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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 [아침을 열며]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어느새 1년 하고도 몇달이 흘렀는데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맹렬하게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고 있었고, 핵심은 그 규모였다. 수백명 수준으로 시작한 추정치는 하루가 다르게 부풀었고, 급기야 발표 당일 오전 한 신문에 ‘2000명 증원’이라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그 기사를 보고 당시 담당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설마 2000명은 아니겠지. 이건 너무 무성의한 숫자잖아. 의사 증원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마치 무 자르듯 2000명으로 결정한다고? 어떤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게?” 하지만 나의 순진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지난해 2월6일, 정부는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정확히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나 역시 그 목표와 방향에는 동의했다. 문제는 2000명이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수치, 그리고 이를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몇몇 연구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정...

    2025.05.18 19:54

  • [아침을 열며]‘울분 사회’에 미래는 없다
    ‘울분 사회’에 미래는 없다

    한국 사회는 병들어 가라앉고 있다. 양적으로 성장이 멈춰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징후가 동시다발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위기를 진단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저출생과 고령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 같은 문제도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오래도록 방치한 결과다. 유아단계부터 청년, 노후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주기에 있어서 국민이 불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지표가 쉬지 않고 새롭게 등장한다.아이들은 점점 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높은 교육열이 한국의 고도성장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대입을 위한 사교육은 선을 넘어 멈출 줄 모른다.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7세 고시’와 더 좋은 영아 유치원에 가기 위한 ‘4세 고시’ 같은 용어가 등장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초등학교 2~3학년쯤 돼서 수학 선행에 뛰어들 준비가 된 아이라면 ‘생각하는 황소’ 수학학원에 들어가...

    2025.05.11 20:12

  • [아침을 열며]트럼프 100일, 13만명 추방이 성과라니
    트럼프 100일, 13만명 추방이 성과라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이 재집권하면 국내외 현안을 단시간 내에 해결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2초 안에 특별검사를 해고하겠다”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식이다. 2400시간이 흘러 지난달 29일 취임 100일째를 맞았지만 그가 끝낸 전쟁은 없다. 가자지구 공격을 재개한 이스라엘에 대해 미국이 압박 비슷한 것이라도 하고 있다는 소식조차 없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은 성과가 금세 나오지 않자 벌써 중재를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외교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이민자들과의 전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정부는 취임 100일 성과로 이민자 13만9000명을 추방했다는 통계를 내놨는데 서울 인구와 비교하면 종로구 주민 전체를 쫓아낸 셈이다.미 정부는 강력범죄 전과자를 골라서 추방한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은 하루아침에 멀쩡한 가족이 생이별하거나 합법적 체류자...

    2025.05.04 20:26

  • [아침을 열며]한덕수의 출마를 권한다
    한덕수의 출마를 권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가 임박했다. 국민의힘도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지난 26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4자 토론의 ‘진짜 주인공’도 한덕수였다. 모든 후보가 그와의 단일화를 약속하며 러브콜을 보냈다.쿠데타 실패로 탄핵당한 정권의 2인자가 대선에 도전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행의 대행’에게 대선 관리를 맡기고 선수로 뛰겠다는 발상이다. 한덕수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지난 4일 “차기 대선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12·3 불법계엄 이후 내란 세력에게 이성과 상식을 기대하기 어렵다.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불출마를 점쳤다. 그의 과거를 근거로 들었다. 평생 양지만 쫓아다닌 그가 어차피 질 선거에 왜 나오냐는 것이다. 지금의 한덕수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양지는 고사하고 음지를 피해야 하는 처지다. 차기 정부에서 특검이 발동되면 그는 수사의 우선순위로 꼽힌다. 위헌으로 판명 ...

    2025.04.27 20:30

  • [아침을 열며]‘초고속 산불’이란 말장난
    ‘초고속 산불’이란 말장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브리핑룸에서 행정안전부, 산림청, 기상청 등이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안건은 ‘초고속 산불 대비 주민대피체계 개선방안’이다.안건에 대한 보도는 다음날(16일)로 예정된 터였다. 기자들을 하루 일찍 불러 뭘 하려는지 싶었다. 혹시나 역대 최악의 산림·재산·인명피해를 낸 영남지역 대형산불을 놓고 대응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있을까 싶었다.역시나 사과 따윈 없었다. 홍종완 행안부 사회재난실장은 “전력을 다해 대응했지만 기존의 대응체계로는 일부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잠시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반성인가 사과인가. 아니면 참사를 지켜본 ‘관전평’인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니. 혹여 인정해야 해서 분하고 억울한가.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우선 사과할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일 테다. 홍 실장의 말처럼, 전력을 다했는데 ‘대응체계’에 문제가 ...

    2025.04.20 20:18

  • [아침을 열며]한덕수가 상기시킨 것
    한덕수가 상기시킨 것

    지난 7일 경향신문은 오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이후 벌어질 헌재의 재판관 공백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헌법재판관 정원은 9명인데 현재 8명뿐이고 이 중 대통령 지명 몫인 문 권한대행, 이 재판관 2명이 퇴임해 ‘6인 체제’가 되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법조계 안팎의 우려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이미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재판관을 신속히 임명해 ‘7인 체제’라도 만들어야 헌재의 기본적인 기능은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 기사에는 문 권한대행, 이 재판관의 후임은 ‘당연히’ 오는 6월3일 선출될 차기 대통령이 임명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같은 날 한국일보도 비슷한 취지의 기사(열흘 뒤엔 다시 ‘6인 체제’…‘헌재 공백’ 반복 언제까지)를 내보냈다. 마은혁 재판관이 임명돼 7인 체제가 돼도 주요 사건 심리·선고가 쉽지 않으니 이참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2025.04.13 21:24

  • [아침을 열며]지브리풍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
    지브리풍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

    최근 카카오톡에서 업데이트된 친구 프로필을 보면 십중팔구는 챗GPT를 이용한 ‘지브리풍’ 이미지다. 대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 하나 정도 업데이트하는 편이 나을까 고민하다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멈췄다. 챗GPT가 생성하는 지브리풍 이미지는 따뜻한 분위기의 배경에 부드러운 선으로 귀엽게 인물을 묘사해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말 오픈AI가 ‘챗GPT-4o’에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추가하면서 가능해졌는데, 사용자들이 지브리풍 이미지에 열광하기 시작하며 유행이 됐다.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산업과 연구, 생활 전반에서 AI를 이용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됐다. 개인도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석하거나, 양식에 맞게 문서를 변형하는 등의 업무에 AI의 도움을 받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에 지브리풍 이미지의 열풍은 ‘AI 대중화’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챗GPT가 이미지 생성 기능...

    2025.04.06 20:34

  • [아침을 열며]트럼프의 거래 없는 거래
    트럼프의 거래 없는 거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직후 ‘멕시코·캐나다·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언론은 트럼프가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관세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당시 멕시코는 불법 이주민과 마약류 단속을 위해 군인 1만명을 접경 지역으로 파견하겠다고 약속했고, 캐나다도 국경 보안 강화에 13억캐나다달러를 쓰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관세 한 달 유예 결정을 이끌어냈다. 캐나다·멕시코는 거래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스타일을 고려해 협상 카드를 제시했고, 이들의 접근법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 후 벌어진 상황을 보면 트럼프와 두 나라 간에 거래가 성사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는 트럼프의 엄포대로 지난 4일 발효됐다. 이튿날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적용 상품에 대해선 4월2일까지 관세를 잠정 면제하기로 했지만 여기 포함되지 않는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의 50~6...

    2025.03.30 20:53

  • [아침을 열며]윤석열 쿠데타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점
    윤석열 쿠데타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점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부른다. 본인만이 아니라 형수, 제수 등 온 가족이 함께 4절까지 완창한다. 국민의례도 한다. 그는 시쳇말로 ‘태극기 보수’에 가깝다.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도 이승만이다. 2022년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힘 일부 강경파 의원은 대세인 윤석열이 아니라 최재형 캠프에 합류했다.그는 지난달 고교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국회 측 증인들의 진술은 가짜이고, 내란도 프레임이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집회에 가자고 했다. 최 전 의원은 “(12·3 비상계엄은)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고, 탄핵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보수의 주장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최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감사원장 임기 도중 원장직을 박차고 나와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 중립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

    2025.03.23 20:45

  • [아침을 열며]논두렁 시계와 논두렁 잔디
    논두렁 시계와 논두렁 잔디

    ‘논두렁’이 유명해진 데는 아무래도 ‘논두렁 시계’ 보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논두렁 시계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때부터 논두렁은 뭔가 ‘비루함’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왕왕 등장한다. 예컨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논두렁 잔디’ 논란이 그렇다.사실, 논두렁은 죄가 없다. 논두렁은 논과 논 사이의 경계이자 논에 물이 잘 머무를 수 있도록 지켜주는 ‘댐(둑)’ 역할을 한다. 논두렁을 빼놓고 쌀농사를 논할 수 없다. 바지런한 농부들은 농사에 앞서 정성껏 논두렁을 손보고 다진다. 어쩌다 논두렁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거나, 드렁허리가 요란하게 구멍을 내놓기라도 한다면 큰일난다. 논두렁을 잘 만들어주는 기계도 있다.어쩌다 쌀이 남아도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식량이 ‘안보’가 된 지금 쌀농사는 여전히 중요하다. 세종께선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 하셨다. 따르자면 농사도 물론이거니와 논두렁 역시 ‘신성’한 존재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농촌에 얼마의 예산을 쓰든 아깝...

    2025.03.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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