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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 전체 기사 123
  • 황후 조제핀과 장미

    이제 곧 장미 축제가 시작된다. 보통 장미의 기원을 아시아와 중동에서 찾지만, 근대 장미 정원 문화는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특히 19세기 초 장미가 원예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는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를 빼놓을 수 없다.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취향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나폴레옹과 결혼한 뒤 황후에 올라 호화로운 삶을 보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자, 나폴레옹은 조제핀과의 이혼을 선택했다. 충격에 휩싸였던 그는 파리 근교의 말메종성에 정착해 식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정원사로 거듭났다.조제핀은 성에 딸린 넓은 부지에 영국식 풍경 정원을 꾸미고,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온갖 희귀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대형 온실도 조성했다. 유리 온실에는 석탄 난로까지 설치해 큰 나무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특히 장미를 사랑했던 그는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종류의 장미를 수집했다. 그 결과 약 250종에 달하는 장미 품종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2026.05.04 20:12

  • 성호 이익과 이끼

    서울 서촌의 ‘창성동 실험실’에서는 늘 다채로운 전시가 열린다. 작품 전시가 주를 이루지만, 크리스마스실 전시와 국악 공연, 어린이 그림 전시와 북 토크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역동적인 기획으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전시장이 한옥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주제와 공간이 독특하고 문턱이 낮아 서촌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이번에는 ‘실험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다른 전시가 열렸다. 바로 살아 있는 이끼 전시다. 누가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전시를 제안한 사람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것을 선뜻 받아들인 운영자도 놀랍다. 그렇지, 여기는 ‘실험실’이니까!이끼는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생명이 육지로 진출하던 진화의 첫 단계가 이끼였다. 물과 흙의 경계에서 자라는 이끼를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계의 양서류’라 했다. 이끼는 수직으로 높이 솟아올라 우쭐대지 않는다. 물과 양분을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는 관다발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수평으로, 소리 없이, ...

    2026.04.20 20:07

  • 조지프 뱅크스와 큐 왕립 식물원

    K컬처의 확산은 이제 전방위적이다. 음악과 미술을 넘어 음식, 미용,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시공간의 장벽이 없다. 이처럼 동시다발적 문화 전파는 매우 이례적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공연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미국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가 열리고 있다.많은 외국인은 삼성을 단지 전자제품 생산 기업으로만 알고 있다가,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수집해 국가에 기증한 기업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의 컬렉션을 공공에 환원하는 일은 그 사회가 공공성과 문화적 책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와 지식은 특정 개인의 소유일 때보다, 공공의 유산으로 확장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런 가치를 실천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큐가든을 세계 식물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성장시킨 조지프 뱅크스이다.식물학에 관심이 많던 뱅크스는 젊은 시절부터 해외 원정에 참여했다. 18세기 후반 제...

    2026.04.06 19:58

  • 이순신과 유자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 이순신에 대한 명나라 장수 진린의 평가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이 열렸다. ‘죽을 힘을 다해 준비했다’는 전시 관계자의 소회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방대한 자료들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매우 입체적인 서사를 보여주었다. 관람객 중에 군인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우리 역사에 400년 넘게 끊임없이 칭송받는 군인이 몇이나 되겠는가.전시회를 계기로 <난중일기>를 다시 펼쳐 본다. 나라를 구한 장수로서의 냉정함과 엄격함 외에도 인간 이순신 모습이 곳곳에 배어 있다. 갑오년 새해 첫날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 먹게 되어 난리 중에서도 다행한 일’이라며 지극한 효심을 드러낸다. 아들을 잃은 비통함도 절절하게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달빛이 오늘따라 매우 밝다. 쌓이는 그리움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정유년 7월)라며 절제된 문장 속에 섬세한 감성도 내...

    2026.03.23 20:11

  • 장 지오노와 참나무

    ‘장 지오노’라는 이름을 듣고 바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의 작가라고 말하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 작품은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젊은 날을 회상하는 이 작품은 ‘진정 뛰어난 인격의 소유자는 이기심이 없고, 관대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라는 화자의 평으로 시작된다.알프스 기슭의 황량한 계곡 근처에 사는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 중년의 그는 수십㎞에 달하는 허허벌판에, 정성껏 고른 도토리를 심으며 숲을 일궜다. 수십년 동안 그는 참나무뿐 아니라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등을 심어 황무지를 숲으로 바꾸어 놓았고, 마른 개울에는 물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러자 개울가에 버드나무와 오리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기 시작했고, 너른 들판도 생겨나며, 황무지가 초원과 우거진 숲으로 거듭났다...

    2026.03.09 20:06

  • 추사 김정희와 수선화

    문자향과 서권기의 표상, 추사 김정희. 그의 작품은 당대를 넘어 지금도 독보적이란 평을 받는다. 그러나 학문과 인생의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말년에는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됐다. 그의 나이 쉰다섯,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위리안치된 채, 회한과 그리움, 애절함으로 점철된 8년여를 제주 대정에서 보냈다. 사랑하는 이들과 생이별하고, 낯선 땅에 몸과 마음이 버려졌으니, 그 삶이 얼마나 처절했으랴.궁박하고 모진 외로움 속에서도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제주도의 풍광과 식물이었다. 그는 제주의 풍토와 인물을 ‘우둔하고 무지하다’고 혹평하면서도, ‘한라산의 신령스럽고 충만한 기운이 초목에만 모인 것’이라 한탄했다. 제주도민에게는 매우 불손하게 들릴 법한 말이다.그럼에도 추사는 겨울에도 푸르른 제주의 나무와 화훼를 보며 감탄했다. 기이한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라 했고,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상록수와 이름 모를 꽃이 많은 것도 신기해했다. 그중에...

    2026.02.23 20:09

  • 한스 몰리슈와 등나무

    그린란드 영토 문제가 연일 세계적 이슈다. 상대에 대한 존경과 배려 없이 좌충우돌하며, 예측 불가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검은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품격은커녕,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주장은 안보가 아니라 핵심 광물과 천연자원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제한된 땅을 둘러싼 싸움은 인류 역사 이래 끊이지 않았다. ‘영토 본능’은 식물 세계에도 존재한다. 다른 식물을 내쫓으며, 땅을 독차지하려는 종들이 있다. 호두나무, 담배, 가죽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화학 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의 생존과 번식을 방해한다. 마치 ‘배타적경제수역’이나 ‘공해’를 제멋대로 ‘영해’라고 우기듯, 자기 영향권을 넓힌다. 이 현상을 ‘타감작용(알레로파시)’이라 하는데, 오스트리아 식물학자 한스 몰리슈의 <한 식물이 다른 식물에 끼치는 영향, 알레로파시>(1937)...

    2026.02.02 20:01

  • 강희안과 소나무

    제구포신(除舊布新),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펼친다’는 뜻이다. 새해 초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즐겨 쓰는 사자성어로 공자 <춘추>의 주석서 <춘추좌전>에 나오는 글귀다.제구포신과 비슷한 뜻의 ‘제구양신(除舊養新)’이라는 글귀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의 ‘노송’에 등장한다. 세종대왕의 이종조카이자 집현전 학자였던 강희안은 뛰어난 학자였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도 않고, 인맥을 통해 권력을 취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취미는 꽃 기르기였다. 그는 <양화소록>에 총 16종의 식물을 서술했는데, 늙은 소나무를 맨 앞에 내세웠다. 백목지장인 소나무를 그만큼 중시했던 모양이다.강희안은 선비와 어리석은 하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노송을 가꾸면서 얻은 깨달음을 설명한다. 하루는 하인이 아침에 선비를 알현하러 왔다가, 칭찬받고자 그가 기르던 소나무 등걸의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어 손에 쥐고 선비를 기다렸다. 그걸 본 선비가 ...

    2026.01.19 19:52

  • 마오쩌둥과 매화

    “온 산에 봄꽃이 만발할 때에, 매화는 그 가운데서 웃고 있으리.” 마오쩌둥이 매화를 노래한 ‘영매’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다. 송나라 시인 육우가 같은 제목의 시를 썼지만, 마오쩌둥의 시는 내용과 의미가 다르다.이 시를 쓴 시기는 1960년대 초로 마오쩌둥이 혁명을 시작했을 때다. 온 산에 만발한 봄꽃은 그의 추종자들이고, 매화는 마오쩌둥 자신을 의미한다. 그는 혁명가다. 매서운 겨울을 견뎌내며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매화처럼 자신은 봄을 깨운 혁명의 선봉자라는 것이다. 자신의 사상이 들불처럼 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 마오쩌둥이 그려진다. 그를 정치가로만 알지만, 그는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던 사상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매화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마오쩌둥은 중국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지만,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오랜 전통과 문화를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 수많은 인권 유린과 학살 및 유적과 유물이 ...

    2026.01.05 19:45

  • 초의선사와 차

    추운 날씨에 감기 기운이라도 있으면 따뜻한 차를 마신다. 목이 칼칼하고 한기가 들 땐 생강차를 즐긴다. 은은한 향의 모과차나 상큼한 맛의 유자차도 좋다. 이것저것 전부 차라고 하지만, 수많은 차의 원류는 차(茶)다. 정확히 말하면 차나무(Camellia sinensis)의 어린잎을 따서 만든 것만이 ‘차’다. 유럽에서 흔히 부르는 ‘tee’ ‘tea’ ‘the’ 등의 용어도 원산지인 중국 남부 지역에서 부르던 ‘茶(차)’ 발음에서 유래했다.우리나라 차의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은 초의선사다. ‘돌밭의 풀을 엮어 한 몸을 가린’ 초의라는 법명은 스승 완호 스님이 지어주었다. 그가 머물던 일지암이라는 명칭은 ‘뱁새가 제 몸을 깃들이는 데는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는 당나라 은자 한산의 시에서 빌린 것으로 소박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초의가 차를 접하게 된 것은 정약용 덕분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돼 왔을 때, 선지식을 찾아 헤매던 초의는 다산을 만나 학문뿐 아니라 차에 깊이...

    2025.12.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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