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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이희경의 한뼘 양생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친애하는 나의 젊은 친구들
    친애하는 나의 젊은 친구들

    나는 한때 청년들의 ‘멘토’였다. 맥락이 있다. 우리 공동체에는 초창기부터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자퇴한 채 공부하러 온, 미래가 막막한 20대 전후의 청년들이 많았다. 중년들이라고 불안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학력, 삶의 경험, 인맥, 경제적 자산 등에서 청년들보다는 좀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정처 없는 청년들의 삶에 작은 버팀목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동료 시민으로 청년과 연대하기 위해 호주머니를 털어 청년기금과 청년기숙사를 마련했다. 청년 다섯 명은 마음을 내어 ‘공부와 밥과 우정이 함께 가는 청년 인문학 밴드’를 결성했다.초창기 밴드 활동은 재밌었다. 공부의 밀도도 높았고, 각자 청년 목수, 페미니스트 유교걸, 공부하는 힙합 전사 등 ‘본캐’를 만들자고도 했다. 밴드는 <다른 이십대의 탄생>이라는 책을 내고, 그것을 계기로 더 넓은 청년 네트워크를 구성해 냈다. 문제는 ‘다른 공부’가 ‘다른 밥’으로 연결되지 않는...

    2023.10.18 20:1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병뚜껑을 열지 못한다고?
    병뚜껑을 열지 못한다고?

    발단은 한 회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생활 글이었다. 3년 정도 느슨하게 저강도 필라테스를 했더니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힘이 붙어 예전보다는 병뚜껑을 좀 쉽게 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거기에 줄줄이 붙은 댓글이었는데, 이슈는 운동이 아니라 병뚜껑이었다. 한 친구는 방아쇠수지증후군 때문에, 다른 친구는 약해진 악력 때문에 병뚜껑을 못 딴다고 했다. 압권은, 잼을 샀는데 뚜껑을 못 열어 남편 퇴근을 기다렸고, 생수병 뚜껑을 못 열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어떤 회원의 고백이었다. 결국 젊은 회원 한 명이 ‘다용도 만능 뚜껑 따개’를 구매해 모두에게 안기면서 이 소동은 일단락되었다.다행히 나는 아직 생수병 정도는 연다. 대신 회전근개파열로 칼을 들고도 사과를 반으로 자르지 못하며, 김치찌개용 참치캔을 따지 못하고, 요가 할 때 점점 안 되는 동작이 늘고 있다. 거기에 목디스크에 따른 방사통으로 늘 견갑골 주변이 뭉쳐 아프고 손목까지 저릿저릿해서 노트 필...

    2023.09.20 22:57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사순이가 남긴 질문
    사순이가 남긴 질문

    사순이가 죽었다. 사설 농장에서 20년간 사람들의 볼거리로 살다 죽었다. 길이 2m, 무게 150㎏의 몸으로 4평 남짓한 사육장에 평생 갇혀 살다 죽었다. 어느 날 잠시 열린 문틈으로 첫 외출을 나섰다가 1시간10분 만에 죽었다. 처음 흙을 밟고 농장에서 20m쯤 떨어진 숲속으로 걸어가 가만히 앉아 있다 죽었다. 발견 즉시 사살된 이유는 사순이가 ‘맹수’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구에 250마리 정도만 남은 멸종위기 2급의 ‘판테라 레오(Panthera Leo)’종 암사자였다. 2023년 8월14일 오전 8시34분, 경북 고령군 숲에서 벌어진 일이다.사순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얼룩말 세로처럼 사순이도 동물원에서 탈출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개인 농장에서 살았다니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현행 ‘야생생물법’(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사순이 같은 멸종위기종은 동물원에서만 사육할 수 있다. 다만 사순이는 이 법이 제정된 2005년 이전에 개인이 사육...

    2023.08.23 20:12

  • [이희경의 한뼘 양생] K장녀의 ‘독박 돌봄기’
    K장녀의 ‘독박 돌봄기’

    올해 초 독립선언을 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머니를 부양한 지난 9년 동안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뻔히 아는 동생들은 군말이 없었다. 나의 대안은 4남매가 더 확실히 돌봄을 분담하고 책임지는 것이었다. 돌아가면서 한 달씩 어머니 모시고 살기. 그리고 병원케어는 신경외과, 정신과, 심장내과, 척추센터 등으로 나누어 담당하기. 이것에도 동생들은 이견이 없었다.작년 초에도 나는 “돌봄을 하는 자도 돌봄이 필요하다”며 한 달에 일주일은 돌봄 휴무를 갖겠다고 말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나가자빠질까 봐 걱정하던 동생들은 동의했고, 한 달에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어머니 식사를 책임지고, 병원을 모시고 가고, 복지사·요양보호사 등 다른 돌봄 관련자들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어머니 말벗을 해드리기로 했다.첫 휴무는 달콤했다. 식사는 두 끼만 간단히 먹었고, 친구가 빌려준 작은 시골집에서 어떤 방해도 없이 책을 내처 읽었다. 그러다 졸리면 ...

    2023.07.27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는 2021년 휴간한 ‘녹색평론’이 그랬다. 구독자 수의 감소와 재정위기라니, 나도 일조했구나,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받아 쌓아놓기만 했으니까.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서둘러 지나간 잡지들을 읽어보고, 구독을 유지하고, 후원회원이 되어 ‘녹색평론’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것일까? 다행히 ‘녹색평론’은 약속대로 올여름 돌아왔다. 며칠 전 김종철 선생님의 3주기 추모회가 열렸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행사는 조촐하고 단정했다. 난 풀무학교 학생들의 낭독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글을 고를까 고민했으나 선생님의 그 어떤 이야기든 내면을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라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들은 “마음만으로 되겠냐고 하겠지만, 마음 없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끝나는 글을 읽었다. 나는 ‘녹색평론’의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왠지 슬픔이 ...

    2023.06.29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일삼아 연대!
    일삼아 연대!

    시작은 ‘어쩌다’였다. 2011년 1월6일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5m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그해 7월 나와 친구들 몇명은 그 투쟁에 연대하는 ‘2차 희망버스’에 탑승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대의명분을 갖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가 가자고 해서” “희망버스라는 방식이 신선해서” 어쩌다 동참하게 되었을 뿐이다.그런데 1년 후 우리는 또다시 삼성반도체 백혈병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게 된다. 한 세미나 회원이 이 소식을 전했고, 어쩌면 무심히 넘길 수도 있는 이 문제를 몇몇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공론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삼성에 취직한 지 1년8개월 만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사망한 당시 스물셋 황유미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삼성반도체 작업장의 현실을 폭로하는 <먼지 없는 방> 등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

    2023.06.01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건강이 신(神)이 되어버린 사회
    건강이 신(神)이 되어버린 사회

    조인성, 이성민, 김남주, 황정민, 이병헌, 비, 공유, 이선균, 전지현, 지성, 이정재, 송중기, 유재석, 정우성….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전에 치러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과 관련이 있냐고? 아니다. 힌트로 BTS, 트와이스, 손흥민, 임영웅, 김호중, 박재범, 김신록, 그리고 아이유를 추가하면? 정답은 약 광고에 출연하는 톱스타 혹은 라이징 스타이다. 얼마 전 나는 흑백영화 같은 30초짜리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게 관절 영양제 광고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싸잡아 약 광고라고 하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에 등장하는 비타민, 유산균, 오메가3, 진통제, 자양강장제, 뇌 영양제, 눈 영양제 등이 모두 의약품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광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일반의약품과는 구별되는, 이른바 ‘건강기능식품’이다. 의약품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가 목적이고, 건강기능식품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2023.05.04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영초언니’에게 한발 가까이
    ‘영초언니’에게 한발 가까이

    지난 주말 요양원에 있는 선배를 보러 갔다. 지난해 말 첫 방문 이후 3개월 만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배 옆으로 바짝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언니~” “언니~” “나, ○○야” “나, ○○야” “○○이 왔어요” “○○이 왔어요” 반향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한때 운동권의 대모라고 불렸던 선배가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것은 20여년 전이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불운하게도 뇌를 크게 다쳤고, 운동기능뿐 아니라 시력, 언어능력,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바보가 되었다”라고 했다.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다고도 했다. 다행히 몇 차례의 큰 수술을 통해 의식이 좀 돌아왔는데 그 이후엔 그녀가 종일 먹을 것만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이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선배와 가끔 전화 통화를 했다. 그녀의 기억은 과거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었고 대화는 세 문장 이상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온종일 라디오 ...

    2023.04.06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무심하고 민감하게, 나와 식물 이야기
    무심하고 민감하게, 나와 식물 이야기

    입춘이 지나자 군자란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봄이구나. 마음이 분주해졌다. 베란다에 설치해놓았던 비닐하우스를 해체하고 겨우내 그 속에서 최소한의 물로 옹색하게 버틴 화초들의 상태를 살폈다. 마른 잎들은 털어내고 화분의 흙들을 보충하고 알비료도 조금씩 올려주고 오래간만에 커다란 물뿌리개로 화초들을 샤워시켜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다음엔 한쪽으로 밀쳐놓았던 높고 낮은 화초 받침대를 늘어놓고 실내에서 월동했던 스노 사파이어와 율마까지 데려다 모든 화초가 골고루 햇볕을 받을 수 있게끔 자리를 잡아줬다. 이렇게 쓰니, 내가 마치 원예의 달인, 그린핑거스 같지만 사실 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봉숭아와 채송화도 직관한 적이 없는, 좀 더 나이를 먹어서도 익지 않은 방울토마토와 포도송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전형적인 아스팔트 키드 출신의 식물맹이다. 게다가 뭘 만들거나 키우는 데 젬병인 똥손이다. 그런데 몇년 전 어머니의 긴 간병생활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을 때 나는 숨구멍이라도...

    2023.03.09 03:00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자기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자기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와 합칠 집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두 세대가 살기에 적합한 구조인가 여부였다. 주변 환경이 조용하고 전망이 좋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다행히 이런 것들이 웬만큼 충족된 곳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다는 것, 따라서 노인이 걸어서 이동하기 좀 힘들다는 사실은, 당시엔 내 안중에 없었다. 문제를 느낀 것은 한참 후였다. “나를 이 꼭대기에 처박아놓고…”라는 지청구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의 우울증이 깊어진 것이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고, 또 그것은 자기 힘으로 이동하기 힘들게 된 사정과 관계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 살던 곳에서 누렸던 이동권, 즉 혼자서 미장원에 가고, 한의원에 들르고, 약국에서 약사와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팥칼국수 한 그릇 사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난 전세 기한이 만료되면 다음번엔 반드시 평지에, 근린생활시설 지척에 집을 얻겠다고 마음먹었다....

    2023.0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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