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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탕이 더 감칠맛 나는 이유
길을 걷다가 진한 음식 향기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보니 분식집 앞 꼬치 어묵들이 뜨거운 육수에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깊게 우린 듯 먹어보지 않아도 감칠맛이 느껴질 정도로 깊은 향을 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를 비롯해 각종 채소가 더해지면서 시원한 맛도 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어느새 어묵 꼬치 몇 개를 시원한 국물과 함께 해치워버렸습니다.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어묵은 기원전 3세기경 중국의 진시황 시절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생선 요리를 좋아했으나 가시는 몹시 싫어해서, 요리를 먹다가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바로 처형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개발된 메뉴가 바로 생선살만 발라내어 둥글게 반죽한 어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탕의 형태로 끓여내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 어묵을 어환(魚丸)이라 부릅니다.이 요리가 일본으로 전래되어 초기에는 굽거나 찌는 형태의 가마보코로 발전하다가, 기름 생산이 급격히... -
볶음밥은 불맛과 손맛
정신없이 돈가스를 튀기다보니 어느새 휴식시간입니다. 보통은 이 시간을 이용해 직원들과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오늘은 제가 짬뽕 국물이 곁들여진 달걀볶음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달걀볶음밥은 7세기 초 수나라 황제인 양제(煬帝)에 의해 유명해졌다고 전해집니다. 수양제는 자신이 건설한 대운하를 따라 순행에 나섰다가 강소성 양주에 도착했을 때 이 요리를 처음 접했고,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순행을 떠날 때면 항상 이 요리를 즐겼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대운하를 따라 중국 각지로 퍼져나간 이 요리는 ‘양주볶음밥’으로 알려지게 되죠. 한편 이 요리의 또 다른 이름은 ‘쇄금반(碎金飯)’인데요, 노랗게 코팅된 밥알이 마치 금 부스러기로 밥을 지은 것 같다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그렇다면 달걀볶음밥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길래, 중국 전역을 호령했던 수양제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첫 번째 비결은 화력입니다. 요리는 식재료의 변화를 통해 맛과 향, 그리고 식감... -
떡인가 빵인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역사 안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파는 작은 매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정겨워 잠시 구경할 겸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작은 빵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어린 시절에 먹던 옛날 빵들이 많아 이것저것 골라 담는데, 문득 식빵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탕종’이란 큰 글씨가 쓰여 있는 식빵이었죠. 이 작은 빵집에서도 탕종을 보게 되다니 그만큼 탕종이 요즘 인기가 많기는 많나 봅니다.사실 탕종(湯種)이란 빵의 종류라기 보다는 빵을 만드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 60도 이상에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하루 정도 숙성시킨 후, 여기에 밀가루, 물, 효모를 추가하여 본 반죽을 만드는 방식을 말하죠. 한자로 탕(湯)은 뜨거운 물을 의미하고, 종(種)은 씨앗을 의미하는데, 뜨거운 물로 만든 반죽을 마치 씨앗처럼 본 반죽에 심어 키워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탕종을 만드는 이유... -
튀김 부스러기 전쟁
가족 모임을 위해 한 튀김(덴푸라) 전문점을 방문했습니다. 꽤 인기 있는 매장이라 오래전에 예약을 해두어야 하는 수고는 있지만, 가격도 맛도 서비스도 대만족입니다. 가족들 모두 튀김 애호가인지라, 자연스레 튀김 이야기로 꽃을 피웠는데요, 그러다 덴가스로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덴가스란 튀김을 할 때 떨어져나오는 작은 부스러기들을 말하는데, 우동이나 라멘 등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그러고 보니 제가 주로 요리하는 돈가스와는 조금 다른 상황입니다. 빵가루를 입히는 돈가스도 부스러기가 많지만 이를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입자가 너무 거칠고 딱딱하며, 기름도 많이 배어들기 때문입니다. 활용보다는 오히려 제거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지는데, 기름의 산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산패란 기름의 주성분인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분해되고, 이 분해된 물질들이 서로 반응하면서 기름의 품질이 저하되는 현상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열과 수분이지만, 튀김 부스러기들 또한 이 산패를 촉진한다고 알... -
생선을 우유에 담그는 이유
우연히 한 외국인이 요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선스튜를 만들고 있었는데, 생선을 다듬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생선을 우유에 잠시 담가두고 있었죠.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식초 등을 뿌려 중화시키거나 밀가루를 묻혀 비린내를 빨아들이는 우리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어떤 원리로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일까요?우유의 대부분은 물입니다. 여기에 소량의 지방과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우유의 지방은 인지질이라 불리는 물질이 둘러싸고 있어 물속에서도 작은 덩어리 형태로 잘 분산되어 있습니다. 인지질은 물과도 친하고 지방과도 친한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인지질이 없다면 우유는 금세 물과 지방으로 나뉘어버릴 것입니다.그런데 시판되는 우유는 지방 덩어리를 더 잘게 그리고 균일하게 쪼개는 이른바 균질화 공정을 거칩니다. 기존 대비 약 30% 수준인 100만분의 1m 정도 크기의 여러 덩어리로 나뉘는 것이죠. 그러면 맛과 ... -
우동국물과 캐러멜
산행 후 우연히 들른 한 분식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우동은 참 매력적인 요리입니다. 간단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쫄깃한 면발과 감칠맛 나는 국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그 어느 요리 못지않게 훌륭하기 때문입니다.먼저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들였습니다. 냉동면을 사용했겠지만, 그럼에도 면발의 탄력성은 아주 훌륭합니다. 이제는 국물을 맛볼 차례입니다. 우동 스푼으로 국물을 떠서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감칠맛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우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단맛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여러 맛과 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러한 단맛이었습니다.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독특한 우동국물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사장님은 그 비결을 상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대파, 무, 양파 등 야채를 큼직하게 썬 후에 오븐에서 10분 동안 노릇해질 때까지 굽고, 이를 다시마와 멸치로... -
돈가스에 습식 빵가루를 입히는 이유
처음 돈가스를 배울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빵가루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돈가스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밀가루, 계란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빵가루를 입힌 후 튀겨냅니다. 빵가루는 썰지 않은 커다란 식빵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 상태로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이때 빵가루의 크기와 모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것은 빵가루의 수분 함량입니다.돈가스를 비롯해 모든 튀김요리의 핵심은 겉바속촉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삭한 식감은 튀김의 가장 바깥을 둘러싼 튀김옷이 만들어냅니다. 튀김옷은 보통 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데, 이 반죽에 포함되어 있던 수분이 고온으로 튀기는 과정에서 증발하면서 튀김옷에 수많은 빈 공간들을 남기게 됩니다. 이를 다공성 구조라고 하죠. 우리가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바삭한 식감은 이 다공성 구조가 붕괴되면서 발생하는 청각적 그리고 촉각적 자극에 의한 것입니다.그런데 돈가스의 경우는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빵가루를 입힙니다. 왜냐하면 빵... -
염기성 식품은 몸에 좋은가
요리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글을 쓰다보니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산성보다는 염기성 식품이 몸에 더 좋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시중에는 염기성 또는 알칼리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식품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그만큼 염기성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산과 염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산과 염기는 물질을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입니다. 과학자들은 보통 물에 녹아 수소이온을 내놓으면 산, 수산화이온을 내놓으면 염기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먼저 산은 신맛이 나는 레몬·오렌지 등의 과일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물질인데, 황산처럼 아주 강한 산의 경우는 금속까지 녹일 정도로 자극적입니다. 그래서 산의 영어 단어인 acid는 ‘시큼한’ ‘날카로운’이란 뜻의 라틴어 acidus에서 유래했습니다.이에 대응되는 염기는 식품 그 자체에는 많이 들... -
아스파라거스를 기름에 볶는 이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스테이크용 등심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까지 좋아 계획에도 없는 구매를 하고 말았죠. 물론 스테이크 요리에 필요한 다른 식재료도 이것저것 구입했습니다.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매리네이드 만들기입니다. 매리네이드란 고기를 부드럽게 하거나 맛과 향을 가미하기 위해 재워두는 소스인데, 이 소스로 고기를 재우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오늘은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로즈메리를 잘 섞어 만들었습니다.이 매리네이드에 고기를 몇시간 동안 재워두면, 고기 안의 단백질 분해효소가 작용하면서 육질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해한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는데, 그러면 유해균의 증식은 억제되면서 숙성이 서서히 진행되게 됩니다.오일 베이스로 만드는 매리네이드는 향신료의 향을 고기에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목적이 ... -
육류를 숙성시키는 이유
요리를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맛있는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식재료의 성분과 조직이 변형되면서 원재료에는 없던 맛과 향이 만들어지고, 독특한 식감도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형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열에너지입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요리는 불을 사용해 완성하죠. 하지만 불이 없다고 해서 식재료의 변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대표적인 예로 발효가 있습니다.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식재료를 먹이로 삼아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배출한 물질을 요리에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비록 미생물에게는 배설물이지만 인간에게는 색다른 맛과 향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물질이 되는 셈이죠. 예를 들어서 알코올 발효는 발효과정에서 당류가 알코올로 변형된 것입니다.한편, 발효와 유사한 것으로 숙성(aging)이라 불리는 과정도 있습니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외부 미생물의 대사작용을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