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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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탈석탄과 탈축산을 함께 말하는 이유

    탈석탄과 탈축산을 함께 말하는 이유

    서로 다른 운동이 만나는 순간을 눈여겨보려 한다.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함께 떠올리게 만든 책은 <짐을 끄는 짐승들>이었다. 이 책의 작가 슈나우라 테일러는 질문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동물산업 곳곳에 장애를 가진 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한 동물의 몸이 오늘날 미국에서 장애를 가진 몸과 마음이 억압당하는 방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만약 동물을 둘러싼 억압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언뜻 멀게 느껴지는 두 개의 다른 해방을 따로따로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쓰이는 중이다.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가 닮아 있고 뒤엉켜 있음을, 두 전선의 시급함과 중대함에 관해서 섣불리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음을 배운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권 운동과 기후위기 운동의 만남이다. 날씨와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날씨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태양처럼 가릴 수 없는 말들

    태양처럼 가릴 수 없는 말들

    특정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어린이들은 주섬주섬 자기 취향의 이미지를 들고 왔다. 사람일 수도 있었고 동물일 수도 있었고 물건일 수도 있었다. 어떤 사진을 골랐는지 서로 보여주지 않는 게 규칙이었다.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써보자고 제안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존 버거의 책 <글로 쓴 사진>과 비슷한 서술 방식을 연습하려는 의도였다. 글을 완성시킨 열두 살의 서영이가 사진을 가린 채 자기 문장을 읽어주었다. “부글부글 타오르는 불을 상상해봐. 불은 말이지, 아주 뜨겁고 때로는 위험한 거야. 무언가를 강요하는 듯한 색깔이기도 해. 왜 그런 거 있잖아. 엄마가 화나면 튀어나오는 색 말이야. 하늘에 그 색깔이 있는 거야. 그런 걸 ‘노을’이라고 불러. 지금 네 앞에는 귤이 놓여 있어. 귤을 만져봐. 그런 걸 둥근 모양이라고 ...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소의 해방일지

    소의 해방일지

    이따금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면 강한 햇볕이 정수리 위로 쏟아질 때처럼 어지럽다. 얼마나 찬란하거나 눈부신지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 나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놀라기 바쁘다. 너희 정말 이걸 해냈다고? 그럼 친구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듯이 웃는다. 그들의 삶은 직접 택한 고생들로 가득 차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편집자인데 허구한 날 서울과 강원도를 오간다. 전화를 걸면 인제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졸다가 받곤 하는 것이다. 거기엔 소들이 있다고 한다. 친구를 비롯한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들이 구조한 소들이다. 소를 왜 구조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소가 도랑에 빠지기라도 했나? 혹은 작년 여름처럼 홍수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갔나? 공장식 축산 소를 구조하는 변혁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기 혹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종 개량되고 사육되고 좁은 축사 안에 갇혀 살다가 도살된다. 어떤 소도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한다. 이것이 바...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슬픔을 모르는 수장들

    슬픔을 모르는 수장들

    국정감사와 함께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국정감사는 매년 국회의원들이 정부 부처와 기관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자리다. 국감의 대화는 일상적이거나 직관적이지 않다. 일반 시민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와 통계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시정된 것들이 우리 일상을 쥐락펴락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므로 시간 내서 국감 영상을 챙겨본다. 우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절박한 문제들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국정감사 영상에서 내가 감지하는 것은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날 선 어조로 공수를 주고받기는 하나 그들은 이런 자리에 익숙해보인다. 대부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채로 길고 긴 문답을 이어간다. 그것을 이성과 평정심 혹은 프로 의식이라는 말로 일축할 수 있다면 나도 좋겠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시각 국감에 모여앉은 저 어른들에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까? 텍스트와 숫자 말고, 얼굴과 장면 말이다. 어떤 정책을...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들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들

    힘든 일 생기면 우리집에 오라고 말하던 언니들이 있었다. 나는 10대 혹은 20대였고 집이 없었고 있더라도 너무 남루했고 어떤 밤에는 정말로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언니들 집에 찾아가면 밥을 해주거나 시켜서 줬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언니들 얘기를 들려줬다. 자고 가라며 이부자리를 펴주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 그때 언니들 되게 바빴을 텐데 어떻게 시간 냈을까. 언니들도 가난했는데 왜 가진 걸 나눠줬을까. 그저 나보다 조금 덜 가난했을 뿐인데. 이제는 30대가 된 내가 주위 여자들에게 말한다. 사는 거 너무 힘들면 우리집에 오라고. 그럼 폭력을 겪거나 이혼을 겪거나 고립을 겪거나 자기 자신을 겪다가 탈진한 친구들이 내 소파에 누워 쉰다. 친구들의 얼굴은 특별하고 슬프다. 징그럽게 똑똑한 애들이 별 고생을 다 하며 산다. 나 역시 스스로를 굴리고 돌보는 게 아직 벅차지만 때때로 어떻게든 시간을 빼서 그들과 함께 있는다. 먼저 태어난 여자들이 그러라고 알려주...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내가 가장 응원하는 주인공들

    내가 가장 응원하는 주인공들

    당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해 보겠다. 당신은 무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신의 가족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당신이 번 돈 중 얼마를 원가족에게 송금하는지. 어떤 사람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반말로 말을 건다. 당신은 새 가족에 편입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잃는다. 당신은 낯선 기후와 낯선 음식에 적응해야 한다. 낯선 한국어에 적응하는 일에 비하면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짐을 푼 곳에서 당신의 모국어는 배제된다. 당신은 며느리가 되고 높은 확률로 엄마가 된다. 아이는 주로 한국어만을 배운다.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당신 빼고 모두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 대해. 이 나라와 저 나라에 대해. 그리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더 잘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기가 어렵다. 주양육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건 당신의 커다란 슬픔 중 하나다. 당신은 노동한다. 집 안팎에서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지만 당신이 ...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우리는 쿠팡노동자의 친구다

    우리는 쿠팡노동자의 친구다

    덥다는 말을 예전엔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얼굴이 떠오르고 만다. 뙤약볕에서 농사 지어 작물을 보내주는 외할머니. 트럭 몰고 다니며 사시사철 야외에서 일했던 아빠. 여름에 더 많이 소비되는 축산 현장의 닭들, 폭염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기후난민들…. 내 더위의 무게와 그들 더위의 무게는 다르다. 더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그중 어떤 얼굴은 친구보다 더 자주 마주친다. 쿠팡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었던가. 화물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어느 동네에서나 본다. 그들이 밤낮으로 배송하는 물건은 물류센터로부터 왔다. 물류센터는 상품을 검수하고 분류하는 공간이다. 우리 집으로도 오고 당신 집으로도 갈 택배 상자 수만개를 그곳의 노동자들이 상차한다. 바로 그곳, 쿠팡 물류센터에 에어컨이 없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여름철 물류센터의 평균 온도는 30도에서 35도까지 올라간다. 전국에 1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눈 밝은 어느 독자를 생각하며

    눈 밝은 어느 독자를 생각하며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이야기 같은 거 되게 싫어한다고 성은씨는 말했다. 그 말은 시각장애인인 성은씨와 친구들 사이에서 농담거리가 된다. “마음의 눈으로 보지 그래?” 그들은 서로를 놀리고 웃는다. 성은씨는 앞도 뒤도 위아래도 볼 수 없지만 눈이 어둡다는 표현은 그에게 적절하지 않다. 성은씨의 세계는 오히려 사방이 환한 느낌에 더 가깝다. 그는 형광등처럼 하얗게 밝은 시야 속에서 살며 밤에도 불을 켜지 않고 집 안을 거닌다. 그에게 빛이란 소용없는 무엇이다. 하지만 전맹인으로 살아가는 성은씨도 매일의 날씨를 알아차리고 대화를 건넨다. “오늘은 피부에 볕이 많이 닿네요.” “오늘은 날이 흐리네요. 바람도 축축하고요.” 그건 날씨를 만지며 감각하는 사람의 언어다. 성은씨에게는 고도로 발달된 청각과 촉각이 있다. “아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농담하며 웃지만 사실 밤낮을 명확하게 감지한다. 그는 밤을 좋아한다. 밤은 소음이 줄어드는 시간이다. 눈을 감듯 귀를 감을...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그는 굶어가며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굶어가며 무엇을 말하는가

    이 지면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칼럼을 쓴 지 4주가 지났다. 원고 마감이란 언제나 생각보다 빨리 당도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그동안 단식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그곳을 지키는 활동가 미류가 밥을 굶은 지 42일이 지났다. 미류와 함께했던 이종걸은 39일 만에 의료진의 강권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다른 곳에서 노동권을 위해 단식하던 제빵기사 임종린은 단식 53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내가 먹은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다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흘렀을지 가늠한다. 타지에 머무느라 직접 찾아가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그들에 대해 찾아 읽고 쓴다. 다음 마감이 돌아올 땐 부디 그들이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면서. 세 사람이 목숨 걸고 단식하며 외친 구호는 당연하고 소박한 요청들이다. 당연한데 법이 아직 수호하지 않는 권리에 관한 이...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저항하는 몸들을 보라

    저항하는 몸들을 보라

    이 찬란한 봄, 밥알을 씹어 삼킬 때마다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있다. 미류와 이종걸이다. 그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한 지 15일째다. 실제로 만난 적 없어도 그들의 단식이 나와 상관있다는 걸 안다. 당신과도 상관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소수자 우대법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조건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는 생애 주기의 순리대로라면 모두가 한 번 이상 겪게 될 정체성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이다. 그 법이 아직 없어서 누군가는 곡기를 끊는다. 생사만큼이나 중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수한 시민의 절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은 거대 양당의 방치 속에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국회가 미루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미류와 이종걸의 ‘차별금지법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도 그런 움직임이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자신의 삶을 건다고,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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