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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푼다고 되겠나, 살 만한 세상이 돼야지
0.78명. 이 숫자, 암울하기 그지없다.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인데, 역대 최저치다. 정신차려 보니 출산율 세계 꼴찌다. 이미 수십년 전에 인구위기 ‘경고장’을 받았는데, 단박에 되돌리려니 뭘 해도 약발이 안 먹힌다. 징후는 곳곳에 있었다. 숱한 위기 징후를 외면했을 뿐이다. 인구 부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는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예측쯤은 SF영화에나 나올 허황된 얘기로 듣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노인들만 북적거리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내놓은 반전 없는 저출생 대책을 살피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요즘 와서야 인구 부족이 문제가 됐지, 그 시절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개념 없는... -
연진아, 인생엔 인과응보가 있어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 예고편에 나오는 연진(임지연)의 대사인데, 그저 그런 인생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듣기엔 분노보다는 힘이 쭉 빠지는 말이다. 온 생을 걸고 ‘사적 복수’에 나선 학교폭력 피해자 동은(송혜교)을 맞닥뜨린 가해자 연진은 사과는커녕 경고를 날린다. 그러곤 동은을 조롱한다. “용서? 누가 누굴?”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태어날 때부터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연진이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해도 기댈 곳 하나 없는 동은의 시린 시간을 알 리가 없다. 실은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 복수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그래서, 드라마 밖 또 다른 피해자의 이야기에 분노가 치민다. 현실에선 검사 아버지만 믿고 안하무인이던 아들이 학교폭력 전력에도 서울대에 진학했다. 법 전문가인 아버지가 피해 학생을 상대로 ‘끝장 소송’을 벌였기에 가능한 일... -
첫차와 지하철
매일 새벽, 146번 버스는 만원이다. 이 버스 첫차를 가득 채우는 승객들은 강남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146번 버스는 번호만 다른 ‘6411번 버스’다. 이 버스는 노회찬 전 의원이 버스 안 풍경을 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노 전 의원은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우리 사회 “투명인간”이라고 불렀다. 그의 사망 후 더 유명해진 이 연설은 지금 들어도 먹먹하다.안타깝게도 이들의 새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 전 의원의 외침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서울시가 2019년 6월 새벽 노동자가 몰리는 146번을 비롯해 4개 노선의 첫차 배차를 늘리긴 했다. 이들이 일찍 집을 나서는 이유는 하나다. 당신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언론을 타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새벽이 이들에게는 야속하기만... -
걱정 말고 ‘윤석열 케어’로 바꿔라
나만 그런가. 처방전이나 약 봉지에 찍힌 공단부담금을 보면 돈 굳은 거 같아 뿌듯하다.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싶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돈만 내고 타먹지 못하니 손해 같다. 없는 병을 만들어 일부러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본전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가. 몇 달 전 허리가 불편해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난데없는 체외충격파 시술을 권해 어이없어 한 적이 있다.‘도덕적 해이’에만 초점은 의아사정이 이렇다보니 ‘선’(線)을 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지난해 1년 동안 외래 의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넘은 사람이 2550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의료 남용 사례는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은 65% 수준으로 80%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국가에 견줘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때문에 너나없이 든 실손보험 가입자가 약 400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건강보험 ... -
‘자유’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출발은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18일 언론 자유를 강조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를 얘기한다. 취임식, 광복절, 유엔총회 연설에서 수십 차례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했다. 대학교수 아들인 데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검사 출신에 정치 경험 없이 단번에 대통령이 된 윤석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유’의 개념은 대체 무엇일까. 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그 자유가 뭘 말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잘 모르겠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짐은 말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의 정권 풍자 만화가 불편하다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내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과거 발언을 짚어 보면 자유에 대한 대통령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긴 하다. 지난해 12월22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때, 윤 대통령은 전북대 간담회에서 “극빈의 생활을 하... -
어디로 모실까요? ‘순한맛’ ‘매운맛’ ‘폭탄맛’
#“애들도 다 컸고 우리 부부 쓸 만큼만 벌면 되는데 밤에 뭐 하러 다녀요. 코로나 이후 식당도 늦게까지 영업을 안 해서 밥 먹을 데도 없다니까요,”(65세 개인택시 운전기사)한 달 전쯤. 회사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다. “손님만 내려주고 나도 그만 들어가야겠다.” 기사가 혼잣말을 했다. 한창 손님 태우고 다닐 시간인데, “왜 벌써 들어가냐”고 물었다. 그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난 콜 안 받아요. 길에서 손 흔드는 사람 무조건 태워요. 호출받아 봐야 귀찮기만 하고. 정부가 호출료 올려주겠다고 하던데 어차피 우리한테는 오지도 않아요. 손님들이 비싸다고 택시 안 타면 우리만 더 힘들어질 텐데….”(52세 법인택시 운전기사)지난 주말, 종로에서 택시를 호출해봤지만 어림없었다. 빨간등 켜진 ‘빈차’를 향해 손을 흔들기를 20여분. 운이 좋았다. 택시에 가까스로 몸을 욱여넣자 “기사님, 고맙습니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 -
대통령과 서울시장은 상상력을 발휘하시라
지난해 허리케인 아이다가 뉴욕에 비를 쏟아붓던 날, 미국 폭스 뉴스의 기상 전문 PD 그레그 다이아몬드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센트럴파크 서쪽엔 폭우가 내렸지만, 홍수 피해는 없어.”이 트윗에 미국 누리꾼들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고급스러운 동네에서 정보 알려줘서 고마워” “모든 도시가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날선 댓글들과 함께 영화 <기생충>을 캡처한 사진도 올라왔다. “오늘 하늘 완전 파랗고 미세먼지 제로잖아. 어제 비 왕창 온 덕분에.” 차 뒷자리에 앉은 연교(조여정)의 통화 내용을 듣던 기택(송강호)의 표정이 싸해지는 바로 그 장면이다. 그 비가 왕창 온 덕분에 기택의 반지하 집은 침수됐고, 그의 가족은 임시대피소에서 고단한 밤을 보내야 했다. 현실이 아닌 ‘이야기’는 현실과 포개진다.비가 또 왕창 왔다. 바람까지 세게 불었다. 이번에는 대통령도 퇴근하지 않았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전국에서 인명과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 -
‘마침내’ 우영우와 헤어질 결심
“우영우는 자폐계에서는 사실상 초능력자 수준의 인물이다. 그런데 슈퍼히어로 영화가 말도 안 된다고 그게 재미가 없고 불편하냐? 피터 파커가 거미한테 물렸다고 갑자기 벽을 타는 건 안 불편했던 너희들이 우영우가 변호사 되는 건 불편해?”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여러 우려와 비판에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그의 관점에서 <우영우>는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이 글을 읽다가 뜨끔했다. 장애인이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이 정도로 다룬 드라마가 있었던가’ 하면서 <우영우>를 칭찬할 준비가 돼 있던 나로선 서늘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우 to the 영 to the 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드라마에 푹 빠져 인사법을 따라 하면서도 정작 내 안의 편견과 차별은 알아... -
유난이라니, 지금 누군가는 울고 있다
대체 ‘흠뻑쇼’가 뭐라고, ‘이게 그렇게까지 난리 칠 일인가.’아, 나는 그 유난이 반갑다. 진즉에 우리가 유난을 떨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늘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바꿔오지 않았나.이번 봄가뭄은 지독하고 길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에 사용되는 물이 수백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끌벅적했다. ‘흠뻑쇼’는 이름처럼 관객이 물에 흠뻑 젖은 상태로 즐기는 공연이다. 2011년 시작돼 여름 시즌 콘서트로 자리 잡은 ‘흠뻑쇼’가 새삼스레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최악의 봄가뭄 때문이다. 싸이가 한 방송에서 ‘물폭탄’ 쇼를 한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지난달 싸이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열리게 된 흠뻑쇼 소식을 전하며 “(흠뻑쇼에는) 다 마실 수 있는 물을 쓴다. 콘서트 회당 300t 정도 든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나... -
내 탓 하지마. 다른 외계인에게 투표했으니까
대다수 국민이 울며 겨자 먹기로 대통령선거를 치렀는데 숨 돌릴 새도 없이 우리에게 다시 선택지가 주어졌다. 당장 27~28일 6·1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고 본 투표는 일주일도 채 안 남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에도 ‘덜 악한 놈을 찍어야 하나’.지난 대선에서 절반의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처지가 뒤바뀐 양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전’으로 보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의 유권자가 자신들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새 잊었나 보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점은 정권교체에 동의했든, 동의하지 않았든 윤석열 정부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직 가늠이 안 된다는 것이다.‘답정너’ 문제 반복 풀이의 상황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선 약 3개월 만에 또 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한숨만 나온다. 더욱이 대선 직후 치르는 지방선거 일정상 그 어느 때보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