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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칼럼]‘그저 사고’가 아닌 시민불복종
    ‘그저 사고’가 아닌 시민불복종

    2025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을 받은 감독이 비밀리에 촬영한 이 작품은, 과거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다섯 명이 자신들을 고문한 남자와 우연히 마주치며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하지만 파나히 감독은 복수가 아닌 용서, 증오가 아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권이 무너질 때 폭력은 끝날 것인가,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인가?”파나히 감독은 단순히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에게 영화 만들기는 정치적 저항이 아닌 인권의 실천이다. 칸 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그는 “아무도 우리에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3년 전 이란에서 시작된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히잡 강제 착용에 저항하며 폭발...

    2025.11.11 19:57

  • [국제칼럼]한·일, 핵을 향한 ‘뜨거운 구애’
    한·일, 핵을 향한 ‘뜨거운 구애’

    “원자로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핵무기 보유를 위한 환경 조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한 움직임이다.”‘죽음의 상인 국가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지난달 16일 열린 집회에서 무기거래반대네트워크의 스기하라 고지 대표는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집회에서 단연 관심을 끈 것은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를 위한 전문가 회의’가 작성해 방위성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었다.지난 9월,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명예회장과 학자, 전직 고위 관료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이 회의가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수직발사장치(VLS)를 탑재하고 차세대 동력을 활용한 최신예 잠수함 보유의 필요성을 명시했기 때문이다.차세대 동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바로 핵추진 잠수함이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보유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의 원자력기본법은 원자력의 이용을 평화적인 목적에만 국한하고 있어 핵추진 잠수함 보유가 법률에 저촉될 여...

    2025.11.04 20:05

  • [국제칼럼]세대 전쟁이라는 착시
    세대 전쟁이라는 착시

    요즘 우리 사회에서 ‘영포티’ ‘이대남’ ‘MZ세대’ 같은 세대 구분은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세대 담론은 단순히 사회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영국과 유럽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수의 언론은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독점했다” “밀레니얼은 게으르고 불평이 많다”는 식으로 세대 간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다. 최근 몇년간 내가 지도한 석사 논문들에서도 조직 내 세대 갈등, 젠지(Gen Z) 노동자의 조직 적응 문제, 역연령차별(reverse ageism) 등이 자주 다루어졌다.다수의 학자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런 ‘세대 탓하기 게임’이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대 갈등은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다른 연령대’로 투사하게 만들고 각 세대 내부의 다양성과 격차를 가린다. 특히 최근 연구들은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부의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 ...

    2025.10.21 20:24

  • [국제칼럼]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시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시간

    지난 21일 캐나다와 영국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다. 이튿날 유엔총회장에서는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호주·룩셈부르크·몰타·벨기에 등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오랫동안 선언적 구호로만 머물러온 ‘두 국가 해법’이 세계의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이 다시 국제 정치 무대 한가운데 놓였다는 점은 중동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이다.그러나 이스라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일을 끝마쳐야 한다”며 가자지구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연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약 50개국 외교관 100명 이상이 집단 퇴장하며 항의 의사를 표했다. 미국과 영국 대표단은 자리를 지켰지만 고위급 대신 하급 외교관들이 앉아 있었고, 네타냐후는 텅 빈 총...

    2025.09.30 21:51

  • [국제칼럼]누구를 위한 미래지향인가
    누구를 위한 미래지향인가

    대를 이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할아버지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 원하지 않는 죽임을 당하셨고, 가해자의 종교 시설에 묶여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야스쿠니 조선인 합사 피해자의 후손인 박선엽씨(56)의 각오다.지난 19일, 박씨의 가족 등 6명의 유가족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선조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의 할아버지 박헌태씨는 1944년 일본 육군으로 끌려가 같은 해 중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1959년에 ‘나카하라 헌태’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야스쿠니에 무단 합사됐다. 박씨의 할아버지처럼 유가족의 뜻과 상관없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인은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소송은 시작됐다.2001년에는 ‘재한 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이 문제가 포함됐지만 10년에 걸친 재판 끝에 패소했다. 2007년에는 ‘무단 합사 철폐 1차 소송’을 냈지만 6년 ...

    2025.09.23 21:21

  • [국제칼럼]살 빼는 약으로 실업 줄인다?
    살 빼는 약으로 실업 줄인다?

    지난해 10월, 영국 정부는 비만 치료 주사를 실업 대책에 활용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웨스 스트리팅 보건장관은 맨체스터에서 진행될 5년간의 실험을 통해 비만 주사가 단순한 건강 개선을 넘어 구직 활동과 고용 유지에도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다국적 제약사 릴리가 2억7900만파운드(약 4900억원)를 투자하며, 신약 ‘마운자로’가 실제로 삶의 질과 고용 상태를 향상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다뤄진다.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비만 관련 질환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매년 110억파운드의 비용을 초래하고, 노동자의 병가일수를 늘려 경제 생산성에 직접적인 손실을 입힌다. 영국 성인 중 약 64%가 과체중 또는 비만 상태이며, 460만명이 제2형 당뇨를 앓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만 치료 주사를 모든 적격자에게 제공할 경우 영국 경제에 연간 45억파운드 규모의 생산성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기...

    2025.09.09 20:52

  • [국제칼럼]가자에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가자에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매일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8월22일 현재 기아로 숨진 이는 최소 273명이고, 그중 112명은 어린이다. 가자지구 아이들의 앙상한 체구는 눈 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다. 굶주림과 탈수로 쓰러져가는 아이들의 팔에는 영양실조가 중증임을 알리는 ‘적색’ 진단 팔찌가 감겨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 장면은 전쟁이 아니라 굶주림이, 그것도 의도적으로 설계된 굶주림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음을 증언한다.유엔 산하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처음으로 가자지구에 ‘기근’을 선포했다. 기근은 단순한 식량 부족을 넘어 전체 가구의 20% 이상이 극심한 굶주림에 처하고, 아동 30%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인구 1만명당 하루 2명 이상이 아사하는 경우에만 공식 선언된다. 가자에서는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됐다. 주민 절반가량이 4단계 ‘비상 수준’에 있고, 30%는 이미 5단계 ‘기근’에 빠졌다.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22개...

    2025.08.26 21:41

  • [국제칼럼]또다시 이름을 빼앗으려는 자
    또다시 이름을 빼앗으려는 자

    “세계 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출판사가 인종차별주의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재일한국인 2세 작가의 외침이다.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인 신초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슈칸신초(週間新潮)’ 7월31일호에 ‘창씨개명 2.0’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우익 성향 일간지 산케이신문 기자 출신인 다카야마 마사유키가 쓴 글이다.칼럼은 먼저 미국 국적을 취득할 때는 미국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일본은 충성 선언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악의를 가지고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일본인으로 위장해 일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가진 외국인을 귀화 심사에서 배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자들이 마치 내부고발자인 양 일본을 비판하는 것을 보고 있기가 거북하다는 심경도 드러낸다. 그러면서 “일본도 싫다, 일본인도 싫다고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럴 거면 적어도 일본 이름은 쓰지 말라”고 경...

    2025.08.19 20:03

  • [국제칼럼]이제는 멈춰야 할 산업재해
    이제는 멈춰야 할 산업재해

    최근 한국에서 또다시 안타까운 산업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경영 책임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만, 사고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접근 방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반성과 대안을 제시한다.영국은 1974년 보건안전법 이후, 산재를 예방하는 체계를 꾸준히 발전시켰다. 2008년부터는 기업 과실치사법 및 기업 살인법이 시행돼 중대한 과실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유죄 판결의 비율이 높지 않고, 대부분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한 판결이라 법의 실효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2022년은 예외적인 해였다. 알루미늄 재활용업체 직원이 안전장치 미비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회사 측에 30억원대(200만파운드) 벌금이 선고됐고, 음식물 폐기물 업체 직원이 탱크 내에서 익사한 사건에서는 회사 경영진 중 한 명에게 13년 실형이 내려졌다. ...

    2025.08.05 21:04

  • [국제칼럼]갈 곳 없는 아프간 난민의 비극
    갈 곳 없는 아프간 난민의 비극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 12일의 직접 무력 충돌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한 인도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 50만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이란에서 강제 추방당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큰 규모의 강제 인구 이동 중 하나였다. 이는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었는데도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바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란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상황은 이 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탈레반을 피해 이란으로 간 이들은 테헤란에 떨어지는 이스라엘 미사일을 보며 절망했다. 안전을 찾아간 곳에서 다시 전쟁의 공포를 마주한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합법적 지위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피란처조차 없다는 점이다.이란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추방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계획된 추방 정책을 가속화하는 구실에 불과하다.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이란 국민의...

    2025.07.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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