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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우유에 담그는 이유
우연히 한 외국인이 요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선스튜를 만들고 있었는데, 생선을 다듬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생선을 우유에 잠시 담가두고 있었죠.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식초 등을 뿌려 중화시키거나 밀가루를 묻혀 비린내를 빨아들이는 우리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어떤 원리로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일까요?우유의 대부분은 물입니다. 여기에 소량의 지방과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우유의 지방은 인지질이라 불리는 물질이 둘러싸고 있어 물속에서도 작은 덩어리 형태로 잘 분산되어 있습니다. 인지질은 물과도 친하고 지방과도 친한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인지질이 없다면 우유는 금세 물과 지방으로 나뉘어버릴 것입니다.그런데 시판되는 우유는 지방 덩어리를 더 잘게 그리고 균일하게 쪼개는 이른바 균질화 공정을 거칩니다. 기존 대비 약 30% 수준인 100만분의 1m 정도 크기의 여러 덩어리로 나뉘는 것이죠. 그러면 맛과 ... -
우동국물과 캐러멜
산행 후 우연히 들른 한 분식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우동은 참 매력적인 요리입니다. 간단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쫄깃한 면발과 감칠맛 나는 국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그 어느 요리 못지않게 훌륭하기 때문입니다.먼저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들였습니다. 냉동면을 사용했겠지만, 그럼에도 면발의 탄력성은 아주 훌륭합니다. 이제는 국물을 맛볼 차례입니다. 우동 스푼으로 국물을 떠서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감칠맛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우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단맛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여러 맛과 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러한 단맛이었습니다.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독특한 우동국물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사장님은 그 비결을 상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대파, 무, 양파 등 야채를 큼직하게 썬 후에 오븐에서 10분 동안 노릇해질 때까지 굽고, 이를 다시마와 멸치로... -
돈가스에 습식 빵가루를 입히는 이유
처음 돈가스를 배울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빵가루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돈가스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밀가루, 계란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빵가루를 입힌 후 튀겨냅니다. 빵가루는 썰지 않은 커다란 식빵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 상태로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이때 빵가루의 크기와 모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것은 빵가루의 수분 함량입니다.돈가스를 비롯해 모든 튀김요리의 핵심은 겉바속촉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삭한 식감은 튀김의 가장 바깥을 둘러싼 튀김옷이 만들어냅니다. 튀김옷은 보통 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데, 이 반죽에 포함되어 있던 수분이 고온으로 튀기는 과정에서 증발하면서 튀김옷에 수많은 빈 공간들을 남기게 됩니다. 이를 다공성 구조라고 하죠. 우리가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바삭한 식감은 이 다공성 구조가 붕괴되면서 발생하는 청각적 그리고 촉각적 자극에 의한 것입니다.그런데 돈가스의 경우는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빵가루를 입힙니다. 왜냐하면 빵... -
염기성 식품은 몸에 좋은가
요리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글을 쓰다보니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산성보다는 염기성 식품이 몸에 더 좋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시중에는 염기성 또는 알칼리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식품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그만큼 염기성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산과 염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산과 염기는 물질을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입니다. 과학자들은 보통 물에 녹아 수소이온을 내놓으면 산, 수산화이온을 내놓으면 염기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먼저 산은 신맛이 나는 레몬·오렌지 등의 과일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물질인데, 황산처럼 아주 강한 산의 경우는 금속까지 녹일 정도로 자극적입니다. 그래서 산의 영어 단어인 acid는 ‘시큼한’ ‘날카로운’이란 뜻의 라틴어 acidus에서 유래했습니다.이에 대응되는 염기는 식품 그 자체에는 많이 들... -
아스파라거스를 기름에 볶는 이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스테이크용 등심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까지 좋아 계획에도 없는 구매를 하고 말았죠. 물론 스테이크 요리에 필요한 다른 식재료도 이것저것 구입했습니다.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매리네이드 만들기입니다. 매리네이드란 고기를 부드럽게 하거나 맛과 향을 가미하기 위해 재워두는 소스인데, 이 소스로 고기를 재우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오늘은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로즈메리를 잘 섞어 만들었습니다.이 매리네이드에 고기를 몇시간 동안 재워두면, 고기 안의 단백질 분해효소가 작용하면서 육질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해한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는데, 그러면 유해균의 증식은 억제되면서 숙성이 서서히 진행되게 됩니다.오일 베이스로 만드는 매리네이드는 향신료의 향을 고기에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목적이 ... -
육류를 숙성시키는 이유
요리를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맛있는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식재료의 성분과 조직이 변형되면서 원재료에는 없던 맛과 향이 만들어지고, 독특한 식감도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형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열에너지입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요리는 불을 사용해 완성하죠. 하지만 불이 없다고 해서 식재료의 변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대표적인 예로 발효가 있습니다.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식재료를 먹이로 삼아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배출한 물질을 요리에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비록 미생물에게는 배설물이지만 인간에게는 색다른 맛과 향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물질이 되는 셈이죠. 예를 들어서 알코올 발효는 발효과정에서 당류가 알코올로 변형된 것입니다.한편, 발효와 유사한 것으로 숙성(aging)이라 불리는 과정도 있습니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외부 미생물의 대사작용을 이용... -
맛있게 퍼트린다
얼마전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작은 국숫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5평 남짓한 규모에 메뉴도 매우 단출해서 잔치국수와 멸치 칼국수가 전부였습니다.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과연 장사가 잘될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뒤로하고, 우선 잔치국수 하나를 시켜보았습니다.드디어 등장한 잔치국수는 잔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푸짐한 양입니다. 잔치국수의 핵심은 감칠맛 나는 시원한 국물입니다. 보통은 멸치, 다시마, 말린 표고버섯 등을 끓는 물에 우려내어 육수를 만드는데, 멸치에는 이노신산, 다시마에는 글루탐산, 표고버섯에는 구아닐산과 같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유용한 성분들은 왜 재료 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국물로 확산되어 나오는 걸까요?확산이란 물질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멸치 육수를 예로 든다면, 멸치 안에 모여있던 물질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농도가 ... -
가공육이 먹음직스러운 이유
햄이나 소시지만큼 손쉬운 반찬거리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냥 삶거나 볶아도 맛있고 다른 야채들과 함께 조리하면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공육에는 식품첨가제들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아질산나트륨’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아질산나트륨은 지방의 산화와 유해한 세균의 번식을 막아 가공육의 보존기간을 늘리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보존제입니다. 이를 사용하지 않은 가공육은 유통기간이 10일 내외인 데 비해,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하면 30일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보다 안전한 식품 섭취와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죠. 그런데 다양한 종류의 식품보존제 중 굳이 아질산나트륨이 단골로 등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아질산나트륨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일부와 반응을 잘 일으킵니다. 그러면 고기의 단백질 구조가 더욱 치밀해집니다. 요리의 식감은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 물질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구조가 ... -
주방을 책임지는 금속
연휴에 일손이 모자란다며 긴급 지원요청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처가의 ‘돈카츠’ 매장에 도착해보니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고, 홀과 주방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돈카츠’를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손님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그런 것처럼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존재, 바로 스테인리스 스틸이란 금속입니다.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튀김기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 있습니다. 옆에 놓인 커다란 오븐도 그렇고, 제가 기대고 있는 싱크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천장에 설치된 환풍기 또한 자신이 스테인리스 스틸임을 자랑하는 상표가 떡하니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칼, 압력솥, 수저, 국자, 냄비 등 주방의 거의 모든 것이 이 은색의 광택 나는 금속제품입니다.그런데 ... -
꼭 기름으로 튀겨야 하나?
튀김을 하려면 먼저 식재료를 손질하고, 튀김옷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속이 깊은 용기에 기름을 담고 고온으로 가열한 후, 튀김옷을 입힌 식재료를 투입합니다. 과정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렇게 만든 튀김을 한입 베어 물면 그간의 노고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뒷정리입니다. 특히 남은 기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항상 고민입니다.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제품이 있습니다. ‘에어프라이어’인데요, 공기를 이용하는 튀김기란 뜻이지만, 사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그리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튀김은 식재료가 푹 담길 정도로 충분한 양의 기름을 이용해 고온에서 조리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어프라이어는 기름이 아니라 공기를 사용하니, 정의상으론 튀김기는 아닌 것이죠.하지만 그 기본 원리가 튀김기와 비슷하며, 결과물 또한 기름을 사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튀김기의 일종으로 점차 인정받는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에어프라이어는 2010년 베를린 국제가전제품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