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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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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1400년 고독 속에 일군 경이로움
    1400년 고독 속에 일군 경이로움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로는 ‘정선 두위봉 주목’을 먼저 꼽는다. 물론 더 오래됐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나무들도 꽤 있지만 공식적으로 나이를 확인한 나무로는 가장 오래됐다.정선 두위봉 북사면 1340m 고지에 이뤄진 주목 군락지의 비조목이라 할 만한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은 1400년이다. 서기 600년 즈음, 태백산을 넘어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 절터를 톺아가던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새싹을 내밀어 지금까지 꼿꼿하게 자리를 지켜온 큰 나무다.정선 두위봉 주목은 긴 세월 동안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나무의 가치가 알려진 건 1990년 후반 산림청 동부지방산림관리청에 의해서였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이 주목의 나이를 정밀 조사했고, 2002년 국가유산청에서는 이 나무를 바로 곁에 있는 두 그루의 주목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세 그루 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가운데 서 있는 나무인데, 다른 두 그루의 주목도...

    2026.05.11 20:03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오래된 절집 지켜온 큰 모과나무
    오래된 절집 지켜온 큰 모과나무

    중국이 원산지인 모과나무는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 들여와 오랫동안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모과나무 노거수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1981년 우리나라 최초로 군립공원에 지정된 강천산 군립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르면 오래된 절집 강천사 바로 앞 개울가 언덕에서 크고 오래된 모과나무를 만날 수 있다.나무 높이 20m, 가슴높이줄기 둘레 3.1m에 이르는 이 나무는 모과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의 크기를 압도할 만큼 당당하다. 300년쯤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1998년에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됐다.나무는 땅 위 50㎝ 부근에서 두 줄기로 갈라졌는데, 한 줄기는 1.3m 지점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고, 다른 줄기는 1m 지점에서 여섯 갈래로 힘차게 갈라지며 하늘 향해 솟구쳐 올랐다. 자유분방하게 뻗어 오른 풍성한 나뭇가지들이 이뤄낸 수형은 여느 큰 나무 못지않게 아름답다.‘순창 강천사 ...

    2026.04.27 19:53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천년을 이어온 사람살이의 향기
    천년을 이어온 사람살이의 향기

    충남 부여 성흥산에는 백제 동성왕 시절 쌓아 올린 가림성 옛터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하늘을 우러러 당당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림성 느티나무’다. 오래도록 ‘성흥산성 느티나무’라 불리다 최근 성의 본래 이름인 ‘가림성’을 확인하며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천연기념물인 이 나무는 나무 높이 22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5.4m의 규모로 자랐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른 느티나무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전체 풍광도 장관이지만,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가 빚어낸 기묘한 형상은 더없이 신비롭다.나무 나이를 400년으로 추정하는 이 나무에는 귀한 사람살이의 향기가 담겨 있다.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 장군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에 담긴 이야기다. 1100년 전 인물인 유금필 장군의 지팡이와 지금의 나무 사이에는 7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설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삶과 가치의 메타포다.고려 개국 초기에 이 ...

    2026.04.13 20:00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죽어서도 살아있는 ‘왕의 나무’
    죽어서도 살아있는 ‘왕의 나무’

    경남 합천 가야산의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죽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나무가 이 자리에 심어진 것은 신라 애장왕 때다.애장왕은 서기 800년에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신라 제40대 임금이다. 애장왕은 관례에 따라 혼례를 치렀는데, 얼마 뒤 왕후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임금은 백방을 수소문했지만, 왕후의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아 마침내 불가를 찾게 됐다.그때 가야산에는 법력이 높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라는 두 스님이 있었다. 임금은 그들을 찾아가 왕후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스님들은 왕후의 병을 낫게 할 기도에 전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왕후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애장왕은 보은의 사례로 가야산에 큰 절을 지으라고 명했다. 해인사의 창건 설화다. 애장왕은 해인사를 자주 찾았고, 손수 좋은 나무를 절집 주위에 심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무려 1200년 전의 일이다.세월...

    2026.03.30 20:07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비바람 눈보라로 매무시한 아름다움
    비바람 눈보라로 매무시한 아름다움

    소나무 종류 가운데 반송이 있다. 줄기가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부챗살처럼 넓게 펼치며 자라는 소나무다. 삿갓처럼 나뭇가지를 펼친다 해서 ‘삿갓솔’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사방으로 고르게 나뭇가지를 뻗는 대개의 반송은 작지만 아름다운 수형으로 자란다. 높지거니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사람살이 가까이에 심어 키우기 좋은 나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집 안 정원이나 묘지 앞에 심어 가꾼 것도 그래서다.대개의 반송이 단아하고 아름답게 자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널리 알려진 나무가 ‘무주 삼공리 반송’이다. 나무 높이 22m, 뿌리 근처 둘레 7m에 이르는 이 거목은 누군가 정성을 다해 다듬어낸 듯한 원형의 수형이 단정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82년에 나이를 350년쯤으로 추정했으니, 지금은 대략 400년쯤 됐다고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약 200년 전 이 마을의 한 어른이 옮겨 심었다고 말한다...

    2026.03.16 19:58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은사의 지조를 지켜온 남명매
    은사의 지조를 지켜온 남명매

    봄 오는 기미, 또렷해졌다. 밤바람은 아직 싸늘해도 성마른 봄꽃들이 꽃잎을 열었다는 남녘의 기별이 이어진다. 여느 봄꽃에 비해 일찍 피어나는 매화꽃 개화가 이 무렵 가장 반가운 꽃 소식이다. 탐매행을 서둘러야 할 때다. 우리의 오래된 매화에는 대개 나무가 서 있는 장소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선암매’ ‘고불매’ ‘율곡매’와 같은 식으로 나무에 담긴 인문학적 자취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다.경남 산청 산천재 뜨락에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매실나무 가운데 하나인 ‘남명매’가 있다. 지리산 자락에 은둔하며 남명학파를 이끈 조식(1501~1572)의 호, 남명(南冥)을 붙인 이름이다.퇴계 이황과 같은 해에 태어나 ‘좌퇴계 우남명’으로 불릴 만큼 영남 유학의 한 축을 이룬 조식의 행로는 이황과 달랐다. 남명은 일생 벼슬을 사양하고 재야에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늙마에 그는 지리산 천왕봉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서재를 짓고 머물렀다.완성한 서재에 ‘산천재...

    2026.03.02 20:05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영풍 단촌리의 변천사 품은 느티나무
    영풍 단촌리의 변천사 품은 느티나무

    설 명절을 앞둔 농촌 마을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이 즈음, 대개의 농촌 마을은 사람살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당산제를 채비한다. 손길은 잦지만 번거롭지 않다. 절차와 과정이 모두 경건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산제는 하늘과 사람을 잇는 큰 나무 앞에서 사람들이 소망을 표현하는 농경문화의 대표적 의식이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으로 여기는 까닭에 봄 기운 다가오는 이 즈음이 안성맞춤이다.경북 영주시 안정면 단촌리 저술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논 한가운데 서 있는 듬직한 느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700년 넘게 살아온 이 나무를 사람들은 마을 사람살이를 보살피는 수호목으로 여겨왔다. 나무 높이 16.5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0m에 이르는 위용이 일품이다. 굵은 줄기에서 뿜어나오는 풍채는 마을 수호목답게 위풍당당하다.저술마을의 당산제는 정월대보름에 치러진다. 신망 있는 어른을 제관으로 정한 마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

    2026.02.09 20:14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도시의 숨결을 기억하는 나무
    도시의 숨결을 기억하는 나무

    청라지구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인천 서구 신현동의 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초록의 빈터가 나타나고, 뜻밖에 웅장한 회화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천연기념물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다.500년쯤 살아온 이 나무는 나무높이 22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5.6m나 되는 거목이다.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에는 회화나무 특유의 기품이 담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나무의 하나이지만, 주변 건물에 눌려 위용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오래전 이 자리는 사람들이 농사로 살림을 잇던 곳이었다. 그러나 농부들이 모두 떠난 지금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의 풍경은 옛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게 바뀌었다. 상전벽해다. 수시로 드나드는 도시 사람살이가 그렇듯 농경문화의 흔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무만이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너른 논밭 한가운데에서 풍요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던 이 나무를 바라보며 옛사람들은 농사의 풍흉을 예측했다. 한여름 우윳빛 꽃이 나무의 위...

    2026.01.26 19:56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추사의 필법 닮은 순백의 기품
    추사의 필법 닮은 순백의 기품

    옛 선비들에게 나무를 심는 행위는 단순히 주변을 가꾸는 일을 넘어, 자신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심는 의례였다. 학자가 심은 나무에 학문적 신념이 깃들 듯, 충남 예산 용궁리 추사고택 뒷동산의 ‘예산 용궁리 백송’에는 추사 김정희의 삶에 얽힌 인문학적 서사가 담겨 있다.중국 원산의 백송은 번식과 자람이 까다로워 우리 땅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나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백송은 중국을 오가던 선비들이 기념비적으로 심은 게 대부분이다. 이 나무 역시 김정희가 24세의 청년 시절,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다녀오며 가져와 심은 것이다. 추사에게 백송은 각별한 나무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되어 살던 서울 통의동의 월성위궁에서 보냈는데, 바로 그 집 앞에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 있었다. 추사가 백송을 가문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 계기다. 청년이 되어 연경에서 마주한 백송은 추사에게 고향과 학문을 잇는 매개였다.귀국길에 어린 백송 한 그루를 가져와 고조...

    2026.01.12 19:59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적요 속에 피어날 암향을 기원하며
    적요 속에 피어날 암향을 기원하며

    “젊은 것보다 늙은 것을, 살진 것보다 마른 것을, 번거로운 것보다 희귀한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나무가 있다. 화려한 빛깔로 세상을 현혹하기보다 청초한 생김새와 그윽한 향기로 음전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매실나무다. 돌아온 날들을 차분히 되돌아보게 되는 세밑에 문득 떠오르는 나무다. 옛 선비들은 매실나무의 꽃, 매화에서 세속을 떠나 조용히 살아가는 은사(隱士)의 이미지를 보았다. 추위를 견디며 고매한 기품을 잃지 않는 지조를 닮은 때문이지 싶다. 선비들이 매화 향기를 일러 ‘암향(暗香)’, 곧 ‘숨은 채 피어나는 향기’라 칭송한 이유다. 번잡한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고요 속에 침잠할 때 비로소 배어나는 내면의 품격이자 절제의 미학이다. 암향의 깊이를 담은 대표적인 나무로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의 매실나무를 꼽을 수 있다. 천년고찰 선암사 경내에는 20여그루의 매실나무가 흩어져 자라는데, 그중 백미는 원통전 뒤편에 홀로 선 큰 나무다. 무우전과 팔상전 곁의 홍매와 함께...

    2025.12.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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