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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
  • 전체 기사 54
  • [이희경의 한뼘 양생]살기 위해 숨는 용기
    살기 위해 숨는 용기

    내가 속한 공동체 출신 김고은 작가가 은둔 고립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너무 희미한 존재들>을 출간했다. 그는 ‘은둔 고립’을 통계에 갇힌 사회현상으로 박제하는 대신, 에두아르 콘의 ‘혼맹’ 개념을 빌려와 존재론적 층위에서 재해석한다. 스스로를 ‘자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버린,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정의한 것이다. 관점을 이렇게 이동시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까?공동체의 다른 청년이 그 책에 열렬히 반응하며 북토크를 열었다. 자신이 그러했듯, ‘혼맹’에 빠졌던 다른 청년들도 이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행사에서 맨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10여년 전, 가족과 소통이 되지 않아 무작정 집을 나와 고시원 침대에서 천장만 바라보던 순간을 떠올렸다. “내일이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매일 눈을 떠야만 하는 이유가...

    2026.03.19 20:10

  • [이희경의 한뼘 양생]새해에 하는 ‘뻔한’ 말
    새해에 하는 ‘뻔한’ 말

    한국의 새해는 두 번이다. 이를 ‘이중과세(二重過歲)’라 비판하며 하나로 줄이자는 말이 나오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새해가 두 번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양력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어도, 음력 새해라는 ‘패자부활전’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에도 1월 초에 써놓았던 문구를 다시 읽었다. “단정히 살고, 치밀하게 생각하고, 진득하게 공부하기.”재밌는 사실은 몇년째 이 문장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도 작년의 결심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었다. 다시 말하면 결심은 늘 ‘절제하고 몰입하는 삶’인데, 현실은 늘 ‘허겁지겁과 녹초’였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 문제가 10년 가까이 어머니를 돌보며 쌓인 피로 때문이라고 여겼고 돌봄이 줄어들면 삶도 좀 더 단순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돌봄이 사라진 자리에는 귀신같이 다른 일들이 들어찼고, 나는 여전히 소진되어갔다. 고농축 비타민과 쌍화탕은...

    2026.02.19 19:55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하며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하며

    이란을 잘 몰랐다. 축구, 팔레비, 호메이니 등 몇개의 단편적 사실들과 ‘핵’ ‘하마스’ ‘악의 축’ 같은 미국적 프레임이 인상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8년 흑백의 강렬함과 소박함이 돋보이는 2D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를 만났다. 케첩 바른 감자칩과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고 이소룡을 동경하며, “왕에게 죽음을!”을 외치던 꼬마 ‘마르잔’. 그 천방지축 소녀의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이란은 내게 ‘사람이 사는 땅’으로 실감되었다.1979년의 이란 혁명은 부패한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자리엔 억압적인 신권 통치 체제가 들어섰다. 펑크록을 사랑하는 소녀 마르잔은 이제 차도르를 입어야 했고, 젊음과 자유가 거침없을수록 수많은 고통과 배반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할머니가 있었다. 55년 전 이혼을 감행하고, 브래지어 속에 재스민꽃을 품고 다니던 할머니는, 비겁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한 손녀에게 호통치며 말한다. “방법은 있어. 방법은 항상 있는 거야.” 이...

    2026.01.22 19:54

  • [이희경의 한뼘 양생]‘누가’ 돌봄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누가’ 돌봄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지난 10월, 제주에서 작은 포럼이 열렸다. 20년 전 서간집 <경계에서 말한다>를 함께 펴낸 한·일 양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조한혜정과 우에노 지즈코가 희수를 맞아 다시 뭉친 자리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오늘날의 페미니즘’ ‘돌봄 사회’ ‘나이듦과 죽음’ 등을 주제로 진행된 이틀간의 대담 내내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서로를 ‘혜정’ ‘지즈코’라고 다정히 부르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덕분에 관전하던 사람들도 꽤 쫄깃한 시간을 보냈고, 다들 장외에서 이 차이를 해석하고 토론하느라 ‘불타올랐다’.우선 지금의 페미니즘 정세와 관련해 우에노는 백래시를 영향력 확대의 방증으로 보면서 젊은 세대의 자립과 주권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 리부트’에 희망을 걸었다. 반면 조한은 자기결정권 개념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전유되는 현실을 경계하면서 피해의식을 넘어선 연대와 협력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차이는 돌봄에서 드러났다. 우에노는 일본의 개호보험 ...

    2025.12.04 22:10

  • [이희경의 한뼘 양생]무덤의 미래
    무덤의 미래

    4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묘를 이장(移葬)했다. 당시 정신없이 구했던 묘지는 경기도 모 공원묘지에서도 거의 산꼭대기 자리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례식 풍경. 사람들이 무거운 관을 낑낑대며 운반했고, 어린 동생들은 눈 쌓인 산에서 계속 미끄러지면서 울었다. 지금은 접근성이 좋아졌다지만, 노쇠한 어머니에게 그곳은 어느 날부터 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집 근처에 평장묘를 마련했고, 이번에 그곳으로 아버지를 이장한 것이다.그런데 부모 묘와 관련된 이 같은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선산에 부모를 모신 친구는 성묘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며, 언젠가 이장하고 싶어도 어디까지 모셔와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조부모 묘가 고향 뒷산에 있는데, 이제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아 다음 세대가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부모를 돌보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첫 세...

    2025.11.06 22:07

  • [이희경의 한뼘 양생]새벽에 만나는 붓다
    새벽에 만나는 붓다

    새벽 낭송을 한다. 상반기에는 <주역>을, 요즘은 <불경>을 읽고 있다. 발심한 친구들이 새벽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 40분 정도 한 단락씩 돌아가며 낭송한다. 설명도 토론도 없이 오로지 낭송뿐이다. 그런데도 이 시간은 소리의 리듬과 공명이 텍스트 이해를 넘어 타자에게 감응하는 수행, 몸과 마음이 함께 깨어나는 리추얼의 시간이 된다.그렇다고 텍스트가 주는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계엄·탄핵 정국에서 읽은 <주역>은 64괘가 담고 있는 흥망성쇠의 엄정한 순환과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한다는 ‘궁즉변(窮則變)’의 메시지로 평정심을 되찾게 했다.요즘 읽는 <불경>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는 붓다가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수많은 제자백가 중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첫 제자는 불과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불교 사상은 서른다섯 살의 젊은 리더와 그의 비전...

    2025.10.09 20:55

  • [이희경의 한뼘 양생]다른 ‘소년의 시간’
    다른 ‘소년의 시간’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충격적이었다. 열세 살 소년이 또래 소녀를 칼로 살해한 뒤 자기 집에서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간다. 카메라는 점층적으로 학생과 교사의 불통이 일상화된 학교, 자녀 부양에 최선을 다하지만 닫힌 방문 안에서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는 부모, 그리고 오직 ‘칼’이라는 물리적 증거만 찾아 헤매는 경찰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소년의 시간’에 얼마나 무지한지가 드러난다.드라마 속 소년은 ‘메노스피어’라는 남초 커뮤니티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레드필’을 삼킨다. 세상은 80 대 20의 법칙으로 굴러가며, 20%의 남성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는 것이 그가 믿는 진실이다. 그 속에서 소년은 자신을 못생긴 ‘인셀’(비자발적 독신)로 정체화한다. 유독한 남성성과 여성 혐오를 퍼뜨리며 개인의 취약성을 사냥하는 온라인 ...

    2025.09.11 20:20

  • [이희경의 한뼘 양생]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하며 성·건강·삶의 방식 전반에서 ‘자기결정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젊을 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마음이 간다.당연히 스콧 니어링에 매혹됐다. 그는 백 살 되는 날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하고, 6주간 단식 끝에 생을 마쳤다. 나도 니어링처럼 죽어야지. 그런데 어느 날 선배의 일갈이 날아왔다. “얘, 니어링처럼 평생 자급자족 육체노동을 하고, 자연식으로 간결하게 살아야 그렇게 죽는 거야. 과자도 못 끊으면서 어떻게 니어링처럼 죽니?” 아, 난 니어링처럼 죽기는 틀렸구나.그다음엔 조력사(assisted suicide)에 관심이 갔다. 라몬 삼페드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씨 인사이드>(2004, 스페인)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28년간 전신마비 상태로 살았던 주인공은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

    2025.08.14 21:27

  • [이희경의 한뼘 양생]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입시반’ 같은 아동학대 수준의 경쟁교육이 사라지고,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살다가 6개월 만에 발견되는 일이 없으며, 외모나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몸이 조각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정권이 성공했으면 좋겠다.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갸우뚱한 순간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정부는 그 이유를 “진영에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여성 할당을 형식적으로 채우되 비중 낮은 부처에 배치하는’ 오래된 관행의 반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이 동시에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의구심이 불쾌감으로 바뀐 계기는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었다...

    2025.07.17 20:57

  • [이희경의 한뼘 양생]곰과의 위험한 공존
    곰과의 위험한 공존

    매년 이맘때 즐거움은 환경영화제 출품작을 감상하는 일이다. 올해 나의 ‘원픽’은 안드레아스 피흘러 감독의 다큐멘터리 <곰과의 위험한 공존>이다. 곰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존재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브래드 피트가 침대가 아닌 숲에서 곰과 결투를 벌이며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여겼다. 장자크 아노의 <베어>를 통해서도 나는 곰의 힘, 용기, 지혜, 관용에 깊이 매료됐다.하지만 그런 곰, 특히 알래스카와 북유럽, 시베리아 등지에 서식하던 갈색곰은 인간의 개발과 사냥으로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알프스 지역의 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트렌티노 자치주는 1999년, 슬로베니아에서 곰 10마리를 들여와 방사하는 ‘야생 곰 보존 프로젝트(Life Ursus)’를 시작했다. 곰들은 빠르게 적응했고 번식했다. 사람들은 “시간을 벗어난 존재”이자 “야생 그 자체”인 곰을 숲에서 마주하며 ...

    2025.06.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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