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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출판에 대하여
어쩌다 보니 책과 출판을 말하는 자리에 꾸준히 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맘때면 올해의 출판 트렌드와 내년을 전망하는 자리가 꾸준하다. 책을 출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에 나올 책들은 목록뿐 아니라 대략의 일정까지 결정되어 있을 터, 실제로 내년에 세상에 나와 독자를 만날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자료 취합 과정과 각 출판사의 정보 공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 각 언론사와 몇몇 서점에서 개별 자료를 취합하여 전하는 소식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며, 실제로 나올 책과는 꽤 멀어진, 그래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어려운 전망에 머무르곤 한다.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는 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방송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지식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출연자가 주제에 부합하는 책을 추천하는 경우라거나 책과 무관한 방송이지만 유명한 인물이 책을 읽는 장면... -
출판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시상식 시즌이다. 각 분야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기억하고 기념할 상찬을 나누는 자리가 이어진다. 책과 출판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발은 대개 대형 온라인서점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올해의 책 투표 이벤트인데, 수십만 표에 이르는 수효의 의미는 크지만 책을 판매하는 곳에서 주관하는 인기투표 성격에 가까워,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한 도서가 선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편 오프라인 서점 중심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는 매해 11월11일 서점의날을 앞두고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작가’를 발표하는데, 심사위원들은 “서점을 방문한 사람이 해당 분야의 좋은 책을 골라달라고 할 때, 서점인은 어떤 이유를 들어 그 책을 추천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크게 다르지 않은 온라인서점 사이의 올해의 책 투표를 어떻게 함께 진행해 더 큰 의미의 확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논의한 적이 있는데, 온·오프라인 서점 전체가 주목하고 알리고 싶은 책을 선정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서점발 화... -
편집자에게 건네는 ‘영감과 섬광’
상반기와 하반기가 끝날 즈음이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지금 일하는 출판사에서 보낸 시간이 2년 반 남짓이니 그간 네 차례에 걸쳐 다섯 권의 책을 나누었다. 출판사라는 공간에서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고 알리는 데에 영감과 도움이 될 만한, 때로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될 만한 책이 보이면 후보 목록에 올려두고 앞서 읽어나가기 시작한다.최근에는 세 권의 책이 차례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첫째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기획한 <박물관의 글쓰기>인데, 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다양한 글을 어떻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구성하고 정리할 수 있을지, 그간의 고민과 실천 그리고 방법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이 향하는 독자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사이지만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둔 글의 전달이라는 점에서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다. 특히 과거에는 설명이 주요 과제였는데 최근에는 일방향 전달이 아니라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그리하여 관람객... -
만화, 고전의 가능성을 탐구하라
마블 영화나 원작 만화 마블 코믹스가 고전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마블 코믹스가 영미 출판계의 대표적인 고전 목록으로 꼽히는 펭귄 클래식에 포함된다면, 그리하여 특유의 검은색 하단 영역과 흰색 띠 위로 <어벤져스>의 영웅과 <엑스맨>의 초능력자들이 올라탄다면 어떤 분위기일까. 상상처럼 적었지만 이미 펼쳐진 일이다. 펭귄 클래식은 2022년 <블랙팬서>와 <캡틴 아메리카> 등을 시작으로 ‘펭귄 클래식 마블 컬렉션’을 펴내기 시작했고, 올해 앞서 언급한 작품들도 목록에 추가해 출시했다.조금 더 가깝고 실감나는 상황을 그려보자. 세계문학전집에 마블 코믹스가 포함되고 한국문학전집에 김혜린·강경욱·신일숙·이현세·허영만 등이 더해진다면, 초반의 반가움과 어색함 사이에서 점차 벗어나 고전의 목록이 열리고 풍성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만화뿐 아니라 그간 고전의 범주에서 주목받지 못한 다양한 장르, 서사, 표현 방식이 활발하게 논의되... -
‘살풍경’ 너머 ‘원풍경’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건축 분야 등에서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감수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마음속 원초의 풍경”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원풍경’이란 단어가 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낭만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하니, 엄혹한 현실을 뜻하는 ‘살풍경’ 속을 살아가다 만나는 원풍경은 반가움을 넘어 살풍경을 넘어설 힘을 새삼 깨닫게 한다.요즘 책과 출판을 둘러싼 상황은 꽤 엄중하다. 특정단체가 성평등, 성교육, 성소수자 관련 도서의 열람제한과 폐기를 공공도서관에 요청하고 일부 지자체에서 이를 수용하며 금서와 검열 관련 논란이 일었고, 출판 단체에서는 세종도서, 학술원 도서, 문학나눔 사업 등 기초학술, 교양 출판 관련 예산 삭감 계획 중지를 외치며 책문화살리기 출판문화인 궐기대회까지 열었다. 살풍경이다.출판인으로서 무엇을, 왜 만들고 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고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이를 위한 준비와 계획, 역량과 실행이 충분한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
나를 일깨운 ‘책으로 비즈니스’
책을 한 권 펴낼 때 처음 찍는 부수가 2000부라고 하면 많다고 느껴질까, 적다고 느껴질까(참고로 한국 남자 프로농구 정규시즌 평균 관중이 2000명을 조금 넘는다). 초판 발행 부수가 점차 줄어드는 과정을 겪어온 출판계 사람이라면 대체로 너무 줄어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업계 바깥에서는 관심 영역도 아니고 흥미도 없는 책이 2000부나 만들어진다고 하면 그 책을 사볼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반문할 이들도 적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물론 꼭 2000명의 독자를 바탕으로 2000부를 찍는 건 아니다. 제작 부수가 줄어들면 단가는 그만큼 올라가고, 지금의 인쇄·제작 방식에서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부수도 반영된 수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2000부, 그러니까 1쇄를 다 팔지 못하는 책들이 적지 않다. 출판사로서는 손해다. 출판사만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저자가 책 한 권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들이는 비용을 고려하면, 2000부의 인세로 얻게 되는 수익은 너무 적다. 보... -
지향으로 읽는 ‘출판 라이벌’
얼마 전 흥미로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진행하는 ‘출판 라이벌전’으로 “선한 경쟁으로 출판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출판사를 소개하는 기획”이다. 1편으로 내가 일하는 위즈덤하우스와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다산북스가 꼽혀 두 출판사의 문화와 지향을 두루 살폈다. 책과 출판의 세계에서 라이벌이란 구도는 흔히 이야기되지 않는 편이다. 저자든 책이든 출판사든 다른 경쟁 상대를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펼쳐가는 터라, 밖에선 라이벌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안에서 그렇게 이해하는 일은 어색하다. 지금처럼 출판사가 많지 않았고 책과 출판이 시대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요청받던 시절엔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창비로 불리는 창작과비평사와 여전히 문지로 불리는 문학과지성사가 대표 사례겠다.이 기획의 입안자가 다음 라이벌을 어떤 짝으로 떠올리는지 알 수 없으나, 판이 벌어진 김에 몇몇 라이벌 출... -
‘책의 공간’ 마포구에 묻는다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다 지난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큰 호응을 얻은 터라,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된 후 열리는 올해 행사는 업계 안팎의 기대가 높다. “출판사, 저자, 독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축제”이고 올해 주제 ‘비인간, 인간을 넘어 NONHUMAN’도 시의적절해 한 사람의 독자이자 출판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둘러보던 차에 “우리는 항상 ‘책’의 공간을 마련하며 살아갑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읽지 못할 책을 꾸준히 사서 모을 수밖에 없는 장서가와 애서가에게, 책이란 존재는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텐데, 유독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서울국제도서전이 책과 관련한 대표적인 ‘비일상의 공간’이라면, 책을 만드는 이들이 책을 만드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공유하는 공간, 책을 읽는 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책과 만나는 공간은 ‘일상의 공간’이... -
‘저자 챗GPT’ 풍요의 역설
출판, 그중에서도 단행본은 글로 이루어지는 콘텐츠 가운데 가장 느리고 안정적이라고 이야기되지만, 특정 키워드가 화제를 모을 때 쏟아지는 책을 보면 정말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든다. 올해의 키워드로 기록될 ‘챗GPT’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서점에서 해당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무려 113종의 도서가 나오는데, 챗GPT 관련 첫 책이 올 1월에 나왔으니 하루에 한 권꼴로 출간되는 상황이다. 5월이 열흘 남짓 지나고 있는데 이달에만 20종 이상이 나왔으니, 이 정도면 챗GPT의 발전 속도에 부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문뜩 그간 스쳐가거나 지속되고 있는 몇몇 키워드가 떠오르는데,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관련 도서가 얼마나 단기간에 다수 출간되었고,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를 짚어보면 짐작과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속도뿐 아니라 범위와 내용도 다양한데, 연관성과 활용도 등 비중이 가장 큰 경제·경영 분야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기술 관련 내용이니 과학 분야가 두... -
활자로 펼친 스포츠의 힘
지금 시점 올해의 콘텐츠는 <슬램덩크>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여전히 주간 관객 수가 5위이고, 누적 관객은 450만명에 이른다. 단행본은 지난 2월에 100만부 판매를 넘겼고 최근 150만부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한 달 이상 기다리던 독자들이 최근에야 누락 없는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아보게 된 상황이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줄지어 장악하던 기세는 줄었지만, 여전히 100위권 내외에 시리즈 도서 20여권이 자리하고 있으니 고전의 힘, 스포츠의 에너지를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워낙 압도적인 상황이라 이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뭐든 책부터 찾아 배우고 익히고 즐기는 독자라면 스포츠 역시 책으로 마주할 터, 어떤 책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구성, 구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점 분류에서 스포츠의 금·은·동은 축구·야구·농구다. 근래 배구 인기가 크게 늘며 매해 스카우팅 리포트가 따로 발간되는 등 현실의 변화가 있지만, 그간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