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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의 창]한국 사회 부적응자가 남긴 이야기
    한국 사회 부적응자가 남긴 이야기

    2011년 여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홍세화를 봤다.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을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갔을 때다. 홍세화는 무대 먼발치 담벼락 쪽에서 홀로 행사를 지켜봤다. ‘진보 셀럽’들이 맨 앞자리 어디 앉을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걸 목격한 뒤라 그 모습이 오래 남았다.2013년 홍세화가 제안해 만든 학습 협동조합 이름이 ‘가장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 경계를 지키거나 버티려던 마음으로 담벼락 쪽에 선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자리’ 창립과 ‘말과활’ 창간을 두고 인터뷰했을 때 홍세화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죠. 중심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중심이 점 하나라면, 가장자리는 평등한 점들이 모여 만드는 선입니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맞잡는 연대의 선인 거죠.”부고에 그 가장자리를 떠올렸다. 그 자리는 전장이었다. 모두가 점 하나, 장교가 되려는 세상에서 홍세화는 늘 “끝까지 사병으로 남...

    2024.05.02 20:39

  • [에디터의 창]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지난달 베란다 화분에 홍로 사과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난 2년간 뒤뜰에 있던 것인데 일조량이나 기온 탓인지 도통 꽃을 피우지 못해서다. 북쪽에선 싹 틔우기도 힘드니 꽃이 필 리 없다. 올해는 홍로를 맛볼 수 있을까.올해만큼 이토록 화려했던 봄은 내 일찍이 못 봤다. 진달래, 개나리가 벚꽃과 동무가 되고, 목련이 채 피기도 전 벚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린다. 조팝꽃이 산수유보다 일찍 향을 뽐내질 않나. 온통 뒤죽박죽이다. 봄의 전령들은 어쩌다가 이런 철부지가 됐을까. 덕분에 봄나들이는 멋지게 즐겼지만 왠지 씁쓸하고, 슬슬 불안해진다.누구는 <침묵의 봄>(1962)을 우려했어도, 우리는 이 ‘화사한 봄’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만일 봄 기온이 갑자기 3도 정도로 떨어져 수십일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농작물은 태반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자전축이 틀어지거나 하는 사태가 아니어도 이런 위험이 불현듯 닥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

    2024.04.25 20:56

  • [에디터의 창] 윤 대통령, 이대로면 더한 게 온다
    윤 대통령, 이대로면 더한 게 온다

    선거에서 지고 나면 지는 이유 100가지가 만들어지지만, 이번 4·10 총선만큼은 예외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여당의 기록적 참패 원인으로 ‘용산’을 지목한다. 선거 다음날 한 보수지 사설에선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을 콕 집어 거론했다. 외신들도 윤석열 정부의 고물가 대응과 일방통행식 통치를 패인으로 들었다.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은 그래서 ‘돌려까기’처럼 들린다.정작 당사자가 총선 후 엿새 만에 내놓은 입장은 이세계(異世界)급이다. TV 생중계된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국정 방향은 옳지만 국민이 체감할 변화는 미흡했다’로 요약된다. 오만과 불통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여당이 이 정도로 참패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내각제였으면 정권이 바뀌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말이 더 가관이다. “국정 방향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응축된 국민의...

    2024.04.18 16:07

  • [에디터의 창]심판의 날, 그 이후
    심판의 날, 그 이후

    “사과 3박스 사놨어요. 총선 끝나면 가격이 다시 오르지 않겠어요?”최근 만난 지인은 사과를 깎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3월 초 사과 10㎏에 9만~10만원 하던 게 4월 초에는 6만~7만원으로 내렸길래 3박스를 ‘득템’했다고 했다. 정부 할인쿠폰은 1인 한 번만 적용된다고 해 가족 명의 전부를 동원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시민들이 정부 머리 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사과 가격 하락이 시장의 결정이 아닌 총선을 앞둔 정부의 한시적인 미봉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4·10 총선이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민심의 선택은 ‘정권심판’이었다. 여론의 중심에 사과와 대파로 표현된 ‘민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심판은 내려졌지만, 사실 걱정은 지금부터다. 11일 국가결산 보고를 시작으로 그간 총선을 이유로 여권이 미뤄놓은 혹은 약속한 경제 청구서들이 줄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당장 관심은 밥상물가다. 지난달 사과와...

    2024.04.11 20:21

  • [에디터의 창]윤석열 대통령, 4월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라
    윤석열 대통령, 4월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라

    다시, 결국 윤석열이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총선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섰다. 의지대로 섰다기보다, 자의 반 타의 반 불려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선거 국면 초반 거친 이념적 발언을 전보다 삼가는 등 나름의 로키 행보를 했지만, 윤 대통령은 심판 여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논란이 거셀 때 한숨 돌렸을 터지만,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도저히 적절해 보이지 않는 몇몇 민주당 후보들의 자격 논란도 심판 여론을 누르진 못했다. 유권자의 격노한 민심 앞에 격노의 아이콘이 무기력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권력무상을 곱씹게 된다. 정치권 인사들은 채모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이 심판론에 불을 붙였다고 분석한다. 의료파업 장기화, 대통령이 들었던 대파 한 단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대파 격파쇼를 벌인 여당 후보가 여권 전체를 격파했다는 농담도...

    2024.04.04 20:32

  • [에디터의 창] 윤 대통령, 4월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라
    윤 대통령, 4월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라

    다시, 결국 윤석열이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총선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섰다. 의지대로 섰다기보다, 자의 반 타의 반 불려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선거 국면 초반 거친 이념적 발언을 전보다 삼가는 등 나름의 로키 행보를 했지만, 윤 대통령은 심판 여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논란이 거셀 때 한숨 돌렸을 터지만,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도저히 적절해 보이지 않는 몇몇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비판 여론도 들끓는 심판 여론을 누르진 못했다. 유권자의 격노한 민심 앞에 격노의 아이콘이 무기력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권력무상을 곱씹게 된다.정치권 인사들은 채모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이 심판론에 불을 붙였다고 분석한다. 의료파업 장기화, 대통령이 들었던 대파 한 단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대파 격파쇼를 벌인 여당 후보가 여권 전체를 격파했...

    2024.04.04 15:38

  • [에디터의 창]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얼굴에 또렷한 고문 흔적을 보면서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생채기 하나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구타나 고문 없이 정식 재판도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라고 테러범에 관대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브레이비크가 희생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처형되길 원했다. 사람들은 변호사에게도 분노를 터뜨렸다.변호사 예이르 리페스타드가 쓴 게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그러나)다. 재판 전후 상황과 소회를 담은 책에서 그는 ‘희대의 흉악범’의 변호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평판 등을 우려하며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페스타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 당원이었고, 브레이비크가 우퇴이아섬에서 무차별 학살 대상으로 삼은 게 노동당 캠프에 온 청소년들이다. 간호사인 아내가 브레이비크가 병원에 실려 왔다면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돌봤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의 권리를 지켜...

    2024.03.28 19:53

  • [에디터의 창]ELS에는 ‘깨알 글씨’라도 있었나
    ELS에는 ‘깨알 글씨’라도 있었나

    “노총각(중소기업)이 ‘롤렉스 시계(키코)가 있으면 색싯감(환위험 회피)이 생길 것’이라는 마을이장(은행)에게 속아 넘어갔다.”어느덧 16년 전 일이다. 당시 중소기업 쪽을 담당하던 기자는 낯선 단어와 마주쳤다. 환위험 회피용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위 비유는 환헤지피해공동대책위원회가 ‘옵션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장에 적은 말이다. 2008년 사건을 다시 꺼낸 이유는 키코가 국내 금융 역사에서 파생상품 위험을 사실상 처음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지난 15일 서울 서대문 NH농협은행 본점 앞. 홍콩특별행정구를 상징하는 ‘양자형기’가 새겨진 깃발이 등장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을 성토하는 피해자들 모임이다. ELS에 앞서 우리는 홍콩H지수부터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텐센트, 알리바바, BYD, 중국건설은행 등 대표 50개 종목을 묶어 산출한 것으로, 중국 경제 상황을 상징하는 수치다.ELS 상품은 2...

    2024.03.21 20:31

  • [에디터의 창]‘역대급’ 선거와 ‘어쩔 건데’ 정치
    ‘역대급’ 선거와 ‘어쩔 건데’ 정치

    ‘역대급’. 몇 년 전부터 자주 쓰이는 인터넷 신조어다. 단어 구조상 ‘역대(그동안)에 준하는’ 정도의 뜻이지만, 실제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의미로 쓰인다. 2년 전 이 ‘역대급’ 때문에 머리를 싸맨 기억이 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이 그랬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안 쓸 수도 없었다. 한국 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년 전 고민은 사소한 것이었다. 최근 정치권에 ‘역대급’들이 넘쳐나서다. 지난 11일 대표적인 비이재명계 박용진 의원의 탈락과 막말 논란의 정봉주 전 의원 공천으로 정점을 찍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공천혁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번 공천에 사심이 개입했으며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파로 찍힌 이들은 어김없이 잘려나간 반면, 이 대표 호위무사를 자처한 이들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비명횡사 친명횡재’ 논란을 키웠다. ...

    2024.03.14 20:16

  • [에디터의 창]사과 한 알에도 손 떨리는 사회
    사과 한 알에도 손 떨리는 사회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고, 어떤 나라가 개도국일까. 여러 판단 기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민물가를 본다. 아무리 살인적인 물가의 나라라고 해도, 통상 선진국에서는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공산품 등 서민들이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은 저렴하다.요즘 마트에서 파는 사과 한 알 가격이 5000원쯤 한다. 이게 사과야 수박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원체 가격이 세다 보니 사과 한 알을 포장한 상품도 나온다. 어릴 적 겨울을 앞두면 부모님은 나무 궤짝에 담긴 사과 한 상자를 다락방에 넣어주시곤 했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꺼내 베어물던 아삭했던 그 사과가 이렇게 비싼 과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사과만 그런 게 아니다. 귤도 딸기도 토마토와 배도 과일처럼 생긴 것들은 죄다 비싸다. 연봉 1억원이 넘는 가구도 과일을 사먹으려면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쯤되면 과일은 들었다 놨다가 아니라 그냥 외면하게 된다. 체감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사과 가격은 1년 전보...

    2024.03.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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