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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 전체 기사 130
  • 윈스턴 처칠과 시가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 찰리 채플린의 지팡이, 체 게바라의 별이 달린 베레모처럼, 처칠 하면 중절모와 시가가 떠오른다. 어느 인물의 이미지는 그가 늘 지니던 물건과 겹치며,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한 시대의 표상이자 시각적 문장이 되기도 한다.중절모와 시가는 처칠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전쟁과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그는 시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논의한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도 루스벨트와 스탈린, 트루먼 곁에는 어김없이 시가를 입에 문 처칠이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시가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처칠은 십대부터 담배를 피웠으나 한동안 끊었다가, 젊은 장교 시절 쿠바에 머물며 현지 시가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고 한다. 그가 특히 즐긴 상표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라 아로마 데 쿠바’가 알려져 있다.시가에는 궐련이나 전자담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특유의 낭만과 여유가 있다. 길고 굵은 형태와 짙은 갈색에서 중후하고...

    2026.08.10 20:07

  • 정조와 생강

    끈적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고, 잠시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무더위와 장마로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시원한 진저에일 한잔이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한다. 처음 맛보았을 때, 상큼한 향과 혀끝을 톡 쏘는 청량감에 ‘오호~!’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생강은 감초만큼이나 널리 쓰이는 한약재다. 유럽에서는 한때 최음제로 사용되기도 했고,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음식과 약제에 두루 넣기도 했다. 생강은 강렬한 매운맛 속에 특유의 향긋함을 품고 있어 오래전부터 음식과 약재로 사랑받아왔다. 차갑게 마시면 갈증을 식혀주고, 따듯하게 달이면 한겨울 언 몸을 녹여준다.조선시대에는 임금이나 세자가 ‘정신을 맑게 하고 더러운 기운을 물리치는’ 생강을 신하들에게 종종 하사했다. <논어>에 공자가 생강을 장복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천자문>에도 ‘과일은 자두와 능금이, 채소는 겨자와 생강이 진귀하다(果珍李柰 菜重芥薑)’라 하였으니, 생강은...

    2026.07.27 20:01

  • 마리 퀴리와 플라타너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들이 있다. 마리 퀴리가 평생을 좇았던 빛도 그렇다.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 광선에 주목했던 퀴리는 피치블렌드를 연구하던 중 그 광물이 우라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강한 방사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오랜 실험 끝에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고, 이 에너지를 ‘방사능’이라고 불렀다. 그의 연구는 원자물리학과 현대 의학의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리 퀴리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과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두 차례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다.실험에 몰두하던 퀴리는 1912년 파리 라듐 연구소 뒤뜰에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자연과 생명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직접 흙을 고르고, 플라타너스와 피나무 묘목을 심었다. 연구소가 문을 열 무렵이면 키 큰 나무들과 꽃들이 만발한...

    2026.07.13 20:09

  • 숙종과 연꽃

    K컬처가 붐을 일으키며,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지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덕분에 궁궐 정원도 새삼 관심거리다.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궁궐이다. 유네스코는 ‘건축물과 주변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 지형을 살린 배치가 탁월’하다는 점을 등재 이유로 들었다. 특히 숲이 울창한 자연 지형과 물길을 거의 그대로 활용한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빼어난 궁원(宮苑)이다. 한국의 정원은 인간의 미적 기준을 자연에 강제하기보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물길을 따라 주합루,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권역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곳곳에 여러 임금의 자취가 스며 있다.그중 애련정(愛蓮亭)은 붕당 정치의 갈등이 깊어지던 숙종 18년(1692)에 지어진 정자다. 연꽃이 피는 여름의 정원이라 할 만하다. 헌종 연간의 <궁궐지>에 ‘연못 ...

    2026.06.29 20:21

  • 신영복과 잡초

    잡초, 잡것, 잡놈. ‘막되고 상스럽다’라는 뜻의 접두사 ‘잡’이 붙으면 대개 부정적이다. 잡초는 식물학적 분류명이 아니다. 수시로 바뀌는 인간의 유불리에 따라 정해진 통칭이다. 사람들은 이름 모를 풀들을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며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논이나 밭은 물론, 잔디밭의 잡초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이다. 잡초는 제거해야 할 풀로 인식된다.그러나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의 역할은 중요하다. 잡초는 토양과 곤충, 미생물과 초식동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식물군이다. 잡초의 뿌리는 흙을 단단히 붙잡아 비바람으로 인한 토양 유실을 막아주고, 토양 수분의 증발을 줄여 다른 식물이 정착하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곤충에게 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먹이가 되며, 훼손된 환경을 회복시키는 선발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다. 감옥이라는 극한의 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그의 글은 깊은 성찰...

    2026.06.15 20:03

  • 린네와 은행나무

    얼마 전 상영한 <침묵의 친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간과 사랑, 인간과 자연, 성과 사회에 대한 시적 성찰로 엔예디 감독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영화를 보는 내내, ‘교감’과 ‘연결’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동시에 미국 유타주의 ‘판도(Pando)’가 떠올랐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사시나무가 따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에서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체이다. 그것을 하나의 개체로 볼 것인가, 다수의 집합으로 볼 것인가 논의 중이다.영화는 1900년대 초, 1970년대, 코로나가 만연하던 2020년대를 오가며 세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들은 조연처럼 보이고, 한자리를 지키며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은행나무야말로 주인공에 가깝다. 지그시 굽어보는 은행나무의 시선, 몰입도를 높이는 절제된 조명, 명상적인 음악을 통해 시간의 절대성이 화면에 녹아 있다.영화에는 20세기 초 대학에 최초로 입학...

    2026.06.01 20:06

  • 투사와 꽃

    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왕관을 닮은 꽃잎, 화려한 색채, 짙은 향기로 장미는 오래전부터 ‘꽃의 여왕’이라 불려왔다. 그러나 가냘픈 아름다움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붉은빛과 가시는 피와 존엄, 저항과 투쟁의 의미도 있다.꽃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특정한 의미와 정서를 품은 상징적 매개체이기도 하여, 인간의 기억과 감정, 이념을 담아내는 표상을 함께 지닌다.영국 감독 켄 로치의 영화로 더 유명해진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는 생존과 삶의 품위를 함께 요구한 노동운동의 상징이다. 191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섬유노동자 파업에서 빵은 생존을, 장미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뜻했다. 이후 장미는 프랑스 사회당의 표상으로 등장했다. 특히 붉은 장미를 움켜쥔 주먹을 그린 이른바 ‘주먹과 장미(Fist and rose)’는 1970년대 프랑스 사회당의 공식 로고로 채택됐다. 이는 연대와 저항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행복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완강함을...

    2026.05.18 20:11

  • 황후 조제핀과 장미

    이제 곧 장미 축제가 시작된다. 보통 장미의 기원을 아시아와 중동에서 찾지만, 근대 장미 정원 문화는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특히 19세기 초 장미가 원예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는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를 빼놓을 수 없다.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취향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나폴레옹과 결혼한 뒤 황후에 올라 호화로운 삶을 보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자, 나폴레옹은 조제핀과의 이혼을 선택했다. 충격에 휩싸였던 그는 파리 근교의 말메종성에 정착해 식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정원사로 거듭났다.조제핀은 성에 딸린 넓은 부지에 영국식 풍경 정원을 꾸미고,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온갖 희귀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대형 온실도 조성했다. 유리 온실에는 석탄 난로까지 설치해 큰 나무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특히 장미를 사랑했던 그는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종류의 장미를 수집했다. 그 결과 약 250종에 달하는 장미 품종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2026.05.04 20:12

  • 성호 이익과 이끼

    서울 서촌의 ‘창성동 실험실’에서는 늘 다채로운 전시가 열린다. 작품 전시가 주를 이루지만, 크리스마스실 전시와 국악 공연, 어린이 그림 전시와 북 토크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역동적인 기획으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전시장이 한옥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주제와 공간이 독특하고 문턱이 낮아 서촌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이번에는 ‘실험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다른 전시가 열렸다. 바로 살아 있는 이끼 전시다. 누가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전시를 제안한 사람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것을 선뜻 받아들인 운영자도 놀랍다. 그렇지, 여기는 ‘실험실’이니까!이끼는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생명이 육지로 진출하던 진화의 첫 단계가 이끼였다. 물과 흙의 경계에서 자라는 이끼를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계의 양서류’라 했다. 이끼는 수직으로 높이 솟아올라 우쭐대지 않는다. 물과 양분을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는 관다발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수평으로, 소리 없이, ...

    2026.04.20 20:07

  • 조지프 뱅크스와 큐 왕립 식물원

    K컬처의 확산은 이제 전방위적이다. 음악과 미술을 넘어 음식, 미용,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시공간의 장벽이 없다. 이처럼 동시다발적 문화 전파는 매우 이례적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공연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미국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가 열리고 있다.많은 외국인은 삼성을 단지 전자제품 생산 기업으로만 알고 있다가,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수집해 국가에 기증한 기업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의 컬렉션을 공공에 환원하는 일은 그 사회가 공공성과 문화적 책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와 지식은 특정 개인의 소유일 때보다, 공공의 유산으로 확장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런 가치를 실천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큐가든을 세계 식물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성장시킨 조지프 뱅크스이다.식물학에 관심이 많던 뱅크스는 젊은 시절부터 해외 원정에 참여했다. 18세기 후반 제...

    2026.04.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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