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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야만과 무지의 시대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야만과 무지의 시대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의 위험을 고발한 <침묵의 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평생 바다를 연구하고 사랑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생태사상가였다. 카슨은 수려한 문체로 해박한 바다의 지식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에 담아냈다. 1963년 한 심포지엄의 개막 연설에서 카슨은 바다가 온갖 유독 폐기물을 던져버리는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개탄하며 “방사성폐기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행위”를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로 꼽았다. 이후 1972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과 이 협약에 대한 ‘1996년 의정서’로 방사성 물질의 해양 투기도 전면 금지되었다. 그러나 올봄이나 여름, 우리는 핵발전소 오염수의 바다 투기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카슨의 우려가 재현되려는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거르면 62개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할 수 있고 거르지 못하는 ...

    2023.03.06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한 옛날 모세가 이집트에 살고 있을 때 이야기. 어느 날 모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걸 보고 그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이집트 인근 ‘미디안’으로 달아나 남의 양 떼를 쳐주며 살았다. 한번은 양 떼를 치던 모세가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었다. 하도 놀라워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더니 이런 말이 들려왔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 떨기나무가 있는 곳은 모세가 양 떼를 치던 곳과 ‘다른’ 땅이었다. 그곳은 거룩한 땅, 곧 하느님께 따로 ‘떼어 놓은’ 곳으로 거기에 들어가려면 의식을 거쳐야 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고대 세계는 온갖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곳으로 가득했고 자연은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로 공경받았다. 근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급변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러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균질한 기하학적 공간으로 변했다. 세계의 수많은 거...

    2023.02.06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새해, 소소한 상을 차려보자
    새해, 소소한 상을 차려보자

    지난해 10월 초, 서강대학교 구내의 예수회 공동체에서 성북구 길음동의 한 수녀원으로 이사했다. 대학가에서 16년을 살다가 주택가로 옮겼으니 내겐 꽤 큰 변화다. 새로운 곳에 쪼그만 주방이 하나 있다. 주방을 보며, 이참에 요리를 좀 해볼까 생각했다. 소소한 상을 차려 사람을 부르고 담소하며 함께 먹는 모습을 그려보니 괜찮아 보인다. 지난해로 문을 연 지 5년이 지난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거기 들어서면 바로 카페 겸 식당 그리고 주방이다. 꿀잠에선 끼니때는 물론, 수시로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어 식당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밥을 함께 먹으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은 힘을 얻는다. 위험한 노동, 부당한 노동으로 자식과 남편을 잃은 유족들도 꿀잠의 밥심으로 긴 싸움을 이겨냈다.어설픈 상이지만 오붓한 행복199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의 예수회 공동체에 4년 정도 살면서 공부할 때, 돌아가며 저녁...

    2023.01.02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무한 책임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과 유가족의 ‘보상받을 권리’를 말한다. 책임은 대법원 판결까지 미뤄지고 생명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버티기 힘들면 ‘죄송한 마음’이라는 주어 없는 말로 넘어가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상식적인 물음에는 ‘언급이 부적절하다’로 비켜간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더 무책임하고 더 뻔뻔하다. 그들은 국민 안전에 무한 책임을 진다며 도로 위의 명백한 위험은 외면한다. 화물차 사고 사망자가 매년 700명에 이르고, 화물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생활비를 건진다. 2020년부터 올해 말까지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적용하는 현재의 안전운임제는 과속·과적·과로를 방지하여 도로의 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자는 제도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6월 파업을 중단하는 화물연대와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를 합의한 후 아...

    2022.12.05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때
    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때

    지난달 17일 경향신문 10면 상단에 “SPC 빵공장 노동자 끼임사 … 1주 전 비슷한 사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같은 면 바로 아래에는 “기재부 ‘형사처벌’ 빼자 중대재해법 힘빼기 노골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모순의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SPC 계열사 SPL에서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18일 밀양 한국화이바에서 추락으로, 19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지게차에 깔려, 20일 DL이앤씨 경기도 광주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추락으로, 21일 SGC이테크건설 경기도 안성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추락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DL이앤씨의 사망사고는 올해만 벌써 4번째다. 일하다 죽고 죽고 또 죽는 참혹한 현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엄격히 적용하고 개정한다면 강화하는 게 마땅하지만,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입맛대로 경영책임자의 처벌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추자는 법·시행령 개정 의견을 노동고용부에 전달했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

    2022.11.07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교육경쟁에 반대하다
    교육경쟁에 반대하다

    지난달 하순 기획재정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자유시장 경제의 핵심 개념인 ‘자유경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며 교육부에 시정 의견서를 전달했다. 학생들이 “경제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라지만,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교육부도 경제부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이 일조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재부 관료들과 현 정권이 자유경쟁을 얼마나 신봉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 규제 완화와 성과 중심의 경쟁 체제를 주장해온 인물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그렇다. ‘자유경쟁’은 자유와 경쟁을 구체화한다. 자유는 경쟁할 자유, 배타적 자기실현의 권리다. 경쟁은 자유로운 경쟁, 제약 없는 싸움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수십 번 반복한 자유가 “승자독식”이 아니라 ‘연대’를 동반한 자유라 해도 여기서 그건 좋은 말일 뿐이다. 자유경쟁은 연대를 밀어낸다.흔히, 경쟁은 인간의 불가피한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쟁은...

    2022.10.10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가을로 접어들며 무더위가 가니까 지내기는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가뭄과 호우 때나 반짝하는 기후에 관한 관심도 함께 가버릴까 걱정이다. 올해도 세계 곳곳이 혹독한 기후 재난에 시달렸다. 유럽과 중국은 가뭄, 파키스탄은 홍수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한국도 기상 관측 사상 최대라는 비가 서울과 중부 지방을 덮쳤다. 모두 ‘유례가 없는’ 규모였고, 이 불길한 수식어는 해마다 강도를 높여 등장할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대립 같은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기후위기의 국제적 공조를 어렵게 한다. 국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 정부에서는 탄소중립 ‘선언’이니 탄소중립위원회 ‘발족’이니 하며 담론은 있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아예 담론조차 실종됐다. 핵발전 확충 명분이 필요할 때만 기후는 위기가 된다. 기후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모습은 지난 호우로 일가족 3명이 숨진 반지하 집 바깥에서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있는 대통령을 닮았다. ...

    2022.09.05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법과 원칙? 법의 원칙!
    법과 원칙? 법의 원칙!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척박한 노동 현실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재 총 10만여 조선업 노동자의 70%가량이 하청노동자이며 임금은 20~30년 경력에도 월 200만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대비 임금이 30% 넘게 줄었다니 파업 때 요구한 30% 임금 인상은 그간의 물가 인상은 포함하지도 않은, 임금의 원상회복 요구였다. 조선소 일은 고강도 고위험 노동이다. 재해율과 사망률이 제조업 평균의 2배가 넘는 데다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현장에서 숨진 88명 중 77%가 하청노동자였다. 주기적으로 불경기가 닥치면 임금 삭감과 대량 해고도 하청노동자를 겨눈다. 이 고약한 현실의 뿌리는 다단계 하청 구조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원청은 겹겹이 쌓아놓은 하청 뒤에 숨는다. 실질적 사용자이지만 법률상 책임이 없다며 모르쇠로 잡아뗀다. 우리나라 사업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공정과 몰상...

    2022.08.08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멈춤의 미학
    멈춤의 미학

    올여름 20일가량 대구와 전주에 있는 수녀원에서 ‘피정’을 도와주며 지냈다. ‘피속추정(避俗追靜)’에서 나온 피정은 번잡을 피해 고요를 추구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가톨릭 수도자는 매년 ‘8일 피정’을 한다. 침묵하며 일상을 ‘멈춤’으로써 삶에서 세상의 소음과 먼지를 벗겨 낸다.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여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살핀다. 원하는 앞날을 그리고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여 세상으로 돌아간다. 효율과 경쟁 위주의 현대 사회는 멈춤에 익숙하지도 호의적이지도 않다. 멈춤은 퇴보이고 기껏해야 정체일 뿐이다. 방학이라는 멈춤의 때가 있는 학교도 이젠 별로 다르지 않다. 대학은 방학과 함께 계절학기가 시작된다. 대학에서 안식년은 언제부턴가 연구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멈춤을 없애면서 대학의 속도는 빨라졌고 방향 감각은 무뎌졌다.히브리어로 ‘안식’의 어원적 의미는 ‘멈춤’이다. 성서의 안식일은 이렛날에 일을 멈추고 지난 엿새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함께 ...

    2022.07.11 03:00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
    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

    올봄 새소리 듣는 재미에 들려 요즘은 아침에 깨면 창밖의 새소리부터 들린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하루를 여는 생기가 넘친다. 새는 잘 모르지만, 박새와 지빠귀 종류의 새소리 같다. 재잘대는 소리를 좇아 뜰의 나무들을 살펴보는데 운이 좋으면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새가 부리를 여닫으며 지저귀는 모습은 앙증맞지만, 소리를 내느라 온몸을 불룩거리는 걸 보면 숙연한 느낌도 든다. 새들도 밤에는 어디선가 잠을 자느라 조용하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지저귄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비를 피하느라 조용하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날개를 편다. 관심을 가지고 새를 보니 뜰의 나무가 새가 사는 ‘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자연의 집 흔들면 인간 집도 흔들 올해는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이고, 이번 주제는 50년 전과 같은 ‘하나뿐인 지구’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라는 하나의 집에 살고 있고 이 집이 망가지면 달리 갈 곳이 없다고 일러주는 듯하다. 사람이 그렇듯, 몸을 ...

    2022.06.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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