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 어떤 골을 오를 때의 일. 급경사를 치고 올라 호젓한 능선을 걸을 때였다. 풍성한 치마폭 같은 게 버티고 있어 문득 길이 끊겼다. 제법 널찍한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바위가 그냥 바위인 경우는 드물다. 바위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침묵이 도사리고 있지만 바위의 표면은 식물의 훌륭한 서식처이다. 각종 이끼나 지의류는 아예 바위를 거처로 삼는다. 그것들이 표시하는 무늬를 보면 우주에서 누가 적은 심오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힘을 한번 주며 휙 넘어가려는데 바위에 있는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히 보니 이 산을 주름잡는 어떤 짐승이 내갈긴 그것이 아닌가. 이렇게 활짝 트인 개활지에서 볼일을 보는 녀석들이 보란 듯이 그 증거를 남긴 것이다. 어쩌면 영역표시일 수도 있겠다.휴지를 사용하는 어떤 포유류의 지저분한 그것이라면 고약한 냄새에 얼른 발길부터 돌리겠지만 이것은 자연의 생생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아닌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사인하여 ...
2025.12.04 22:05