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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어떤 소셜미디어에서 특정한 음모설을 비판했더니 온갖 반박과 비난이 쏟아진다. 교수 맞아? 회색분자! 등등 인신공격은 기본이다. 내가 존중했던 분들도 그 내용에 일리가 있다고 거든다.음모론이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공식적·합리적 설명 혹은 해석을 물리치고 그 뒤에 어마어마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주장이다. 주로 권력자가 비밀리에 음모를 통하여 자기의 거대한 이익을 취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속인다는 설이다. 예컨대, 9·11테러가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설, 심지어 1969년에 미국 우주비행사가 달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도 거짓이라는 주장, 제주항공 참사를 ‘특정 정치세력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기 등 중요 사건에는 음모론에 기초한 반론이 생겨난다.문제는 상당수의 식자도 이런 유의 주장에 쉽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내가 신뢰했던 어떤 사회운동가는 지금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미국 정부의 음모에 의해 대중들이 기만당한 ... -
최상목이 정말 경제를 지키고 싶다면
계엄 사태 이전에도 한국 경제는 침체의 조짐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하향 조정하고, 2025년에는 2.0%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국내 수요 회복의 약세를 주요 요인으로 지목하며, 성장률이 1%대로 둔화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지난해 11월7일 대통령 담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설명했던 자화자찬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이다.2024년 12월3일 내란 사태는 가뜩이나 힘들었던 한국 경제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계엄 선포 후 30분 만에 1403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444원으로 치솟았다. 비트코인은 35% 하락했고 한국인 지분율이 높은 리플은 60% 하락하였다. 주식시장은 다음날 개장과 동시에 하락하여 12월6일 기준 코스피는 계엄 전보다 -2.9%, 코스닥은 -4.3% 하락하였다. 윤석열 디스카운트가 현실이 되었다.대통령은 통치 능력이 없고, 내각은 내란에 가담... -
위기의 대한민국
지난해 12월29일 오전에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전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12월3일 한밤중에 일어났던 현직 대통령의 불법적 친위쿠테타와 이어진 정국 불안정으로 인해 심란한 와중에 접한 비보였기에 더욱 황망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참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인재 여부를 밝혀야 한다. 만약 인재 요인이 있다면, 충분하고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재에 의한 대형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을 우리 법체계가 물을 수 없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에 미온적이면, 이들부터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2024년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어느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나쁜 사람(the bad)’이거나 ‘추한 사람(the ugly)’이었다. 국민을 배반하고 경제를 나락으로 내몬 친위쿠테타를 주도한 윤... -
경제적 관점으로 미국 대선 바라보기(1)
트럼프의 극적 귀환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됐다. 선거인단뿐 아니라 전국 득표, 상하원에서도 승리했다. 박빙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문구에서 보듯, 정치현상 저변에 깔린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는 건 우리 사회의 진단을 위해서도 의미 있다.첫째, 인플레이션을 이기기는 어렵다. 물가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미국은 높은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 전 70% 정도의 미국인이 경제가 안 좋다고 답했고,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답한 유권자의 거의 90%가 트럼프에 투표했다. 항의 투표, 회고적 투표 현상이다. 경제가 안 좋고 물가가 오른 책임을 현직, 집권당에 묻는 경향을 말한다. 유권자들은 저물가였던 트럼프 1기 시절이 더 나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고금리도 주택모기지, 자동차할부 부담을 높여 경제상황 평가를 악화시켰다. 트럼프 공약인 관세 부과와 이민자 추방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는 학자들의 경고도 별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
여성의 발자취를 지우려는 사람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12월14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여의도 집회 참가자를 분석했다.연령대별로는 20대가 21%로 가장 많았고, 성별로는 여성이 61.1%로 남성을 크게 앞섰다. 성별·연령대별로 세분해 측정한 결과, 20대 여성이 17.9%, 30대 여성이 1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0대 여성의 적극적 참여가 20대 그리고 여성 전체의 비율 상승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20대 여성의 참여 비율은 직전 주인 12월7일 집회에서도 가장 높았다.이런 분석에 대한 어떤 반응은 상당히 당황스럽다.12월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젊은 여성’의 정치의식과 그로 인한 희망을 얘기했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젊은 여성’을 4번이나 강조한다. 진행자 김현정은 이에 대해 매번 ‘젊은이들’이라는 성별을 소거한 표현으로 되받는데, 저널리즘에... -
한강의 기적, 한강의 위로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막바지, 12월3일 갑작스레 시작된 정치적 재난은 이 땅 모든 이들의 삶을 삼켜버렸다. 겨눠진 총구는 다양한 사람들의 용기 덕분에 몇 시간 만에 내려졌지만, 법으로 무장한 이들의 법구(法口)에서는 여전히 상식을 초월한 논리들이 난사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박히고 있다. 시민들은 광장의 응원봉, 2030 여성의 부상, ‘남태령 대첩’ 등을 말하며 희망을 더듬고 있지만, 광장에 모인 각자의 얼굴과 눈동자에는 지금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한강의 기적’이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대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비쳐 있다. 우리는 일상을 잃었고, 민주주의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국회에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의 둘째 주,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 것은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이었다. 한강은 질문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자기 안의 울분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던 이들의 마음에 형상을 부여해... -
흉기가 되어버린 경찰
내란의 밤.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던 건 군대보다는 경찰이었다. 군대는 윤석열의 의도와 달리 우왕좌왕했고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전현직 사령관들은 악착같았지만 실제로 움직여야 할 군인들에게는 일종의 떨림이 있었다. 밀면 밀리고 막으면 막히는 모습이었다.경찰은 전혀 달랐다. 윤석열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국회를 둘러싸고 출입을 막았다. 짐짓 멈춰서던 군대와 달리 경찰은 체계적으로 내란에 가담했다. 시민에게 적대적이었고, 국회의 권능 행사를 막기 위해 열심이었다. 무도하고 과도했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서야 겨우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의 기본적인 절차마저 무시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경찰이 든든히 지켜주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 관저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어떤 법률로도 통제할 수 없는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도 원천봉쇄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100m 이내라도 집회... -
‘예고된 참사’ 윤 정권을 돌아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이 말은 이제 고쳐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세 번 반복한다. 두 번은 비극으로, 세 번째는 희극으로.” 5·16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비극이었다면, 윤석열의 실패한 친위 쿠데타는 희극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같은 사회에서 비상계엄을 통한 쿠데타라니, 이런 희극이 없다.나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몇달도 안 돼 이미 이 지면에서 경고했다. 가장 위험한 대통령은 “부지런하고 용감하면서 삐뚤어진 지도자, 즉 ‘잘못된 확신’에 찬 적극적인 지도자”인데 윤석열은 “임기를 시작한 뒤 몇달에 불과하지만, 보면 볼수록, 우려한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2022년 10월25일자). 직언에 핏대만 올리는 것에도 우려를 표명했다. “최고결정자인 대통령이 ‘분노조절장애환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핏대를 세운다면,... -
추위 속 반짝이는 웃음의 정치
기발한 문구의 깃발들, 다채로운 응원봉들, 그리고 흥겨운 노래들. 지난 12월3일 계엄령 선포 이전까지 전혀 상상치 못한 조합들이었다. 12월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이 유쾌·통쾌·발랄한 조합은 최고조에 달했고, 축제의 파도는 여의도를 넘어 전국을 휩쓸었다. 나아가 12월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과 밤샘 대치를 할 때 생기발랄한 연대의 불빛들이 함께할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강아지발냄새연구회’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전국고양이노동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전국 얼죽아 연합’ 등 탄핵과는 전혀 상관없을 법한 이 문구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펄럭일 때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것은 끔찍한 계엄령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시민들의 통쾌한 풍자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언어유희를 넘어, 약자의 언어를 넘어, 소위 ‘웃음의 정치’(Gelopolitics)라 할 수 있다. 그 유쾌한 풍자... -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자유를 내세웠지만 내심으론 독재자를 꿈꾸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다. 위대한 대한국민들이 저항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한 결실이다. 헌정의 중대 고비마다 민주화를 직접 쟁취해온 국민이 거둔 또 한 번의 승리다. 군과 경찰의 봉쇄시도에도 계엄해제의 고삐를 당겨 국민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국회도 칭찬해야 마땅하다. 아직도 내란죄 피의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내란 방조의 굴레를 자임하고 있는 국민의힘 다수 국회의원들을 제외하고.이번 사태를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의 현실을 회피하면서 개헌론을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란혐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해야 할 중대한 ‘헌법의 순간’에 섣부른 개헌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어설픈 권력구조 개헌론으로 헌정회복의 골든타임을 결정적으로 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인과관계를 충분히 따져서 개헌을 비롯해 미래를 향한 대응을 모색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