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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GP, 문화유산과 군사시설 간극
2018년 9월19일 남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를 체결했다. 그 일환으로 우리 정부와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시범 철수하기로 했다. 시범 철거 대상은 상호 1㎞ 거리 이내에 있는 남쪽 GP 11곳과 북쪽 GP 11곳. 그러나 얼마 후 남북은 철거 대상 가운데 하나씩을 골라 보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측 보존 대상은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에 있는 최동북단 GP(829GP·사진). 북한 측 보존 대상은 중부전선의 까칠봉 GP. 나머지 20개는 모두 철거했다.829GP는 1953년 군사정전협정 체결 직후 남측 지역에 처음 설치한 GP. 남측 GP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쳤으며 40~50여명의 병사들이 2개월 정도 근무할 수 있는 규모다. 북측 GP가 철거되기 전까지 북측 GP와 가장 가까운 거리(580m)에 위치했던 GP였다. DMZ의 여러 GP 가운데 역사성과 상징성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
추억의 거리와 장미다방체
“7080 쎈-세이숀 추억의 거리가 완전히 새로워졌읍니다. 그랜드 오픈 뉴-타잎.”올해 5월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앞 담장에 이런 문구의 홍보안내판이 걸렸다. 언뜻 보아도 1970~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야외전시장인 추억의 거리를 다시 꾸몄다. 북촌초등학교, 근대화수퍼, 화개이발관, 약속다방, 스타의상실, 종합전파사, 장수탕 등 1970~1980년대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골목 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공간도 흥미로웠지만 그 못지않게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브로슈어와 안내판이었다. 옛날 분위기의 글씨체와 옛날 철자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70~1980년대 간판과 기존의 여러 글씨체를 참고해 이 같은 글씨체를 디자인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젊은층에겐 낯섦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최근 옛날 글씨체가 은근히 인기를 끌고 있다... -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두 분은 새벽 5시쯤 병원 아동실에 도착하여 우유를 만들 물을 끓였습니다. 따뜻한 우유를 만들어 새벽마다 병실 어르신들에게 직접 가져다 드렸습니다. … 부락에서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드리며 람프렌과 주치약 투약을 했습니다. … 영양이 부족한 듯 보이면 종교 구분 없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치유될 때까지 한 끼 먹을 분량을 냄비에 따뜻하게 가져와 직접 주거나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았고 철저히 숨었습니다.”(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홈페이지)1962년부터 2005년까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벽안(碧眼)의 두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40여년간 그들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한결같았다. 20대의 한창 나이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낯설고 가난한 이역 땅에서 봉사로 일관했던 그들의 삶. 늘 따스하고 아름다웠지만 2005년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 -
책 향기도, 시위학생도 품던 종로서적
1980년대 서울의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면 그 서점의 포장지로 책 표지를 싸주었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도 포장한 책을 들고 다니면 그 자체로 폼이 났다. ‘나 종로서적, 교보문고 다녀왔다’는 표시였다. 지적 허영이었지만, 그 시절 내겐 하나의 문화패션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종로서적 포장지와 교보문고 포장지는 대조적이었다. 종로서적 포장지엔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과 보신각이 짙은 갈색의 묵직한 톤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투박하지만 무언가 고집 같은 것이 묻어났다. 반면, 교보문고 포장지는 교보문고 글자를 변형한 로고를 나열하듯 뽀얀 종이에 디자인한 것이었다. 종로서적에 비하면 서구적이고 현대적이었다.이 같은 분위기 차이는 건물에서도 나타났다. 1948년 문을 연 종로서적은 종로2가의 오래된 건물을 증축하고 연결하면서 공간을 확장했다. 그래서 좁은 입구를 통해 계단을 타고 6층까지 올라가는 구조였다. 이와 달리 1981년 6월 문을 연 교보문고는 새로 지은 ... -
힙지로의 두 얼굴
가수 이용은 그의 히트곡 ‘서울’(1982년 작)에서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라고 노래했다. 그 을지로가 요즘엔 ‘힙지로’로 통한다. ‘힙’한 을지로라는 말이다. 그 힙의 정체는 레트로와 뉴트로이다.힙지로의 핵심은 을지로 3가 일대. 이곳은 서울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의 을지로3가역을 중심으로 4개의 블록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가장 힙한 곳은 서남쪽 블록.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중구 인현동으로, 예전엔 흔히 충무로 인쇄골목이라 불렀다. 1910년대 을지로 인근 영화관들의 광고 전단을 찍기 시작하면서 인쇄골목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엔 충무로로 확장되었고 1980년대엔 장교동의 인쇄업체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성황을 이뤘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단순 인쇄뿐만 아니라 디자인 편집 코팅 금박 스티커 제본 등 인쇄에 관한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인쇄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골뱅이 골목, 노가리 골목도 인쇄업의 ... -
1970년대, 발굴과의 만남
2년 전 공주에선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열렸다. 올봄 경주 도심에선 천마총 발굴 50주년 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그 일환으로 마련된 국립경주박물관의 특별전 ‘천마, 다시 만나다’가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고 한다.50년 전이라고 하면, 1970년대다. 사람들은 197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박정희와 유신과 10·26,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 중동 건설 붐, 대연각 호텔 화재, 현대자동차 포니의 탄생, 권투선수 홍수환과 축구선수 차범근,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등…. 저마다 기억이 다르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공주 무령왕릉 발굴(1971), 천마총 발굴(1973), 경주 황남대총 발굴(1973~1975), 고령 지산동 44호분 발굴(1977), 신안 해저유물 발굴(1976~1984) 등이다. 무령왕릉에선 5200여점, 천마총에선 1만1500여점, 황남대총에선 5만8400여점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 -
포니의 추억
울산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언양 불고기, 반구대 암각화, 태화강….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현대’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 산업화 1번지로서의 상징적 존재, 현대 하면 또 무엇이 떠오를까. 2011년 울산에 울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그때 박물관은 현대의 상징물을 전시하고자 했다. 그것은 자동차였다. 쏘나타·제네시스가 아니라 1975년 생산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였다. 그런데 포니를 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포니 자체도 드문 데다 소유자들이 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기 때문이다. 울산박물관은 외국에 수출된 포니를 구하려고 알아봤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어려움 끝에 박물관은 1980년형 자주색 포니를 5000만원에 구입했다.울산박물관의 어려움을 알게 된 현대자동차는 네덜란드에서 포니 한 대를 구입해 2011년 박물관에 기증했다. 1981년 생산돼 네덜란드로 수출한 포니로 추정된다고 한다. 2017년엔... -
맥주와 레트로
3년 전쯤 어느 날 저녁, 인천 개항장 거리 일대에서 근대 건축물 조사를 마치고 인천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아트플랫폼 골목이 거의 끝나가고 차이나타운이 눈에 들어올 즈음, 옛 창고 건물 외벽에 걸린 맥줏집 간판이 보였다. 인천맥주. 다소 촌스러운 듯한 이름이었지만, 무언가 낭만과 운치가 있어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맥주도 맛있었지만 실내의 창고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나오면서 맥주와 근대 거리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요즘 맥주판의 레트로 열풍이 심상치 않다. 그 첫 주자는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합작한 ‘곰표맥주’였다. 2021년 편의점 맥주 판매 1위를 기록했던 곰표맥주. 주 고객은 젊은층이었고, 곰표맥주는 대박을 터뜨렸다. 1952년 창립한 밀가루 제조회사 대한제분의 곰표 브랜드를 젊은층이 이렇게 좋아하다니. 이후 곰표맥주와 유사한 ‘콜라보’ 맥주가 줄지어 등장했다. ‘말표맥주’ ‘럭키금성맥주’ ‘BYC... -
그 시절, 가정상비약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약 광고를 보았다. 오래된 약, 안티푸라민의 광고였다. 아니, 안티푸라민의 TV 광고가 있다니, 그것도 손흥민이 모델로 나오다니. 이 상황이 내겐 무척이나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3년 전부터 시작된 광고라고 한다. 어쨌든, 이 광고는 안티푸라민에 대한 나의 향수를 자극하고 말았다.옛날 청소년 시절까지 나의 집엔 늘 안티푸라민이 있었다. 모기에게 물려도 그것을 발랐고, 타박상에도 그것을 발랐다. 피부나 소염에 관해선 안티푸라민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 시절은 안티푸라민에 완전히 세뇌(?)당했던 모양이다.옛날 안티푸라민 연고는 초록색의 둥글고 넓적한 철제 케이스 모양이었다. 거기 그려진 간호사의 얼굴. 디자인은 다소 촌스러웠지만 그 이미지는 선명하게 다가왔다. 철제 케이스의 표면은 미끈미끈했다.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면 연고가 케이스에 묻기 마련인데, 그로 인해 케이스 표면은 더 미끄러워지고 그... -
원주 아카데미와 경동1960
30~40년 전, 비교적 큰 도시엔 아카데미란 이름의 극장이 있었다. 대체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단관극장들이었다. 강원 원주에도 1963년 문을 연 아카데미극장(사진)이 있었다. 그에 앞서 원주엔 원주극장, 군인극장, 시공관, 문화극장도 들어섰다. 이 극장들은 50년 가까이 원주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으며 애환을 함께했다. 그러나 2005년 대기업 복합상영관이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했다. 단관극장들은 줄줄이 폐업했고 2006년 아카데미극장도 문을 닫았다. 다른 극장들은 건물마저 철거되었지만 다행히 아카데미극장 건물은 살아남았다.2010년대 후반, 방치되어온 아카데미극장 건물을 되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지역 문화의 상징 공간이자 의미 있는 근대건축물로, 기억하고 보존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 난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보존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