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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전체 기사 21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속리산 문장대에서 시경 공부
    속리산 문장대에서 시경 공부

    이열치열. 속리산에 올랐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도불원인 인원도 산비리속 속리산)’이라고 할 때의 그 속리산이다. 정상이 문장대라고 하기에 文章으로 짐작했더니 文藏이었다. 세조도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강론하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세속 도시에서는 폭염경보가 요란한데, 이속의 산은 의외로 시원하다. 잎자루가 잘록한 잎은 부채 같아서 그늘도 베풀고 바람도 준다.기진맥진. 정상에 도착했다.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俗離山”이란 글귀를 등에 짊어지고 표지석이 서 있다. ‘文藏臺’.당연지사. 땡볕 속의 바위를 보는데 문득 시경 소아편의 ‘남산유대(南山有臺)’가 생각났다. 인문학당 ‘상우’를 이끄는 우응순 선생님의 ‘시경 강의’ 녹취록을 풀어 출간하는 팀의 말석에서 귀동냥하고 있다. 말의 시원 같은 시경. 마침 그제 배운 내용이었다. 이런 臺를 속리산 정상에서 이렇게...

    2026.07.16 19:56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월드컵, 축구공, 소금, 메밀꽃 필 무렵
    월드컵, 축구공, 소금, 메밀꽃 필 무렵

    월드컵의 시간이다. 축구공 하나가 지구를 하나의 촌으로 묶는다. 아침 식탁에서 머리 맞댄 접시를 보다가 지구촌에 대해 떠오른 생각 하나. 맹물과 짠물은 그 분리가 절묘하다. 누가 소금을 풀어놓아 그 결정을 녹이느라 바다는 오늘도 바쁘다. 파도는 해야 할 숙제가 있어 육지를 다 덮치지 못하고 도로 돌아간다. 뭍의 외곽인 바다에 소금이 없어 민물처럼 밍밍했더라면 이 세상의 부패를 지구는 어떻게 감당했을까.“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에서 대화까지 하룻밤 장돌뱅이들의 이야기다. 90년 전 발표되어 저 고단했던 시대를 등불처럼 깜빡깜빡 비추는 ...

    2026.07.09 20:1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돼지새끼라면 팔고 다시 사고 싶은 것들
    돼지새끼라면 팔고 다시 사고 싶은 것들

    밥 먹다가 아래 기사를 읽었다. 그대로 인용한다. “‘판사님이 고민하신 결과가 이겁니까? 변호사가 고의로 소송을 말아먹었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결론 내리는 게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이 나라 법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 방청석 맨 앞줄에서 선고공판을 지켜보던 이기철씨가 ‘학교폭력 소송은 2022년 모두 종료됐다’는 주문을 낭독한 판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판부는 굳은 얼굴로 항의하는 이씨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경향신문 6월25일 보도)누구에겐들 아니 그러랴만 나의 외할머니는 몹시 당찬 분이셨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학창 시절 방학이면, 시골 외가에서 뒹굴며 놀았다. 누에치기가 큰 부수입이었는데, 누에고치를 농협에 납품하는 건 내 몫이었다. 덕유산 골짜기 사과도 명물이지만 그 뽕잎 먹고 여문 고치는 때깔도 좋았다. 손끝 매운 할머니의 작품은 늘 최고등급을 받았다. 평생의 한도 많았던 할머니...

    2026.07.02 20:05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이 세상의 모든 저녁
    이 세상의 모든 저녁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의 시코쿠 꽃산행 말석에 끼었다. 마키노 식물원에서 한국에 매우 드물게 자생하는 만년콩의 활짝 개화도 관찰했다. 일본의 100대 명산인 쓰루기산( 1955m)을 다녀오는 길.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인 기생꽃이 고원지대에 소박하게 피어 있다. 섬이라서 발버둥 치듯 산은 더욱 높이 솟았나.쓰루기산은 조릿대가 산허리부터 정상까지를 점령해 다른 식물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기엔 호쾌하겠으나, 저 아래 햇빛 한 줌 구하지 못해 질식하는 야생화들의 처지가 눈에 밟혔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처럼 빳빳한 산의 능선을 바위가 누르는 게 한눈에 보인다. 호치키스가 서류를 박듯, 띄엄띄엄 포진한 바위들. 저 돌이 아니었다면 산은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비탈을 주체하지 못해 아래로 주저앉지 않았을까. 바위들이 산을 지그시 눌러 저 키를 유지하고 그 높이에서 세상의 깊이가 유래하는 것 같다.그런 돌들의 당돌한 자세를 눈에 담고 고된 산행에서 내려와 숙...

    2026.06.25 20:17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지구는 둥글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하루를 저녁으로 마감하고 밤으로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겠나. 세상이 어질러놓은 오늘치의 얼굴을 어둠으로 씻고, 두터운 잠에 취해 꿈의 위로를 받을 수 있겠나. 도착하지 않을 외딴 새벽에 희망을 걸 수 있겠나.지구가 둥글지 않다면 밤낮이 따로 없어 그날이 또 그날. 시간이 제때 흐를 수 있겠나. 태산이 높다 해도 하늘 아래 뫼이듯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끝나는 곳은 있다. 천하가 편평하다면 언젠가 그 벼랑에서 벼락같이 떨어져야 한다. 어디로 떨어지려나?지구가 둥글기에 축구공은 지표면에 맞물려 굴러간다. 한편, 지구가 둥글더라도 공처럼 반반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다행이다, 지구가 몹시도 울퉁불퉁한 산을 바다에서 뽑아 흘립해두기에 세상은 무궁해진다. 무성한 꽃과 무수한 잎이 있어 그 표면적은 최대치가 된다. 지구가 둥근 덕분에 포물선 같은 꼭대기에 접근하면, 높고 넓고 깊음이 모두 저 아래 골짜기로부터 세상으로 흘러나가는 게...

    2026.06.18 19:5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비상한 문을 나가는 방법
    비상한 문을 나가는 방법

    참 아슬아슬하게 사는구나. 새벽에 일어날 때 따라 나온 저 생각이 출근길에도 계속 쫓아왔다. 이제 완연히 노후로 접어든 마음의 면적도 그렇고, 왕왕거리는 선거 뉴스도 그런 소식뿐이다. 최근 이사하느라 대학 시절의 길목이던 노량진을 이용하게 되었다. 오늘은 워낙 만원이라 전동차를 두 대 그냥 보냈다. 또 기다리며 문득 공중을 보니 ‘나가는 곳’이라고 화살표가 하늘 쪽을 가리킨다. 안전판에는 이런 문구. “EMERGENCY EXIT DOOR. 非常門. 비상시 사용하는 문입니다.” 지각할 순 없어 안면몰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사는 것이 참 비상한 사건.몇해 전 대마도로 꽃산행 갔을 때의 일. 시작할 때 날씨가 좀 흐리더니 산행을 마칠 무렵 비가 내렸다. 후줄근히 젖어 관광버스의 뒷좌석에 몸을 부리는데 유리창에 세련된 디자인의 빨간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非常口’. 가만, 세 글자가 각각 좌우대칭이 아닌가. 이런 풀이가 가능하겠다. 먼저 아닐 非. ...

    2026.06.11 20:11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6월의 낱말들
    6월의 낱말들

    #공장=햇빛, 이산화탄소, 물을 반죽하여 광합성하는 나무 앞에 하나 더 있다. 시선의 길이를 조절할 수 없어 볼 수 없는 운명의 공장. #바위=깔딱고개 끝에 엉거주춤 앉아 있다가, 그래도 나를 보고 승천하겠다는 듯, 어서 오시게, 아우, 눈 뜨며 손 내미는 바위를 만나면 어떻게 응대하죠? #반지름=여기에서 저기까지가 지름일 리가 없다. 저기 저 너머로 그만큼의 반지름이 최소한 더 있다. 그림자를 반납해야 보여주는 그 나머지 반지름. #그림자=언젠가 필요하면 따고 들어오너라. 내 발목에 채워주신 열쇠.#독서=책만큼 많은 골짜기가 있으랴. 낫 같은 기역. 호미 같은 니은. 당그래 같은 디귿. 어디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인 가슴을 파헤치는 농기구들. #편집=본다는 건 세상을 편집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립하는 바, 저기가 바로 거기다. 편집은 편집부는 물론 출판사보다 크고 지구보다 넓다. 휘어진 공중을 지휘하는 두 눈의 편집. #화분=내가 그 꽃을 보는 건 눈으로 풍경을 한 삽 뜨는...

    2026.06.04 20:02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부처님오신날에 생각해보는 공(空)
    부처님오신날에 생각해보는 공(空)

    있어 보이는 생각 중에 유무(有無)에 관한 것도 있지만 ‘공(空)이란 무엇인가’도 있다. 최근 어느 일본 영화에서 청년의 팔뚝에 새겨진 ‘空卽是色’(공즉시색)이란 문신을 보다가, 영화가 스크린에 현출된 빛의 집합이듯, 저 살도 실은 다 텅 빈 것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간 내 가공할 소신은 ‘빌 空’에 압도적으로 집착해서 공이란 그저 내 육안으로 못 볼 뿐 핵과 전자 사이가 텅 비어 있는 원자 구조처럼, 모든 물질이란 텅 빈 것이라고 여기는 정도였다.얼마 전 영월 다녀오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커피 마시며 노자 사부님께 질문하였다가, 공에 대한 그간의 거대한 착각이 와르르 붕괴되는 경험을 하였다. 나만 몰랐고 그대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공이란 그게 아니었다. 공이란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고정된 본성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本無自性). 공을 두고 눈앞의 실체가 텅 빈 것, 몸은 우주 먼지의 집적(集積)에 불과하다는 건 번지수를 거꾸로 짚은 말이었다.공이란 빈 컵이든...

    2026.05.28 20:28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삼척 덕항산에서 외출하기
    삼척 덕항산에서 외출하기

    삼척의 덕항산은 한자로 德項山. 덕을 포함하기에 좀 넉넉할 줄로 알았는데, 항우(項羽)처럼 힘이 불끈 솟아나는 산이었다. 그러니 등산객에겐 그만큼 아찔, 짜릿한 산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기품 있는 노랑무늬붓꽃을 따라 덕항산 정상에 도착하니 구부시령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길목에는 이런 무심한 등산 리본. “그냥 다녀갑니다. 遷化”. 생사를 넘어서고자 목숨 걸고 수행하는 고승들도 죽음은 영원한 숙제인가 보다. 굴뚝을 벗어난 연기가 아무 자취 없이 공중을 또 빠져나가듯 이 세상을 떠나는 법은 없을까. “나무꾼도 안 다니는 길로 자기가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간 뒤 쓰러지는 거예요. 그래도 기운이 남아 있으면 낙엽 긁어서 깔고 덮고 그리고 누우신다는 거죠. 완전히 기진맥진이니까. 물이 있어 뭐가 있어요. 그냥 그대로 가는 거야. (…) 그것이 가장 멋진 죽음이죠.” 이게 바로 천화다. 좌탈입망보다 더한 저 말을 나는 저 <법정 스님의 의자>라는 다큐에서 ...

    2026.05.21 20:00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풍덩, 빠지는 사람들
    풍덩, 빠지는 사람들

    늘 늦다. 나는 영화를 너무 늦게 본다. 밤늦게도 보지만 개봉하고 10년도 더 된 폴란드 영화, <이다(IDA)>. 괄호 안에 철자가 없었더라면 ‘이다’를 그저 서술격 조사로 여길 뻔했다. 이다는 주인공 이름이다. 폴란드는 좋아하고 영화는 잘 모른다. 오늘은 그 잘 모르는 것 중에서 딱 한 장면들을 소환해본다.수녀원에서 자란 이다는 수녀가 되기 위한 마지막 서원을 앞두고 있다. 전쟁에 희생된 부모님 무덤 행방을 찾아 이모와 떠난 여행. 이모도 가슴 깊숙이 묻어둔 아들을 찾는다. 가족을 짓눌렀던 비밀이 드러나고, 어떤 진실과 맞닥뜨리는 두 사람. 출중한 판사였고, 지독한 골초이자 술꾼인 이모가 붙잡고 있던 구름 너머로 연결된 끈도 끊기고 말았다. 허망했으나 그래도 희망이란 것을 가졌던 이모. 어느 아침, 숙취를 달래며 빵을 먹고, 목욕을 하고, 환기라도 시키려나, 창문을 열더니, 담배꽁초를 물고,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다가, 음악 볼륨을 높이더니, 안방을 가...

    2026.05.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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