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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칼럼]법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법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내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될지도 모르겠다.국제인권법을 진지하게 접한 것은 판사가 된 직후였다. 그전까지 우리나라가 ‘국제법 일원론’을 채택했다는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왜 판사들은 국제인권법을 재판규범으로 삼지 않느냐’는 질타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을 재판에 적용하기는커녕 그 해석과 적용을 알지조차 못하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워 동료들과 고민을 나눴다. 당시에는 국제인권법을 재판규범으로 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판사들도 꽤 많았다. 국내법은 입법 당시 치열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기에 사회 구성원에게 규범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국제인권조약은 외교 전략으로서 가입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국내규범으로 인정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다자조약이든 양자조약이든 인권조약이든 통상조약이든 체결·공포된 조약은 모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하니 재판규범으...

    2026.01.11 19:52

  • [정동칼럼]이제는 법원의 차례다
    이제는 법원의 차례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선출된 권력이 감히 주권을 침해하고 헌정을 유린하려 한 역행적 계엄으로 시작부터 혼란스러웠던 2025년과 비교하면, 감개무량한 세초의 나날이다. 빛의 혁명을 완수하고자 애써온 국민 모두의 헌신과 용기에 힘입어, 밝지만은 않은 국내외 여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내일을 이야기하며 2026년을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조선 산업의 성장, K콘텐츠의 확장, 그리고 지방선거를 통한 정치 지형의 변화까지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중요한 과업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불과 1년여 전, 망국적 위기 상황을 경험했고, 그에 대한 법적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독점과 배제의 권력구조를 만들려 했던 남용적 계엄으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벌써 1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소비했고, 탄핵과 대선을 거치며 어느 정도 정치적 회복...

    2026.01.08 19:53

  • [정동칼럼]‘탈팡’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탈팡’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작년 여름, 나는 중국에서 구글 없는 며칠을 보냈다. 중국은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연결망을 차단하고 있고, 당연히 유튜브도 볼 수 없었다. 강제로 주어진 ‘탈구글’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이 얼마나 구글이라는 포위망 안에서 살아왔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몇달 후, 쿠팡 사태를 보며 분노한 나는 ‘탈팡’을 했고, 다시 한번 내가 쿠팡이라는 플랫폼에 습관적으로 접속해왔다는 것을 자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서서히 끓는 가마솥 속 개구리처럼, 나의 정신과 육체적 욕망은 철저히 계산된 플랫폼 자본주의에 의해 알고리즘화되었으며, 일상적 선택은 구글과 쿠팡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었다. ‘탈옥’ 이후 구글과 쿠팡 없이 살아보는 일상은 나름의 해방감을 주었다.구글이나 쿠팡과 달리, 인공지능(AI) 플랫폼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비록 전통적 플랫폼 경제와 달리 AI 플랫폼 경제는 지식 생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다루며, 아직 이익 실현이 불확실하다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동일한 ...

    2026.01.07 19:49

  • [정동칼럼]경쟁과 패자
    경쟁과 패자

    최근 노래와 요리로 영역은 다르지만 경연 방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노래는 <싱어게인 4>, 요리는 <흑백요리사 2>다. 경연인 만큼 라운드마다 생존자와 탈락자가 가려진다. 참가자들은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한다. 패배해서 도전을 멈추게 되는 가수 또는 셰프는 웃으면서 경쟁자에게 축하를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쓰릴 것이다.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보며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서 오는 잔인한 측면보다는 경연에서 탈락하는 참가자가 실패했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박효남 셰프는 한국의 프렌치 요리계를 개척한 명장이지만 2인 1조 팀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명패를 반납하고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떨어진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다.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에 맞추어 참가자들이...

    2026.01.05 20:45

  • [정동칼럼]사람이어서
    사람이어서

    현대 관리학에서는 생산성, 효율성, 수율 등을 강조한다. 비슷한 말들이다. 동일한 노동 투입에 더 나은 결과물. 회사 상황에 따른 고용의 탄력적 변화라는 의미의 유연성도 있다. 전부 관리자의 관점이다. 와중에 놀랍게도 행복이 꼽히기도 한다. 비록 결국엔 생산성을 위한 행복이지만.이 겨울, 한국 사회는 현대 노동의 기저에 깔린 어떤 결핍을 목도하고 있다. 바로 ‘신뢰’다. 조직은 노동자를 신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추상적인 규범론이 아니라 그 대답에 따라 노동의 통제 방식,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달라지는 실천적 질문이다.2020년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장덕준씨가 과로로 사망했을 때 내부 보고 과정에서 고인이 평소 성실하게 일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그 기업 의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어? 말이 안 돼. 그 사람들 시급 노동자들이잖아. 성과급이 아니라 시급을 받잖아!” 이 말은 개인의 언어가 아니...

    2026.01.04 19:54

  • [정동칼럼]보수는 없다
    보수는 없다

    국민의힘 지지자에게 2025년은 여느 해와 비교하기 어려운 최악의 시간이었다. ‘군부독재 정당’과 ‘IMF 정당’에 이어 국정농단으로 인한 최초 ‘탄핵 정당’의 늪을 겨우 건넜나 했더니, 마침내 초유의 ‘내란옹호 정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간 보수가 지켜온 오래된 가치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외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법치’와 ‘안보’의 전통적 덕목을 짓이겨버렸다. 윤석열 정부 3년간 시장을 통한 성장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위험이 걷히면서 코스피는 현재까지도 고공행진 중이다.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경계하고 지속적 안정을 추구한다던 보수가 스스로 혼돈과 붕괴를 초래했다. 이후 일련의 정국을 거치며 빛의 혁명을 통해 이재명 정부가 탄생했음에 외신은 많은 찬사를 보냈다.더욱 심각한 건 ‘부끄러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거리에 모인 일부 집단의 ‘윤어게인’이라는 내란구호를 지도부가 함께 외치는 중이다. 소수당에 정당 지지율...

    2026.01.01 20:19

  • [정동칼럼]쿠팡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면
    쿠팡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면

    장 볼 시간 아껴주고, 물건 대신 팔아주고, 언제든 일자리 열어주고. 그러니 쿠팡 없이 살 수 있겠어? 쿠팡에 가입한 적도 없는데, 쿠팡의 질문을 누구도 비켜갈 수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소득이 빠듯한 사람일수록, 시간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쿠팡의 약속은 솔깃했을 것이다. ‘독박 돌봄’을 떠맡은 이들은 쿠팡이 숨통을 틔워준다고들 했다. 쿠팡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자신이 제공하는 편의를 불러내 대립시켰다.최저가 상품의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은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차지하기 위한 쿠팡의 전략이었다. 플랫폼 자본에는 데이터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자신의 앱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수록 권력이 커진다. 이용자에게 거의 무료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다. 접속하는 기록부터 검색과 구매와 반품 등 모든 활동이 방대한 데이터로 쌓이고 고스란히 자본의 권력이 된다. 우리의 활동이 우리를 우롱하는 무기가 된 현실을 쿠팡만큼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어렵다.플랫폼 자본의 독...

    2025.12.31 19:10

  • [정동칼럼]댓글이 먼저 도착한 사회
    댓글이 먼저 도착한 사회

    최근 논쟁과 감정이 집중되는 기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먼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다고 할 게 뻔하다.” “저런 스타일은 꼭 저러더라.” 사건의 맥락이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사람은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었고, 그 유형에 맞는 반응만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를 미리 짜인 범주 속에 밀어넣고 판단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만약 이 글에서 특정 사건의 이름을 꺼낸다면, 이 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될지 모른다. 언급하지 않으면 비겁하고, 언급하면 편을 가르는 글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건을 걷어내고 그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댓글의 공기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이 현상은 단순한 무례나 온라인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를 붙잡아두고 그것을 데이터로 만들고 수익으로 전환하는 시대에 인간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플랫폼 위...

    2025.12.29 19:44

  • [정동칼럼]대전·충남 초광역화, ‘좋은’ 전략인가
    대전·충남 초광역화, ‘좋은’ 전략인가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속도가 더 붙는 모양이다. 이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현안이 아니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초광역 행정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가 운영 체제의 근간을 재구성하는 ‘재조산하(再造山河)’의 과제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목표로 이 일을 추진한다는 말이 들려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초광역 행정통합은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초광역 전략’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에서 물꼬를 튼 후,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권이 잇따라 합류했고, 전북과 강원은 제주처럼 특별자치도라는 또 다른 형태의 초광역 전략을 택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런 길을 모색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초광역 전략은 단순하게 덩치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지역혁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광역 전략을 통해 더 많은 자율성과 더 큰 다양성을 확보...

    2025.12.28 19:50

  • [정동칼럼]소년범에게도 열려 있는 사회
    소년범에게도 열려 있는 사회

    강도강간. 무서운 악질범죄다. 당연히 범죄자에 대한 처분도 단호하다. 무기징역 아니면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범죄가 끔찍한 만큼, 범죄자의 책임도 엄히 묻겠다는 거다. 강도강간은 형량 자체가 무겁기에 별도의 가중처벌도 하지 않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으로 더 무겁게 처벌하기 위해 꼽아둔 범죄 중에 강도강간은 없다. 누범만 예외일 뿐이다.범죄자는 반드시 검거하고 엄하게 처벌한다는 국가의 의지와 일관된 노력 덕분에, 강도강간의 실제 발생 건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23년엔 5건, 지난해엔 3건밖에 없었다. 그런 범죄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지만, 5000만명 넘게 사는 제법 큰 규모의 국가에서 1년 내내 3건밖에 없었다는 건 놀라운 실적이다.최근 어떤 인터넷 연예매체는 조진웅 배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특가법상 강도강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 소년원에 갔다는 거다.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주장은 엇갈릴 수...

    2025.12.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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