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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창작의 미래
  • [창작의 미래] ‘장르 문법’의 쓸모
    ‘장르 문법’의 쓸모

    컴퓨터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시드 마이어다(너무 쉬웠나).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란 게임도 있다. “기존의 서사가 플레이어를 ‘해적!’에 몰입하게 하는 열쇠였다. 흰 셔츠에 화려한 허리띠를 두른 사람이 주인공이고 검은색 롱코트에 안대를 한 사람은 악당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시드 마이어는 자서전에서 이것을 “문화적 지름길”이라고 불렀다.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다. 문화적 지름길은 게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드라마와 웹툰과 웹소설 등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즐겨 쓰인다. 업계에서는 이를 ‘장르 문법’이라고 부른다. 문화적 지름길, 장르 문법 등 무어라 부르건 이 방법은 너무나 쓸모 있기 때문에, 창작자들은 옛날부터 이걸 사용했다. 예를 들어, 중국 전통 연극에서는 얼굴을 어떤 색깔로 칠하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드러난다고 한다. 하얀색은 조조, 붉은색은 관우 같은 성격. 감상자는 등장인물의 색깔만 보고도 인물을 알아차린다. 오페...

    2023.03.09 03:00

  • [창작의 미래] 창작자들의 낯선 조명
    창작자들의 낯선 조명

    자고 일어나면 창작 환경이 바뀌어 있다. 이 숱한 변화 사이로 한 줄기 굵직한 흐름이 보인다. 어렴풋하게지만 말이다.최근 창작자끼리 화제는 챗GPT다. 어지간한 글쓰기는 인공지능이 해주는 시대다. 미드저니는 몇 가지 열쇳말만 주면 쓸 만한 그림을 뽑아낸다. 이 와중에 나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독가 K선생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다. 사실은 책의 제목이 눈에 밟혔다. 나도 넷플릭스 드라마를 1.5배속으로 돌려 본 일이 있다. 지은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이 현상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일지 말이다.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작품 감상”이라고 하지 않고 “콘텐츠 소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옛날에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감독을 챙기고 감독의 인터뷰도 챙겼는데, 이제는 창작자를 달걀을 낳는 닭처럼 생각한다”는 지적을, 지은이는 다른 글에서 재인용했다. 어디 영화...

    2023.02.09 03:00

  • [창작의 미래] 뿌리 있는 오늘날의 복수극
    뿌리 있는 오늘날의 복수극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복수 이야기를 좋아한다. 복수의 플롯에는 고대 서사시부터 최근의 웹소설과 드라마까지 일관된 이야기 틀이 있다. 오늘날의 사이다 복수극도 복수 이야기의 오랜 전통에서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죽을 고생을 겪은 후, 고향 섬 이타카에 돌아간다. “많은 일을 겪은” 오디세우스의 용모는 변했다. 아내 페넬로페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거지꼴을 한 채,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기 집을 파먹고 있는” 수십 명의 오만한 구혼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사마천의 <사기>는 동양의 고전이다. ‘자객열전’에는 예양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섬기던 주군이 죽은 후 자기 자신도 적에게 체포당한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셈이다. 예양은 그래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살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피부도 목소리도...

    2023.01.12 03:00

  • [창작의 미래] 이야기는 죄가 없다
    이야기는 죄가 없다

    이야기는 세계관의 반영이다. 세계에 대한 해석이 들어간다. 소설가 포스터의 유명한 정리를 응용해보자. “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은 스토리다. “왕이 죽었고, 왕비가 슬퍼했고, 그래서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해석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왕이 죽었고, 왕비가 기뻐서 웃다가, 숨이 넘어가서 죽었다.” 같은 스토리의 다른 플롯이다. 해석이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 왕의 죽음에 왕비가 웃음을 터뜨리는 세계는 어둡고 비뚤어진 곳이다.서사시와 고대 비극의 시대에는 주인공은 그의 능력 때문에 성공하고 또한 같은 능력 때문에 몰락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푸는 솜씨 덕분에 왕이 되었으나, 자기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몰락하였다. 메데이아는 가족도 저버리는 강한 기개로 이아손의 왕비가 되었으나,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죽였다. 사마천의 <사기>나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같은 옛 역사책을 보면, 신화가 아닌...

    2022.12.15 03:00

  • [창작의 미래] 쉬운 것이 어려워졌다
    쉬운 것이 어려워졌다

    단테의 <신곡>을 둘러싼 의문. 움베르토 에코는 어느 강연에서 “옛날 중세 사람들도 <신곡>의 ‘천국편’이 재미없었을까” 물었다. 현대인이 보기에 ‘지옥편’은 흥미진진한데 ‘천국편’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사람들은 ‘천국편’도 재미있었으리라”는 것이 에코 선생의 결론이다. 명색이 중세 학자니 다른 결론을 내기도 어려웠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만.19세기 말 미국에서 온 호레이쇼 뉴턴 앨런은 <조선 견문록>을 썼다. 당시 지배층 엘리트(우리 식으로 ‘양반’이라 부른다)에게 조선의 볼거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양반은 ‘학춤’ 공연을 보여주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었다”고 앨런은 썼다. 선교사에 의사에 외교관에 브로커까지, 인생이 심심할 틈 없던 앨런이니 학춤 공연이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 한국 사람이 보면 학춤이 재미있을까? 대답은 피하겠다.나중 사람이 보기에 재미있는 볼거리는 옛날 사람이 보기...

    2022.11.17 03:00

  • [창작의 미래] 우리는 왜 창작을 하는가
    우리는 왜 창작을 하는가

    첫번째 이야기.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거대한 돔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도시국가 피렌체가 돔을 짓자고 결정할 당시만 해도 돔을 지을 건축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이디어부터 던진 셈이다. 마침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 옛날 로마 시대의 유적을 연구해 돔 짓는 법을 연구한 터라, 돔 건설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천재라는 명예를 누렸다.아이디어 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말로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다. 명예는 누구에게 갔나? 피렌체 시의회가 아니라 브루넬레스키에게 돌아갔다. 물론 오랜 시간 노동자들의 수고 없이는 돔을 지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두번째 이야기.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아들 고종 임금이 왕이 되기 전에도 난초 치는 솜씨가 유명했지만, 임금의 아버지가 된 다음 그의 작품은 더욱 귀한 값을 받았다. 대원군은 훗날 청나라에 잡혀가는데, 이때 “조선 귀인의 작품”이라 하여 그림을 얻어가려는 청나라 수...

    2022.10.20 03:00

  • [창작의 미래] 창작의 미래 대 창작자의 미래
    창작의 미래 대 창작자의 미래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다. 미드저니라는 서비스가 요즘 화제다. 말 몇마디만 넣어주면 알아서 그림을 만들어 내놓기 때문이다. 그림 솜씨도 괜찮다. 오랜 시간 정성껏 그린 것처럼 보인다.얼마 전 손님이 물었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나도 미드저니를 쓰면 내가 바라는 그림을 만들 수 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을 싣던 신문과 잡지도 앞으로 이런 서비스를 쓸 것 같네요.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일감을 위협받지 않겠습니까?”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셔터스톡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이미 그림장이는 일감에 타격을 받았습니다. 매체 대부분이 플랫폼에서 사진을 가져다 쓰죠.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삽화를 발주하지 않고 말이에요(나도 한때는 삽화 쪽이 짭짤한 수입원이었죠).”셔터스톡과 코르비스 등 사진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이 있다. 낱말 몇 개만 입력하면 적절한 사진을 골라준다. 무료로 서비스하기도 하고 돈을 조금 받기도 한다. 물론 그림작가에게 일을 맡기...

    2022.09.22 03:00

  • [창작의 미래] 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언제나 그렇듯 잠잠할 날 없는 인터넷이다. ‘사흘’이라는 단어를 보고 “ ‘4흘’이라고 안 써 헛갈린다”며 성난 사람, “명징하게 직조한”이라는 표현을 보고 “잘난 체한다”며 성난 사람,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 “사과한다더니 뭐가 심심하냐”고 성난 사람의 이야기가 입길에 오른다. 세상이 변한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식하다’고 투덜대는 분도 있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그렇진 않다. 문맹률은 낮고 교육수준은 높다. 각종 지표는 사람들이 갈수록 유식하다는 증거다. 요즘 사람이 옛날보다 어휘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나는 달갑지 않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정치와 영어>라는 글이 있다. “익히 보아온 비유는 사용하지 말라”거나 “외래어나 전문 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쓰지 말라”거나 하는, 눈길 끄는 원칙이 나온다. 우리글 우리말에 비추어도 맞는 말씀 같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귀는 “깊이 사과한다”로...

    2022.08.25 03:00

  • [창작의 미래] 돈과 권력이 된 ‘유명함’
    돈과 권력이 된 ‘유명함’

    사회의 변화와 창작의 미래에 대해 나는 오늘 네 가지 입장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는 “누구나 15분씩은 유명해질 사회가 온다”는 유명한 말이다. 20세기 후반의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이 한 말이라고 우리는 기억한다. 이 변화는 바람직할까, 바람직하지 않을까.발터 베냐민이라면 반겼을 것 같다. 우리가 살펴볼 두번째 입장이다. 베냐민은 20세기 초반의 독일 지식인인데 예술의 민주주의를 꿈꿨다. 누구나 15분씩 유명해진다면 작가도 더는 뻐기지 못하고 독자도 주눅들지 않을 터이다.반면 창작으로 먹고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닥 반가운 변화는 아니다. 세번째로 살펴볼 것은 책 <콘텐츠의 미래>에 실린 입장이다. 미국의 경영학 교수 바라트 아난드가 몇 해 전에 쓴 책인데, 내가 이 칼럼에서도 몇 차례 초들었다. 요컨대 21세기의 개인 창작자는 창작물로 먹고살기는 글렀으니 창작을 통해 몸값을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다. 그런 다음에는 높은 몸값을 ...

    2022.07.28 03:00

  • [창작의 미래] 창작과 감상, 그리고 이익공유
    창작과 감상, 그리고 이익공유

    창작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나는 지금 그리스 신화, 발터 베냐민의 이론, 웹3.0 등을 한 줄로 꿰듯 생각해 본다. <스토리, 꼭 그래야 할까?>라는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은이 문아름과 양혜석은 웹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다.두 가지 사실이 눈에 띄는 책이다. 하나는 기존의 작법서를 아주 많이 읽고 충분히 소화한 다음 정리해놓았다는 점. 기성 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하나는 이 책이 무척 친절하다는 점이다. 처음 작품을 쓰는 작가 지망생에게 용기를 준다. 그런데 눈 밝은 독자님은 알아차리셨을 터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서로 창과 방패같이 부딪치는 상황을.옛날 작법서는 친절하지 않았다. 작법서란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를 위해 쓰는 책인데, 옛날 창작자들은 서로 까칠했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상처 받는 말을 들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참 힘들어 할 때 헤밍웨이가 일부러 조롱하는 시를 보내 약올린 일은 악명 높다. 반면 독...

    2022.06.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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