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들이 그물을 올리니 잡힌 놈은 연어나 방어였다. 큰 놈은 한 자가 넘고 작은 놈은 부채만 했다. 회를 치든 굽든 그 풍미가 정말 빼어나 술잔이 얼마나 자주 내 손에 돌아오는지 모를 정도였다.”(舟人擧網得魚, 或鰱或魴. 大者尺許, 小者如扇. 鱠之燖之, 風味殊絶, 不知杯之頻到手也)조선 중기의 문장가 이정구(1564~1635)는 1603년 음력 8월16일 성천강과 동해 바다의 어름에서 이런 호사를 누렸다. 함흥 출장길이었다. 방어는 조선의 지리지에, 동해안 등허리를 타고 함경도에서 강원도를 지나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자원이다. 오늘날에는 마라도 해역의 방어가 동해 바다 방어 못잖은 명성을 떨치고 있다. 땅이름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 지금은 ‘방어진(方魚津)’으로 쓰는 울산 동구 일대의 옛 이름이 ‘방어진(魴魚津)’이다. 방어가 많이 난다고 해서 방어진이었다.사림의 맏형인 김종직(1...
2026.01.25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