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 전체 기사 115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그래도 끝내 지켜야 할 우리 소나무
    그래도 끝내 지켜야 할 우리 소나무

    우리 숲의 소나무가 위기다. 최악의 산불 참사의 원인을 이야기하는 모든 논쟁에 어김없이 소나무가 애물단지로 등장한다. 산불 확산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소나무를 솎아내고 다른 나무들을 많이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는다. 그래도 소나무가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바람 찬 바닷가에 서 있는 ‘강화 초지진 소나무’가 더 애틋해진 건 그래서다. 강화 초지진 소나무는 온몸으로 포탄을 맞으며 민족의 삶을 지켜낸 나무다.1875년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무력 도발을 일으킨 곳이 바로 이곳 초지진이었다. 이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던 35명의 우리 군사가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초지진은 잿더미 되어 스러졌다.폐허가 된 돈대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한 쌍만 애면글면 살아남았다. 우리 젊은이의 죽음을 증거하는 포탄의 흔적은 나무줄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처는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2025.03.31 21:47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잔혹의 역사를 기억하는 큰 나무
    잔혹의 역사를 기억하는 큰 나무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에는 ‘낙화담(落花潭)’이라는, 따스한 봄볕에 어울릴 듯한 낭만적 이름의 연못이 있다. 연못 가운데에 지은 인공섬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연못은 고작해야 330㎡ 규모이지만, 처음에는 5000㎡를 넘었다고 한다. 마을 입향조가 이 땅에 약한 물의 기운을 보태기 위해 연못을 짓고, 풍치를 돋우기 위해 가운데에 섬을 쌓은 뒤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낙화담이라는 이름은 마을의 한 많은 내력이 보태지며 붙었다. 임진왜란 때 상주에 ‘북천전투’라 불리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는 특히 이 마을 출신의 김준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공을 크게 세웠다. 그러나 김 장군이 순직하자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군대가 마을에 쳐들어와 행패를 놓았다.이때 마을 아낙들은 적군에 의해 몸을 더럽히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연못에 몸을 던졌다. ‘꽃 지듯 몸을 던진 여인들’을 기억하며 지어진 이름이 ‘낙화담’이다. 지금으로는 짐...

    2025.03.17 20:40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기록으로 남긴 마을의 큰 나무
    기록으로 남긴 마을의 큰 나무

    농경문화 시대의 선조들은 일상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언 땅에 봄볕 스미면 한 해 농사를 채비하며 마을 앞 들녘에, 자식을 낳으면 뒤란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묘지 앞에 나무를 심었다. 굳이 기록으로 남길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래된 나무의 식재 기록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괴정기(槐亭記)>라는 기록으로 나무를 심어 키운 과정을 또렷이 남긴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는 그래서 남다른 나무라 할 수 있다. 개항기에 활동했던 이 마을 선조 안종창(安鍾彰·1865~1918)이 남긴 기록이다.천연기념물인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는 광주 안씨의 22대조 안여거(安汝居·생몰연대 미상)가 성균관 훈도를 지낸 뒤에 이 마을에 보금자리를 일으키며 손수 심은 걸로 전해진다. 이 회화나무를 안종창은 ‘괴정’이라고 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마을 앞에는 북서쪽 위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로 시작하는 <괴정기>에서 안종창은 이 나무를 “줄기가 수십 아름이나 ...

    2025.03.03 21:38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평화 지킨 백성의 공을 기린 나무
    평화 지킨 백성의 공을 기린 나무

    사람살이에서 오래 기억해야 할 중요한 계기를 나무를 심어 기념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일이 아니다. 이른바 기념식수다. 별다른 기록 방법이 없던 예전에는 오래 기억할 일을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나무를 심어 상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다.땅끝마을 해남, 성내리 해남군청 앞에 서 있는 ‘해남 성내리 수성송(守城松)’이라는 특별한 이름의 나무도 그런 나무다. 조선 중기에 해남현감을 지낸 변협(邊協)이 심고, 해남 사람들이 고이 지켜온 장한 나무다.나무 높이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4.5m인 이 나무는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곰솔이어서 해남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굵은 외줄기가 곧게 오른 뒤, 여러 개의 가지로 나뉘어 넓게 퍼진 모습이 옛사람들의 강인한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이 나무는 평범한 해남 사람들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한 나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460여년 전 남해안 지역에서 벌어진 ‘달량진 사변’ 때 일이다. 일본 대마도 ...

    2025.02.17 21:38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바위틈 뚫고 살아남은 소나무
    바위틈 뚫고 살아남은 소나무

    산다는 것은 제 삶의 특징 일부를 상처내고 내려놓는 일이다. 환경에 적응하려면 제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할 수 없던 일도 해야 한다. 자기만 고집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경남 하동 악양 들녘을 내다보는 지리산 자락의 축지리 대축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하동 축지리 문암송’은 그 사례를 보여주는 특별한 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소나무는 4m쯤 솟아오른 너럭바위 위에서 자라는, 볼수록 경이로운 나무다.누구는 이 소나무의 나이가 300년 됐다고 하고, 또 누구는 600년도 넘었다고 한다. 나무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물 한 방울 스미지 않는 바위 위에서 살아와 여느 소나무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 극한 환경에서 나무는 바위를 쪼개고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다. 거대한 너럭바위는 쩍 갈라졌다. 쪼개진 바위의 틈 안 허공에서 뿌리는 바위의 한쪽을 붙들어 안고 몸피를 키웠다. 바위를 쪼개느라 ...

    2025.02.03 21:02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민족의 상처 함께 슬퍼한 나무
    민족의 상처 함께 슬퍼한 나무

    동해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해상 관음 도량’으로 서해에는 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 석모도에 천년고찰 보문사가 있다. 서해 일몰의 장엄한 풍광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절집이다.보문사는 신라 진덕여왕 3년(649)에 지어진 절집이다. 그때 이 마을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올린 22개의 바위를 ‘천축국에서 보내온 불상’으로 점지받아 지금의 보문사 석굴에 모시면서 절집의 역사가 시작됐다.보문사에는 석굴의 불상만큼 신비롭게 자란 향나무가 있다. 큰법당인 석굴 앞에 수문장처럼 자리 잡은 1.5m 높이의 바위 위에서 700년을 살아온 장한 나무다. 둘레 3m쯤 되는 줄기는 1.7m 높이에서 둘로 나뉘며 동서 방향으로 뻗었다. 대략 1.5m 굵기의 두 줄기는 제가끔 용틀임하듯 배배 꼬이고 비틀리면서 기묘한 모습을 이뤘다.생로병사를 붙들어안고 살아오는 동안 나무는 부러지고 찢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굳건한 생김새를 잃지 않았다. 인천시 자연유산으로의 ...

    2025.01.13 21:21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고속도로 휴게소의 ‘소원 나무’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원 나무’

    난데없는 참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 하냥 어둡다. 누구라도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큰 바람을 꺼내어 되새기게 되는 새해 앞이 어수선하다. 새해에는 더 이상 가슴 쓸어내릴 일 없이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할 뿐이다.‘소원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맡아 하는 큰 나무가 있다. 나무나이 500년의 이 느티나무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대구 달성군 구간의 마산 방향 현풍휴게소의 낮은 동산 마루에 서 있다.마을 당산나무였던 이 느티나무는 고속도로가 마을을 통과하게 되면서 베일 위기에 부닥쳤다. 그때 이 자리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짓고, 당산나무는 휴게소의 상징으로 삼자는 결정이 나왔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보기 드문 좋은 결정이었지 싶다.현풍휴게소는 건물을 느티나무와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뒤편 동산에는 나무를 그대로 보존했다.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긴 세월을 살아온 이 느티나무에는 ‘당산나무’의 현대식 이름이라 할 만한 ‘...

    2024.12.30 20:57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광장의 역사 기억하는 큰 나무
    광장의 역사 기억하는 큰 나무

    600년 전, 경북 안동 풍천면의 하회마을 사람들이 강변의 큰 마당에 모여 마을의 재앙을 몰아내기 위해 굿을 벌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춤이며 국가무형유산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그것이다.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그 시절에 사람들은 탈을 쓰고 신명나는 춤을 추며 양반의 패악질을 꾸짖었다. 흥겹게 이어지는 춤사위에서는 비장함이 배어나왔다. 더 좋은 세상을 이루라는 백성의 엄중한 경고였다. 양반들은 백성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살림살이에 신중해야 했다. 모든 사람살이의 바탕은 결국 큰 마당에서 펼쳐진 백성의 외침이었다.하회마을의 이 위대한 마당 한쪽에서 백성의 정의로운 외침을 지켜준 큰 나무가 있다. ‘삼신당(三神堂) 신목’ ‘삼신당 당산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다. 여기에서 화천 강변 쪽으로 펼쳐진 너른 마당이 하회마을의 민주 광장이다.삼신은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전통 조상신을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삼신당 신목은 탄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는 모...

    2024.12.16 20:41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팔려나간 나무를 지켜낸 사람들
    팔려나간 나무를 지켜낸 사람들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힘만으로 지켜낸 감동의 사연을 품고 살아남은 나무가 있다. 경북 상주 용포리 평오마을 들녘 가장자리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다.사건은 2009년 초여름에 시작됐다. 마을 어귀에 다정하게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가 나무 수집상에게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의 땅 주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해 땅을 내놓는 바람에 나무도 함께 팔린 것이다. 창졸간에 3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가 사라지게 됐다.오랫동안 할배 할매처럼 여겨온 나무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지킬 방도를 궁리했다. 먼저 ‘나무 이식 반대에 관한 주민 동의서’를 작성해 상주시청과 상주경찰서에 냈다. 마을 역사의 증거이자 상징인 나무를 지켜달라는 호소였다.상주시에선 식물 전문가들의 정밀 조사를 거쳐 2010년 4월에 나무를 보호수 10-08-01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미 나무 수집상은 나무의 값을 비롯해 적지 않은 비용을 ...

    2024.12.02 20:51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성전환하면서 사람 곁에 살아온 나무
    성전환하면서 사람 곁에 살아온 나무

    조선 초에 세운 최고의 유학 기관인 서울 문묘 명륜당 마당에는 특별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26m, 가슴높이 줄기둘레 12m의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무너앉은 문묘 일원을 복원한 1602년에 새로 심은 나무로, 명실상부한 문묘 일원의 랜드마크다.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나무에 담긴 전설은 더 특별하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성을 전환한 은행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400년 전부터 이 나무는 오랫동안 씨앗을 풍성하게 맺는 암나무였다.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던 그 시절에 큰 나무에서 풍성하게 맺는 은행은 더없이 훌륭한 먹을거리였다.자연히 가을이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곁에 모여들었다. 학문 탐구에 열중해야 할 명륜당의 앞마당에서는 야단법석이 벌어졌고, 유생들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먹을거리를 찾아 모여든 백성들을 강제로 내쫓을 수 없었던 유생들은 나무가 씨앗을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품었다.유생들의 생각이...

    2024.11.18 21:41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