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 전체 기사 115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폐허 터를 홀로 지켜온 큰 나무
    폐허 터를 홀로 지켜온 큰 나무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세월이 흐르면 한때 번성했던 절집이라 해도 터만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진다. 홀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지키는 건 오직 큰 나무뿐이다.문헌 기록조차 따로 남지 않아 내력을 알기 어려운 충북 진천 보련산 자락의 ‘연곡리 절터’도 그렇다. 전각은 물론이고, 절집 이름조차 사라진 폐허의 터다. 그나마 10세기에 세워진 ‘진천 연곡리 석비’가 남아 있어서 고려 전기에 번창했던 절집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이 석비조차 명문이 없는 백비(白碑)여서 절집 내력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폐허의 절터에 다시 절집을 일으켜 세우기로 한 건 1991년부터였다. 절집 자리를 궁리하던 그때의 기준은 무엇보다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였으리라. 사람의 기억이 사라진 절터를 지켜온 유일한 생명체인 까닭이다.‘진천 보탑사 느티나무’는 2003년에 불사를 마친 새 절집 ‘보탑사’의 풍광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절집에 들어서려면 나무 곁의 돌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레 나...

    2024.01.22 20:16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고려청자 도요지 지켜온 푸조나무
    고려청자 도요지 지켜온 푸조나무

    이름만 듣고 외래종으로 짐작하게 되는 나무 중 ‘푸조나무’가 있다. 하지만 푸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저절로 자라온 토종 나무다. 남부지방에서는 중부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특징 때문에 바닷가 마을에서 정자나무나 방풍림으로도 심어 키운다.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푸조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다. 고려청자 가마터로 유명한 이 마을은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내던 곳이다.‘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생김새도 아름답지만, 우선 그 규모가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고려의 도공들이 떠난 이 자리에서 300년 넘게 살아온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나무 높이가 16m 정도 되고, 뿌리 근처에서 잰 줄기 둘레는 8m를 훌쩍 넘는다. 게다가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제 높이보다 넓게 26m씩 펼치며 땅에 닿을 정도로 편안하게 늘어졌다. 굵은 줄기의 웅...

    2024.01.08 20:16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장군 형제의 넋 기억하는 나무
    장군 형제의 넋 기억하는 나무

    스무 가구가 채 안 되는 전남 장성 단전리 마을의 어른들께 모두 마을 당산나무 앞으로 나오시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씀드렸다. 공영방송 인기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는데, 한 어르신은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며 “갈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비린 것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마을에서 이처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에서 줄기둘레가 가장 굵은 것으로 알려진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의 높이는 20m인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느티나무라 할 수 있다. 마을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장군나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모셔왔다. 장군의 이야기는 400년 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 이곳에 사람의 보금자리를 일으킨 입향조 김충로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하지 못한 형...

    2023.12.25 20:25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꽃향기로 존재감 드러내는 멀구슬나무
    꽃향기로 존재감 드러내는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남부지방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중부지방에는 다소 생경한 나무다. 하지만 따뜻한 기후의 제주에는 매우 익숙한 나무로, 제주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가 말의 목에 매다는 구슬을 닮았다는 이유에서 ‘멀쿠실낭’이라 부르다가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중에 ‘전가만춘(田家晩春)’이라는 시에 “비 갠 방죽에 청량한 기운 일고/ 멀구슬나무 꽃에 바람 잦아들자 해 길어지네”라며 늦은 봄에 피어난 멀구슬나무 꽃을 노래했던 걸 보면 남부지방에서는 친근한 나무다.멀구슬나무의 열매는 구충제로 이용할 뿐 아니라, 씨앗에서 기름을 짜 피부 질환 치료에 쓰기도 한다. 또 줄기와 가지에 방충 효과가 있어 부러진 가지를 옷장에 넣어 방충제로 쓰기도 했다. 요즘은 부러진 가지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방충 효과를 보기도 한다.멀구슬나무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꽃향기에 있다. 늦은 봄부터...

    2023.12.11 20:31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의 마을서 제 이름 지킨 고욤나무
    사람의 마을서 제 이름 지킨 고욤나무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제 존재감을 내려놓아야 하는 얄궂은 운명의 나무가 있다. 고욤나무다. 고욤나무도 분명히 감을 닮은 열매를 맺기는 하지만, 크기가 작은 데다 떫은맛이 커서 환영받는 편이 아니다.그러나 감나무를 키우려면 고욤나무가 필요하다. 씨앗으로 키우면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감나무는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접붙여 키워야 맛난 감을 맺는다. 고욤나무는 결국 감나무를 사람에게 환영받는 나무로 키워내는 뿌리이자 바탕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감나무 그늘에 묻히는 바람에 제 이름을 내려놓고 그저 감나무로 불리게 마련이다.까닭에 크고 오래된 고욤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고욤나무도 2010년에 지정한 ‘보은 용곡리 고욤나무’가 유일하다.‘보은 용곡리 고욤나무’는 이례적으로 고욤나무로서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특별한 나무다. 나무높이가 18m에 이르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도 3m에 가깝다. 10m 넘게 자란 나무를 보기 ...

    2023.11.27 20:34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우리나라 전나무 중 최고의 나무
    우리나라 전나무 중 최고의 나무

    전나무는 추위를 잘 견디는 나무여서 높은 산에서 잘 자란다. 곧은 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전나무는 무리를 이뤄 자랄 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곧게 자라는 품이 아름다워 홀로 심어 키우기도 한 우리 토종 나무다.전나무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는 전북 진안 운장산 기슭의 ‘진안 천황사 전나무’가 유일하다. 신라 헌강왕 때에 창건한 천년고찰 천황사를 찾으면 먼저 절집 돌담 곁에서 줄기의 중동이 댕강 잘린 나무나이 800년의 전나무를 만날 수 있다. 세월의 풍진을 켜켜이 쌓은 나무지만, 부러진 줄기가 안타깝다.천연기념물인 ‘진안 천황사 전나무’는 천황사 남쪽으로 난 숲길을 200m쯤 걸어 오른 곳에 똬리를 튼 ‘남암(南庵)’ 앞 동산에 홀로 우뚝 서 있다. 여느 시골집 살림채처럼 보이는 ‘남암’은 1000년 전에 스님들의 수행처로 세운 암자다. 천황사 돌담 곁 전나무에 비하면 나무나이는 그 절반인 400년에 불과하지만, 자태만큼은 더없이 훌륭하...

    2023.11.13 20:33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도심 한복판서 전통 이어가는 나무
    도심 한복판서 전통 이어가는 나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나무가 있다. 도시라고 다르지 않다. 번거롭고 복잡한 도시라 해도 크고 오래된 나무는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야 하는 사정에 밀려 나무를 위한 자리가 넉넉히 마련되지 못해 존재감이 낮을 뿐이다.근대 개항의 중심 역할을 한 인천시 도심 한복판에서 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을이면 어김없이 형광빛 노란 단풍으로 화려하게 단장하는 한 그루의 융융한 은행나무는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다. 개항 초기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중추 역할을 한 수도권 도시에서, 사람들이 나무의 넉넉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나무의 소중함은 더 커진다. 이태 전인 202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가 그 나무다.나무 높이가 30m나 되는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다섯 개로 고르게 갈라지면서 높지거니 솟아올랐다. 나뭇가지가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진 생김새도 여느 은행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나뭇가지가 펼친...

    2023.10.30 20:31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성공의 기원 담아 심은 큰 나무
    성공의 기원 담아 심은 큰 나무

    그때 그들은 후손의 성공을 기원하며 나무를 심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살림집 대문 앞에 서 있는 ‘해남 연동리 녹우당 은행나무’(사진)가 그 나무다.‘녹우당’은 500여년 전에 이 자리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해남윤씨’를 일으킨 어초은 윤효정((尹孝貞·1476~1543)을 시작으로 윤선도, 윤두서(尹斗緖·1688~1715) 등이 살림을 이어간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택’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전남 지역의 살림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건물로, 보존 가치가 높아 1968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다.‘초록 비’라는 뜻의 당호 ‘녹우(綠雨)’는 이 집 울타리에 닿은 뒷산 숲의 비자나무가 바람이 불면 비 내리는 소리를 낼 만큼 무성하다는 걸 상징한다. 비자나무숲은 이곳에 처음 터 잡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질 것이라고 후손들에게 이르며 꾸준히 나무를 심어 가꾸라고 해서...

    2023.10.16 20:35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조상 음덕 오래 기억하는 나무
    조상 음덕 오래 기억하는 나무

    추석 차례상을 비롯한 모든 제사상에는 반드시 밤을 올려야 한다. 이유가 있다. 밤나무의 씨앗인 밤을 땅에 심으면 새싹을 돋운 뒤에 껍질이 썩지 않고 줄기에 남아 있다. 심지어 백년 동안이나 남아 있다고까지 하지만 이는 과장이고, 실제로 3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옛사람들은 이 같은 밤의 특징을 보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공을 오래 기억하는 씨앗이라고 생각하고, 제사 때에 밤을 올린 것이다.밤나무 열매인 밤송이에는 억센 가시가 솟아나오는 탓에 나무 그늘이 아무리 좋아도 정자나무로 키우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도 심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히 밤나무를 마을 한가운데에 심어 키운 오래된 밤나무가 있다. 퇴계 이황의 친형인 온계 이해(李瀣·1496~1550)가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던 경북 안동 온혜리 온계종택 앞 마을 길에 서 있는 ‘안동 온혜리 밤나무’다.마을 사람들이 밤나무를 심은 건 오래전 보금자리를 틀 때부터였다. 지네 모양을 한 마을 ...

    2023.09.25 20:39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을 살림살이를 지켜온 잣나무
    마을 살림살이를 지켜온 잣나무

    밤나무가 많아 ‘한밤마을’로 불리는 전통 마을이 있다. 950년 무렵 홍란(洪鸞)이란 선비가 마을을 일으킨 대구 군위군 대율리다. 마을 어귀에는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한밤 솔밭’이 있는데, 그 안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던 홍천뢰(洪天賚·1564~1615)와 홍경승(洪慶承·1567~?)의 공적을 기리는 기적비가 있다.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기품이 담긴 마을이란 증거다.전통 가옥들 사이로 정겹게 쌓은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돌아들면 길 끝에서 잣나무 한 쌍이 우뚝 서 있는 남천고택(南川古宅)에 닿게 된다. 남천고택을 상징하는 건 두 그루의 ‘군위 대율리 잣나무’다. 고택 담장에 서 있는 이 나무는 나무 나이 250년, 높이 10m, 줄기 둘레 2m에 이른다. 잣나무가 비교적 수명이 짧은 편임을 감안하면 매우 크고 오래된 나무다.남천고택은 이 마을의 살림집 가운데 가장 큰 집이다. 부림홍씨 10세손인 홍우태(洪寓泰)가 250년 전에 처음 지었...

    2023.09.11 20:2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