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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이후 외교·로비 과제
다음주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면 올 한 해 글로벌 정세에 드리운 가장 큰 불확실성의 장막이 걷히게 된다. 동시에 내년 1월 차기 미국 대통령 취임 전까지 누가 행정부 요직에 기용되고 정책 방향은 어떻게 달라질지를 놓고 각종 추측이 시작될 것이다.미국을 상대하는 한국 정부 부처와 기업들에는 물밑 외교와 로비의 시간이다. 벌써부터 워싱턴이 방미하는 각계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관건은 미국 신정부와의 네트워크를 다지고 한국 관련 정책 검토 과정에 우리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우선 차기 미국 행정부가 한반도의 안보 우려를 진지하게 접근하게 해야 한다. 민주·공화 양당의 새 정강정책에서 ‘북한 비핵화’ 언급이 빠졌지만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병력 파병 대가로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을 이전받는다면 우리가 직면한 안보 위협은 더욱 커진... -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미국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는 기간에 ‘세 명의 대통령 머그’(three presidents mug)라는 이름의 기념품을 하나 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중심으로 왼쪽은 빌 클린턴, 오른쪽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상이 그려진 머그컵이다.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횃불’을 넘긴 뒤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당의 단결을 촉구한 바이든의 선택을 기억해두기에 적격으로 보였다.클린턴(1993~2001), 오바마(2009~2017), 바이든(2021~2025년 1월 퇴임 예정). 탈냉전 이후 미국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 집권기마다 나는 길게는 약 4년, 짧게는 2년 이상씩 미국에서 생활했다. 세 차례 체류 시기 모두 경제적으로 불안했다. 클린턴 2기 후반기는 외환위기, 오바마 1기 초반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2년 전 특파원으로 부임한 때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한창이었다. 근 30년 동안 미국 경제의 위상에는 굴곡이 있... -
해리스가 외면 말아야 할 문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자칭 최대 치적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의 정치적 뿌리는 따지고 보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인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3개주를 공화당에 내주며 패배했다. 세계화와 이민 증가의 여파로 사회경제적 입지가 악화됐다고 느낀 대졸 이하 백인 노동자층이 민주당에 등 돌린 결과다.이후 민주당 캠프의 참모였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2년간 연구 끝에 2020년 노동자 임금 회복, 핵심 공급망 보호, 공공투자 확대 등을 우선시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카네기국제평화재단 보고서)을 제언했다. 그해 대선에서 3개 주를 되찾아온 바이든이 입법화한 구상의 모태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산업정책은 한편으로 철저한 국내 정치적 기획이었다.바이든의 재선 도전 포기 선언 이후 등판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여론조사 지지율, 후원금 모금 등에서 순항하며 민주당에 새 ... -
미국 대중 정책의 초당적 성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패한 대선 첫 TV토론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세계 각지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도 비상한 각오로 트럼프 2기 출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대미 무역흑자를 겨냥한 통상 압박,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리스크로 작용할 급격한 에너지 정책 전환 등 위험요인이 수두룩하다.그런데 트럼프가 재집권하든 아니면 바이든(민주당) 정부가 4년 더 연장되든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덜한 분야가 있다. 바로 대중국 정책이다. 첨단기술을 위시한 미국의 고강도 견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등 동맹국들은 미·중 긴장의 파고에 수시로 맞닥뜨릴 것이다.최근 공화·민주 진영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서 벌인 중국 정책 관련 지상 논쟁을 봐도 둘 다 추구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공화당 인사도 ... -
전략적 모호성은 답이 아니지만
11월 미국 대선에서 만에 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 등 주요국은 대외정책을 ‘리셋’해야 할지도 모른다. 임기가 3년 남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전략 설정·수행에 문제는 없었는지 짚어봐야 하는 까닭이다. 최근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나 한·러관계에 관한 대통령의 언급 등을 보면 정부도 그런 작업을 하는 것 같지만, 이왕이면 근본적인 성찰까지 나아가기를 바란다.현 정부 외교기조의 가장 큰 특징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중국 견제가 초점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꺼이 동참했고,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 미국이 바라던 한·미·일 삼각공조를 완성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전략경쟁 고조로 인해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와해되고 블록화가 심화되고 있다. 모호성에 기대어 숨어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닌 시대이다. 북핵 위협 고도화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필요하고, 주요 7개국(G7) 진입을 꿈꾸는 나라라면 첨예한... -
방위비 분담금, 그 너머의 문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첫 회의가 지난달 23~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렸다. 현재 적용되는 11차 SMA 협정 만료까지 20개월가량 남은 상황에서 차기 협상을 개시한 것은 ‘트럼프 리스크’ 대비 차원이 크다. 재임 시절 분담금 5배 증액을 압박하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시사한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조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이 호락호락 넘어갈 것으로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첫 회의를 앞두고 미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공정하고 공평한 결과”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분담금 인상 요구를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2021년 11차 SMA에서 한국의 2021년 분담금은 역대 두번째로 높은 13.9% 올랐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4년간 매해 국방비 증가율을 연동해 분담금을 인상하기로 하는 악수를 뒀다. 이는 이번 협상에서 한국에 족쇄가 될 수 있다. 11월 미 대선 전에 협상을 매듭짓고 싶은 한국과 달리 미국... -
미국, 다양성 포기하진 않았다
한 달여 전쯤 워싱턴에서 차를 운전해 귀가하던 중 뒤에서 오는 대형 밴에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해 차량 운전자와 내게 이것저것 묻고는 사고 경위를 적은 리포트를 건넸다. 경찰의 도움으로 사고 피해 수습을 위한 첫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리포트 작성자란에 적힌 경찰관의 이름이 한국 성씨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일말의 반가움도 느꼈다.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가 한국계인 경찰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은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소수자의 얼굴’을 한 미국 경찰을 대하면서 법 집행기관의 다양성 확보가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숙원 과제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흑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처우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인종 갈등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문제다. 경찰 조직이 다양성의 외피를 두른다고 단번에 해결될 리는 없다. 직원 훈련과 조직문화 개선, 나아가 인종 불평등과 범죄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노력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그... -
북·일, 북·미 그리고 한국
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일본과의 대화 의향을 시사하자 미국 정부는 ‘어떤 종류의 관여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공들인 한·미·일 3국 대북 공조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원론적인 지지에 가까웠다.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한·미와 대화 생각이 없다는 북한이 일본에는 열려 있다고 한 것은 다분히 3자 간 틈을 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선 일말의 경계심마저 묻어났다. 외교부는 북·일 접촉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김여정 담화가 전날 한·쿠바 수교 발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크다는 인식도 내비쳤다.북·일 정상이 마주 앉기까지는 걸림돌이 상당히 많다. 납치 문제와 북한 핵·미사일 해법에서 양측의 간극은 매우 크다. 일본 입장에서도 대북 제재와 북·러 군사협력이라는 국제안보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상은 부담스러운 일이다.그런데... -
짐 싸는 교민이 늘어가는 이유
“한국 사람은 세 명 귀국하면 한 명 정도 들어오는 것 같아요.”중국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인 왕징(望京)의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 얘기다. 베이징 한인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한인 숫자는 점점 줄고, 주 고객층을 잃은 상인들도 울상이다. 상인들은 “ 한국인만 바라봐서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실제 생업을 접고 짐을 싸는 이들이 적지 않다.베이징의 한인 숫자가 줄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중국이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최대 10만명을 넘어섰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6만명 이상이 거주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까지는 3만~4만명, 팬데믹 기간에는 1만~2만명으로 추산했다. 한인사회에서는 현재 교민 수를 1만명 이하로 본다.교민 감소 추이는 재외국민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재외동포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 -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처방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수시로 민주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바이드노믹스’ 홍보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날을 세우는 게 재선 전략으로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1·6 의회 폭동 3주년을 회고하며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제물로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을 기소한 “바이든이야말로 민주주의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미 역사상 최초로 대선 결과에 불복,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의 근간인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방해했던 그다.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하지만 적잖은 수의 미국 유권자들이 그의 논리를 수긍한다.진영에 따라 민주주의 개념조차 ‘경합’을 벌이고, 양측 사이에 접점은 거의 없다.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는 여기에서도 확인된다.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2023년 9월 펴낸 <Tyranny of the Minority>(소수의 폭정)에서 트럼프 집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