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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
  • [이진우의 거리두기]용서를 모르는 과민사회
    용서를 모르는 과민사회

    어느 시대나 지배적인 정서가 있다. 그날그날이 똑같고 변화가 없는 안정적인 시기에는 권태와 지루함이 만연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래가 불투명할 때는 불안이 안개처럼 짙게 깔린다.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도 정서의 변화다. 과거에는 예사롭게 여겨지던 말과 행동에 엄청난 감정적 반응이 따르는 것을 경험하다 보면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당연했던 것이 더는 당연하지 않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세상은 이미 변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 더욱 심해지는 경쟁, 사회적 불평등을 떠올리며 ‘불안’을 제일 앞자리에 놓을 것이다. 기후변화, 난민 문제, 불안한 국제 정세를 그 요인으로 첨가할 수도 있다. 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서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미래가 때로는 근심과 걱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불안은 동시에 미래를 준비할 힘을 키우기도 한다. 불안이라는...

    2021.08.11 03:00

  • [이진우의 거리두기]‘머리와 가슴과 손’의 균형 잡힌 능력주의
    ‘머리와 가슴과 손’의 균형 잡힌 능력주의

    코로나 팬데믹은 사회의 긴박한 문제에 강제로 거리를 두게 만듦으로써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 세계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얽어맨 세계화는 앞으로도 가능한가?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그래도 견디게 만든 디지털화는 지속될 것인가? 세계적 전염병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사회의 양극화는 완화될 것인가?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코로나 이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이 폭로한 문제들이 많지만, 정의로운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능력주의’의 문제로 압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전염병이 능력주의 논쟁에 불을 붙인 대선과 시기적으로 맞물려서만은 아니다. 팬데믹은 그동안 감춰졌던 능력주의의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지독한 전염병을 겪고 있었다. 그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외국을 빈번하게 드나드는 여행자나, 취미와 성향만 비슷하다면 거리를 두지...

    2021.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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