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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어린 학동이 심은 나무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린 학동이 심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지켜온 큰 나무가 있다.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라는 이름의 한 쌍의 향나무다. 미끈한 나무줄기의 생김새에서부터 구불구불한 가지펼침까지 향나무 특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근사한 나무다.‘서원목’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안쪽에는 ‘송곡서원’이라는 소박한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지만, 나무가 처음 뿌리내리던 시절에는 서원 대신 작은 서당이 있었고, 그 서당에 다니던 학동이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600년쯤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나무를 심은 것으로 알려진 학동은 조선 단종 때의 선비 류윤(柳潤·?~1476)이다. 관련 기록이 안 남아 어린 시절의 류윤과 이 지역의 연관성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모의 벼슬살이가 이 지역에서 이어졌거나 일가친척이 서산에 살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서원 건립은 류윤이 죽고 200년쯤 흐른 1694년(숙종 20년)이다. 서원 뒤편으로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 -
평범한 농촌 마을 ‘자존감 상징’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큰 나무들이 있다. 정이품 벼슬을 받아서 ‘정이품송’이라 불리는 나무를 비롯해 임금이 하사한 한 쌍의 소나무여서 ‘쌍군송’, 밭일하는 어머니의 휴식을 위해 심은 나무여서 ‘효자송’ 등이 그런 경우다.천년고찰 직지사가 자리 잡은 경북 김천 향천리에는 ‘직지문인송(直指文人松)’이라는 이름의 소나무가 있다. 300년 전에 해주정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뒷동산 언덕 마루에 서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신목(神木)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왔다.나무 높이 11m, 줄기 둘레 5m인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소원을 모두 이루게 해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이 같은 소문 때문에 멀리에서도 자식을 낳기 원하는 아녀자들이나,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학동 가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일제강점기에는 나무 근처에 신사(神社)가 설치돼 있었고, 일제 침... -
더럽혀진 귀 씻어낸 최치원의 지팡이
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857~?)은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 해인사에 은거했지만, 세상사로부터 귀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해인사에서의 은둔 생활을 접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화개천을 따라 걷던 그는 개울가의 너럭바위에 이르러 계곡 사이로 내다보이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은거지로 선택했다. 그러고는 온갖 지저분한 말들에 시달리며 더러워진 귀를 개울물에 깨끗이 씻어냈다.따르던 시종들을 물리치며 그는 짚고 온 지팡이를 개울가에 꽂으며 “이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라나면 나도 살아 있는 것이고,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은 것으로 알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화개장터와 쌍계사 벚꽃길을 지나면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成佛)했다는 전설을 품은 칠불사(七佛寺) 오르는 길과, 대성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가 최치원이 세속과 이별례를 치른 곳이다.그가 귀를 씻었다는 너럭바위를 사람들은 ‘세이암(洗耳岩)’이라고... -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얼핏 보아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나무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살 수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물과 양분을 확보하려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곁의 나무보다 높이 올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고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경쟁이 이어지면 나무는 경쟁의 원리를 내려놓고 ‘협동’을 선택한다. 나무가 보여주는 협동의 결과가 ‘연리(連理)’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 줄기가 붙었으면 연리목, 땅속의 뿌리가 붙은 경우라면 연리근이라고 부른다.곁에 있는 나무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분명히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였건만 연리를 이룬 뒤에는 하나의 나무에서 빨아들인 물을 상대 나무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자신이 광합성을 통해 만든 양분까지도 나눠주며 살아간다. 완벽한 협동이고 공생이다.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 잡고 서 있는 ‘비자나무 연리목’(사진)은 처음에 ... -
오래된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 무늬
소수서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하는 길에서 단산면사무소를 만나게 된다. 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고갯길을 3㎞쯤 넘어가면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 이른다.마을에 닿았음을 알게 하는 건 마을 어귀의 낮은 언덕에 서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다. ‘영풍’은 영주와 풍기를 합쳐 만든 지명으로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82년에는 공식적으로 쓰이던 행정구역 이름이다. 그러나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로 통폐합되면서 쓰지 않게 됐지만, 천연기념물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다소 낯선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의 나무높이는 14m가 채 되지 않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도 겨우 3m를 넘는 규모여서 천연기념물급의 나무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이 갈참나무의 가치는 규모보다 수려한 생김새에 있다.너른 들을 거느리고 뒤쪽으로는 마을 살림살이를 품고 서 있는 나무는 전형적... -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소나무
용의 해, 갑진년 설날이 코앞이다. 전설의 짐승 용은 옛 신화와 전설에 상서로운 짐승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손꼽는 소나무 가운데에도 용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깊은 산골의 나곡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그렇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인데, 오래전부터 ‘구룡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나무의 줄기 껍질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규칙적으로 갈라졌다 해서 거북을 뜻하는 ‘구(龜)’와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했다 해서 ‘용(龍)’을 붙여 부른 별명이다.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인 이 소나무는 500년쯤 이 자리를 지켜오는 동안 18m 높이까지 자랐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6m까지 몸피를 키웠다. 낮은 지붕의 살림집만 몇채 있는 풍경의 중심에 서 있어 실제보다 크고 우람해 보인다.여느 소나무에 비해 돋보이는 건, 규모와 연륜 때... -
폐허 터를 홀로 지켜온 큰 나무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세월이 흐르면 한때 번성했던 절집이라 해도 터만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진다. 홀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지키는 건 오직 큰 나무뿐이다.문헌 기록조차 따로 남지 않아 내력을 알기 어려운 충북 진천 보련산 자락의 ‘연곡리 절터’도 그렇다. 전각은 물론이고, 절집 이름조차 사라진 폐허의 터다. 그나마 10세기에 세워진 ‘진천 연곡리 석비’가 남아 있어서 고려 전기에 번창했던 절집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이 석비조차 명문이 없는 백비(白碑)여서 절집 내력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폐허의 절터에 다시 절집을 일으켜 세우기로 한 건 1991년부터였다. 절집 자리를 궁리하던 그때의 기준은 무엇보다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였으리라. 사람의 기억이 사라진 절터를 지켜온 유일한 생명체인 까닭이다.‘진천 보탑사 느티나무’는 2003년에 불사를 마친 새 절집 ‘보탑사’의 풍광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절집에 들어서려면 나무 곁의 돌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레 나... -
고려청자 도요지 지켜온 푸조나무
이름만 듣고 외래종으로 짐작하게 되는 나무 중 ‘푸조나무’가 있다. 하지만 푸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저절로 자라온 토종 나무다. 남부지방에서는 중부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특징 때문에 바닷가 마을에서 정자나무나 방풍림으로도 심어 키운다.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푸조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다. 고려청자 가마터로 유명한 이 마을은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내던 곳이다.‘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생김새도 아름답지만, 우선 그 규모가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고려의 도공들이 떠난 이 자리에서 300년 넘게 살아온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나무 높이가 16m 정도 되고, 뿌리 근처에서 잰 줄기 둘레는 8m를 훌쩍 넘는다. 게다가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제 높이보다 넓게 26m씩 펼치며 땅에 닿을 정도로 편안하게 늘어졌다. 굵은 줄기의 웅... -
장군 형제의 넋 기억하는 나무
스무 가구가 채 안 되는 전남 장성 단전리 마을의 어른들께 모두 마을 당산나무 앞으로 나오시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씀드렸다. 공영방송 인기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는데, 한 어르신은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며 “갈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비린 것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마을에서 이처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에서 줄기둘레가 가장 굵은 것으로 알려진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의 높이는 20m인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느티나무라 할 수 있다. 마을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장군나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모셔왔다. 장군의 이야기는 400년 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 이곳에 사람의 보금자리를 일으킨 입향조 김충로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하지 못한 형... -
꽃향기로 존재감 드러내는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남부지방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중부지방에는 다소 생경한 나무다. 하지만 따뜻한 기후의 제주에는 매우 익숙한 나무로, 제주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가 말의 목에 매다는 구슬을 닮았다는 이유에서 ‘멀쿠실낭’이라 부르다가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중에 ‘전가만춘(田家晩春)’이라는 시에 “비 갠 방죽에 청량한 기운 일고/ 멀구슬나무 꽃에 바람 잦아들자 해 길어지네”라며 늦은 봄에 피어난 멀구슬나무 꽃을 노래했던 걸 보면 남부지방에서는 친근한 나무다.멀구슬나무의 열매는 구충제로 이용할 뿐 아니라, 씨앗에서 기름을 짜 피부 질환 치료에 쓰기도 한다. 또 줄기와 가지에 방충 효과가 있어 부러진 가지를 옷장에 넣어 방충제로 쓰기도 했다. 요즘은 부러진 가지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방충 효과를 보기도 한다.멀구슬나무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꽃향기에 있다. 늦은 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