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모두의 존엄을 위한 차별금지법
    모두의 존엄을 위한 차별금지법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어쩌면 생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젊거나 늙거나 어리다. 우리는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또 다른 성별일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어떤 국가의 어떤 지역에서 어떤 민족으로 태어나,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어떤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국적을 든든한 울타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신체를 가졌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장애인이며, 장애인이 아닌 누군가도 언제든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또한 언제든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 우리는 혼자 살거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 우리는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믿는다. 종교를 가질 수 있다. 각자의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자일 수 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며 다양한 형태로...

    2021.06.07 03:0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소를 먹지 않는 시민
    소를 먹지 않는 시민

    소의 해를 살아가며 질문한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소를 많이 먹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풍성한 대답을 해준 곳은 동물권 잡지 ‘물결’이다. 두루미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물결’은 이번 봄호에 소를 특별 주제로 다루며 식용우를 둘러싼 시스템과 태도를 다각적으로 탐구하는 글들을 선보인다. 그중 하나인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소 축산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축산업은 무역협정, 정부 정책, 기업에 의해 빠르게 대규모로 확산되어 왔다. 196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가입한 뒤 한국은 미국 거대 곡물 기업이 생산한 잉여농산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싼값에 들여온 그것들을 소진하기 위해 국내 사료산업이 생겨났다. 잉여농산물이란 대두와 옥수수다. 대부분 축산농가가 동물에게 먹이는 사료로 쓰인다. 미국이 과잉 생산한 곡물을 소진하기 위해 만든 사료산업 때문에 축산업도 함께 커졌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의 ‘축산진흥 4개년 계획’ ...

    2021.05.10 03:0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이토록 구체적인 가축 동물
    이토록 구체적인 가축 동물

    동물이 무엇인지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나에게 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나 길가의 비둘기였다. 혹은 영상 속 사자나 돌고래였다. 한편 치킨과 삼겹살과 사골 국밥이 동물이라는 것은 잘 실감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제품에 가깝게 느껴졌다. 양념된 닭다리살을 뜯을 때 닭의 구체적인 생애가 상상되지는 않았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볼 때 구체적인 돼지가 그려지지도 않았다. 사골 국물을 마시며 구체적인 소를 떠올리기란 더욱 어려웠다. 고기가 동물임을 실감하게 된 건 전염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거대한 규모로 축산업을 휩쓴 전염병들이 있었다.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이었다. 전염병이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의 살처분을 의미했다. 살처분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적혀 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날마다 언론을 채우는 숱한 난리 중 하나 같았다. 하지만 살처분 현장의 이미지를 보는 것은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사진과...

    2021.04.12 03:0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식습관이 날씨를 바꾼다
    식습관이 날씨를 바꾼다

    봄이 되었고 나는 모르는 얼굴들이 앉아 있는 교실로 들어간다. 글쓰기 수업 개강일이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본다. 누군가는 그들을 기후 세대라고 부른다. 다가올 기후 재난에 본격적인 피해를 입을 세대라고 예측해서다. 그것은 물론 내 인생과도 너무나 유관한 문제다. 처음 보는 10대들에게 나를 소개한다. 중요한 이야기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디스토피아를 극복할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나는 비밀 병기를 장전해주는 심정으로 미래 세대와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10대들은 투명 칸막이 패널 사이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다. 과제를 들여다보니 그들 중 한 명은 비건 지향 생활을 한다. 이 학교에서는 점심 시간에 채식 메뉴 선택이 가능하다. 열 명 중 한 명꼴로 비건(완전 채식) 식사를 하거나 페스코(생선, 알, 유제품 등은 먹는 채식) 식사를 한다. 그렇게 먹는 학생은 여전히 소수다...

    2021.03.15 03:0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시간과 물, 그리고 할머니에 대하여
    시간과 물, 그리고 할머니에 대하여

    친척들을 만나지 않은 채로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내내 미세 먼지가 많았어도 춥지는 않았다. 나의 외할머니 이존자씨라면 충청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가. 날이 푹햐.” 존자씨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푹하다’라는 말이 좋았다. 겨울날이 퍽 따뜻할 때 푹하다고 소리내어 말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 말을 얼굴 보고 들을 수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다 같이 모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존자씨는 살다 살다 이런 세상은 처음이라며 탄식했다. “입을 아주 틀어막는 세상이자녀.” 그게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임을 한발 늦게 알아듣고 나는 막 웃었다. “울애기, 많이 웃어.” 그는 아직도 나를 ‘아가’ 혹은 ‘울애기’라고 부른다. 세상은 세상이고 울애기는 참말로 기특하다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1940년대에 태어나 살아가는 그의 눈에 2020년대가 어떻게 보일지 헤아렸다. 내가 글쓰기 교사로 근무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에서는...

    2021.02.15 03:00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동물을 마주하는 얼굴에 대하여[플랫]
    동물을 마주하는 얼굴에 대하여

    새해부터 조금 더 긴 칼럼 지면이 주어졌다. 이 지면에 ‘날씨와 얼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검정치마의 노래 가사처럼 “나는 날씨 얘기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쉽게 편안할 수가 있는 그런 사이를 원했”으나 “마주 앉은 거리는 좁힐 수 없”다. 날씨는 더 이상 편안한 대화 주제가 아니며 우린 마스크를 쓰고도 2m씩 떨어져야 하는 세상에 산 지 1년째다. 얼굴을 가릴수록 더욱 더 얼굴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반갑고 아름답고 복잡하고 애처로운 얼굴들에 대해. 거기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 날씨의 지배를 받는 지구 생명체 중 특히 유심히 바라본 얼굴들에 대해 다루려 한다. 그 얼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사람으로서 쓸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의 얼굴 또한 마주하고 싶다.이 시절의 대면은 주로 화면을 통한 경험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오프라인에서 보는 얼굴보다 온라인에서...

    2021.01.28 16:43

  •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동물을 마주하는 얼굴에 대하여
    동물을 마주하는 얼굴에 대하여

    새해부터 조금 더 긴 칼럼 지면이 주어졌다. 이 지면에 ‘날씨와 얼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검정치마의 노래 가사처럼 “나는 날씨 얘기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쉽게 편안할 수가 있는 그런 사이를 원했”으나 “마주 앉은 거리는 좁힐 수 없”다. 날씨는 더 이상 편안한 대화 주제가 아니며 우린 마스크를 쓰고도 2m씩 떨어져야 하는 세상에 산 지 1년째다. 얼굴을 가릴수록 더욱 더 얼굴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반갑고 아름답고 복잡하고 애처로운 얼굴들에 대해. 거기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 날씨의 지배를 받는 지구 생명체 중 특히 유심히 바라본 얼굴들에 대해 다루려 한다. 그 얼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사람으로서 쓸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의 얼굴 또한 마주하고 싶다. 이 시절의 대면은 주로 화면을 통한 경험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오프라인에서 보는 얼굴보다 온라인에서 보는 얼굴의...

    2021.01.18 03:00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