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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집은 어디인가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브리핑·기자회견 뒤 참모들과 평가회의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후련함도 보였다고 한다. 앞으로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를 자주 갖겠다고 했다고도 전해졌다. 미국 대선에 등장한 ‘weird(이상한)’와 ‘creepy(기괴한)’는 이때 쓰는 모양이다.국정브리핑·기자회견이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게 언론 대부분의 평가다. 국정브리핑은 자화자찬으로 채워졌고, 기자회견은 동문서답이 주를 이뤘다. 미흡함을 인정하고, 고충도 털어놓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자리가 누구한테는 더부룩한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여명808’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국민 절반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던데, 이번 일로 더 갑갑해진 국민 속은 누가 풀어주나.이상하고 기괴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의료공백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의료 현장에... -
예산안에 풍기는 인텔의 향기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를 들렀다. 실리콘밸리에 온 이상 ‘반도체의 왕’ 인텔을 안 볼 수 있나. 가이드를 자처한 지인에게 인텔 본사에 위치한 인텔박물관에 가보자고 했다.“거기는 안 가봐도 돼요. 요즘은 사람들이 안 가요.”빅테크에서 수십년을 근무하다 몇달 전 퇴사한 그는 정색을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반도체 왕국은 이제 거기에 없습니다.” ‘인텔 인사이드’의 신화가 실리콘밸리에서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기준 인텔의 주가는 주당 19달러, 시가총액은 837억달러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주가는 75달러, 시총은 5000억달러였다. 올 초 미국 정부는 반도체 부활을 꿈꾸며 인텔에 26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인텔의 지난 2분기 매출은 1년 전에 비해 감소했고, 순손실은 2조원을 넘어섰다. CPU의 아성은 AMD에 의해 금이 가고 있고,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의 벽에 꽉 막혀 있다. “인... -
‘대통령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태극기의 반성
우리는 태극기세력입니다. 고백건대 윤석열 대통령님을 오랫동안 가짜 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등 보수진영을 초토화시킨 대통령님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부딪친 것은 약속대련으로 봤습니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와 결별한 것으로 꾸미고 국민의힘에 위장취업해 보수의 남은 뿌리마저 뽑으려 한다는 것이 우리 쪽 다수의 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말씀과 인사 등을 보면서 대통령님이야말로 진정한 태극기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사실 총선 때도 대통령님을 의심했습니다. 태극기 독자세력화 차원에서 신당도 만들어봤습니다. 대통령님이 총선 참패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많은 태극기들이 등을 돌리려 했습니다. 좌파세력과 국정을 논하다니요. 그러나 대통령님이 즉각 야당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국정을 제 궤도... -
‘반지하방의 추억’ 그리고 공급폭탄
창밖으로 행인의 발목만 보인 적이 있는가.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집은 사실 경기 고양의 세트장인 데다, 행인 얼굴이라도 보이니 차라리 낫다. 문득 대학생 때 살던 반지하방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언덕배기 빌라 반지하 맞은편 단칸방에는 애 하나 딸린 신혼부부도 살았다. 물 내리는 손잡이 달린 구식 화장실은 심지어 공용이었다. 한번은 위층 배관이 터졌는지,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라때’는 그랬다. 요즘 세상에 이런 데서 애 낳고 살라 하면 다들 고무신 거꾸로 신을지도 모르겠다. 저출생 해결을 향한 제1차 관문은 역시 집이다.과연 집이 얼마나 부족할까. 집값이 꿈틀대자 세간에 공급을 놓고 말들이 많다. 국내 주택보급률은 진작에 100%를 넘었다. 이른바 ‘살고 싶은 곳’에 ‘괜찮은 집’이 모자라다는 게 갈등의 본질이다.이번 ‘8·8 공급대책’은 8만가구의 아파트를 신규 택지에 짓고, 11만가구는 비아파트, 즉 빌라 등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아... -
바이든 사퇴와 윤 대통령의 선택
미국 대선 구도를 극적으로 바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책임의식, 권력의 속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대선 후보 첫 TV토론 후 불거진 ‘고령 리스크’로 당 안팎의 압박을 받다가 재선을 포기하기까지 25일간은 바이든에게 당혹과 분노, 고심과 결단의 시간이었을 테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투표일을 100일 남짓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바이든은 3수 끝에 대통령에 오르는 등 50년 넘게 정치인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막을 수 있는 건 4년 전 그를 제압한 자신밖에 없다는 사명감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경력을 부정하는 선택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이번 사퇴극은 폐쇄적이고 자기도취적인 권력의 속성도 함께 드러내 보였다. 바이든은 재선 포기 압력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최측근이나 가족의 의견에만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 포기... -
누가 리더를 죽였나
장마 속 출근길. 붐비고 꿉꿉한 지하철에서 한 학생이 멘 백팩에 붙어 있는 작은 문구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다. ‘각계각층의 지도자 양성학교.’ 개인의 출세나 영달보다는 조국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인재를 선발하겠다며 설립한 강원도 소재 A학교 소개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지도자를 ‘집단의 통일을 유지하고 성원이 행동하는 데 있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지도자를 영어로 바꾼 표현이 리더다.한국 사회에서 리더가 사라졌다는 한탄이 나온 지 오래됐다. 믿고 존경해 따를 만한 리더 같은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은 한국 사회를 이끌 리더를 뽑는 선거였다기보다 나쁜 리더를 뽑지 않기 위한 선거에 가까웠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 누가 돼도 강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괴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 리더가 사라진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대선에서 인물난을 겪... -
윤석열과 한동훈, 누가 더 큰 배신자인가
되짚어보면 윤석열 정치의 출발이 배신이었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공정과 상식’ 이미지를 얻고, 그 덕에 대통령까지 됐다. 자신을 발탁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이었지만 당시엔 권력에 굴하지 않은 정의와 용기로 포장됐고, 그의 부족한 정치적 자질과 정책적 역량, 성마른 성격은 가려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자신에게 권력을 안겨준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내다버렸다. 자신과 아내 보호에만 급급하는 지극히 사적인 행보는 결기로 포장됐던 검찰총장 윤석열의 행동들이 정치적 계산에 따른 배신임을 보여준다. 배신자일수록 배신을 두려워한다. 배신 경험자로서 배신에 대한 촉이 남다르고, 배신이 초래한 참혹한 결과를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때의 측근’ 한동훈 후보에 대해 유별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배신 경험자로서 본능이 발동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배신을 탓하기에 앞서 ... -
종부세 폐지론과 패닉바잉 그리고 ‘악어의 눈물’
2022년 1월24일 한겨울, 경기 성남의 상대원시장 골목이 한 중년 남성의 뜨거운 눈물로 달궈졌다. 유튜브 생중계로 보던 이의 눈시울마저 붉어질 뻔했다. 그렇다. 이재명 대선 후보에겐 서민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선거 막판 구구절절한 연설에 완전 ‘잼며든’ 많은 이들이 지지자가 됐다.“여덟 가족이 반지하방 한곳에서 살았습니다. 이 골목에서 아버지의 리어카를 밀면서, 학교 가는 여학생들을 피해서 저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중략)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서민들의 삶과 이재명의 참혹한 삶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흉금을 터놓은 말은 안타깝게도 시장통을 넘지 못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왜 그랬을까. 결국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서민을 앞세워 총선에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느닷없이 종합부동산세를 없애자는 얘기를 내놓고 했다. 무슨 자신감일까, 어떤 복안이 있을까, 벌써 대선 주판을 튕기는 걸까.문재인 정부 때 한 달이... -
가시로 막고 막대로 치려 해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숨기거나 뭉개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반면 유리하다 싶은 일은 떠벌리거나 부풀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은 그런 속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주무 부서도 파악 못했고, 시작 8분 전에야 공지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내용을 보면 석유와 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가 확인됐다는 수준이다. 아프리카 정상들과 연쇄 회담이 예정돼 있던 윤 대통령이 굳이 나서서 브리핑 할 일이었나 싶다. 게다가 호주 석유개발회사가 이 사업을 ‘가망 없다’고 결론 낸 사실이 알려지고,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잇따랐다. 결국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슈를 부풀리려 했다는 의심이 짙다. 상시화하고 있는 레임덕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
정부는 오답을 쓰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료노조)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의협)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의협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진료거부와 집단휴진을 전면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전날 의료노조는 의사 최고연봉이 6억원이 넘는다는 내용도 공개했다(하지만 6억원대를 받는 의사는 지방의 특수목적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다). 이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의사에 대한 혐오글로 가득했다.그런데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1년 전 건설산업노조(건설노조)가 처한 상황이 떠오른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해 4월11일 30대 건설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현장 정상화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건설노조의 불법행위근절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118개 건설회사가 타워크레인 월례비, 노조 전임비로 3년간 1686억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당시 정부와 건설사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불법채용 등을 내세우며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를 보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