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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의 창]정태춘·박은옥, 시대와의 화해
    정태춘·박은옥, 시대와의 화해

    젊었을 때는 귀에 꽂히는 노래들이 좋았다. 유행가 차트의 수위권을 장식했던 발라드곡들, 가수들이 핏대가 보이는 듯 절정의 고음을 뽐내는 노래들에 끌렸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노래들이 부담스러워졌다. 직설적인 가사는 오글거리고, 한없이 올라가는 고음은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노랫말이 들려왔다. 시를 읊조리는 듯한 루시드 폴의 노래들, 에피톤 프로젝트의 낮은 목소리를 좋아하게 됐다.나이가 더 들어서는 정태춘·박은옥 선생의 노래가 다시 들렸다. 삶의 우수를 한웅큼 품은 듯한 노랫말과 목소리는 남다른 것이었다. 초중고 시절 처음 들었던 ‘시인의 마을’이나 ‘촛불’ 등은 다소 어두운 노래로 기억됐었다. 세상 어려움을 겪고,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노래의 깊은 뜻과 정서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탓일까. 수집 차원에서 구매해뒀던 CD를 꺼냈고, 두 사람의 노래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듣게 됐다.사실 정태춘 선생에 대한 기억이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학 1학년 봄 축제...

    2025.07.03 21:16

  • [에디터의 창]AI 시대에는 기계를 돌보는 몸이 안전할까
    AI 시대에는 기계를 돌보는 몸이 안전할까

    헬멧 아래로 보이는 맑고 선한 눈, 약간 상기된 미소가 앞날에 대한 설렘과 희망을 머금은 청년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노동자 김충현이 마흔한 살 때인 2016년 태안화력발전소의 공작기계 담당으로 입사한 것을 기념해 스스로 찍은 사진이다.그 후로 9년, 김충현이 속한 회사는 8번 바뀌었다. 회사가 2년 이상 근무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려 한 사정과 관계있다. 그는 불공정한 다단계 하청 구조의 가장 아래에서 일하다 지난 2일 기계에 끼여 숨졌다. 같은 발전소에서 20대 김용균이 숨진 지 6년이 지났지만 일터 안전에서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었다.김충현은 재하청 노동자이면서 이른바 ‘전환’(에너지 전환을 뜻한다) 대상 산업 종사자였다. 재하청은 일 시키는 사람은 있어도 안전을 책임질 사람은 없다는 뜻이고, 전환은 일자리가 곧 사라진다는 뜻이다.김충현과 김용균이 위험한 작업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2025.06.26 21:41

  • [에디터의 창]‘은박 고깔’의 꿈과 지주의 나라
    ‘은박 고깔’의 꿈과 지주의 나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3월10일)을 앞둔 2017년 3월 초순, 나는 ‘[지주의 나라] ①우리들의 일그러진 꿈, 건물주’를 앞세운 기획시리즈를 야심차게 내놨다. 목적은 또렷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시리즈 기사는 얼마 버텨내지 못했다. ‘어느 탈레반들’의 반발 등 자세한 내막은 이제 와서 굳이 되짚고 싶진 않다. 결론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더 폭등해 버렸다. 그 민심 이반의 산물이 윤석열이란 위험인물의 등극이었다.“자, 드디어 민주당 정부가 돌아왔다. 또 집값이 뛸 것 같다”는 얘기가 장안에 팽배해 있다. 매매 심리지수, 거래량 등 각종 지표는 벌써 우상향을 그린다. 금리도 내렸고, 대출금도 올 5월에만 5조원 넘게 불었다. 살얼음판에 발을 내디딘 듯 불안, 불안하다.“가격 오른다고 굳이 압박해 힘들여 낮출 필요 있나” “세금으로 수요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공급을 늘려서 적정 가...

    2025.06.19 21:00

  • [에디터의 창]이재명 실용정부가 성공하려면
    이재명 실용정부가 성공하려면

    이재명 정부는 기존 민주당 정부와 많이 다르다. 중도보수를 표방한 것도 그렇고 실용주의 노선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성장을 통한 행복을 강조했다. 개인도 국가도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연한 실용정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권위주의 청산, 권력기관 독립, 재벌개혁,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강조한 것과 차이가 확연하다. 취임사만 보면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해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강조한 이명박 정부와 더 닮았다.취임 초반 이 대통령 행보에서 실용주의는 확인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1호 지시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를 신설하고, ‘코스피 5000 시대’를 만들자며 증권거래소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골프를 화제로 꺼냈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선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거론하지 않았다.이재명...

    2025.06.12 20:29

  • [에디터의 창] 부족했던 1%포인트, 대통령 이재명의 숙제
    부족했던 1%포인트, 대통령 이재명의 숙제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과 대선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몇달이었다. 한숨을 돌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그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앙상하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초록의 이파리로 덮여 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 하늘을 더럽히던 북의 오물 풍선도 사라졌다.지난해 10월만 해도 정상회담을 앞둔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 발견되던 오물 풍선이었다. 서울 여의도 고층 빌딩에서 보면 오물 풍선이 열기구처럼 둥둥 떠다닌다고도 했다. 우리 쪽에서 대북전단 날리기를 먼저 중단한 것인지, 아니면 북측이 우리 상황을 간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는 오물 풍선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실효적인 대응은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능했다.“이제 일 좀 해야지요.”5일 만난 대기업 간부 A씨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우리 기업들은 업무가 거의 ‘스톱’ 상태였다고 한다. 국내외...

    2025.06.05 20:56

  • [에디터의 창]괴작의 추억
    괴작의 추억

    1990년대의 어느 겨울, 지금은 없어진 종로3가 단성사에서 신인 감독의 패기 혹은 객기 넘치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혼자 킬킬거린 적이 있다. 드넓은 극장 안에 관객은 10명 남짓이었고, 극장주는 본전 생각이 난 듯 난방을 껐다.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자가 찬 입김을 뿜어대며 박장대소하자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다른 관객들 보기 부끄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지금도 기자의 개그코드를 이상하게 여긴다. 어떤 영화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 즐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일 뿐이라는 시답잖은 변명을 했었다.영화에 한없이 너그러운 기자도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른바 괴작(怪作)들이다. 괴작이란 괴이한 작품, 여러 가지 의미로 괴상한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일부에서 추앙받는 컬트영화와는 태생부터 다르다(기자가 재밌게 본 이상한 영화는 뒤늦게 컬트 반열에 오르고,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까지 했다). 굳이 말하자면 괴작...

    2025.05.29 20:59

  • [에디터의 창]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적 합의’는 이견과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책임을 회피할 때 쓰는 완곡 어법으로 굳어진 지 오래됐다. 대선 과정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사람을 성별, 장애, 연령, 학력, 종교, 고용, 인종,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법이다. 많은 나라가 채택했고, 유엔도 한국에 입법을 권고한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견해를 물었다. 이 후보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지금 그 논의를 하면 갈등이 심화되고 당장 해야 할 시급한 일들을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차별금지법은 2007년 정부 입법예고 이후 20년 가까이 논의됐다. 법안 11건이 ‘사회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폐기됐지만, 시민의 인식 차원에서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국민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에 찬성(찬성하는 편 50.8%, 매우 찬성 37.7%)했다. 5...

    2025.05.22 20:52

  • [에디터의 창]소비자 입증책임 완화, ‘이게 왜 안 돼!’
    소비자 입증책임 완화, ‘이게 왜 안 돼!’

    결국 예상대로였다. 놀랍지도 않다.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동승한 손자 이도현군(12세)이 숨진 차량 사고를 놓고 1심 법원은 제조사인 KG모빌리티 손을 들어줬다. 운전자인 할머니가 주장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탓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약 30초 동안이나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고 있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요즘 차는 ‘바퀴 달린 전자제품’에 가깝다. 온갖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한다. 급발진 사고를 따지는 근거는 대개 ‘풀 가속’으로 찍히는 사고기록장치(EDR) 값이다. 그러나 운전자가 직접 밟지 않더라도 전기신호의 오작동으로 인한 ‘풀 가속’이 나타날 가능성은 과연 없을까. 전자장비 결함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급발진인데 ‘페달을 밟았느냐’로 판단하는 건 한계가 있지 않나. 경찰은 비록 형사책임 건이지만,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할머니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25.05.15 20:16

  • [에디터의 창]‘하버드 나온 윤석열’에게 목맨 국민의힘
    ‘하버드 나온 윤석열’에게 목맨 국민의힘

    ‘꼭두각시의 반란.’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단일화 갈등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국민의힘은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세 번의 경선 끝에 김문수를 대선 후보로 뽑았다. 하지만 ‘쌍권’(권영세·권성동)을 비롯해 친윤석열계 지도부 누구도 그를 정식 대선 후보로 대우하지 않는다. 당 회의실 백드롭에 그의 이름도 사진도 없다. 친윤 입장에서 김문수는 단일화 이벤트를 통해 탄핵정권 2인자 한덕수를 당 간판으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바지 후보였다. 친윤계는 김문수 캠프에 위장취업했다. 김문수를 밀어 ‘독고다이’ 홍준표를 잘라냈고,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을 쳐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꼭두각시 인형이 당무우선권을 주장하며 퇴장하라는 지시를 안 따르니 친윤계로선 미칠 일이다.명분도 재미도 감동도 없는 단일화 쇼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흥행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친윤 지도부는 결국 자기 손으로 뽑은 대선 후보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당원도 아닌 용병 한덕수를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한 강...

    2025.05.08 20:50

  • [에디터의 창]나쁜놈들 전성시대, 착한 영화가 보고 싶다
    나쁜놈들 전성시대, 착한 영화가 보고 싶다

    꽤 오랜 시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영화들을 봤다. 한국영화 수준은 형편없고, 상영하는 외국영화 수도 많지 않던 시절에도 극장들이 모여 있던 종로, 을지로, 충무로를 자주 찾았다. 영화에 깊이 빠져든 적도, 잠시 멀어진 적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일관됐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들이 보상받는, 순하고 따뜻한 영화들에 끌렸다. 깊이 없다는 말도 들었지만, 퍽퍽한 현실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좋지만 어두운 극장에서 보내는 두 시간의 행복은 지금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취향 때문인지, 좋아하는 감독들도 진지한 시네필들과는 다르다. 예술영화로 유명한 거장보다 직관적이고 따뜻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더 좋았다. 프랭크 카프라의 1930~1940년대 작품들을 사랑한다. 착한 사람들은 결국 행복해진다는 동화 같은 메시지를 담은 <어느날 밤에 생긴 일>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 <멋진 인생> &...

    2025.04.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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