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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나간 나무를 지켜낸 사람들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힘만으로 지켜낸 감동의 사연을 품고 살아남은 나무가 있다. 경북 상주 용포리 평오마을 들녘 가장자리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다.사건은 2009년 초여름에 시작됐다. 마을 어귀에 다정하게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가 나무 수집상에게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의 땅 주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해 땅을 내놓는 바람에 나무도 함께 팔린 것이다. 창졸간에 3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가 사라지게 됐다.오랫동안 할배 할매처럼 여겨온 나무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지킬 방도를 궁리했다. 먼저 ‘나무 이식 반대에 관한 주민 동의서’를 작성해 상주시청과 상주경찰서에 냈다. 마을 역사의 증거이자 상징인 나무를 지켜달라는 호소였다.상주시에선 식물 전문가들의 정밀 조사를 거쳐 2010년 4월에 나무를 보호수 10-08-01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미 나무 수집상은 나무의 값을 비롯해 적지 않은 비용을 ... -
성전환하면서 사람 곁에 살아온 나무
조선 초에 세운 최고의 유학 기관인 서울 문묘 명륜당 마당에는 특별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26m, 가슴높이 줄기둘레 12m의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무너앉은 문묘 일원을 복원한 1602년에 새로 심은 나무로, 명실상부한 문묘 일원의 랜드마크다.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나무에 담긴 전설은 더 특별하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성을 전환한 은행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400년 전부터 이 나무는 오랫동안 씨앗을 풍성하게 맺는 암나무였다.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던 그 시절에 큰 나무에서 풍성하게 맺는 은행은 더없이 훌륭한 먹을거리였다.자연히 가을이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곁에 모여들었다. 학문 탐구에 열중해야 할 명륜당의 앞마당에서는 야단법석이 벌어졌고, 유생들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먹을거리를 찾아 모여든 백성들을 강제로 내쫓을 수 없었던 유생들은 나무가 씨앗을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품었다.유생들의 생각이... -
너럭바위와 한 몸 되어 살아온 1100년
충북 괴산 청천면 낙영산 자락에 터잡은 천년 고찰 공림사에는 ‘천년 느티나무’로 불리는 큰 나무가 있다. 1100년 전인 신라 시대에 경문왕의 지시로 절집을 지은 자정 스님이 심은 나무라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대로라면 느티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나무는 높이 12m, 줄기둘레 8m이며, 나뭇가지는 동서로 11.6m, 남북으로 14m까지 펼쳤다. 이 정도 규모라면 비슷한 기후에서 자라는 여느 느티나무와 견주었을 때 1000년 넘은 나무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나무를 심어 키운 기록이 남지 않아 나무나이를 비롯한 나무를 키워온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다.그럼에도 ‘천년 느티나무’와 절집의 전각들이 어우러지며 뿜어내는 풍광만큼은 더 없이 절묘하다. 특히 나무 앞으로 이어지는 너른 마당 가장자리에 숲을 이룬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를 거느리는 듯한 기품으로 늠연히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풍경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종무소와 요사채 사잇... -
죽음의 고비 넘긴 특별한 나무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우리나라의 아주 특별한 나무가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깊은 산골 마을인 용계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사진)다. 나무높이 3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의 큰 나무인데,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건 규모가 아니라,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 내력 때문이다.700년 전에 뿌리 내리고 마을 당산나무로 살던 이 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건 1987년이었다. 임하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나무도 물을 피해 오랫동안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나무는 옮겨갈 수 없었다.떠나는 사람들은 긴 세월 동안 자신들 살림살이의 안녕을 지켜온 당산나무가 그대로 물속에 갇혀 죽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에 “나무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공사 측에서도 규모나 생김새에서 모두 나라 안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나무를 물속에 잠기게 할 수 없었다.숙고 끝에 한국수자원공사는 나무를 살리... -
한글 지킨 선비처럼 올차게 자란 나무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이 태어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친 곳이다.선생은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내내 이 집을 떠나서 살았다. 오로지 한글을 지키고, 우리 전통 문학장르인 시조를 되살리기 위해서 분주했던 탓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집은 오래도록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이 집에 돌아온 것은 1957년 창졸간에 맞이한 뇌출혈로 활동이 어려워진 뒤였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온 고향집에서 그는 사랑채에 머물렀다. 사랑채 앞, ‘승운정(勝雲亭)’이라고 이름 붙인 모정(茅亭)은 선생이 하늘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하던 자리다.승운정 앞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독특한 모양으로 살아남은 탱자나무다. 2001년에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탱자나무는 선생의 조부가 집을 지은 기념으로 심은 200... -
하늘 아래 첫 감나무
감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가을 기미가 스미면 감이 붉게 익어가면서 단맛이 들기 시작한다. 감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그 가운데에 경북 상주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을 만큼 유명한 감나무 명소다. <세종실록>은 상주의 공물 목록으로 곶감을 지명했고, <예종실록>에는 상주 곶감을 조정에 진상했다고 기록돼 있다.상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부르는 상주 소은리 감나무다.예전에 이 마을에는 ‘할미샘’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었다. 소를 몰고 가던 할머니가 목이 말라서 소 발자국이 찍힌 자리를 호미로 파니 샘물이 솟아올라서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할미샘’이라 불렀다. 할머니는 이 샘물을 마시고 젊어져서 딸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병을 얻자 딸은 어미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늘까지 올라가 곶감을 얻어왔다.딸의 효성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그에게 감나무를 고욤... -
‘우체부가 싫어하는 마을’의 옻나무
옻나무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나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옻나무가 담고 있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심각한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래도록 정성껏 키운 옻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충북 단양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가에 한 그루의 오래된 옻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5m, 줄기둘레 1m의 이 옻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해발 500m에 위치한 이 마을에 들어서려면 자동차 한 대가 길섶의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야 할 만큼 비좁고 굴곡이 심한 산길을 지나야 한다. 여간 조심스러운 길이 아니다. 이 길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이라는 마을 별명을 절로 수긍하게 된다.옻나무로서는 큰 나무에 속하는 이 나무는 전국에 4그루밖에 없는 옻나무 보호수 가운데 한 그루다. 사방으로 7m 정도 펼친 나뭇가지가 지어낸 옻나무 그늘이 품은 ‘말금이 옻샘’... -
‘독립투사’ 흔적을 간직한 나무
유관순, 안중근, 김구 등 독립투사들의 빛바랜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부활시킨 영상이 화제였다. 밝은 웃음이 뭉클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김마리아’ 열사가 있어 반가웠다.김마리아의 독립투쟁을 보좌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김마리아는 1913년부터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그때 일제 순사들이 김마리아를 체포할 빌미를 잡으려고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여학교를 급습한 적이 있었다. 순사가 들이닥칠 낌새를 눈치챈 김마리아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비밀 문서들을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회화나무 줄기의 구멍 안쪽에 숨겼다. 나무줄기가 썩으면서 생긴 큰 구멍이 평소 나무 상태를 세심히 보살피던 김마리아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사들은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나무줄기의 썩은 구멍 안쪽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김마리아를 일제의 손아귀... -
나무 그늘이 좋은 천상의 나무
나무 그늘이 절실한 계절이다. 너른 그늘을 지으려면 나뭇가지를 넓게 펼쳐야 하고 잎도 무성해야 한다. 자연히 그늘이 좋은 나무는 전체 수형까지 아름다운 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로 가죽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가죽나무는 곧은 줄기가 일정한 높이까지 뻗어오른 뒤 가지를 넓게 펼쳐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가지마다 무성히 돋아나는 잎도 더위를 날려버릴 듯 시원스럽다. 하나의 잎자루에서 13~25장씩 돋아나는 홑잎(단엽)은 제가끔 길이 12㎝까지 자라나서 바람에 살랑이며 최상의 그늘을 지어낸다. 가죽나무 그늘은 분명 여느 나무 그늘 못지않게 훌륭하다.중국이 원산지인 가죽나무는 우리나라에 오래전에 들어온 나무로, 참죽나무와 비교해 ‘가짜 참죽나무’라는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영미문화권에서는 생김새가 아름다워 ‘천상의 나무(Tree of Heaven)’라고도 부른다.너른 그늘을 짓는다는 점이 가죽나무의 특징이지만, 그게 도시에서는 치명... -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효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살이의 고통을 치유받을 수 있는 나무가 있다.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의 ‘고창 삼인리 송악’이다.송악은 스스로 양분을 지어내기는 하지만 홀로 설 수 없어 다른 나무나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아이비와 같은 종류의 덩굴식물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송악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해서 ‘담장나무’ 혹은 잎을 소가 잘 먹는다 해서 ‘소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15m 높이의 바위 절벽을 온통 휘감으며 뻗은 ‘고창 삼인리 송악’의 가지가 지어낸 풍광은 장엄하다. 바위 절벽에 단단하게 붙은 채 솟아오른 줄기에서 뻗어나온 무성한 가지가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에는 그가 살아온 수백년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볼수록 신비롭다.‘고창 삼인리 송악’은 처음에 바위틈에 뿌리 내렸다. 긴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만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랐다면 지주가 되는 나무가 송악의 무성한 잎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