 鹹菹), 오이소박이의 기본기를 품은 황과담저(黃瓜淡菹)도 나온다. 맛을 북돋을 때는 어떤 부재료를 썼을까. 무동치미에는 생강·파의 흰 줄기·청각·초피 등을, 총각김치에는 고추·고춧줄기·고춧잎·청각·갓줄기·갓잎·초피·부추·마늘 등을 썼다. 오이소박이에는 고춧가루였다. 위에 보이는 ‘일반적인 조리법’의 면모를 짐작할 만하다. 겨울을 나며 김치 맛이 ...

    2025.12.25 21:42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복잡한 이야기
    복잡한 이야기

    “다 일본 거잖아.” 편의점에서 청춘들 틈에 끼여, 청춘들 못잖게 라면을 해치우고 있는데 들려온 말이다. ‘다 일본 거’, 이쯤이 세상의 ‘라면 상식’이겠다. 하지만 그 사연은 그리 만만찮다. 무엇보다 사리를 기름에 튀겼다가 풀어서 먹는 국수는 중국 허베이 이남 여기저기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한의 ‘열간면(熱干麵)’이 좋은 예이다. 열간면은 사리를 먼저 물에 삶은 뒤, 다시 뜨거운 기름에 데친다. 이 사리를 뜨거운 국물에 풀어 땅콩과 참깨 양념에 비비면 그 풍미가 배가된다. 기름에 익혀 수분을 날린 사리는 보존성이 좋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먹음직한 질감과 향미가 사리에 깃든다. 광둥·장쑤·푸젠, 대만 등지에는 ‘이부면(伊府麵)’이 있다. 이면(伊麵), 의면(意麵)으로도 쓰는 이 국수는 달걀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가락을 낸 뒤, 사리를 삶아 건져 식혔다가 기름에 한 번 더 익힌다. 사리를 기름에 그저 데치느냐, 슬쩍 튀기느냐, 바짝 튀기느냐에 따라 질감이 다 다르다. 그 ...

    2025.11.27 21:46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쌍화, 상화, 상애
    쌍화, 상화, 상애

    “쌍화점(雙花店)에 쌍화 사러 갔더니만/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점(店·가게) 밖에 나고 들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만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고려 사람들의 노래 ‘쌍화점’의 첫 대목이다. ‘회회아비’는 서역에서 온 사내다. 서역은 넓게 보면 중앙아시아 이서 지역 또는 오늘날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다. 아주 좁게는 타림분지 일대다. 거기 출신 사내가 원나라 거쳐 개경에 와 쌍화 가게를 냈단 말이다. 그러다 고려 사람과 정분이 나기도 하고, 정분이 소동으로 번지기도 했을 테다. 사랑이 구설이 되면 낭패니까 연인은 입 가벼워 더 얄미운 사생활 관찰자를 단속했을 테다. 새끼 광대 녀석, 입조심해!연애는 그렇다 치고 쌍화는 대체 무엇일까? 발효해 도톰하니 폭신해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찐빵 또는 그런 반죽으로 빚은 만두다. 다시 서역이다. 서역 사람들은 온 지구를 통틀어 가장 오래고 다채로운 분식 문화를 이어왔다. 오늘날의 캅카스, ‘스탄’ 돌림...

    2025.10.30 19:5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김장배추 아주심기
    김장배추 아주심기

    “늦벼는 이제 패는데 올벼는 익어가고/ 밭에 선 허수아비는 낟알 먹는 참새를 쫓는다/ 냇가 근처 논밭에서는 두렁 덮은 모래 걷어내고/ 무너진 두둑 돋우고 거름 주고 밭을 갈고/ 김장할 무와 배추 남보다 먼저 심어 놓고/ 싸리바자 밭을 둘러 사람의 발길을 막고…”조선 철종 때 김형수가 쓴 ‘농가십이월속시’ 가운데 음력 7월 부분이다. 한반도의 농업 시간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유히 이어지고 있다. 새봄에 기지개를 켠다. 한여름에 모두 정신없이 땀을 흘린다. 이윽고 수확을 앞두고 한 번 쉬었다가, 가을에 수확한다. 겨울은 갈무리하는 때다. 그러고는 농한기다.한가위는 북미식 추수감사절이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한가위는 한반도의 자연과 농업사가 농촌에 선물해 온 백성에게 번진 수확 앞의 휴가다. 수확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날이었다. 농사 형편이 이날 쉬기에는 너무 이르다 싶은 지역에서는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한가위 못잖게 의례를 베풀고, 쉬고, 먹고, 잔치했다....

    2025.10.02 21:33

  • [고영의 문헌 속 ‘밥상’]한여름의 진객, 등푸른 생선
    한여름의 진객, 등푸른 생선

    “제사상에는 반드시 고등어가 올라야 해요.” 경상북도 북쪽 끝과 강원도 남쪽 끝이 만나는 바닷가에서 듣는 소리다.부산 기장 위쪽으로, 경북 울진 일대 바닷가에 여름 제사가 돌아오면, 이곳 사람들은 봄여름에 잡아 소금에 절인 고등어를 독에서 꺼낸다. 그놈을 한여름 거칠고 질긴 호박잎으로 손질해서는, 꼬치에 꿰어, 아궁이 잔불에 걸친 석쇠 위에 올려, 모양 잡아 굽는다. 제사상에서 표가 나는 것은 그래도 고등어산적이었다. 제수에 쓸 만한 식료품이라면 손님께 내는 상이나 생일상 등 차린 표를 꼭 내야 하는 상에도 요긴한 법이다.고등어는 고마운 생선이었다. ‘고등어는 겨울에 기름이 올라야 제맛’이란 말은 한 세대 전 한반도의 여름 하늘 아래 굳이 할 소리가 아니었다. 부산 명물로 소문난 ‘고등어추어탕’ 또는 ‘고등어해장국’도 그렇다. 한여름에 잡혀 기름기 덜한 고등어의 살은 체에 내리기에도 낫다. 국물에 잘 풀린다. 개운한 여름 고등어살은 된장과 더욱 잘 어울린다. ‘고등어 ...

    2025.09.04 22:00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빙수, 달콤한 전기가 등덜미로 달음질친다
    빙수, 달콤한 전기가 등덜미로 달음질친다

    얼음 ‘빙’에 물 ‘수’자 쓰는 빙수(氷水). 인류가 물질의 어는점과 녹는점에 착안해 만들어낸 과자다. 호모 사피엔스, 사람의 꾀는 빙수에도 깃들어 있다.주재료는 얼음이다. 얼음이든 완성된 빙수든 한여름에 오래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입속에서 녹아 사라지기 전까지는 버텨야 한다. 제과사는 이를 염두에 두고 빙수를 설계·시공한다. 여기에 유지방이 껴들면 아이스크림이다. 청량음료·냉차·소르베(sorbet)·셔벗(sherbet)·아이스크림은 뒤섞여 있다가 빙수를 통해 의미 있게 분화했다. 빙과(氷菓), 곧 얼음과자의 영역에서 빙수의 의의다.인공 제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빙수를 만들었을까? 사람의 꾀에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아득한 예부터 온 지구에 빙고(氷庫)가 있었다. 만년설의 얼음이든, 꽁꽁 언 강을 깨 켜고 캔 얼음이든, 빙고에 쟁였다가 온열질환에 약으로도 쓰고 빙과도 만들었다. 얼음 보관실의 마감이 석재면 석빙고, 토분이나 회면 토빙고, 목재면 목빙고다. ...

    2025.08.07 20:51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쓸모’만 남기고 사라진 바가지
    ‘쓸모’만 남기고 사라진 바가지

    하지감자 한 알, 달걀 한 알쯤 쪄 두고 점심을 지나고 싶은데 손이 허전하다. 점심거리 무심히 담아둘 바가지 하나가 집에 없다. 바가지는 원래 박을 두 쪽으로 켜 만든 주방용품 겸 용기다. 물·술·장 등을 푸거나 뜰 때 좋다. 감자·고구마·밤·호두·달걀·옥수수처럼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먹을거리를 담아두는 데에도 요긴하다. 나무·쇠붙이·합성수지 바가지도 있지만 액체에 띄워두고 쓰기에는 역시나 원래 바가지가 낫다. 뜨거운 조청이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죽을 풀 때도 역시 박을 켜 만든 바가지다. 바가지는 뜨거운 액체나 음식이 닿아도 녹아내리지 않는다. 열을 전달하지 않아 쥐기에도 좋다. 다 떠나서, 가볍다.바가지 가운데 서너 명분 음식을 담을 만한 바가지는 ‘가달박’이다. 함지박과는 다르다. 함지박은 통나무 속을 파낸 넓고 무거운 용기다. ‘빨간 고무 다라이’가 태어나기 전에, 고무 다라이처럼 쓴 용기가 바로 함지박이다. 고무 다라이란 곧 합성수지 함지박이다. 함지박은 이...

    2025.07.10 21:13

  • [고영의 문헌 속 ‘밥상’]선조들의 귀물, 장아찌
    선조들의 귀물, 장아찌

    새봄에 마련한 장아찌가 진가를 뽐낼 계절이 온다. 장아찌. 채소·과실·과채·나무의 어린순 등을 간장·된장·고추장에 박아 맛을 들였다가, 그대로 먹거나 따로 양념을 더해 오래 두고 먹는 반찬이다. 장아찌 한 입이 밥맛을 확 끌어올린다. ‘과실’이라면, 초피(열매)·살구·매실·감 등이 매력적인 장아찌의 재료로 이어지고 있다. 순과 잎은 아니 그럴까. 초피나무, 산초나무, 가죽나무, 엄나무 등의 순과 어린잎이 다 장아찌가 된다.연구자들에 따르면 장아찌는 ‘장에 담근 지’라는 뜻의 ‘장앳디히’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지’는 김치를 필두로 한 발효·숙성·저장 음식을 널리 가리키는 어휘다. 장아찌는 재료를 다디단 촛물에 빠뜨린 뒤에 장이나 양념을 조금 풀어 색깔만 입힌 음식이 아니다. 장과 재료가 어울려 충분히 맛이 들어야 한다. 짭조름함이 쨍하게 도드라져야 한다. 숙성으로 이룬 깊은 맛이 잇새에서 확 번져야 한다.예로부터 사람들은 짜게 절여 오래 먹는 음식을 해왔다. 소금을 ...

    2025.06.12 20:27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병어가 온다
    병어가 온다

    병어가 온다. 모든 수산물이 어느새 한참 비싸졌지만 병어 떠 먹고, 저며 먹고, 뼈째 썰어 먹고, 지져 먹고, 조려 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젓 담가 먹는 한반도 서남 바다의 일상생활이 어디 갈 리가 없다. 계절 따라 맵싸해진 무, 날빛 잔뜩 받은 애호박, 하지에 앞서 영근 감자는 병어조림과 병어지짐에 딱 맞다. 그러고 보니 전남 바다의 병어젓까지! 못 먹어봤으면 젓갈 말씀을 마시라. 이즈음 서남 바다 사람들은 병어 한입 달게 먹고 한여름 맞을 생심을 낸다. 병어와 함께 여름을 건넌다.병어. 농어목 병어과에 속하는 어류다.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병어와 덕대(또는 덕자)를 아울러 병어라 이른다. 요즘은 학명이 다른 ‘중국 병어’까지 여기 뒤섞이곤 한다. 워낙 익숙한 반찬거리였는지라 그 이름도 여럿이었다. 오늘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병어의 한자어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옛 문헌에는 별별 한자 이름이 다 보인다.목이 짧다(머리의 가로 길이가 짧다...

    2025.05.15 20:14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