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아침을 열며
  • [아침을 열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난 주말 행복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보는 이로서는 이보다 더 마음 졸일 수 없었다. 치명적인 무릎 부상이 있었고, 경기 시작 1분 만에 내준 실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은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이들의 관련 기사에 격려의 댓글이 봇물을 이룬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그 와중에 생뚱맞아 보이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여자 배드민턴 단식 결승전에서 안세영이 중국의 천위페이를 꺾었다는 기사 댓글에는 “문재인, 배 아프겠네”가 달렸다. 한국 선수가 중국 선수를 이겼으니 친중 외교를 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배 아프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승리했다는 기사에는 “윤석열, 어떡하나”가 있었다.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를 이겼으니 친일 외교를 펴온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이 편치 않을 거라는 얘기다. 이런 종류의 댓글은 아시안게임 내내 이어졌다. 쓰기에 민망해 인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중국과 일본에 대한...

    2023.10.08 20:39

  • [아침을 열며] 민주당은 ‘선거 기계’가 될 태세가 되어 있나
    민주당은 ‘선거 기계’가 될 태세가 되어 있나

    정당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된 결사체다. 한국에서 권력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다. 고로 정당은 선거 승리가 본질적 목표인 조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정당들은 큰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넓히려 애쓴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긴다고 믿어서다. 지지층에 고정된 시선을 중도층·무당층으로 돌리는 것도 그맘때다. 다수 시민에게 가닿도록 메시지는 조정되고 정책은 용적을 넓힌다. 정당들의 정책은 상호 수렴된다. 선거정국이 주조하는 덧셈의 정치이고, 차이의 완충이다. 그러나 22대 총선을 6개월여 앞둔 지금, 이 상식은 깨져버렸다. 여야는 경쟁하듯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뺄셈 정치에 여념이 없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건 윤석열 정부다. 난데없이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를 끄집어내 이종찬 광복회장과 같은 보수적 민족주의자마저 등을 돌리게 한다.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하려는 박정훈 대령을 핍박해 군대에 갔다왔거나 갈 남성은 물론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2023.09.24 20:23

  • [아침을 열며] 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라
    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라

    지난 2월 이 지면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글을 썼다. 올해 초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가 공개된 이후 ‘마침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이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여기에 이번에도 개혁을 하지 못하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조바심도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응원하는 마음보다 조바심이 더 커졌다. 지난 2월에 칼럼을 쓸 때보다 남은 ‘오늘’은 줄어들고 ‘내일’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란 말로 자위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많이 늦었을 때’가 훨씬 많다. 국민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에서 “2041년에는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구체적인, 또 충격적인 결과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연금개혁에 속도가 확 붙을 줄 알았다. 실제로 국...

    2023.09.17 20:32

  • [아침을 열며] 위협받는 밥상, 지켜내는 밥상
    위협받는 밥상, 지켜내는 밥상

    최근 장을 보다가 농산물 가격에 깜짝 놀랐다. 200g 시금치 한 봉지가 8000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100g당 4000원대로 외국산 쇠고기보다 비쌌다. 올해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면서 농민들 표현대로 시금치가 ‘녹아내린’ 탓이다. 시금치만이 아니었다. 체감상 작년보다 샤인머스캣·복숭아 등은 50% 이상, 사과는 2배 이상 오르는 등 전반적으로 야채·과일 가격의 변동이 심했다. 이는 같은 비용을 지불해도 예년보다 질 낮은 밥상을 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밥상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선 대표적인 매운 소스인 스리랏차 소스가 품귀현상을 빚으며 가격이 10배까지 폭등했다. 가뭄으로 할라페뇨 고추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올해 가뭄과 폭염이 반복돼 올리브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폭등, 현지 슈퍼마켓에선 올리브유 도난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의 위기가 생산자를 넘어 이제는 소비자에게도 일상화되고 있는 ...

    2023.09.10 20:29

  • [아침을 열며] 정치에 큰 기대 말라, 그러나 지치지도 말라
    정치에 큰 기대 말라, 그러나 지치지도 말라

    미래를 주문했는데 과거가 배달돼 왔다. 태국 시민들은 분명 군부 정권을 끝내기 위해 전진당(MFP)에 표를 던졌는데, 석 달이나 시간을 끌다가 ‘짠’ 하고 나타난 정부는 도로 군부연합이었다. 전진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 외에는 공통점 하나 없는 나머지 정당들이 똘똘 뭉쳐 자기들끼리 연립정권을 꾸리는 바람에 결국 전진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고도 야당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5월 열린 태국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전진당의 승리는 여러모로 사건에 가까운 일이었다. 2020년 군부 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태국 시민들은 ‘세 손가락’ 시위가 무력 진압을 당하자 3년 가까이 마음속으로 칼을 갈아왔다. 너희가 힘으로 우리를 누르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인 투표로써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말이다. 이들은 그 각오를 행동에 옮겼다. 왕실과 군부가 지배해온 태국 사회에서 군주제 개혁과 징병제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건 전진당이 제1당이 되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

    2023.09.03 20:32

  • [아침을 열며] 이재명의 싸움과 민주당의 싸움은 분리해야 한다
    이재명의 싸움과 민주당의 싸움은 분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이 대선 패배 후 인천으로 가 초선 배지를 달고 여의도 정치에 입성해 제1야당 대표를 맡은 지 1년이 됐다. 평가가 이어지겠지만 이 대표가 받을 1년 성적표는 낙제 수준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제 민주당이 정부·여당 견제와 수권 능력 제시라는 제1야당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는 이는 적다. 일본이 수백만t의 원전 사고 오염수를 30년 넘게 바다로 흘려보내려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반대 한번 못한다. 독립 영웅들은 좌파 이력을 찾아 역사에서 지우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은 복권을 추진한다.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고위 당국자 하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제1야당의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민주당 내부를 보면 왜 그런지 알 만하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3월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에 이어 두 번째 기소다. 첫 번째 기소 때는 체포동의안을 부...

    2023.08.27 20:27

  • [아침을 열며] ‘책임회피’라는 유토피아
    ‘책임회피’라는 유토피아

    대학 다닐 때 큰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상대는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아버지와 함께 그를 찾았다.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당신은 상대에게 “자식을 잘못 기른 제 탓”이라며 무조건 고개를 숙였다. 민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마 아버지와 나란히 걷지 못하고 몇 발짝 떨어졌다. 뒤에서 본 아버지의 어깨는 왜소해 보였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말을 붙였다. “아버지….” 흘깃 뒤돌아본 아버지의 말은 간결했다. “됐다. 공부나 해라.” 꾸벅 인사드리고는 학교로 가는데 다시 돌아본 아버지의 등판은 참 넓어 보였다. 나로 인해 아버지가 남에게 고개 숙여야 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아리다. 아들은 그날 이후 더 이상의 일탈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과는 부모로서의 ‘도의적 책임’이었다. 도의적 책임이란 ‘개인의 양심이나 사회적 통념에 의한 윤리적인 책임’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설명한...

    2023.08.20 20:48

  • [아침을 열며] 2013년 윤석열 수사팀장, 2023년 박정훈 수사단장
    2013년 윤석열 수사팀장, 2023년 박정훈 수사단장

    10년 전 의식을 잃어 오늘 깨어난 사람이 신문을 본다면 세상이 잠들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고 대통령 이름 석 자에 또 한번 놀랄 것이다. ‘수사 외압’ ‘사건 축소’ ‘항명’을 소재로 한 사건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검찰에서 군으로 배경만 갈아끼운 채 재연되는 데서 익숙함을, 주요 등장인물의 위치가 정반대로 바뀐 데서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다. 폭로한 자가 폭로당하는 쪽으로, 눌림을 당한 자가 누르는 쪽으로 위치를 바꾸고, 비타협적이고 결연한 폭로가 이제는 대통령이 된 옛 폭로자 주변을 겨누는 모습에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을 것이다.2013년 검찰 특별수사팀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와 2023년 해병대 수사단의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는 윗선의 사건 축소 외압과 수사 책임자의 외압 거부라는 서사의 뼈대가 같다. 댓글 사건 수사 때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수사팀과 법무부가 대...

    2023.08.13 15:12

  • [아침을 열며] 지겨워도 또 해야 하는 이야기
    지겨워도 또 해야 하는 이야기

    이번 칼럼에는 아주 식상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또 ‘기후위기’다. 누군가는 ‘지겹다’는 생각부터 할지 모르겠다. 쓰는 나부터 그렇다. 그래도 또 써야겠다. 얼마 전 환경담당 기자가 쓴 기후위기 관련 기사를 보면서 ‘공포’를 느꼈다. 무력감도 따라왔다. 담당기자에게 물었다. “○○씨, 어떻게 쓰는 기사마다 다 호러물(공포물)이야. 아주 무서워 죽겠어.” 담당 기자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무서워요. 그런데 다음 기사는 더 무서워요.”소셜미디어(SNS)에서 본 어떤 ‘예언’도 떠오른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여름은,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아무리 지겹더라도 기후위기에 관해, 그 대책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지금 우리가 당면한 기후위기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경향신문이 보도한 기사 몇 건만 훑어봐도 확인이 된다.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27일 “올해 7월의 첫 3...

    2023.08.06 20:46

  • [아침을 열며] 오송 참사, 학교 비극 그리고 각자도생
    오송 참사, 학교 비극 그리고 각자도생

    올여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 키워드는 슬픔과 분노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슬픔과 더불어 사회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오송 참사의 경우 모든 당국이 짜기라도 한 듯 수많은 위험 신호를 무시했고, 그 결과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등 교사의 죽음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학교 담장을 넘어 전국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반면 사회적 비극과 참사를 지켜보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은 일반 시민들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오송 참사 발생 후 김영환 충북지사는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 “내가 현장에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 골든타임이 짧은 상황에서는 어떤 조치도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시감이 든다. 현 정권에서 유독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도 국내 폭우 피해가 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일정을 강행하면서 “내가 ...

    2023.07.31 03:0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