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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윤석열 죽이기’
“‘가장 젊은 선거구’라는 특징 하나 보고 화성을에 뛰어든 이준석 대표의 도전은 실패가 예정된 객기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 운동 초기 1위를 달린 공영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 이상이었다. 한 달여 만에 이 격차를 따라잡은 비결은 두고두고 들여다볼 만한 연구 대상이다.”한국일보 기자 송용창이 총선 직후 칼럼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준석의 지역맞춤형 공약, 주민밀착형 행보, 정치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했는데,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 칼럼은 성공의 정치적 맥락은 다루지 않았기에 그걸 좀 보완해보자. 내 주장은 이준석의 당선은 8할이 대통령 윤석열 덕분이었으며, 이는 현 한국 정치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다른 기사에서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3040 국민의힘 낙선자’들이 여당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 건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윤석열의 국정 운영이다. “저 같은 피라미나 한동훈 위원장이 아무리 물질... -
왜 ‘윤석열 타도’를 외치는가?
‘윤석열 퇴진’ ‘윤석열 해고’ ‘윤석열 탄핵’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타도’ ‘윤석열 정권 타도’ ‘윤석열 타도’ 등등.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외쳐진 정치 구호들일 게다. 대통령 윤석열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민주화 이전에 자주 듣거나 생각했던 ‘타도’라는 단어를 역주행 유행을 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점에서 말이다. 타도의 국어사전 정의는 “어떤 대상이나 세력을 쳐서 거꾸러뜨림”이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야권과 야권 지지자들은 출범한 지 만 2년도 안 된 정권 또는 대통령을 쳐서 거꾸러뜨리겠다는 걸까? 이들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자.“‘2기 촛불정부를 누가 만드느냐’ 했을 때 지금 이재명 말고는 누가 만들겠어요. 괜히 돌려가면서 말할 필요가 없어요. 까놓고 얘기하면 2기 촛불정부의 조기 수립이라는 이야기는 윤석열을 빨리 끌어내리고 이재명을 대안으로 다음 정부를 빨리 만들자는 얘기거든요.”3월14일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이 오마이T... -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민주당”을 위해
“민주당은 (…) 박용진 같은 ‘우수의원’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최하위 점수를 주는 등 ‘비명 제거’에 나섬으로써 대선 논쟁이 애당초 쇄신이 아니라 이재명의 향후 도전자 제거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경향신문 손호철 칼럼) “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 이재명 대표는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 생각해달라’고 했다.(…) ‘박용진’을 ‘정봉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민주당의 지향인가.”(한겨레 권태호 칼럼)지난 22일 아침 신문을 받아들고 이 두 칼럼을 읽으면서 픽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는 이 두 칼럼의 내용에 100% 동의한다. 그렇다면 분노해야 마땅할 일에 왜 웃음이 나오는가?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은 사실상 ‘공천 코미디’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태가 그렇다는 것이다.이 코미디의 묘미는 추악한 각자도생이 전혀 불필요한 상황에... -
왜 정치는 증오·혐오에 미쳐 돌아가나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정치권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치 근처에 얼씬거려선 안 된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실천하는 세계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게 양분된 세계가 우리 현실이다.윌 로저스라는 미국 코미디언이 오래전 그렇게 양분된 세계의 핵심을 건드리는 한마디를 남겼다. “선거에서 최고의 사람이 선출되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은 출마를 하지 않는다.” 영국 정치학자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자신을 정치학자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대개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왜 그렇게 끔찍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걸까요?”우리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이미 예비된 답을 갖고 있다. “구조와 상황이 문제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타락하기 쉽다.” 개인보다는 상황이... -
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1961년 4월17일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장비도 허술한 쿠바인 1400여명이 쿠바 피그스만 해안에 상륙했다. 이들은 미국에 망명 중인 반(反)카스트로 세력으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미 해군·공군·CIA의 지원을 받아 나선 것이었지만, 상륙 이틀 만에 쿠바군에 진압당하고 말았다. 참담한 실패 후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내가 어쩌다 그런 어리석은 계획을 추진했을까”라고 한탄했다.이 사건에 자극을 받은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어빙 재니스는 훗날 어떻게 자타가 인정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면서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재니스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정의하면서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크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 -
‘한강의 기적’ 축복과 저주
서울에 살면서 지방을 찾는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사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지방 사람은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긴 하지만, 내심 “그럼 네가 내려와서 살아봐라!”라고 말해주고 싶어한다. 근데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법칙인가 보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가 남긴 다음 명언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시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실은 그가 시골이 가장 좋아지는 것은 도시에서 시골에 관해 배우고 있을 때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선거가 다가오면 거의 예외 없이 벌이는 이벤트가 ‘서민 코스프레’와 더불어 ‘공동체 예찬 쇼’다. ‘서민 코스프레’는 위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공동체 예찬 쇼’는 그럴 위험 없이 비교적 안전하게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예찬하는 공동체는 오늘날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유권자 모두 똑같은 입장에서 가상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공동체 사랑을 동병상... -
‘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
(1) “한국의 지방선거 제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거대 양당에 의한, 거대 양당을 위한 지방선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아야 지방의원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지방의원이 주민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자의 눈치를 본다.”(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황해문화>, 2022년 가을)(2)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에서는 이른바 ‘지역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중략) 지역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대선 2차전’이니 하는 구호를 내걸지 않는다. 그런 구호는 중앙권력을 목적으로 하는 전국정당이 한다.”(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양준호, <황해문화>, 2022년 가을)(3) “정당에 대한 군사정부의 국가주의적 규정이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거대 양당의 패권 유지에 그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 대가로 우리의 지방정치는 중앙을 향한 ‘민원정치’가 ... -
‘양비론 혐오’가 ‘정치 개혁’을 죽인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으로 패배한 쪽의 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피바람 광풍을 여러 차례 겪었던 율곡은 나라가 망하겠다 싶어 양시·양비론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주변의 비난과 조롱만 받았다. 조선이 율곡이 죽은 지 8년 만에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재앙에 처하게 된 건 오직 ‘반대편 죽이기’에 국력을 탕진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양비론에 대한 비난과 조롱은 지금도 여전하다. 포털에서 ‘양비론’을 검색해보시라. 압도적으로 양비론에 대해 비판적 기사들이 많다. 기사 댓글의 거친 표현까지 감안하면 ‘양비론 혐오’가 흘러넘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진보 논객들의 대표적인 양비론 비판 4개만 감상해보자.양비론 자체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①양비론은 진영논리보다 더 해악이 크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어느 한쪽이 잘못했다면 그쪽을 비판해야 한다. 그게 시시비비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언론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성한용, 2015년 12월)②지금... -
우리는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원하나
교육경제학을 연구하는 한밭대 교수 남기곤은 2018년 ‘경제학 연구’라는 학술지에 “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NURI) 사업’은 성공적이었는가?: 졸업생의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주 좋은 논문이다. 지난 9월13일 중앙일보는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최근 통계까지 곁들이면서 “ ‘지방대 취업률 높이기’ 역설…되레 수도권으로 이탈 늘렸다”라는 제목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이 기사에 따르면, 남기곤은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목표를 ‘취업률 향상’에 두는, 관행이 된 정책 방향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관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수하게 양성한 근로자일수록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버리는 역설을 지적하면서 “지방대에서 우수 인재를 양성하면 이들이 지역에 진출해 지역 발전이 촉진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이 기사가 소개한, 한국교육개발원(KE... -
지방을 더 이상 ‘식민지’로 묶어 두지 말라
“원정대의 지휘권을 평범한 능력을 가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출중한 두 사람에게 반씩 나누어 맡기는 것보다 더 낫다.” 500년 전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 이후 상식처럼 통용된 이 원칙이 새만금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5인 공동위원장’ 체제와 이에 따른 ‘컨트롤타워 부재’가 새만금 잼버리 대회 파행 및 부실 운영의 최대 이유가 되었으니 말이다.그런데 ‘환경감시’를 제1의 존재 근거로 삼는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잼버리 대회의 실패 조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시인 김택근은 8월12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새만금 지역 인근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쏟아낸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이상한 것은 수만명이 온다는 국제행사가 코앞인데 언론들이 조용하더라고. 다른 국제행사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가. 시시콜콜 들춰내고 부풀리고. 그런데 새만금은 달랐어. 결국 이 지경이 된 거야. 아무도 챙기지 않았지. 그 누구도 와보지 않은 거야.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