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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가 싫어하는 마을’의 옻나무
옻나무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나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옻나무가 담고 있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심각한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래도록 정성껏 키운 옻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충북 단양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가에 한 그루의 오래된 옻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5m, 줄기둘레 1m의 이 옻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해발 500m에 위치한 이 마을에 들어서려면 자동차 한 대가 길섶의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야 할 만큼 비좁고 굴곡이 심한 산길을 지나야 한다. 여간 조심스러운 길이 아니다. 이 길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이라는 마을 별명을 절로 수긍하게 된다.옻나무로서는 큰 나무에 속하는 이 나무는 전국에 4그루밖에 없는 옻나무 보호수 가운데 한 그루다. 사방으로 7m 정도 펼친 나뭇가지가 지어낸 옻나무 그늘이 품은 ‘말금이 옻샘’... -
‘독립투사’ 흔적을 간직한 나무
유관순, 안중근, 김구 등 독립투사들의 빛바랜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부활시킨 영상이 화제였다. 밝은 웃음이 뭉클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김마리아’ 열사가 있어 반가웠다.김마리아의 독립투쟁을 보좌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김마리아는 1913년부터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그때 일제 순사들이 김마리아를 체포할 빌미를 잡으려고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여학교를 급습한 적이 있었다. 순사가 들이닥칠 낌새를 눈치챈 김마리아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비밀 문서들을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회화나무 줄기의 구멍 안쪽에 숨겼다. 나무줄기가 썩으면서 생긴 큰 구멍이 평소 나무 상태를 세심히 보살피던 김마리아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사들은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나무줄기의 썩은 구멍 안쪽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김마리아를 일제의 손아귀... -
나무 그늘이 좋은 천상의 나무
나무 그늘이 절실한 계절이다. 너른 그늘을 지으려면 나뭇가지를 넓게 펼쳐야 하고 잎도 무성해야 한다. 자연히 그늘이 좋은 나무는 전체 수형까지 아름다운 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로 가죽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가죽나무는 곧은 줄기가 일정한 높이까지 뻗어오른 뒤 가지를 넓게 펼쳐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가지마다 무성히 돋아나는 잎도 더위를 날려버릴 듯 시원스럽다. 하나의 잎자루에서 13~25장씩 돋아나는 홑잎(단엽)은 제가끔 길이 12㎝까지 자라나서 바람에 살랑이며 최상의 그늘을 지어낸다. 가죽나무 그늘은 분명 여느 나무 그늘 못지않게 훌륭하다.중국이 원산지인 가죽나무는 우리나라에 오래전에 들어온 나무로, 참죽나무와 비교해 ‘가짜 참죽나무’라는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영미문화권에서는 생김새가 아름다워 ‘천상의 나무(Tree of Heaven)’라고도 부른다.너른 그늘을 짓는다는 점이 가죽나무의 특징이지만, 그게 도시에서는 치명... -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효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살이의 고통을 치유받을 수 있는 나무가 있다.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의 ‘고창 삼인리 송악’이다.송악은 스스로 양분을 지어내기는 하지만 홀로 설 수 없어 다른 나무나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아이비와 같은 종류의 덩굴식물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송악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해서 ‘담장나무’ 혹은 잎을 소가 잘 먹는다 해서 ‘소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15m 높이의 바위 절벽을 온통 휘감으며 뻗은 ‘고창 삼인리 송악’의 가지가 지어낸 풍광은 장엄하다. 바위 절벽에 단단하게 붙은 채 솟아오른 줄기에서 뻗어나온 무성한 가지가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에는 그가 살아온 수백년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볼수록 신비롭다.‘고창 삼인리 송악’은 처음에 바위틈에 뿌리 내렸다. 긴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만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랐다면 지주가 되는 나무가 송악의 무성한 잎이 지... -
곱게 늙은, 고찰의 배롱나무 한 쌍
여름,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주로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었지만, 변화하는 기후 탓에 요즘은 중부지방에서도 너끈히 키우는 나무다. 여름의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변성된 ‘배롱나무’라는 우리말 이름도 살갑다.주름투성이로 피어나는 꽃송이가 화려하지만, 갈색 바탕에 곱게 번진 얼룩무늬의 매끈한 줄기 또한 아름답다. 그리 높게 자라지 않고 나뭇가지를 수평으로 넓게 펼치는 나무여서 정원 조경수로 적당하다. 특히 꽃이나 줄기 표면에 드러나는 화려함은 한옥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래전부터 선비의 정원이나 절집 마당에서 많이 심어 키운 이유다.‘영동 반야사 배롱나무’가 그런 나무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반야사는 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상원이 창건한 고찰로, 이 절집의 극락전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배롱나무는 나무나이가 500년쯤 된다.이즈음 반야사는 조선 세조의 허가를 받아 중창에 착수했다. 반야사의... -
한 해 한 번씩 막걸리에 취하는 나무
해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이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는 나무가 있다. 막걸리 열두 말(216ℓ)에 감로수 열두 말을 섞은 술을 마시는 이 나무는 경북 청도의 고찰 운문사 안마당에 서 있는 처진소나무다.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여느 소나무와 달리 나뭇가지를 아래로 축축 늘어뜨리는 특별한 생김새의 소나무를 가리키지만, 최근에는 소나무의 단순 변형으로 보고,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66년에는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나무높이 9.4m, 가슴높이 줄기둘레 3.37m에 불과하지만, 땅으로 축축 처지며 사방 24m 너비로 고르게 퍼진 나뭇가지는 절집의 너른 안마당 전체를 가득 채울 듯 장엄하다. 다소곳이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이 나무는 특히 반원형의 수려한 생김새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나무는 500년쯤 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 -
이 땅의 여름을 상징하는 나무
날씨가 무더워져 공부의 고삐가 풀릴 즈음이면 나뭇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조롱조롱 피어나는 꽃이 있다. 조선시대의 학동들은 이 꽃을 보고 과거시험 채비를 재우쳤다. 회화나무 꽃이다. 조선의 학동들에게 이 꽃은 여름 지나 가을에 열리는 과거 응시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나뭇가지를 거침없이 펼치되, 모난 데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을 갖춘 회화나무는 성장한 선비의 생김새를 닮았다 해서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라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기며 ‘출세목’이라고 부른다. 옛 선비들은 집을 옮겨갈 때에도 이삿짐 목록에 회화나무를 담았다고 할 정도로 아꼈으며, 일부러 눈에 잘 띄는 안마당에 심어 지체 높은 가문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이용하기도 했다.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충남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회화나무도 그런 나무다. 이 나무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용재공(容齋公) 이행(李荇·1478~1534)이 중종 12년(1517)에 이 ... -
한국서 가장 오래된 히말라야시다
충북 영동군 영동산업과학고등학교 교정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학교의 상징목으로 서 있다. ‘영동농업전수학교’로 1936년 개교한 이 학교가 1944년 4년제 갑종으로 승격한 계기를 기념해 심은 ‘개잎갈나무’다.‘히말라야시다’로 많이 불리는 개잎갈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도 그즈음이다. 농업이 전공이던 학교였기에 그때로선 낯선 개잎갈나무를 학교 상징목으로 선택하고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으로 나선 것이다.히말라야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여서 히말라야시다라고 부르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한 우리말 이름은 ‘개잎갈나무’다. 잎갈나무와 생김새는 닮았어도 분류학적으로 다른 나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개잎갈나무는 생김새가 아름다운 데다 빠르게 큰 나무로 자라 풍치를 좋게 하는 나무여서 세계 3대 조경수로 꼽힌다. 우리나라 전국의 기후에서 잘 자랄 뿐 아니라, 공해에 견디는 힘이 강해 도시 가로수나 아파트 조경수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다.‘영동 부... -
스승께 예를 갖추고 선 곱향나무
스승과 제자의 예를 증거하며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딸린 암자, 천자암 경내에 서 있는 한 쌍의 근사한 이 나무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국가자연유산 고유 명칭으로 괄호 속에 표기한 식물 종류인 곱향나무는 잎의 생김새에서 향나무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눈에 띌 만큼의 차이는 아니어서 식물 분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70㎝의 간격을 두고 닮은꼴로 자라난 한 쌍의 곱향나무는 얼핏 한 그루로 보인다. 나무 높이 12m의 크기도 생김새도 꼭 닮아 쌍둥이 향나무라는 뜻에서 오랫동안 쌍향수라고 불러왔다.가장 눈에 띄게 들어오는 것은 이 곱향나무의 독특한 줄기 모습이다.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똬리를 풀며 용틀임하는 듯 배배 꼬인 모습은 경이롭다. 한때 이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 살짝 흔들면 극락에 든다는 전설이 전해졌지만, 나무가 쇠약... -
지리산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
‘구름도 누워 쉬는 마을’이어서 ‘와운(臥雲)’이라 불리는 지리산 뱀사골 마을 동산 마루에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을 모두 해야 서른 명 남짓인 이 마을은 2015년에 지리산국립공원 마을 가운데 맨 처음 ‘명품마을’로 지정된 곳이다.와운마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430여년 전에 영광정씨와 김녕김씨 일가가 전란을 피해 찾아와 보금자리를 일구며 시작된 마을이라고 전하는데, 그때 이미 큰 소나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해발 800m에 자리잡은 명품마을의 기품을 지켜주는 것은 단연 이 명품 소나무다.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위에서 마을을 거느리고 서 있는 이 소나무는 2000년에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의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할매송’이라 부르고 여기에서 열대여섯 걸음쯤 위쪽에 서 있는 또 한 그루의 소나무를 ‘할배송’이라 부르며 두 그루를 한 몸처럼 여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