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은 말로는 창작의 미래를 논하지만 마음은 종이만화, 종이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나를 걱정해준 친구가 얼마전 흥미로운 글을 보냈다.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해도 이른바 ‘숏폼교양’처럼 주제를 넓고 얕게 다루는 책은 잘 팔린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마음씀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창작물은 플랫폼과 작가의 셈법이 엇갈린다”고 답했다. 플랫폼과 창작자, 둘의 이해관계가 부딪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쪽이 착취를 당하고 다른 한쪽이 폭리를 취하는 관계가 아니다. 작가가 잘돼야 플랫폼도 좋다. 플랫폼이 망하면 작가도 굶는다. 하지만 둘의 이해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브랜드 구축이라는 문제가 특히 그렇다. 플랫폼은 플랫폼의 성격에 맞는 작품을, 작가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작품을 원한다.옛날에도 그랬다. 교황청이 창작자 미켈란젤로한테 창작물 ‘최후의 심판’을 의뢰했다. 클라이언트의 바람은 좋은 작품을 납품받아 시스티나 예배당이라는...
2020.11.16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