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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수 가사노동’은 최저가 경쟁 상품이 아니다
약 30년간 무임승차해왔던 ‘무보수 가사노동’은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리며 끝내 나의 일도 되었다. 엄마는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귀찮고 힘든 게 없어 보였는데, 이건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해도 해도 할 일이 생겨났으며, 열심히 해도 큰 변화는 없었지만 모른 척했을 땐 금세 표시가 났다. 맞벌이였지만 가사노동의 주역은 나였고, 남편은 조연에서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출산과 함께 일과 가정, 육아라는 세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또 엄마에게 손을 벌렸다. 육아도우미 도움을 받았다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라도 했겠지만, 엄마에게 드리는 용돈은 공식적인 노동으로 기록되지도 못했다. 온기가 있는 집에서 가족을 먹이고, 나가서 일과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사람을 돌보는 데에 엄청난 공짜노동이 녹아 있다는 걸, 그 혜택을 누리면서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최근 전 세계적으로 ‘무보수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 -
푸틴의 폭주, 더 위태로워진 세계
전설적인 체스 챔피언이자 러시아 정치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모스크바는 감시가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라 거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다’고 외치면 30초 안에 체포될 수 있다. 하지만 테러범들은 1시간 이상 공격을 계속한 후 차를 몰고 떠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모스크바 외곽의 공연장에서 최소 144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총격 테러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러시아가 테러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돌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는 포석일 것이라는 얘기다. 자작극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그런 의심을 살 만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연쇄 폭발 테러가 일어났을 때 푸틴 당시 총리는 체첸 반군을 테러 용의자로 지목하고 군을 동원해 체첸을 초토화했다. 이 일로 민심을 얻은 푸틴 총리는 이듬해 대통령이 되며 장기집권의 서막을 열었다. 시... -
투표 전 챙겨볼 윤석열 정부 2년 일지
한국갤럽의 3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부 견제 선거가 되기를 바라는 여론은 49%, 지원 선거이기를 바라는 응답은 40%로 나타났다. 윤 정권 조기 종식을 외치는 조국의 등장이 정권심판론에 불을 댕겼지만, 그 바탕에는 지난 2년간 국민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온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야당 악취가 심해도 코를 막고 투표장에 가서 심판투표를 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2년은 긴 시간이다. 투표소를 찾기 전에 다시 한번 돌아보자.2022년 3월20일.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광화문 이전 약속은 “시민 불편”을 이유로 파기했다. 이전 비용이 496억원이라고 했지만 야당은 1조원 이상 들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가 명분이었는데 윤 대통령은 2년째 신년 기자회견조차 하지 않았다. 역술인 천공이 연루됐다는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7월29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
연금 말고 코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압구정 현대 바로 사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비트코인 자산 내역을 올렸다. 개당 5600만원에 산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돌파하면서 20억원이던 평가액이 35억원으로 불어난 내용이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집도 없는 흙수저인 나한테 이런 날도 오네. 이번 사이클에 3억원 찍으면 퇴사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비트코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무용담과 함께 나도 한번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당 1억원까지 찍었다가 최근 조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투자 수요는 계속 몰리는 분위기다.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하며 제도권 자산시장과 가상자산시장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자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여기에 비트코인 공급이 줄어드는 반감기가 다가오면서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한때 은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도 유독... -
윤석열은 왜 이종섭을 해외로 내보냈을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 가운데 하나는 ‘공정과 상식’이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공정과 상식이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출범 2주년이 되지도 않은 이 정부 앞엔 국민의 상식과 법치의 원칙에서 벗어난 일들이 쌓여만 간다.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로 출국금지됐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고 내보냈다. 들끓는 비판에 대통령실은 “공수처의 부당한 출국금지와 조사 지연, 수사비밀 유출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수사 외압 의혹과 피의자 빼돌리기라는 문제의 핵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시도지만 어불성설이다.이 문제는 여당의 총선 악재로 부상했다. 민주당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 파동을 즐기던 국민의힘 후보들조차 용산을 향해 ‘결자해지’하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대목에서 궁... -
2000명일 필요도, 0명일 근거도 없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20일째에 접어들고,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의아한 점이 있다. ‘정부는 왜 이토록 급하게 매년 2000명씩 늘리겠다’는 것인지 ‘의사단체는 왜 한 명의 증원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인지 양측 입장 모두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정부와 의사단체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중증환자들의 호소와 남아 있는 의료진의 희생,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국민 전체의 피로감까지 생각하면 양쪽이 물러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지켜보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정부가 사태 장기화를 감수하고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우호적 여론이 힘이 됐을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대 정원을 10% 줄인 이후, 2020년 400명 증원을 시도했다 의사들의 반발에 무산됐던 점도 정부에는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서는 경험을 남기고 싶지 않은 계기가 됐을 것이다.... -
미국은 신정국가로 가나
난임 시술을 받는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소감은 “우리나라가 왜 저출생 국가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난임 병원에 다니는 동안 첫째 또는 둘째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여성들을 워낙 많이 봐서 하는 소리다. 이들은 시술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통, 좌절을 감내하면서 난임 시술을 되풀이한다. 아기를 원하지만 자연임신이 어려운 여성에게 의학적 해결책은 이것 하나이기 때문이다.난임 여성이 느끼는 간절함과 고통은 미국 앨라배마주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앨라배마주의 난임 여성들은 결정적인 난관을 하나 더 만났는데, 앞으로 주내에서 난임 시술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16일 앨라배마주 대법원이 ‘동결배아는 자궁 외 어린이이며 이를 폐기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후 대형병원인 앨라배마대학병원을 필두로 난임 치료를 잠정 중단하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어서다.현재 난임 병원에선 여성에게... -
이재명은 민주당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총선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까. 정권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총선이라면 대통령 지지율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여당을 지지해 정권에 힘을 실어줄지 아니면 야당을 키워서 정권을 심판하고 견제할지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 지지율×3’ 공식이 있다. 총선에서 여당 의석수는 대통령 지지율의 3배 정도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7%까지 상승했고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획득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수준이었고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었다.물론 대통령 지지율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2012년 19대 총선이 그 증거다. 집권 말기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총선 직전까지 20%대를 헤매고 있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를 출범시켰고, 비대위는 ... -
한국 남자축구만 문제가 아니다
멍한 밤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자는 가족까지 깨워서 함께 지켜본 경기였다. 황금세대가 총출동했으니 전반전이면 경기가 사실상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는 요르단이 아니라 마치 유럽의 어느 팀 같았다. 유효슈팅 0. 지난 7일 아시안컵 준결승전은 그렇게 끝났다. 허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해 뒤척였더니 날이 밝고 있었다. 이상했던 그날의 경기는 이제 의문이 하나씩 풀리고 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더선은 손흥민과 이강인 간 다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설마 했지만, 곧 사실로 확인됐다. 이른바 ‘핑퐁사태’다.어느 조직이나 갈등은 존재한다. 갈등은 조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단, 전제가 있다. 갈등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조직을 와해시키는 분열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요르단전 당시 이강인 선수가 의도적으로 손흥민 선수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진실은 경기장에 있었던 선수들만이 ... -
‘윤·한 갈등’에 투영된 검찰공화국의 퇴행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벌인 신구 권력 대결 1라운드는 허무하게 끝났다. 충돌 원인인 ‘김건희 디올백 수수’ 문제를 아무런 해법도 없이 봉합한 것이다. 남은 건 두 사람이 충돌했다는 사실과 윤 대통령이 평소 한 위원장에게 품었다는 각별한 애정과 각별한 후배 사랑을 초월하는 윤 대통령의 도저한 아내 사랑 정도다. 디올백 문제는 더 커졌다. 윤 대통령은 이번주 방송되는 KBS 신년 대담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사태가 정리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내는 함정 몰카의 피해자’라고 적당히 넘기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처음에는 대통령 부인이 몰카에 등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낯설고 당황스러워 ‘함정 몰카냐, 디올백 수수냐’ 양론이 일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함정 몰카지만 디올백 수수는 문제’라는 상식적이고 단순명료한 결론으로 여론의 갈래가 타졌다.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는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도 비단 이번 일뿐이었다면 여론의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